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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트레킹 둘째 날(2015년 4월 13일, 월요일)
뉴 브리지(해발 1,400m)의 첫 날 밤은 춥지도 않고 빌려온 침낭 안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밤사이 내리던 비는 아침에 잠시 멈추었다. 어제 보았던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73m)의 하얀 설산 봉우리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 것처럼 느껴진다. 저 아래 계곡에는 누런 황토물이 급하게 요동치듯 흘러간다.
아침으로 계란을 넣은 신라면을 먹었는데, 꿀맛이다. 값은 450루피. 포카라 한국식당 가격의 거의 두 배인 셈이다.
역시 높은 산속이니까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것 만해도 감사해야 한다.
라면국물 한 방울, 건더기 한 조각 남김없이 깨끗이 먹어 치웠다.
사르키는 아침으로 달밧을 먹는다.
어제 나야풀에서 출발 전에 선불로 포터비의 절반을 주려고 했더니 2천 루피만 달라고 한다. 나머지는 트레킹이 끝나고 포카라에 가서 셈 하자고 말한다. 그 만큼 자신을 믿어 달라고 하는 말이리라. 2천 루피는 자신의 식사비용으로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식당에서는 자기들의 동포들인 포터들에게는 잠자리 값은 받지 않고 식사비용만 외국에서 온 트레커들 보다는 훨씬 싼 값에 제공할 것이다.
어제 저녁에 라스트 디너를 먹었던 네덜란드 녀석은 아침을 먹자 마자 등산화 끈을 조여 매더니, 나를 보고, "Good luck! See you again." 라고 말하길래, 곧 바로 나야풀로 가서 포카라로 갈 거냐고 물어보니 지금부터는 천천히 다른 곳을 둘러보면서 내려갈 생각이란다.
우리도 7시 반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사르키의 스마트폰에 음악다운이 완료가 덜 되었는지 몇 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Ok. No problem!" 이 험한 산길에서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오르려면 어쩌면 신나는 음악이 유일한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늘은 계속 잿빛이다. 이런 높은 산에서는 태양이 지상보다는 더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흐린 날이 산행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길은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지누(Jhinu, 해발 1,700m)에서 밤을 보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나마스테(Namaste)'하면서 양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지나간다.
나마스테는 힌디어로 'I honor you.'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힌두교의 신은 이름만 있는 신이 3백이 넘고 이름 없는 신까지 합치면 3천이 넘는 신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가슴에 모시는 신들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믿고 있는 신을 존중하며 그 신에게 머리 숙여 절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어떤 신을 믿든지 당신이 믿고 있는 신을 존중한다는 뜻이고 결국,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나마스테‘라는 말은 인종과 민족, 국가를 초월하여 히말라야에서 트레킹하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만국 공용어 같은 것이다.
여기서는 서로에게 합장을 하거나 ‘나마스테’라고 하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가벼운 눈인사라도 하며 그냥 모르는 체하고 지나치는 법이 없다.
산골 동네의 아이들이 마치 수십, 수백 개의 물음을 지닌 것 같은 말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눈빛으로 나와 다른 트레커들을 쳐다본다.
여기서는 매일 흔하게 보이는, 배낭을 짊어지고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내리는 이방인들이겠지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대해서 사르키에게 물어보니 란드룩(Landruk)이나 촘롱(Chomrong) 쯤에 학교가 있는데 대개 두 세 시간은 걸어 다녀야 한다고 답한다.
우리도 예전에 시골에서 책 보따리를 매고 산길을 넘어서 학교를 다녔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누에서 잠시 쉬면서 미네랄워터와 환타 오렌지를 시켰는데,
이 지역부터는 미네랄워터는 없고 물을 끓여서 석회질을 제거한 후에 판매한다.
물병이 있어야 한다. 환타는 컵에 반쯤 나눈 후 사르키에게 마시라고 주었다.
작지만 나의 마음표시다.
또 오르막이 계속된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서 숨이 턱밑에까지 차올라 뒤를 돌아보니, 어제 마주쳤던 짐꾼이 닭장을 짊어지고 긴 막대기에 의지한 채 슬리퍼를 신은 한 발 한 발 마치 고행이라도 하는 듯이 힘겹게 올라온다.
