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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김기옥 시인의 작품세계
아름다움의 눈으로 뽑아 올린 시조의 가락들
남진원( 시인. 문학평론가)
Ⅰ. 여는 글
내가 김기옥 시인을 만난 것은 1993년 강릉예총에서 문을 연 문예창작교실에서였다. 강릉예총에서 실시하는 문예창작반 강사로 초빙되어 시조 강의를 할 때 만난 몇 몇 학생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곳에서 시조 공부를 한 후 김기옥 시인은 1995년 [현대시조]를 통해 등단하여 시조작가가 되었고 2005년 8월에는 시조집 『그리움, 그 푸른 악보』라는 시조집을 상재하였다. 그 후, 나는 김기옥 시인과 영동시조문학회, 강호시조문학회, 강원시조문학회, 강릉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등에서 활동을 같이 하면서 문학 도반으로 지낸지, 근 20여년이 넘었다.
김기옥 시인이 처음 시조집을 냈을 때에 나는 책 말미에 ‘외로운 얼굴, 그리움의 정서’라는 제목으로 발문을 썼다.
당시 김기옥 시인의 시조를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정서의 실들이 모여 감각의 옷을 짜고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정서는 그리움을 동반하고 있었다.
김기옥 시인은 자연에서 그리움의 시적 대상을 선택하고 있었다. 정서의 무늬는 즉물 판타지처럼 찍히는 상상의 사진이 아니라 감정의 바늘귀로 수를 놓는 무늬였다. 배반하지 않는 자연, 이해타산을 앞세우지 않는 작품 속에는 김기옥 시인의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작품을 읽으면 부담 없는 편안함과 흥취, 멋이 있었다. 그리움의 서정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정심(淸淨心)이 깃든 것도 볼 수 있었고 불심에 가득 찬 마음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이번에 또 두 번 째 시조집을 내면서 발문을 청하였다. 그러니 13년이 지난 셈이다.
그간 김기옥 시인은 문학에 정진하여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시적 변모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Ⅱ. 시인의 시적 세계
1.서정성과 그리움
김기옥 시인의 서정성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한층 깨끗하고 맑아졌다. 탁마절차의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서정성은 두 번째 시집에 오면서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는 동심적 서정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껴안은 서정성이다.
봄 길
연분홍 꽃 메아리
살랑바람 손잡고
꽃노래 아슴아슴
이산 저산 번져 가면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설렘으로 가는 길
꽃핀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편의 동화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봄 길을 걷는 것은 얼마나 반갑고 즐거운 일인가. 살랑 바람 속에서 한 마리 나비가 된 기분으로 걷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다음의 작품 「소나기」역시 동시조 같은 동심이 담긴 시조이다.
소나기
느닷없이 날벼락에
막장구름 휘몰아쳐
빗줄기 바람타고
사정없이 퍼붓고는
시침 뚝
햇살이 활짝
무지개를 걸었다.
대체로 작품을 통해 받는 시적 감동은 몇 가지 측면이 있다. 진솔성, 반전성, 표현의 참신성, 철학성 등이다. 이 작품 역시 동심이 담긴 작품으로 매우 감동을 주는 단시조인데 매력은 반전성이다.
소나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내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침을 뚝 떼고 햇살이 활짝 무지개를 걸어놓았다. 먹장구름이 몰아치던 상황에서 햇살이 비치고 무지개 등이 화려하게 걸린 반전의 재미가 이 시조를 한층 즐거움을 주고 싱그러움의 매력까지 더해주었다.
이와는 달리 인간에 대한 그리움의 서정성이 짙게 배어있는 작품들이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시조들이 있다. 첫 시집을 낼 때에도 ‘그리움, 그 푸른 악보’라는 시집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서정시의 징후를 예고하고 있었다.
가을 사색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리움이 가을이라면
얼마나 그윽할까 가득 채운 든든한 맘
홀홀히
비워 맑아지는
삶의 쉼표 그 무한함
달에 난을 치려고 푸른 붓 들어보니
단풍궁궐 환한 밤 글 읽는 귀뚜라미
달빛은
사색을 끌고
내 마음도 쓰다듬네.
첫 시집을 낸 이후 시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서정성 짙은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시조 [가을 사색]은 누구에게나 서정의 물을 들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첫 수는 비움의 미적 정서를 전하고 있다. 가을이 쓸쓸한 이유는 푸름을 자랑하던 나무며 풀들이 모두 잎을 내려놓고 쓸쓸히 자신을 비우는 모습에서 외로움 짙은 마음에 잠기게 한다. 그러나 외로움 보다는 비워서 맑아지는 마음의 청량함에 젖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수는 귀뚜라미가 우는 달빛 푸른 밤의 정경이 그려져 있다. 달빛이 사색을 끌고 마음을 쓰다듬는다는 표현에서 더 절실한 감정에 동화되고 만다.
