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천지 웬수지간인 어버지의 옆에 엄마의 유골을 합장했다. 이젠 엄마가 죽어서 형제들간의 다리가 끊겼다.
서로 연락도 안하고 내팽겨치듯 혼자 살아야 했다. 작은 형은 요즘 다섯개의 식당을 가지고 월 매출 5억을 올
리는 부자가 됐다. 서로 자수성가 하는식이라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작은 누난한국 고전무용을 배워 일본
에 진출해서 일본에서 수억을 벌었다. 일본에서 카페를 차려 대박이 났다. 큰형은 빵공장 공장장이다. 구파발
에서 꾸준히 일해서 아파트를 얻었다. 큰형 아들 즉 조카가 아들,딸을 낳고 작은형도 아들, 딸을 낳았다. 난 졸
지에 막내 작은 아버지가 되었다. 손주들에겐 막내 할아버지다. 참... 엄마는 그동안 식구들의 울타리였고 형제
들은 그 안에서 어울렸을 뿐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울타리도 없어졌고 형제들을 만날 다리도 끊겼다.이젠 정
말 혼자다...! 나는 차를 팔았고 집을 빼서 영등포로 값싼 집으로 이사를 했다. 매일 우울했고 술에 젖어 살았
다. 아임에프로 소고기 파동이 나고(광우병)알바를 할 식당도 없었다. 결국 돈이 떨어지고 우울증 약을 타먹
으면서 매일같이 술로 살았다. 내 나이 서른 여덟... 아직 엄마가 내집 방에 있는 것 같다. 술잔을 두개 놓고
벽을 보고 마주앉아 엄마 한잔 나 한잔 따르며 건배를 했다. 재밌는 이야기도 했고아버지의 흉을 보기도 했다. 술기운이 쫙 빠지자 아침에헛것이 보인다. 벽으로.. 베개 옆에.. 귀신들이 돌아다닌다. 눈은 쪽 찢어져 빨갛고 개미만한 흰 소복을 입은
귀신들이 온 방을 기어다닌다. 술 마신지 보름...밥을 한 끼도 안먹었다. 모래알같아서 씹을 수가 없었다. 구
토를 하고 섬망이 보여 옆집사람에게 119를 불러달라 부탁했다. 싸이렌소리가 나더니 눈이 감겼다. 이틀동안
잠을 잤단다. 팔엔 링게루가 꽃혀있었고 환자복으로 환희한 상태였다. 정신이 들고 절뚝거리며 퇴원을 했다. 간
경화가 있단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의 술 유전자를 나또한 받은 것이다. 끔찍했지만 돌아서서 곧 잊어버렸
다. 배낭을 하나 샀고 안전화를 한켤레 샀다. 작업복과 토시를 샀다. 다음날 인력사무실로 출근했다. 노가다라
도 해보기 위해서이다. 첫 날 일을 보내줬다. 아무것도모르는 나는 시키는대로 무거운 물건을 날르는 일만 했
다. 새참도 얻어 먹었다. 점심밥도 맛있게 먹고 저녁 5시에 일을 마쳤다. 인력사무실에 싸인지를 가져다 주니 58,000원을 준다. 월급만 받다가 일당을 받으니 신이났다. 집에 그냥 갈 수 없어서 낮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대패삼겹살에 소주 한잔
씩 했다. 내겐 큰 행복이었다. 소소한 것에서 느끼는 의리와 정감... 인력사무실 사람들을 점차 알아가니 "형
님, 아우"하며 매일 일당을 받아 술을 먹기 일수였다. 그나마 집이 전세이니 다행이었다. 형님들과 아우님들
은 고시원이나 쪽방에 거주하며 근근히 살아갔다. 금,토,일은 경마장까지 다니는 형제들이다. 그날 벌어 그날 탕진해버리는 사람들이다. 인력사무실에 3년 만근을 하면서 소장한테 인정을 받고 봉고차를 내주어 일꾼들을 실어 함께 다니는 기사겸 팀장을 역임했다. 다른일꾼들보다 만원이 더 떨어졌다. 현장에서도 운전기사는 험한 일을 시키지 않는 장점이 있어 좋았다. 그러나 환갑이 넘은 형님들의 땀을 보면 너무나 안스러웠다. 일을 마치고 내돈으로 회식을 시켰다. 매일같이 함께 하는 식구들, 멤버들이기때문이