이방인인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자 어쩌면 즐기는 트레킹이지만 네팔리 짐꾼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다. 나는 집에서 수만리를 날아와서 돈을 쓰면서 산을 오르지만, 짐꾼은 생때같은 가족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기 위해 무거운 화물을 지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이다.
아득히 저 건너편 산허리에 아까 아이들이 있던 집과 가게가 보인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한 떼의 트레커들이 배낭들을 새워 놓고 쉬고 있다.
또 한 떼의 사람들이 트레킹을 마치고 산길을 내려간다.
한 삼십분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니 작은 상점 처마 밑에 작은 태극기가 걸려있다.
마당에 휠체어를 탄 한 네팔리가 우리말로 "어서 오세요. 바나나 맛있어요."하고 반긴다.
작은 좌판에는 바나나 서너 송이, 사과 대여섯 개 정도와 과자 몇 봉지가 놓여 있다.
상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단출하다.
아마도 한국 트레커들이 많이 다녀갔던 모양이다.
한 개에 100루피 하는 사과 두개를 사서 사르키에게 하나 주면서 한입 먹었는데, 씹는 감이 약간 퍼석하지만 달고 맛있다.
이 지역에서 나온 것이냐고 사르키에게 물었더니, 사르키가 휠체어 네팔리에게 자기네 말로 물어본다. 여기 해발 2천 미터 정도의 지역에서 자라는 과일이라고 한다.
또 비탈길을 돌아서니, 아득한 내리막길이 계곡까지 이어져 있고 그 다음부터는 또 오르막이다.
어제 만났던 네덜란드 녀석이 시누와(Sinuwa, 해발 2,350m)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몇 번 계속되어 약간 힘들 거라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약간이 아니고 몇 곱빼기로 힘들다.
11시쯤 촘롱(Chhomrong, 2,170m)에 도착했다. 사르키 말에 의하면 어제 강행군을 했더라면 잠을 잤을 곳이다.
한 식당에는 한국어로 된 간판과 메뉴를 적어 놓았다. 김치찌게, 된장찌게, 김치 뽁음밥.
그 집으로 가서 점심으로 김치찌게를 시켰다.
500루피, 물가 비싼 포카라 한국식당도 380정도이지만, 이 산속에서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니! 감지덕지 아닌가?
그런데, 김치 맛을 흉내 냈지만, 신맛이 너무 강하다.
아침으로 라면을 먹어서 그런지, 밥을 두 그릇이나 시켜서 다 먹어 치웠다.
한 백인 녀석이 ‘Namaste, Where are you from?'하고 나에게 다가온다.
악셀손(Axelson)이라고 명함까지 내민 녀석은 스웨덴 스카니아(SCANIA) 자동차 회사의 엔지니어라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한국에는 북경에 가려고 환승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6시간 머문 것이 전부라 한다.
그러면서 H&M, IKEA, SCANIA 등의 자기네 스웨덴 브랜드가 최고라고 은근히 자랑한다.
혼자 왔냐고 물으니, 여자 친구하고 그녀의 친구 두 명하고 넷이 왔는데, 그녀들 챙기느라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먼저 내려왔는데, 여기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12시쯤에 다시 출발하려는 데 그녀들이 도착했다. 나에게 소개를 해준다.
그와 그녀들은 나에게 'Good Luck!'을 기원해준다.
히말라야에서는 그 누구라도 쉽게 말을 걸고 잠시나마 친해지고 또 헤어진다.
인종과 성별, 나이를 뛰어 넘어서.
12시에 다시 출발하여 한 100미터 정도 길을 가는데 카메라와 렌즈가 들어 나의 배낭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 참! 물병을 놓고 왔구나! 했더니 사르키가 놀라서 달려간다.
녀석은 나의 소지품에 대해서까지 케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고맙고 한 층 안심이 된다. 역시 나는 럭키한 것이다.
내리막길이다. 올라온 만큼 아득한 길이다.
