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만 했을까 / 양선례
출근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장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전남 스포츠 클럽 도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남자, 오후에는 여자 피구 경기가 열린다. 한 팀의 피구 선수는 후보를 포함하여 12명이 필요하다. 선수가 빠지고 나면 학급에 남은 아이는 몇 안 된다. 결국 우리는 4~6학년 전부가 일부는 선수로, 남은 아이는 응원 부대로 총출동했다.
경기장인 장흥 향원중학교까지는 순천에서 한 시간이 걸렸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우리 아이들이 경기를 마치고 막 나오고 있었다. 타이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등이 들어온 걸 보고 장거리를 운전할 수는 없었다. 문 여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돌다 보니 오전 아홉 시에 열리는 첫 경기를 보지 못한 것이다. 아쉬웠다.
체육관에는 함평초와 매안초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양 팀 선수 대부분이 키도, 덩치도 컸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큰 두 아이가 수비에 가담하여 양쪽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기회를 노리다가 빈틈이 보이면 재빠르게 안에 있는 상대 팀을 공격했다. 겉보기에는 도저히 초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공의 속도도 어찌나 세고 빠른지 어른이 받기에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저 피하는 게 상책으로 보였다. 한동안 접전이 이어지다가 결국 함평초의 승리로 끝났다. 알고 보니 그 학교는 작년 도 대회 남자 우승팀으로 전국 대회에도 나갔다고 했다.
지역 예선을 치르고 본선에 진출한 팀은 모두 여덟 학교이다. 전교생이 천 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가 세 곳, 3백 명 넘는 학교가 세 곳, 남은 한 곳은 2명이 모자란 백 명이다. 그에 반해 우리 학교는 62명뿐이다. 게다가 3~6학년을 통틀어도 남학생은 모두 열아홉, 도움반 학생 두 명을 빼면 열일곱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출전 종목은 피구와 풋살 두 종목이나 된다. 지역 예선에서 우리보다 훨씬 큰 학교와 맞붙었다.
운동 신경이 없는 아이를 제외하고, 남은 아이를 두 종목으로 나누다 보니 2학년이 네 명이나 선수로 뛰었다. 조금 더 승산이 있는 풋살에 고학년 선수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 선수와 한눈에 보기에도 체격 차이가 상당했다. 그 작고 마른 아이들이 공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면 응원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도 수월하게 이기고 도 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스포츠 클럽 대회는 한 선수가 한 종목에만 참가할 수 있다. 되도록 많은 학생에게 고루 기회를 주려고 정한 규정이겠으나, 우리처럼 작은 학교는 이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다른 종목과 날짜가 겹치지 않으면 10학급 미만의 소규모 학교는 선수 운용을 학교 재량에 맡겼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번만 봐도 피구는 이틀, 풋살은 하루만 경기를 치르는 데 날짜가 다르기에 저 규정만 아니라면 그렇게 무참하게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남은 작은 학교가 과반에 이른다. ‘작은 학교 살리기’가 전남 교육의 큰 과제라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한다. 말로는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관계자는 미처 이런 문제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도 스포츠 클럽 대회는 큰 학교의 잔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른 학교에서는 6학년이 주축이 되는데, 그럴 수가 없는 소규모 학교는 여기까지 올라온 것으로, 다른 학교의 들러리가 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오전 11시가 되자, 우리 아이들이 출전하는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체구도, 키도 작은 우리 아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찌나 갸녀린지 몇 명은 무릎 보호대가 흘러내렸다. 경기 중에 자꾸만 그걸 끌어올리는 2학년 아이를 보면서 고래와 싸우는 새우가 연상되었다. 천 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서 뽑힌 6학년 중심의 상대 팀 선수들과는 기량 차이가 많이 났다. 약자에게 마음이 쏠리는 게 인간의 본성일까. 응원꾼 대부분이 우리 팀을 응원했으나 결과는 큰 점수 차이로 지고 말았다. 심판과 경기 진행을 맡은 요원도 2학년이 출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안타까워했으나, 그들에겐 규정을 따라야만 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었다.
출전 종목이 하나뿐인 여자 피구 경기는 우리도 고학년 위주로 팀을 꾸릴 수 있었다. 물론 운동에 재능이 있는 4학년도 몇 명 끼었지만. 점심을 먹고 오후에 치러진 여자 피구 첫 번째 경기에서는 우리 팀이 이겼지만 두 번째 경기는 반대였다. 우리 팀 에이스가 그만 독감에 걸려서 후보 선수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책임감 때문에 무리해서 첫 번째 경기도 뛴 터였다. 공격은 맞지 않고, 수비는 공을 쉽게 놓쳐 상대편으로 공격권이 넘어가는 일이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실수가 반복되더니 급격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어른의 경기에서도 흐름이 중요한데 경험이 적은 아이들은 말해 무엇하랴.
