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의 그릇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03/09토(土)창 13:5-15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창 14:14)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영적인 진리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지탱하시며 인간에게 만물과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에게 무엇을 받는 분이 아니라 만민과 만물이 존재하는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그분을 흡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대로 살면 그분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녀인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보이지 않는 하나님니 진정 복된 환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합 3:17-18). 환경 때문이 아니라 주님 존재로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통해 오는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회의 선택에서 자유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인 이유는 하나님만 계시면 어떤 환경도 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롯과 땅 문제로 싸우지 않습니다. 선택에서 자유합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선택이 복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은 눈에 보이는 좋은 환경을 보고 소돔 고모라를 선택합니다.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님꼐서 소돔과 고모라를 명망시키시기 전이었다. 롯은 요단의 온 들판을 가지기로 하고 동쪽으로 떠났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따로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창 13:10-11). 이것이 롯이 실패한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눈에 보이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진정한 실체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하나님이 실체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아브라함은 보이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롯은 보이는 것의 포로가 되어 실패합니다.
▣미래의 시간(영생)에서 자유합니다.
“롯이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창 13:14-15). 주님과 동행하면 오늘뿐 아니라 미래, 영원까지 동일하게 역사하심으로 미래의 시간(영생)에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And..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선택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선택은 그 책임이 전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해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장해가 있으면 그 길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시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사람 만드는 훈련을 시킵니다. 이때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결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은 결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과정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과정에 장해를 허락하시는 것은 장해물 때문에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낮아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훈련하십니다. 주님과 같은 성품으로 빚으십니다. 그래야 주님을 온전히 나타내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면 처음에는 부족한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른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큰 그림 안에서 작은 조각들의 퍼즐이 맞추어집니다. 롯이 선택한 땅은 지금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꿈꾸는 강남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택한 곳은 개발 중인 신도시라 할 수 있겠지요. 사람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화려하고 다 갖추어진 강남지역을 선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강남지역이나 신도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살기 좋은 지역, 학군이 좋은 지역을 찾아 이사합니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좋아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집니다.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을 기준으로 선택하였기에 영적으로 다운될 것입니다.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충만함이나 행복은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이 땅에서 끝난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살다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원한 삶이 기다립니다. 만일 이 땅의 삶이 끝이라면 가장 불행한 사람은 기독교인들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그 너머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은 죽음 너머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선택으로 결정됩니다. 그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지금 힘든 시간을 겪는 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그 축복은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힘든 시간을 겪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복을 주기 위함이라 생각한다면 이 과정이 결코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믿음의 가정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갈등이라는 과정으로 넣으십니다. 갈등 속에서 서로의 자아가 죽고, 주님만 나타난다면 그 가정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그가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과 나, 그가 하나 되는 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지금 그 배우자를 주신 것은 ‘너 죽어라’입니다. 내가 죽으면 배우자는 주님께서 책임지십니다. 내가 죽지 않고 자꾸만 배우자가 변하기 바라니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과정 없는 결론은 없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론 속에서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한 번 직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계시는지 그것이 깨달아진다면 원망 불평 대신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주시는 복이 아니라 예수 존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존귀하신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선택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https://youtu.be/G08FuHB_Gt0?si=QF_hnx5ZwgLDiN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