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8:1~11 심판하시는 하나님 2021. 6. 30
1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2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 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6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7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8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9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1)생나무든지 불 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가게 하소서 10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11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본문의 표제어는 지난주와 같아서 생략합니다. 오늘 본문의 설교 제목은 11절을 따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0~11절을 먼저 봅니다. “봉독” 의인이 악인의 보복당함을 기뻐합니다. 악인이 제대로 심판을 받고 의인이 신원을 받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시편이 나오는 이유는 다윗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볼 때 세상은 정의로운 심판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시편 37편과 73편과 욥기와 하박국서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공의와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이 없습니까? 우리는 어쭙잖은 자기 행위를 가지고도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시편 130편을 보면 주께서 죄를 살펴보시면 누가 설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유하심이 주께 있기에 주를 경외한다고 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면 단 한 명도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까지 다 살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본문 1~2절을 봅니다. “봉독” 이스라엘의 통치자란 왕만이 아니라 제사장도 들어갑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법은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백성을 통치하는 법전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율법 책을 왕 옆에 두고 늘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만해지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왕은 말이나 은금이나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합니다(신17:16~2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왕과 제사장만이 아니라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도 있습니다. 이들도 재판하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세우라고 합니다(출18:21~22).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행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러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중심에 악을 행합니다. 마음 중심에 악을 가지고 있으면 그 악을 행하는 일이 손입니다. 이런 일들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성경은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도자는 율법의 규례로 백성을 재판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백성들 사이에서도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힙니다. 이러한 내용이 너무 많아서 두 곳의 말씀만 봅니다.
이사야 3:13~15절입니다. “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 불의를 행하여 가난한 자들을 탈취한 자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의 결론은 나라의 멸망입니다.
예레미야 5:1~2절입니다.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정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만 찾아도 예루살렘을 용서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없었기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겁니다. 이러한 자들을 징계하여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들의 귀가 막힌 겁니다.
예레미야 5:20~21절입니다.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미 율법을 주고 그 율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였지만, 그 율법대로 하지 않는 자들에게 책망하여도 그들의 듣지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런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심판받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의 눈과 귀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막혔는지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자기는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권력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백성들 사이에서도 힘센 자가 힘이 약한 자를 괴롭히는 일을 성경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34장을 보면 양과 양 사이에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힌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약한 자라고 하여도 또 나보다 약한 자를 괴롭힌 겁니다. 화가 나면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 화를 표출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세상의 불의에 대하여 저항운동을 하다가 자기 자신도 불의한 자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물건이 있습니다. 그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어떠한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유명한 축구선수의 몸값이 얼마인지 보통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그 축구공을 만드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합니다. 길에 나가보면 유명메이크 신발이 많습니다. 그런 신발을 만드는 공장은 인건비가 싼 나라에 있습니다. 그런 곳은 또 가난한 자들을 착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모든 일들 안에 온갖 속임과 폭력과 악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죄악된 모습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본문 3~5절입니다. “봉독”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악인입니다. 이 고백을 누가 했습니까? 다윗이 시편 51편에서 했습니다. 오늘 시편도 다윗의 시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이런 시편을 기록할 수가 있습니까? 원수를 심판하여 달라고 하면 자신도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간음과 살인으로 인하여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심판을 받고 나니 원수들이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을 때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책망하여도 듣지 않는 자들이 귀머거리 독사와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참된 선지자는 싫어합니다. 지도자들만 참 선지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싫어합니다. 예레미야 5:30~31절을 보면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일은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겠느냐고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말을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 핍박을 받기에 하나님께 간구할 뿐입니다.
본문 6~9절입니다. “봉독” 그들의 이, 곧 독사의 이를 꺾어 달라고 합니다. 시편 55:9절에서는 그 혀를 잘라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혀와 입으로 사람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자나 뱀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력입니다. 그 배후가 사탄입니다. 그 사탄에게 붙들린 정치와 종교의 권력자들을 심판하여 달라는 겁니다. 큰 권력을 가진 자는 큰 악을 행합니다. 작은 권력을 가진 자는 작은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성경을 보는 자들이 더 큰 힘을 달라고 한다면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모르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독이 가득한 뱀의 이빨과 같고 힘이 센 젊은 사자의 이빨과 같은 그 세력을 이기는 길은 그와 같은 힘을 가지고 이기는 길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 간구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비가 내리면 강물이 급하게 흐르다가 비만 그치면 강물이 사라져 버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악인이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꺾어진 화살처럼,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처럼, 사산한 아이처럼,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이든지 불이 붙은 것이든지 강한 바람으로 사라지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 간구를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말라기 3:1~5절입니다. “봉독” 1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오고 언약의 사자도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자는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언약의 사자로 오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십니다. 그러면 오늘 시편 본문에서 독사의 이를 꺾으시고 사자의 어금니를 깨어 버리실 메시아가 어떤 모습으로 와야 하겠습니까? 독사를 밟고 사자를 죽이는 힘과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언약의 사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시는데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같은 세리와 죄인들과 창기였습니다.
마태복음 20~28절입니다.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제자들끼리 누가 서로 높으냐는 다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으로 섬기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임금이 되면 누가 더 높은 자리 차지할 것인지로 다투면서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높아지기를 다투는 나라가 바로 세상의 나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나라를 심판하시는 일은 세상의 힘으로 심판하심이 아니라 자기 죽음으로 이루어내십니다. 그 일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며 세상 힘을 추구하는 자는 심판입니다.
누가복음 20:45~47절입니다. “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이사야와 예레미야 두 곳에서만 심판받는 자들의 모습이 어떤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받을 짓을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가르친다는 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요한복음 5:24~27절입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2)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여호와의 심판은 아들의 말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고 아들의 말을 듣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몰아 죽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아담으로부터 십자가의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입니다. 그 십자가는 사탄의 권세가 깨어졌기에 독사의 이빨이 깨어지고 사자의 어금니가 깨어진 겁니다.
오늘 본문 10~11절입니다. “10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11 그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이런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이 세상에서 물리적인 심판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수들을 내 발아래 무릎을 꿇리고 싶어 합니다. 그 일을 내가 이룰 수 없으니 나의 소원을 이루어 줄 정치적 메시아를 구하는 일이 유대인이나 오늘 우리나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예수님은 십자가로 이루어내십니다. 원수들을 밟아 피가 되게 하시는 일이 무언지 봅니다.
요한계시록 14:17~20절입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1)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2)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심판이 십자가로 일어난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성취도 십자가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악인들의 피에 그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악인을 포도가 익었을 때 밝아서 짜는 것과 같은 모습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에 영원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이 역사 속에서 믿음의 연단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살기에 세상의 영악한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니 가난한 모습으로 삽니다. 이런 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조롱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을 가는 자들을 조롱하는 자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벌을 하지 않으시니 아예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이기에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롬1:18~32).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성도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합니다. 성도는 오늘도 구원과 심판을 십자가로 이루시는 그 주님을 믿고 살아갑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열리고 눈이 뜨인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