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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길거리에서 만난 인도 신
박경선
내게 있어 인도는 특별한 나라였다. 십 년 전(2012년)에 네팔과 라오스에 굿네이버스 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그 국경 근처에 있는 인도를 그리워해 왔다. 인도에만 가면 신비한 영감적인 온기를 온몸으로 느낄 것만 같은 막연한 설렘으로 그리움을 키워왔다.
드디어, 올해 2023년 10월 26일 결혼기념일에 맞춰 십 년 만에 ‘북인도 4박 6일’로 떠날 날을 잡았다. 인간의 눈이 바깥쪽으로만 뚫려 있어서 바깥쪽만 보고 살았지만, 인도에 가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눈이 뚫릴 것만 같은 기대감이 컸다.
1. <계단식 우물과 인디아 게이트와 갠지스강>
2023년 10월 26일(목)
<별에서 온 얼간이> 촬영지인 계단식 우물을 찾아갔다. 주인공 피케이의 목에 달고 있는, 우주로 돌아갈 열쇠를 벗겨 가려는 사람도 안 보였고, 아침 햇살 속에 사람들은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108계단을 내려다보며 사진 찍기를 즐겼다. 나는 계단 한쪽에 앉아서 ‘여행은 내 창작의 집이다.’는 일본 소설가 가와바디 야스나리의 말을 생각했다. 2019년 3월 미국 맨하튼에 세워진 조형물 벌집 모양의 <베슬(The Vessel)>도 이런 계단식 우물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고 한 걸 보면, 이 계단 끝에 커다란 선박이 대기하고 있다가 수중 궁궐로 여행객들을 실어갈 것만 같았다. 여행하며 해보는 내 상상이 만들어 낸 선박에 타고 인디아 게이트를 찾아갔다. 세계 1차 대전 때 참전한 용사 위령탑이 파리 개선문 모양을 본떠 지어져 있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는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전쟁의 이슬로 사라져간 용사들의 영혼을 위해 그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니, 그 기도는 하늘에 닿게 올려야 했다.
저녁에는 갠지스강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찾아갔다. 인도의 장사꾼들은 사람이 복잡하게 다니는 길가에 앉아서 저마다 신을 만날 재물을 팔고 있었다. 쌀을 길가에 한 줌씩 놓고 파는 사람, 갠지스강 강물을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파는 사람, 주황색 꽃 등잔 ‘디아’를 놓고 파는 사람 등, 신은 이 가운데 어떤 제사 선물을 받고 좋아하실까? 신이 받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4km나 되는 계단식 목욕 시설에서 목욕재계하며 전생과 이생의 업이 씻겨 내려가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하늘의 붉은 해가 물에 담겨 어둠이 내리자, 갠지스강의 화장터 앞에 장작 위에 시체가 올려지고, 그 위에 다시 불이 짚어져 시체가 타는 모습이 불꽃으로 날렸다. 흰두교도들을 비롯한 주변 불교국가 사람들의 장례 의식이란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지만, 만들어진 인간은 자기만의 신을 다시 만들어 살다가 죽음마저 기호에 맞는 신에게 의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믿는 신만은 나를 불태우는 신이 아니라 평온하게 품에 안아주는 신으로 행복한 상상을 해보았다.
2. <녹야원>
10월 28일(토), 부처님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 녹야원(사슴뜰)을 찾아갔다. 정원에는 2500년 전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의 종자가 거대한 뿌리로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최초의 설법지라는 신성한 의미가 있는 이곳에서 결혼 48주년 기념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부부로 연을 맺어 서로에게 한 점 부끄럼 없이 신의를 지키며, 무탈하게 잘 살아왔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의 현수막을 보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는 일행에게도 축복 있기를 빌었다. 실내로 들어가 프레스코화만 봐도 ‘생로병사’를 일찍이 깨치고 부처의 길을 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쌍한 중생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는 날까지 덕을 베풀며 살기를 비노니.’
3. <꾸뜹 미나르와 간디 박물관>
10월 29일(일).
꾸뜹 미나르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양식이 혼합된 높이 72.5m의 5층 석탑이다. 꾸뜹왕이 마지막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후 이슬람 승전 기념탑을 세워 경전의 코란 경구로 600년간 통치하며, 힌두교 건물을 무슬림 종교로 희석해 만들었다니, 힌두교도들에게는 치욕의 시간이었겠다. 이집트 피라미드들을 보러 갔을 때도 피라미드가 지어진 고왕국 당시에 후대 왕들이 선대 왕들의 피라미드에서 석재를 약탈해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무릇, 권력자들이, 역사와 종교와 문화의 공적까지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 걸 보면, 자기 애를 버릴 수 없는 나르시시즘의 끝에 인간의 본성이 머물고 있는 걸까?
