2022년 3월 26일 토요일 (흙날) 오늘 오전까지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으나 비는 그치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엄청나게 불다가 저녁 무렵에 조금 잔잔해짐.
제목 : 보물섬인 남해를 다녀오다 (독일마을2)
아픔의 역사가 있는 독일에 파송된 광부와 간호사들. 그들이 벌어드린 외화가 국가 기반의 초석이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그 당시 내가 그 나이였더라면 나도 독일 광부로 갈 수 있었을까? 그 당시 독일 광부 급료가 그 당시 한국 회사원들 월급의 10배라 했으니 얼마나 선망의 직장이었을까? 그때 파송된 광부의 애환을 그린 책 글뤽아우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글뤽 아우프라는 뜻은 독일어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살아서 지상에서 만나자. 라는 광부들의 구호라 했다. 막장에서 일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에 막장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 동료들 끼리 연대감을 조성하기 위한 구호 글뤽 아우프다. 그런 소설을 읽었기에 독일 마을 방문은 뜻깊은 날이 아닐 수 없었다. 남해 향촌에서 점심을 먹고 독일 마을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차들이 많았다. 그들의 애환을 보러 온 것인지 아니면 단순 관광 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독일 마을이 남해군 관광의 구심점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다. 전향적인 생각을 남해군의 뜻과 독일에 파송된 일부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에 터를 잡기 위한 일념이 합쳐져서 이 마을을 형성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좋은 정책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해마다 유명한 독일 맥주 축제를 가을에 열린다고 하나 2년 째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금년에는 할 수 있을 것이리라.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은 독일 마을에 가서 맥주를 일부러 사가지고 각자 집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많을 것이다. 독일 마을에 가서 더러 그런 모습을 봤다. 우리야 맥주하고는 담을 쌓고 사니 살 필요가 없겠지만 술을 좋아하는 이들은 당연히 살 것이다.
우리는 파독 광부나 간호사들의 애환을 그린 남해 파독 전시관으로 갔으나 인원이 찼다고 하여 우선 전망대로 갔다. 거기에서 보니 독일 마을의 모습들이 다 보였다. 거기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가서 보니 거기에는 파독 누구누구네 집이라는 표찰이 붙어있었다. 마을을 몇 가구 둘러보고 다시 전시관으로 가니 다행이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가서 지하로 내려가니 입구는 막장 형태로 꾸며놓았다. 막장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가지만 정말 그들은 하루하루를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런 현장에서 일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움을 겪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고향의 가족이 나로 인하여 부유하게 살 수 있다면 고생도 감수하려는 그 정신자세가 있었기에 그들의 생활이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글뤽 아우프 책에는 파독 간호사들의 애환도 글로 표현했다. 병원측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한국 간호사들에게 맡겼다고 한다. 서양의 키 큰 남자들의 병수발을 하는 간호사를 생각해 보라. 한국의 간호사들은 서독 간호사들 보다 키가 평균적으로 작을 것이다. 그런 반면에 서양 남자들은 그 당시 한국 남자들 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크지 않았겠는가? 그런 큰 남자들의 병수발을 생각만 해도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에서도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만나 결혼을 해서 자녀들을 키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분들이 이제 노년이 되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남해에서 제공해 주었으니 그들의 삶이야 말로 노년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시관에는 파독 광부들이 사용했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그들이 결혼식 할 때 입었던 옷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광부들이 사용한 도구들은 독일 사람들의 체형에 맞게 제작되어 있어 한국인들에게는 큰 짐이었다. 정말 위대한 파독 광부들이었다. 그런 슬픔과 기쁨을 뒤로 하고 우리는 독일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남해의 특산품인 유자빵을 사가지고 오늘 최종 목적지인 을미해안전망대로 발걸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