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9
류인혜
* 파리에서 보내는 편지 3 - 루브르의 세 여인
오늘은 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게 되었을 때, 박물관 관람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세계의 명작을 직접 대할 수 있는 것은 일생의 행운이라고 여겼기에 언제 루브르 박물관에 가 볼 수 있을까, 정말 꿈꾸듯이 기대하였지요.
루브르는 너무 넓습니다. 또 볼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그곳의 내면을 살피게 되니 수준 높은 예술품에 기가 질려서 나중에는 무엇을 보았는지도 모르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신화를 주제로 만든 조각품들은 그림으로 볼 때보다 훨씬 실감이 나는데, 사진을 찍다 보면 설명을 지나치고,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사진 찍기에 바쁩니다. 잘못은 루브르 박물관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평생에 한 번뿐인 일이라면 목숨을 걸다시피 집중해야 하는데, 후회가 많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물에는 중요한 세 여인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인 밀론의 ‘비너스’를 건성으로 지나치며 보았습니다. 비너스의 조각품은 여러 개가 있지만 밀론의 것이 가장 우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쪽 팔이 없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 그렇구나’ 하며 아무 감동없이 무심히 지나갔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여인이라는 샤모트라 키의 ’니케(승리의 여신)’ 조각상에는 머리가 없습니다. 배 모양의 단 위에 놓여 있는 거대한 조각상에 머리가 없으니 이상한 느낌입니다. 그 여인은 계단을 올라가서 중간에 넓은 장소를 차지하여 혼자 서 있습니다. 그 주변에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사진을 찍으려니 사람들 모습만 카메라 렌즈에 들어오더군요. 그런데 다른 곳을 구경하고 되돌아 나오니 저 앞에 승리의 여신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계단 위에 있고 저 멀리에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니케’를 배경으로 다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어디에 있다는 사전 지식도, 안내서도 없이 수학여행 온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듯이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드디어 ‘모나리자’를 구경한다며 우리끼리 저쪽으로 가서 보고 오라는 가이드의 말을 듣자마자 달려갔지요. 가장 구석진 방의 한편에 걸린 모나리자 앞에는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아 두었습니다. 그녀는 저편 위에서 그윽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어 그의 얼굴을 배알하는 사람들에게는 흐릿한 모습만 보였습니다.
어쨌거나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직접 보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는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자세를 잡았습니다. 당연히 찍힌 사진은 사람들 사이에 엉거주춤한 제 모습 뒤로, 모나리자는 저 멀리에서 여유있게 흐릿한 미소를 짓더군요. 유명 연예인을 보기 위해서 공안 요원에게 떠밀리며 손을 높이 휴대전화를 쳐들고 소동을 부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서 씁쓸해졌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모나리자 초상화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카메라 플래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수유리 안에 넣어 전시하고 있지요.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띠고 있는 이 여인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 부인을 모델로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렇게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는 여행객들에 대한 인상은 전광석화(電光石火), 오합지졸(烏合之卒), 속수무책(束手無策) 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작은 사고로 인하여 노트르담 성당에도 콩코드 광장에도 가지 못하고 개선문이나 에펠탑은 건성으로 지나쳐서 속이 많이 상해 있습니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이 편했지, 보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보기 위해서 아무래도 파리에 다시 와야 하겠습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는지 포기하기에는 이미 가슴속으로 바람이 깊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여행은 피곤한 노동이지만 그것의 성취감이 말할 수 없이 행복한 느낌을 만들어 줍니다. 이제 오늘 오후가 되면 프랑스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이탈리아로 건너갑니다.
첫댓글 밀라노에 갔다가 또다시 파리로 돌아온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