간디 박물관으로 옮겨갔다.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가 이루어 낸 일화가 시물레이션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 유색인이라고 기차에서 끌어내려지는 장면, 영국군에게 반기를 들고 인도인도 소금을 생산하겠다고 평화적으로 투쟁하는 장면, 아무리 풍족하더라도 하루 한 시간은 차르카(인도에서 실을 뽑는 물레)를 자기 손으로 돌려 자기 옷을 만들자며 물레를 돌리는 장면이 위인의 큰 생각으로 담겨왔다.
4. <타지마할 사원과 내가 만난 신>
10월 30일(월)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화려한 타지마할을 찾았다. 사자 한 왕이 아내 문타즈 마할을 전쟁터에도 데려 다녔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자, 그녀의 죽음을 슬퍼해서 22년에 걸쳐 2만 명의 노동자와 장인의 노동력을 들여 신처럼 군림하며, 완성한 묘지 성격의 사원이란다. 후에 아들들은 공사로 재정이 궁핍해지자 왕위 계승 다툼을 벌이며 아버지를 아그라 성에 유폐시켰다. 그 후, 신처럼 살았던 사자 한 왕은 건너편 아그라 성에 갇혀 하얀 거탑 타지마할을 건너보다 숨졌다니, 신이 아닌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 저지르는 비화가 허무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아소카 대왕이 인도 대륙을 정복하며 전쟁의 끔찍함을 느껴 비폭력과 불살생을 강조하는 불교 원리로, ‘누구도 즐거움이나 슬픔을 주지 않으며, 자기 행동만이 그 열매를 가져온다.’는 정신적 평등으로 사람마다의 삶을 평화롭게 해주었다니 감사한 인물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비행기를 타러 델리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러 바나나를 샀다. 이름도 모르고 함께 지낸 일행에게 감사의 인연으로 바나나를 돌리며, 가이드에게는 그간의 수고와 칭찬을 편지에 담아 마이크를 들고 읽어주었다. 여행객으로 바치는 감사의 편지가 가이드에게는 자긍심과 보람을 쌓는 데 보탬이 될 테니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눈을 감으니, 내가 길거리에서 만난 신들이 눈에 밟혔다. 코브라에게 피리를 불며 춤추게 하던 인도의 노 악사! 모스크바 거리를 방황하며 떠돌다가 우주 과학자의 눈에 띄어 혼자 우주로 실려 갔던 라이카를 닮은 강아지들! 자석 그림을 팔러 다니길래, 엄마 아빠는 뭐 하시냐 물었더니 ‘no Father, no Mather!’ 하는 대답에 가슴이 먹먹해지던 그 꼬마! 인도에 그 많은 신들은 어디에 숨어서 이들을 지켜보고 계실까? 내 가슴에 담긴 신들에게 축복 있기를 빌며 먹먹한 가슴으로 인도를 떠나왔다. 인샬라! (17쪽)
신을 찾아 떠난 인도여행
박경선
1. <등받이>
2023년 10월 26일 목요일
인도여행 첫날이다. 5시 15분에 아들이 카카오택시를 불러주어 동대구역 복합승차 센터까지 타고 갔다. 도착해서 보니 5시 45분! 예약 해둔 우등고속 버스는 6시 40분이라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차표를 바꿀 수 있다면 바꾸어 미리 타고 갈 수도 있지.”
남편 말에 시계를 보니 5시 55분이다. 얼른 창구로 달려가 6시 차표로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우선 6시 차표를 두 장 사고, 환불 처리 해뒀으니 일주일 내에 환불금이 입금될 겁니다.”
5분 안에 차표를 바꾸어 주어 6시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늘 기차만 타고 다녔는데 고속버스를 탔더니 등받이를 뒤로 밀치면 145도까지 비스듬히 뒤로 젖혀 누울 수 있는 침대형 좌석이 되었다. 새벽 시간대라 뒷좌석에 사람이 없다 보니 침대처럼 누워 갈 수도 있고 발 받침대도 놓여있어 다리를 올리니 시원하고 편안한 자리가 된다. 기차가 창밖을 내다보는 낭만이 있다면, 고속버스는 호텔 방 같은 고급스러움이 있어 홀딱 반하겠다. 예전에도 이런 옵션이 구비되어 있었겠지만, 미처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괴산휴게소에 도착하니 20분 휴식 시간을 준다. 화장실 갈 시간, ‘씨앗호떡’ 하나 군것질할 시간까지 얻고 즐기며 갔다. 10시 조금 넘어 인천공항 1터미널에 도착했는데 2터미널까지 가야 한단다. 고속버스로 한 10분쯤 넘는 듯 거리가 꽤 되었다. 2 터미널에 내려 광희한테 전화했더니 광희도 오는 중이란다. 세 식구가 만나서 집에서 만들어 온 유부초밥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다.
