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독서:에세S01E56 - 기도에 관하여
플라톤은 『법률』에서 신들에 대한 불경한 믿음 세 가지를 꼽는데, 신들이 전혀 없다고 믿는 것, 신들이 우리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 우리가 기도-봉헌-희생을 바치면 우리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그것이다.
식전 기도로 십자가를 세 번 긋고 식후 기도로도 그만큼 하면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은 내내 미움과 탐욕과 불의로 보내는 것을 보면 불쾌해진다. 마치 보상이나 협정 조약에 의거한 듯, 자기들 시간은 악행에 쓰고 하느님의 시간은 하느님께 바치는 식이다. ••••• 죄와 판관을 찰떡같이 사이 좋은 동반자로 같은 집에서 키우며 그토록 편안할 수 있다니 놀라운 양심 아닌가? 머리는 줄곧 음탕한 생각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하느님 앞에서는 그것을 몹시 추악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 무슨 말을 아뢸 것인가?
누구도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없을 거라고 믿을만큼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다니 딱한 병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과 같이 우리를 용서하시고"라고 한다. 복수심과 원한을 벗어 버린 영혼을 그분께 바친다는 것이 아니며, 그 말이 대체 무슨 뜻인가? ••••• 우리는 하느님과 그 분의 도움을 우리 잘못에 끌어들이고 불의에 초대한다. 은밀하게 청할 수 있는 것을 신들께 청하며 [페르시우스]
우리는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되도록 청할 것이 아니라, 도리에 맞게 되도록 빌어야 한다.
하느님의 법보다 넉넉하고 온화하고 호의적인 것은 없다. 하느님의 법은 우리처럼 죄 많고 가증스러운 자를 당신에게로 부른다. 우리가 아무리 비열하고 더럽고 진흙투성이며 또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라도, 하느님의 법은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에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욱 그 보답으로 하느님의 법을 바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나아가 그 용서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하느님의 법에 호소하는 그 순간만이라도 과오를 미워하고, 그 법을 어기게 한 정념을 미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첫댓글 참회나 하느님과의 어떤 새로운 화해로 감동된 바도 없이, 사욕으로 가득 찬 마음을 지닌 채 그분께 가서, 기억이 우리 혀에 준비해 주는 말들을 늘어놓고 그것으로 우리 과오를 씻으려 하니 말이다.
저 때나 지금도 사악한 종교인들 참 문제입니다ㅠㅠ
개인적으로 이번 생에서 제가 선택한 것들 중에서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종교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신앙을 갖지 않은 무신론자로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한 선택을 하기 전에 주변으로부터 들은 수많은 이야기로 갈등을 했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신이 있다는 망상, 그리고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수많은 악행들과 허례허식, 부산물로 생긴 억압적인 전통과 정신질환 등....그 있으나마나한 것 때문에 저질러진 형용할 수 없이 많은 부도덕이 21세기를 넘어 22세기에도 존속할걸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입니다. 부디 진정한 르네상스인 인간다움만 남길 바랄 뿐입니다. 끝으로, 기도란 본인을 위해 본인에게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종교속 삶이 아닌 삶속 종교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