잔치는 끝났다. 승패와 상관없이 우리 선수들 그만하면 잘 싸웠다. 점심을 먹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삼각 편대로 서서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연습하는 아이들을 자주 보았다. 운동을 즐기고, 친구와 어울리는 그 시간이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토요일엔 풋살 대회가 열렸다. 선생님 셋이 휴일인 데도 아이들을 인솔했다. 피구와는 다르게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가 치러졌다. 기대한 종목이었는데 첫 경기에서 아깝게 지고 말았다. 점심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중이라는 담당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창밖에 비 쏟아지는 걸 보면서 먹는 삼겹살은 더 맛있으리라. 우리 아이들, 배부르게 먹으면서 패자의 설움을 몽땅 털어버리기를, 오늘의 경험이 내일의 거름이 되기를 바라 본다.
첫댓글 에구, 아쉬웠겠어요. 규정은 관계자 회의에 가면 건의해야 겠네요. 학생 수가 적은 학교와 많은 학교 구분을 두자고.
그러게요. 아쉬움 뚝뚝입니다.
선생님 글 읽으며 25년 전 옛일이 떠올라 새롭습니다.큰아이가 순천공고 씨름부에 있어서 자주 대회를 나갔어요. 전국 대회장 마다 모였던 그 아이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까 궁금하지만 그 충만했던 열기를 끌어내어 열심히 살꺼라 믿으며 가끔 그 추억을 꺼내 보며 웃는답니다. 선생님 좋은글 고맙습니다.
와우, 아드님이 멀리까지 학교를 왔군요. 남편도 순천공고 나왔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대회가 열리는 전국 곳곳으로 어머니들이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면서 응원과 뒷바라지를 했던 걸 저도 기억합니다. 그럴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기회조차 가지 않았던 적도 많았구요. 고맙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루도 안 거르고 연습하며 즐거워하는 우리 아이들이 떠오르네요. 동병상련! 영암 스포츠클럽 나가기 전 연습한 기억만 떠올리며 즐기고 오라했네요. 작년 대회에서 큰 학교와 붙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던 아이들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게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죠. 우리 아이들도 우는 아이들이 여럿이었답니다. 작은 학교 다니는 게 벼슬은 아니지만 배려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양 감독님의 표정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아이들에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네요.
오늘 아침에 물어보니 삼겹살을 4인분 먹은 아이도 있었다네요.
열심히 놀고, 잘 먹는 게 초등학생 아이들이 할 일이죠.
건강하게 자라는 것.
말도 안되는 불합리한 대회네요.
규모가 비슷한 학교끼리 겨루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뭔가 신나게하는 규정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본부에 이의제기하려고요.
그래도 출전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학교가 3일간 들썩들썩했거든요.
이제 공부에 매진할 시간.
에그 , 안타깝고 안쓰럽네요.
그래도 씩씩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어 행복해 보이네요.
작은 학교 화이팅!
응원 고맙습니다.
작은 배려가 있었으면 더 힘이 났을 텐데 말입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현장 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 모습도 눈에 아른거리고요.
오우, 목표 달성이군요.
칭찬,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도 늘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저는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 수고했다고 머리 쓰다듬어 줬습니다.
읽으면서 화가 나네요. 감정이입까지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하하. 아이들은 그런 마음 없이 오늘 즐겁게 잘 노네요.
고맙습니다.
제가 마치 인솔 교사인 듯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열악한 조건에서 참가한 경기로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선생님의 따듯한 위로는 아이들 마음에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아 잊히지 않을거예요. 생생한 글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이의를 제기해야 약간이라도 바뀌겠지요?
그런 마음으로 썼답니다.
읽는 내내 조마조마 한 마음이었습니다. 이겼으면 하는 응원을 보냈는데 안타깝네요. 선생님. 수고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즐기고 오라고 하긴 했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화가 나더라고요. 안쓰럽고요.
아이들을 아끼는 선생님 마음에 저도 감정이입 되었네요. 깔끔한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스포츠클럽 남자 배드민턴종목에서 준우승했답니다. 다들 엄청 기뻐했지요. 그날이 생생하게 잡힐듯 합니다.
작은 학교인데 대단하네요.
축하드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날 71만 원어치 삼겹살을 먹었더라고요.
놀랐습니다.
저는 예전에 토론대회 참관했다가 작은 학교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대형 학교 아이들은 훈련을 잘 받은 티가 확 나더라구요.
작은 학교 아이들도 야무지게 하기는 했지만 태도나 어휘선택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였지요.
교육부나 각지역 교육지원청은 지원이든 격려든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래도 작은 학교는 나름의 장점이 많습니다.
교사와 학생의 사이가 교육적이며 인간적인 것도 그렇고,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존엄하게 대접받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큰 학교에서는 그리 안되거든요.
작은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충분히 잘 했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돋보입니다.
선생님의 수고가 보이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