그리고 공항 내 의자에 배터리 충전 그림이 있어 봤더니 의자마다 배터리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달려있다. 몽골 장기스칸 공항에서는 배터리 충전대가 일정 장소에만 설치되어 있던데 이게 인천 공항의 품격인가 싶다.
하나투어 여행사를 찾아 티켓을 받고 12시 55분에 모닝캄 회원이라서 남들보다 일찍 델리행 대한항공을 탔다.
자리에 앉아 앞좌석의 등받이에 붙어 있는 TV를 켜서 영화를 찾아 좀 보고 있는데, 앞 좌석에 앉을 인도인이 들어오더니 자기 좌석이라고 잠바를 벗어 좌석에 턱 하니 걸쳤다. 그리고는 비행기 선반 위에 자기 가방을 올리느라 손을 한껏 뻗어 작업을 하고 있다.
‘아차! 이 사람은 지금 내가 자기 등받이에 설치된 영화를 켜서 보는 중인데 자기 잠바가 내가 보는 영화를 가리고 있음을 모르는구나!’ 싶어 우스웠다. ‘이거 코미디 글감인데?’ 하며 쳐다보며 웃었더니 그 남자는 멋모르고 나를 따라 웃는다. 자기 옷의 실례를 끝내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코미디는 이런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구나!’
나는 이 재미있는 상황을 내 동화 속 명랑 코너에 한 번 써먹으려고 수첩에 적었다. 버스나 비행기에서 앞사람의 등받이를 내가 TV대로 이용할 수도 있고, 뒷사람이 내 등받이를 이용할 수도 있게 연결된 시스템이 전에도 이용한 것이지만 오늘 새삼 정겹게 느껴졌다. 서로 손잡고 더불어 사는 사회임을 보여주는 연결고리이니 말이다.
인도 델리를 향한 비행기가 7시간 상공을 나르는 동안 나는 등받이가 보여주는 영화를 최대한 많이 보려고 욕심을 내었다. <라스트 필름 쇼> 영화를 보았다. 판 라린 감독 작품인데 어머니가 만들어 준 점심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가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영화관에서 영사기를 돌리는 아저씨를 만나 도시락과 바꿔, 영사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나중에는 친구들과 영화 필름을 훔쳐 영화를 보다가 교도소에 갇히기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못한다. 아버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지기 친구가 사는 도시로 아이를 보내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인도의 ‘런치도시락’ 영화에서 본 도시락 문화가 눈에 겹쳐 보였다. 집집마다 엄마가 도시락을 싸서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남편이나 아이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도시락을 받아먹는 문화가 행해지는 나라임을 보여준다. ‘런치 도시락’ 영화에서는 잘못 배달된 도시락을 먹게 된 남자랑 도시락을 싸 보낸 여인이 도시락 속 쪽지로 정이 통하는 내용인데, <라스트 필름 쇼> 영화에서는 도시락과 영화 관람권을 바꾸는 이야기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 외에 <교실 안의 야크>라는 영화도 보았다. 오지 인도학교 선생이 야크를 선물로 받아 교실 안에서 키우며 아이들과 생활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담겨왔다. <멍뭉이> 영화는 강아지를 키울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더 많은 강아지를 떠안게 되는 동물 애를 역설적으로 꾸민 영화라 설득력이 높은 한국 영화였다. 그 외에 <소올 메이트>와 몇 개를 더 보았다. <라스트 필름 쇼> 속 주인공 아이처럼, 나는 영화를 보려고 그만큼 애쓰지 않고, 그저 흘려보내기 아까운 시간만큼 영화를 봐 두려고 한 것인데, 편안하게 내 자리에 앉아서 앞자리 등받이 영화를 공짜로 많이 보았으니, 인도로 가는 길에 인도에 많다는 신이 나를 보고 있다가 영접해 주는 기분이었다. 호호! (11쪽)
2. <내게 특별한 인도>
내게 있어 인도는 특별한 나라였다. 십 년 전(2012년)에 네팔과 라오스에 굿네이버스 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그 국경 근처에 있는 인도를 그리워해 왔다. 인도에만 가면 신비한 영감적인 온기를 온몸으로 느낄 것만 같은 막연한 설렘으로 허경희 수필집 『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과 류시화의 수필집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과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책을 읽으며, 인도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키워왔다.
