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노래 | 고성신문 (gosnews.kr)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지금은 졸업식 의미가 희미해지고 노래도 학교 형편에 맞게 여러 가지로 불리지만 우리나라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부르고 졸업한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 ‘졸업식 노래’다.
4분의 4박자 다장조의 엄숙하고 정감있는 이 노래는 1절은 재학생이 부르고, 2절은 졸업생이 부르며, 3절은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불러 끝내는 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들던 노래다.
교과서마저 물려주고 물려받아 공부하고, 시골 학교에서는 대부분 이 노래를 부르며 학창시절을 끝냈던 시절의 이 노래는 목청껏 불러도 평생 한으로 남는 애절한 노래다.
이 노래는 1945년 8월 해방이 되었지만 모든 게 어수선하던 1946년 8월, 미군정청 편수국장으로 있던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이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을 찾아가 가사를 부탁했고, 부탁받자마자 그 밤을 넘기지 않고 가사를 만든 선생이 급히 찾아간 작곡가는 정순철 선생이었다.
정순철 선생은 윤석중 선생의 「새나라의 어린이」, 「엄마 앞에서 짝짜꿍」을 작곡한 단짝 작곡가다. 정순철 선생 아들의 회고에 의하면 선생은 가사를 받자마자 피아노 앞에 앉아 단숨에 작곡했고, 윤석중 선생 회고에 의하면 두 사람은 다음 날 단골 설렁탕집에서 만나 흥에 겨워 흥얼거리다 끝내는 고성방가에 이르러 쫓겨난 일화를 가지고 있다. 이 노래는 편수국 직원들 앞에서 처음으로 불려졌고 1946년 6월 6일 우리나라 국민학교 ‘졸업식 노래’로 공식 공표됐다. 수만 명의 가슴을 울리고 적시며 불린 이 노래는 당시 꽃다발 문화가 희박했던 시절에 몇 집 안 되던 꽃집을 돈방석에 앉히고, 그 생화를 마련하지 못했던 수많은 마음과 손은 종이 꽃다발을 만들게 했다.
윤극영, 홍난파, 박태준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작곡가로 불리던 정순철 선생은 1904년 충북 옥천에서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의 외손주로 태어나 범죄자의 자식으로 11살 때 고향에서 쫓겨나지만, 손병희의 배려로 보성중학교, 일본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작곡에 몰두했다. 6.25 전쟁 중에 서울이 수복되던 9월 28일, 근무 중이던 성신여고를 홀로 지키다 강제 북송된 이후 소식이 없다. 2012년 11월 옥천군에서 옥천읍 문정1길에 「엄마 앞에서 짝짜꿍」이 새겨진 ‘정순철 노래비’를 세웠다.
어느 신문사에서 석중(石重)을 석동(石童)으로 잘못 쓴 기사를 보고 춘원 이광수가 아호인 줄 알고 불러 그대로 호가 된 석동 윤석중 선생은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24년 《신소년》에 동요 「봄」이 입선되고 1932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동요집 『윤석중 동요집』을 발간한 우리나라 동요계의 대명사다. 「고추 먹고 맴맴」, 「퐁당퐁당」,「달 따러 가자」, 「옥수수 나무」, 「앞으로」, 「새나라의 어린이」, 「어린이날 노래」, 「낮에 나온 반달」 등 아직도 정겹게 불리는 동요가 모두 선생의 작품이다.
2003년 12월 9일 92세로 타계한 윤석중 선생은 생전에 1천200여 편의 동요, 동시를 남겼으며, 이 중 800여 편이 작곡되어 1954년 『동요 백곡 집』, 1980년 『윤석중 동요 525곡 집』을 내기도 했다.
또 우리 말을 소중히 해 ‘소풍’을 ‘나들이’로, ‘석가탄신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만든 분도 윤석중 선생이다.
1952년 ‘새싹회’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게 했으며 어린이 가족테마공원 어린이 대공원 개원 51주년에 되는 2024년 봄에 선생의 흉상이 포시즌 가든 길에 세워질 예정이다.
노원호 전 새싹회 이사장과 정두리 현 이사장이 쓴 윤석중 선생 이야기와 대표작, 연보가 《열린아동문학》 2023년 겨울호(통권 99호) ‘그리움 나무’ 코너에 소개되어 있다. 동동숲은 올봄에 도토리가 많이 달리는 우람한 참나무와 함께 선생의 이름돌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