그런데 돌을 조각 내어 계단을 낸 길이라 이 길을 누가 만들었냐고 사르키에게 물어보니 여기 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길과 집들을 빼고는 이 지역은 그 옛날 태고적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산허리 곳곳에 구름이 끼어 있고 울창한 숲은 옛 모습 그대로 일 것이다.
제법 큰 마을인 촘롱을 지나고 한참 후에서야, 제법 넓은 계곡사이를 와이어로 엮어 만든 구름다리가 있는 곳이 내리막의 끝이다.
다시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 산골 동네 할머니 같은 여인네 세 사람이 오르고 있다.
아마도 평생을 이 오르막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산길을 걸어 다녔을 것이다.
히말라야지역 산골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 같은 것은 타고 다니기 힘들 것이다.
아이들은 최소한 두 시간을 걸어가야 학교에 도착하고, 짐꾼들은 차가 끊기는 곳부터 짐을 지어 날라 생계를 꾸려간다. 사람이 살면서부터 산허리에 길을 내고 언덕을 파헤쳐서 논과 밭을 만들어서 농사를 지어왔을 것이다.
뉴 시누와(New Sinuwa)에 도착했다. 시누와는 그냥 시누와하고 두 개의 마을이 있다.
점심때 촘롱에서 사르키가 시누와에 전화를 걸어서 숙박할 방을 예약하려 했는데, 방이 없어 다음 지역인 밤부(Bamboo)까지 가야 한다.
해발 2,360m인 시누와까지만 일반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짐승을 키우면서 주거한다.
사람이 사는 한계선인 셈이다.
그 이상은 트레커를 위한 숙박시설인 로지들과 상점을 겸하는 식당들 몇 개 뿐이다.
남은 곳은 시누와(Sinuwa), 밤부(Bamboo, 해발 2,310m), 도반(Dovan, 2,520m), 히말라야(Himalaya, 2,920m), 데우랄리(Deurali, 3,200m), MBC(Machapuchre Base Camp,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3,700m), ABC(4,130m)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난방은 되지 않고, 조리된 음식이나 온수샤워는 가능하다. 음식은 가스불로 만드는데, 포터들이 가스통을 짊어지고 온다. 온수샤워는 전기를 이용하는데 전력에 의한 것과 태양광을 이용한 보일러를 가동시켜서 만든 온수를 사용할 수 있다. 우기 때는 그나마 햇볕이 드는 경우가 드물어 태양광을 이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잠잘 때 침낭이 필요한 것이다.
시누와에서 밤부까지 길은 평탄하거나 내리막이 대부분이어서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하늘은 계속 찌푸려 있어, 땀과 비에 젖어 로지 숙소에 도착했지만, 젖은 옷을 말릴 수 없어 걱정이다. 여기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서 쉬고 있다.
ABC를 향해서 가는 사람들,
이미 ABC를 갔다 온 사람들이다.
‘Happy New Year!' 어떤 네팔리가 사르키에게 신년 인사 말을 외친다.
내가 의아해서 물어보니, 오늘 서기로 4월 13일이 네팔 월력으로 1월 1일이란다.
그 것도 2072년도란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이런 봄날이 새해 첫날이란 말인가?
사르키도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지만 자기네들은 오늘이 새해 첫날이라고 한다.
사르키가 안내해 준 방에는 마침 오늘 아침에 ABC에서 내려 온 한국사람 두 분이 짐을 정리 하고 있다. 일을 은퇴한 듯한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쯤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ABC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동포애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추위는 침낭만 있으면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 고산병증세가 문제란다. 미리 준비한 고산병 약을 먹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는데, 거기서 만난 한 백인 여성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ABC를 목전에 두고 하산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으면 목전에 두고 포기하다니!
고산병 약의 문제는 입맛을 잃게 한다고 귀띔해 준다.
날은 흐리지만 마침 네팔의 새해 첫날에 히말라야의 품 안에 있다니!
행운이라는 것인가?
내일은 자비로운 안나푸르나 여신의 은총으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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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 스웨덴 브랜드가 최고지요. 그 사람에게는...
이대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