드디어, 올해 2023년 10월 26일 결혼기념일에 맞춰 십 년 만에 ‘북인도 4박 6일’로 떠날 날을 잡았다. 직장에서 포상 휴가를 일주일 얻은 아들에게 우리 부부가 효도 관광의 기회를 주고 싶어 효도 관광의 옵션으로 남편과 함께 여행 가방을 챙겼다.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기 위해서,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의 눈이 바깥쪽으로만 뚫려 있어서 바깥쪽만 보고 살았지만, 인도에 가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눈이 뚫릴 것만 같은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9월에 대구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몽골’을 다녀올 때는 비자 발급 절차도 필요 없고 편하게 다녀왔는데, 10월에 ‘인도’를 다녀오려고 하니 비자 발급부터 까다로웠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증명사진도 다시 찍어 보내야 하고, 최근 십 년간 다녀온 국가 이름과 기간도 다 적어내라고 했다. ‘왜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참에 여행 다녀온 나라들을 정리해 보았다. 지금껏 50개국을 다녀왔고 최근 십 년 내에 다녀온 국가만 헤아려도 30개국이었다. 해외여행의 시작은 1995년에 나라에서 연구 실적 공로 연수로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로 여행을 보내주었는데, 공교롭게도 2011년에 서울대 대학원 교육 행정연수반 과정에서 학교는 달랐지만, 똑같은 국가에 보내주어 겹친 나라도 있었다. 어쨌든 개인 홈페이지 <해외여행 스케치> 난에 기록이 남아 있어 최근 십 년 내에 다녀온 30개국 이름과 여행 기간을 쉽게 적어 낼 수 있었다.
3. <아그라 센키(아그라 왕의) 바올리(계단식 우물)와 갠지스강>
2023년 10월 26일(목) 낮 1시 35분에 대한항공 KEO 497호를 타고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8시간 걸려 18:05분에 인도 델리(시차 + 3시간 30분)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국에서 인도 식당에 들러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난과 카레 종류가 즐비한데 어느 것부터 먹어봐야 할지부터 어려웠다. 대충 먹고 호텔 방에 돌아왔다. 아들과 셋이 갔는데 더블 침대 하나에 셋이 자라고 하는지 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다. 가이드를 찾아 물어봤더니 미리 준비를 시켜두었는데 이들이 팁을 받고 싶어서, 준비를 해두지 않았단다. ‘헐?’ 기본으로 갖추어 두어야 할 것을 챙겨주지도 않고 팁을 바란다고? 나중에 조그마한 간이침대 한 개를 옮겨와 두고 갔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닌데, 5성급 호텔이라면서 이것이 인도의 수준인가?’ 싶었지만, 내가 간이침대에서 자고 아들더러 아버지랑 같이 안고 자라고 더블 침대를 양보하였다. 그리고 인도가 세계 최다국인 것 두 개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계 인구 최다국이면서 이들이 믿는 힌두교 역시 각 지역과 각 민족 별로 섬기는 신을 합하면 삼천삼백만 개 정도라니! 계급에 따라 믿는 신도 다르단다. 상층 브라만 계급에서는 영원한 안정을 보호해 주는 비슈누 신을 믿고 있고, 하층 계급에서는 삶의 에너지를 주는 하누만 신을 믿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신을 만들고 신을 골라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에 가면 누구나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나 보다. 한국에서 찾아본 자료로는 사원마다 믿는 신도 달랐다. 무르간 사원에서는 병든 아이가 먼지 묻은 초콜릿을 바쳐 병이 나은 이래 그 신을 사람들이 믿고 찾아간단다. 구르드와라 사원에는 출국 비자를 받기 위해 신에게 기원하며 장난감 비행기를 바치는데 그렇게 들어온 비행기는 시설 아이들에게 전해진단다. 카르니마다 사원에는 2만 마리 넘는 검은 쥐를 숭배하고, 흰쥐는 더욱 숭배하는데 흰쥐가 먹다 남긴 음식을 신성시해서 사람들이 먹는단다. 원숭이, 공작새, 사슴, 소, 개들을 거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라니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으로 온 것 같다.
4. 계단식 우물과 델리 거리와 갠지스강
10월 27일(금) 아침, 호텔에서 새벽 식사를 하고 델리에서 <별에서 온 얼간이> 촬영지인 계단식 우물을 찾아갔다. 9시에 개방한다는데 한 시간 전에 도착한 덕택에 밖에서 기다리다 보니, 인간이 만든 신을 만나 종교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파헤쳐보는 코믹함을 표현한 영화 줄거리를 다시 떠올려 볼 여유를 가지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 피케이의 목에 달고 있는, 우주로 돌아갈 열쇠를 벗겨 가려는 사람도 안 보였고, 우리의 여권을 훔쳐 가려는 수상한 사람은 더더욱이나 안 보였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 속에 사람들은 그저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지나다녔다. 드디어 9시! 문이 열렸다. 굳게 닫혔던 녹슨 철문을 밀고 들어가 가을 햇살 내리쬐는 108계단 가운데에 앉아보았다. 길이 60m, 너비 15m 계단식 우물이 거꾸로 서 있는 궁전처럼 신비하게 눈에 들어앉았다. 물 부족국 인도라서 얕은 우물은 금세 물이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우물을 깊게 팠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내려가기 위해 계단으로 연결한 것 같았다. 힌두교 사원급으로 화려한 장식으로 건축된 것을 보면 왕이 왕비를 위해 팠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인도에는 이 외에도 계단식 우물이 많단다. 2019년 3월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오픈한 <베슬(The Vessel)>이란 조형물도 이 인도 고대 라자스탄의 계단식 우물과 찬드라 바올리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는 기사를 보고 온 터라 ‘내가 보려고 찾아온 세계는 세계 속 영감으로 떠돌아다니며 더 빛나는 작품으로 발전해가고 있구나!’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글의 소재로도 끌어와 들어앉혀 생애 최고 멋진 작품 한 편 건져 가야 할 텐데 ….