다. 강원도 춘천에 군용 막사를 짓기 위해 한달씩 팀으로 다녔고 구미, 대전, Gs그룹 엘지에도 내려가 자재정
리를 했다. 도급이라 일을 정석대로 빨리 끝내야 이윤이 많이 남는다. 한달 일 할 것을 보름에 마치면 보름치
를 더 받는 것이다. 그 돈으로 우리 멤버들 회식도 하고 웃돈도 나누어 준다. 처음엔열세명이 한팀이 되어 구미
로 내려갔는데. 꼭 한두명이술에 쩔어 다음날 일을 빵구냈다. 남은 열명이 그 일을 마쳐야 한다. 도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난 팀장으로 일하면서 지게차를 몰았다. 삿보드나 파이프, 폼, 아시바, 기둥짹등 떠서 인양하기 좋게
떠서 날라야했고 무전기를 들고 목수팀과 수신호를 하며 타워크레인 기사와 소통을 한다. 팀원들과 두달 간
의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올 때 1000만원씩은 주머니에 챙겨왔다. 어느덧 노가다 12년치다. 이젠 연장부
터 도면까지 모르는 것이 없다. 인력사무실 소장에게 바라시일이 있으면 저희들 좀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바
라시는 해체이다. 아파트 건물에 나무로 목수들이 덧댄 가형물이다. 폼과 삿보드, 아시바, 각파이프, 오비끼,
다리끼, 투바이등 핀을 치며공구리 양성 된곳에서 부터 거푸집을 뜯어낸다. 이 기술은 위험해서 건드리는 사람
들이 드물다. 거푸집 한 번 잡아 내리는데 장빠루로 밴딩한 것을 갓다로 끊고 한번에 내린다. 10톤 정도의 무
게의 거푸집이 와장창 바닥으로 내리 꽃힌다. 이렇게 벽체와 외벽 천정을 해체하면 자재정리팀이 와서 정리
를 한다. 이 일당은 그때 당시 25만원이다. 일반 잡부는 58,000 원이었다. 그래서 요령만 알면 해체일이 더
쉬었고 돈벌이가 되었다. 어느날... 장마가 지고 일이 없고 영하 5도이상 내려가면 작업거리가 없다. 날 좋을 때 벌어둔 돈으로 장마철과 한겨울을 나야 한다. 팀원들중 막내가 나보고 "팀장님! 경마장 같이 한번 안 갈래요?" 경마장의 경자도 몰랐
다. "그래~가보자~ 스크린 경마장이 영등포에 네개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아우는 이것저것 찍더니 돈 5만
원치를 샀단다.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렇게나 많이?난 쌍식을 오천원 주고 3,9번을 대충 찍어 봤다. 아우
는 꽝이였다. "이런.. 아까비!... 힘들게 벌어서 십분만에오만원씩 잃는 동생이 이상해 보였다. 내 차례다. 사람
들이 소리치고 있다. 삼!삼!구!구!~ 3말머리에 9후구가같이 들어왔다. 와!!! 놀랬다
장난삼아 5천원 찍어서 제대로 들어온 것이다. 결국 배당은 120배당이 되었다. 차띠고 포띠고 75만원을 땄
다...... 완전히 쌔뻑... 그만하기로 마음 먹고 동생을 데리고 1층 닭곰탕직으로 가닭곰탕과 소주 한잔씩 주고 받았다. 동생은 40만원 잃었단다. 안타깝다... 일거리가 없어 서울역으로 직업소개소를 찾았다. 뱃일 아니면 새우잡이, 멸치잡이, 염전, 신통치 않았다. 직업소개소장이 제부도에서 제일 부잣집인데 올 가을부터 김양식을 시작한다고 추천했다. 봄에 김공장으로 옮기는 일까
지만 하면 된단다. 집에가서가방을 싸고 제부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