델리 거리를 보니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에서 이 거리를 영국식 숲 정원으로 가꾸어 신호등 없이 로타리식 십자로를 만들어 교통흐름이 끊이지 않도록 되어 있고, 숲으로 가려진 그 안쪽으로는 인도 부자와 고관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지진 대비로 고층이 없고 숲에 가려진 도시 델리에서 30평짜리 아파트 값도 700억을 초월한다고 하니, 인도 부자들은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일구었을까 싶다. 하긴, 최근 정보통신 산업면에서 신흥강대국으로 발전하고 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라니 그럴만도 하겠다.
바올리를 나와, 세계 1차 대전 참전 용사 위령탑이 서 있는 인디아 게이트를 찾아갔다. 파리 개선문 모양을 본떠 훔쳐 담은 모습이라 ‘모방성이라? 흠흠’ 흥미를 잃어 기침만 했다. 그래도 전쟁의 이슬로 사라져간 용사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는 하늘에 닿게 올려야 할 것 같았다. 국내 비행기를 타고 1시간 20분 걸려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저녁에는 갠지스강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찾아갔다. 인도의 장사꾼들은 사람이 복잡하게 다니는 길가에 앉아서 저마다 신을 만날 재물을 팔고 있었다. 쌀을 길가에 한 줌씩 놓아놓고 파는 사람, 갠지스강 강물을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파는 사람, 주황색 꽃잎들을 둥글게 빙 둘러놓고 중앙에 납작 초를 놓아 ‘디아’ 띄우기라며 물에 띄워 보내며 소원을 빌도록 파는 사람 등! 이 중에 신이 어떤 제사 선물을 받고 좋아하실지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4km 계단식 목욕 시설에서 목욕재계하며 전생과 이 생의 업이 씻겨 내려가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하늘의 붉은 해가 물에 담겨 어둠이 내리자 갠지스강의 화장터 앞에 배로 도착해보니 장작 위에 시체가 올려지고, 시체 위에 다시 장작이 올려지고 불을 붙이는 모습을 배를 타고 지켜보았다. 동일 장소에 거의 15구의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도 말로 아르띠 푸자라고 한단다. 내 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역한 아픔을 느끼며 인생무상 상념이 우울하게 몸에 젖어 들었다. 십 년 전 네팔의 오지 초등학교에 굿네이버스 봉사활동을 갔을 때, 그 학교 아이 하나가 죽어서 강에 떠내려 보냈던 의식을 보러 간 기억도 새록새록 살아났다. 그리고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아덜즈 가이드도 네팔 근처에서 자라났다고 하니, 어쩌면 그때 네팔 초등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서로 만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고, 불에 태워지는 시신도 다시 우리들 사이로 돌아올 수 있겠다는 회귀성과 윤회 사상! 이런 저런 상념에 젖으며 지켜보다가, 힌두교 행사식을 보러 배를 돌렸는데 배들이 강을 가득 메우고 있어 그 자체가 관광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며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인내를 팽개치고 모두 반기를 들었다. 가이드도 결단을 내렸는지, 첩첩이 쌓인 관광객의 배 사이를 빠져나와 호텔로 돌아왔다. 침대에 드러누웠다. 갠지스강에서 목욕재계하는 현재를 돌아, 불꽃으로 타들어 사라지는 화장터 사후 세계까지 보고 온 하루였으니 남의 죽음이라도 지켜보는 내내 몸이 뻐근하게 아파져 와서 저녁 생각도 없었다.
5. <녹야원과 고고학 박물관>
10월 28일(토), 아침 5시 반에 눈 뜨자 17명 여행단은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기 위해 다시 갠지스강을 찾아갔다. 일출을 보면서 디아에 꽃불을 붙여 강물에 띄워 보냈다. 모두의 소원이 가족 모두 무탈, 건강하기를 비는 것이리라. 나는 거기다가 아직 장가 들이지 못한 맏아들이 장가가기를 기원하며 물 위에 디아를 띄워 보냈다.
돌아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부처님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 녹야원을 찾아갔다. 왕이 이곳에 사슴을 풀어놓고 살았다고 해서 옛 경전에 이름이 녹야원으로 기록된 곳이다. 정원에는 2500년 전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의 종자가 거대한 뿌리로 나무를 감싸며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최초의 설법지라는 신성한 의미가 있는 이곳에서 우리 부부의 결혼 48주년 기념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우리 부부가 부부로 연을 맺어 이때껏 서로에게 한 점 부끄럼 없이 부부의 신의를 지키며, 무탈하게 잘 살아왔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결혼 48주년 기념 인도여행’이라는 손 현수막을 살짝 펼쳐들고 아들과 사진을 찍자 같이 간 일행이 엿보고 “야아!” 감탄하며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가이드는 ‘여기서는 사진 찍어도 되지만 내일 타자마할 가서는 현수막 들고 사진 찍지 마세요. 그 곳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현수막 들고 사진 찍는 일도 금하고 있어요!’하며 귀뜸해주었다. 그런데 그보다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어서 살짝 서운하였다. 70평생을 살면서 50개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가이드를 만나봤고 여행객들이 생일이니 결혼기념일이니 할 때마다 ‘축하 케이크’를 사와서 축하해주는 가이드도 더러 있었는데….
그저 설명에 열심인 가이드를 따라 부처님 생애가 시물레이션으로 그려진 실내로 들어갔다. 프레스코화만 봐도 ‘생로병사’를 일찍이 깨치고 부처의 길을 걸은 부처님 이야기가 상세하게 전해져 왔다. ‘인간은 사는 날까지 덕을 베풀며 살아야겠지!’하는 생각을 다졌다. <고고학 박물관> 앞에 전시된 힌두교 조각상 전시관과 건축물, 수도원의 아름다운 장식, 당시 사용하였던 연장, 테라코마 앞에서도 ‘결혼 기념 여행 선물’로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멋지고 값진 결혼 기념 선물이 어디 또 있을까? ㅎㅎ!
6. <꾸뜹 미나르와 간디 박물관>
10월 29일(일).
꾸뜹 미나르를 보러 갔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양식이 혼합된 높이 72.5m, 지름 15m의 5층 석탑이다. 꾸뜹왕이 인도 델리 정복을 기념하여 세운 탑으로 1층은 힌두 양식, 2,3층은 이슬람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1층부터 3층까지 사암, 4층과 5층은 대리석과 사암으로 지어졌다. 1500년간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아도 전혀 녹슬지 않는, 철 함량 99.9%라고 한다.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을 본떠 인도의 전통 양식을 가미하여 만든 스리랑카 사원과 진신사리가 봉인된 곳에서도 머물렀다. 약사르담 사원은 러시아 여행 때 본 알람브라궁전 지붕을 닮아 있었다. 아쇼카 왕이 만들었던 석주의 꼭대기에 있는 4마리 사자상과, 좌불상 중 화려한 후관의 테두리로 둘러있는 황금 좌불상도 앉아 있어, 사진에 담아 결혼 기념 선물로 남겼다. 무슬림이 델리에서 마지막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후 이슬람 승전 기념탑을 세워 경전의 코란 경구로 600년간 통치를 이어온 꾸뜹 미나르 탑은 힌두교 건물을 무슬림 종교로 희석해 만들어 둔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힌두교도들에게는 치욕의 시간이었겠다. 이집트 피라미드들을 보러 갔을 때도 선왕의 업적을 아들이 자기 업적으로 기록해 둔 것들이 보였다. 무릇, 권력자가 되면, 역사와 종교와 문화의 공적까지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려는 인간 개인의 명예욕은 끝없이 이 땅을 지배하고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간디 박물관으로 옮겨갔다. 한국에서 미리 간디 일화들을 모아갔다. 간디 박물관에는 그런 시물레이션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기차에서 신발 떨어뜨린 장면, 설탕 먹는 아이에게 한 달 뒤에 오라고 해서 설탕을 많이 먹지 말라며 자기가 실천한 일화를 솔직하게 들려주는 장면, 기차에서 유색인이라고 끌어내려지는 장면, 인도에서 소금 생산과 판매를 금지한 영국에게 반기를 들고 항거해서 법을 고치는 장면, 아무리 풍족하더라도 하루 한 시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차르카(인도에서 실을 뽑는 물레)를 돌리고 자기 손으로 자기 옷을 만들자고 하며 영국 직물·수치를 불태워 버리는 장면, 재판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옥에 가두는 롤러 법에 반대하는 장면 등! 법을 공부한 변호사로 수치를 겪으며 의식을 변화시킨 그 한 사람의 자의식으로 나라를 살린 영웅 이야기가 감동적인 장면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우리는 영웅 간디 동상 앞에서도 ‘결혼 48주년 기념 인도 여행’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우리 부부가 간디처럼 위대한 일은 하지 못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 앞에서 올곧게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에 현수막이 치켜 올려졌다.
아그라시에서 유일한 현지식인 무굴식 점심을 먹으러 갔다. 탄두리 치킨과 카레와 난과 아이스크림이 나왔는데 모든 음식을 큰 접시 하나에 조금씩 놓아주었다. 이렇게 접시 하나에 담아낸다면 설거지의 번거로움은 없겠다. 치킨도 한국 치킨보다 맛이 나을지, 카레도 한국에서 먹던 카레보다 맛이 나을지, 난도 한국의 인도 식당에서 먹던 난보다 맛이 나을지 모르겠다. 신토불이 입맛 탓일까? 우리 땅에서 생산되어 우리 입맛에 길든 우리 음식이 최고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7. <타지마할 사원과 내가 만난 신>
10월 30일(월)
나는 속이 편하지 않아 아침 식사 시간에 호텔 방에 남아서 가이드에게 드릴 감사 편지를 썼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구성된 총 17명 여행단이었다. 여형제 자매 부부가 세 팀, 군대 갈 아들과 함께 온 모자지간이 한 팀, 혼자 인도 철학이 좋아 떠나온 아가씨가 한 명, 노년의 여인네 친구끼리 온 팀이 세 명, 노년의 부부가 한 팀, 그다음은 아들과 함께 온 우리 부부가 세 명! 이렇게 합쳐져 오합지졸 같지만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용히 5일간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떠나는 마지막 날인데 가이드한테 최소한의 감사 편지는 누군가가 한 장 써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이드의 자상함과 책임감, 열정과 성실성에 대해 언급하며 가이드로써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힘이 될 말을 찾아 편지지에 적고, 우리를 떠나보내고 나서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즐기라며 약간의 사례비도 넣어 접었다.
여행 가방을 꾸려 호텔을 나와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화려한 타지마할을 찾았다. 손전화와 여권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못하게 했다. 사자 한 왕이 아내 문타즈 마할을 전쟁터에도 데려 다녔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자, 그녀의 죽음을 슬퍼해서 22년에 걸쳐 2만 명의 노동자와 장인의 노동력을 들여 신처럼 군림하며, 완성한 묘지 성격의 사원이란다. 하지만, 후에 아들들은 공사로 재정이 궁핍해지자 왕위 계승 다툼을 벌이며 아버지를 아그라 성에 유폐시켰다. 그 후, 신처럼 살았던 사자 한 왕은 건너편 아그라 성에 갇혀 하얀 거탑 타지마할을 건너다보다 숨졌다니, 신이 아닌 인간의 비화 주인공이 아닌가? 인간의 덧없는 영광이, 신이 아닌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 저지르는 비화를 더욱 처참하게 만들어 가는 것 같아 허무하였다. 그렇지만 그 아픈 상처를 머금고 있는 건물이라도 사람들은 예쁘다며 저마다의 사진기에 끌어다 넣기에 골몰하였다.
나는, 아소카 대왕이 인도 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끔찍함을 느껴 마음의 위로를 찾다가 비폭력과 불살생을 강조하는 불교에 마음을 열어 불교에서 통치 원리를 찾아, 이후 불교가 평화의 메시지로 전파되고, 우매한 인간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음에 힘을 찾았다. ‘누구도 즐거움이나 슬픔을 주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만이 그 열매를 가져온다.’는 정신적 평등이 사람의 삶을 평화롭게 해주면 좋겠다.
다시 한국으로 떠날 비행기를 타려면 델리 공항으로 가야했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휴계소에 들러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주어진 시간에 가이드한테 다가갔다. 여행 소감 한마디 하고 싶으니 마이크를 좀 달라고 신청하였다. 아들은 바나나를 사와서 사람들이 올라타자, 함께 여행한 식구들에게 하나씩 돌렸다. 나는 마이크를 쓸 기회를 얻어서 내가 쓴 감사 편지를 읽었다. 결혼 48주년 기념 여행을 떠나온 이유를 서두로 해서 가이드의 수고와 칭찬에 박수를 보낼 기회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아, 눈물 나려고 하네.”
“바나나도 잘 먹었고, 내용도 감동이에요.”
하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내가 잘난 체하는 듯이 보이지 않았다니 다행이야!’ 안심하며 버스 뒤 짐칸에 실린 여행 가방을 꺼내오며 가이드랑 헤어져 공항으로 갔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눈을 감으니, 인도에서 만난 수많은 화려했던 사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수수한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코브라에게 피리를 불며 춤추게 가르치는 인도의 노 악사! 머리에 터반을 쓰고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피리를 불며 둥근 바구니를 흔들어가며 코브라를 춤추게 하고 있는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야생 코브라인데 며칠만 길들이면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는 동작을 보이는 것처럼 몸을 흔들어댄단다. 실은 청각이 발달하지 못한 코브라라서 악기를 부는 사람의 다리 진동이나 바구니의 진동을 따라 몸을 움직일 뿐이라고 네이버에서 설명을 읽고 온 터였다.(이 정도 설명은 가이드가 해줘도 좋았겠는데.) 이런 묘기로 돈을 버는 악사 할아버지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도스럽기도 하다.
길에는 낮잠을 즐기는 개, 다리 다쳐 비실거리며 돌아다니는 개, 목줄 없는 개들이 나돌아 다니고,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도로 한 켠에서 소들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배를 채우고 있었다. 인도에 그 많은 신들은 어디에 숨어서 이들을 지켜보고 계실까? 러닝셔츠 앞섶에 콩알 감자 한 알 담아와 내어 보이다가 사탕 한 움큼 쥐여 주자 떠나는 버스에까지 찾아와 차창 밖에서 손 흔들던 사내아이! 릭샤를 맘대로 타고 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그림을 사라며 칭얼대던 인성 좋은 녀석! 엄마 아빠는 뭐 하시냐고 묻자 ‘no Father, no Mather!’ 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하는 바람에 내 말문이 막혀버렸던 그 아이! (그 아이 옆에 있던 남자가 그 아이에게 앵버리를 시키는 남자일까?) 둥근 링 안을 돌며 한 푼 벌려고 곡예를 돌아 보이던 여자아이들까지 내게는 인도의 신이었다. 인도 델리에는 숲을 이룬 정원 속에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갑부들이 살고 있다는데 그들이 부러울 일은 눈꼽만큼도 없고, 내 가슴에 안겨드는 사람들은 길을 지나다가 눈길 한 번 마주쳤던 이런 사람들이었다. 한국에 돌아가 아픈 가슴을 쓰다듬으며 그들을 위해 빌고 싶었다. 인살라!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45쪽(총 60쪽)
2023년 10월 27일 <요가와 코브라 춤>
갠지스강 근처를 걸으면 길 옆 난전에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들이 많다. 쌀을 한 줌씩 놓고 파는 어른은 제사 지낼 때 쌀을 올리라고 파는 거란다. 흰플라스틱 통과 바가지를 파는 사람은 갠지스강물을 담아가라고 파는 그릇이란다. 꽃을 빙둘러놓고 가운데 초를 하나 놓고 파는 디아 장사는 주로 여자 아이들이 한다. 어떤 아이는 냉장고에 부치는 타자마할 지철이나 타자마활 성 모형도 들고 사라고 한다. 꼬마들은 그냥 손을 내밀고 한참을 따라오기도 한다.
그런데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러가는 길에 한 꼬마를 만났다. 런닝셔츠 끝을 말아 넣어 그 속에 감자를 몇 개 담아 안고 다가왔다. 땅꼬마 감자를 하나 꺼내어 내민다. 뭐라고 하는데, 사라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면 나눠줄 사탕을 주려고 준비해온 배낭을 가지러 가려고 버스에 올라가 배낭을 들고 내려왔다. 사탕을 한 주먹을 쥐어주자 굽신하며 막 뛰어간다.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차에 올라타고 있는데 차창 밖에 그 꼬마가 다시 나타났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내게 손을 흔든다. 내가 손을 마주 흔들어주자 굽신 절을 하며 돌아간다. 인사를 하러 왔나보다. 맨손으로 손 벌리는 아이보다 귀엽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 쪽으로 걸어가는데 골목 공터에서 심벌즈같은 악기를 든 남자가 악기를 흔들고 있다. ‘뭐지?’ 싶어 봤더니 그 앞에서 빼빼 마른 대여섯 살 쯤 되어보이는 여자 아이가 링 안에 몸을 넣어 뛰어넘고 다시 뒤로 넘기를 한다.
‘아하, 요가 묘기로 구경 값을 얻어 내려는 목적이구나.’
생각하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나오다보니 좀 더 큰 여자 아이가 그런 묘기를 보이고 있다. 그 뒤쪽 안 구석에는 머리에 터반을 쓰고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피리를 불며 둥근 바구니를 흔들어가며 코브라를 춤추게 하고 있다. 야생 코브라인데 며칠만 길들이면 피리 소리에 맞춰 춤 추는 동작을 보이는 것처럼 몸을 흔들어댄단다. 실은 청각이 발달하지 못한 코브라라서 악기를 부는 사람의 다리 진동이나 바구니의 진동을 따라 몸을 움직일 뿐이란다. 이런 묘기로 돈을 버는 악사 할아버지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도스럽기도 하다.
델리 시에 30평 아파트는 700억 원이라는데. 이렇게 일 달러라도 벌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 나라라니. 길에는 다리 저는 개, 다 죽어가는 개, 목줄 없는 개들이 나돌아다니고,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도로 한 켠에서 소들은 쓰레기 통을 뒤지며 배를 채우고 있고 이런 동물을 인도에 그 많은 신들은 어디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걸까?(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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