첫 시집 이후 13년째에 내는 시집이라서 그런지 시적 완숙미가 배어있다. 시조 [가을 사색]에 이어 [그리움]은 내적 성찰에서 비롯된 ‘간절함’을 그리움으로 환치하여 시적 효과를 상승시키고 있다.
그리움
문득 한 컷 실루엣 오롯이 피어나는
안타까운 보고픔이 내려놓고 덮으려도
이끌려
끊이지 않는
다시 묻는 마음 안부
또 하나의 하늘에도 내안의 숨은 나도
절절히 잡히지도 끝나지 않는 나의 기도
돌이킬
상생의 노래
다시 불러 봅니다.
앞의 첫 시집에서 나는 김기옥 시인이 ‘배반하지 않는 자연 속에, 그리고 이해타산을 앞세우지 않는 자연 속에, 그리움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사람과 친해지기 보다는 사물과 친해지고 있는 역설의 미학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집 속의 작품 [그리움]에 오면 훨씬 인간적이다. 인간이 중심이 된 상태에서 자연은 부수적 사물로 작용하며 그리움을 돋우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움에다가 소박한 희망의 등을 달아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2.불교적 세계에 닿은 작품들
김기옥 시인의 이러한 서정성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마음을 정화하는 명상의 시간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조용히 자신을 불교적 관조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명 상
맑고 둥근 거품 안에 오롯이 내가 있다
고요한 침묵 안에 어수선함이 차분하게
내 안에
명료한 길이 난다
순화되는 내 마음
나무와 새소리가 바람과 물소리가
마음을 다독이며 어느 순간 답을 한다
자연과
나와의 대화
하나 되는 대 우주
시 창작을 하다 보면 자연히 빠져드는 물음이 있다. ‘시를 쓰는 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런 내면에 대한 자각과 물음이다. 그런 과정에서 명상과 관조는 참된 자신을 찾는 문제에 매우 접근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기옥 시인 역시 명상을 통해 삶에 대한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아가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끝내 자연과 나와의 대화를 통해 우주와 하나가 되는 삼매경에 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물음은 옛날 불가에서부터 끊임없이 탐구해온 화두이기도하다.
인간의 몸과 생각을 불가에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고 한다. 이러한 사람의 몸과 생각은 허망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되는가? 몸은 원래대로 흙으로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숨 쉬던 공기는 바람으로 돌아가고 몸속의 수분은 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 역시 실체가 없는 허망이고 인간의 마음인 성품만 생사가 없는 그냥 그 본래의 면목으로 있는 것이다. 원래 있던 것이니 없어질 수 없고 그렇다고 눈으로 보려면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의 몸은 죽어 없어졌지만 그 구성요소는 그대로 돌아가 우주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다시 거대한 우주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니 고향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 이처럼 즐거운 일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중국의 현인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춤추고 노래했던 것이리라. 김기옥 시인의 작품 [명상] 역시 구도를 통해 우주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자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달팽이]와 [휠링의 나무길]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그 대상이 본인 자신이 아니라 객관적 상관물인 달팽이와 소나무로 대치하였다.
달팽이
집 한 채 등에 지고 온갖 세상 헤쳐가며
오감의 촉각으로 만져보고 느끼면서
우주의
가장 멋진 길
나를 찾는 생각지도
촉촉한 삶 찾아가요 끈끈한 사랑으로
더 값진 것 보기 위해 더 값진 것 듣기 위해
섣불리
파악할 수 없기에
눈 귀 닫고 더듬이로.
객관적 생명체인 달팽이의 모습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집을 그대로 지고 옮겨가는 달팽이는 오감 중의 촉각으로 만져보며 느끼면서 간다. 달팽이의 모습 속에서 달팽이의 움직이는 모습이 ‘참 나’를 찾는 가장 멋진 길이며 ‘참 나’를 찾는 생각지도인 것이다. 달팽이의 행동이 어찌 보면 인간의 행위보다도 더 위대할 수도 있다. 정말 섣불리 파악할 수 없는 것이기에 눈과 귀를 닫고 더듬이로만 가는 세상, 그것 말이다.
휠링의 나무길
화부산 소나무 떼 언제 봐도 맑은 음표
향기로 인사하며 파란 촉이 눈부시다
긴 시간
다져온 허리
수행자처럼 거룩하다
몸 밖의 비바람을 침묵으로 키우면서
아둔한 세상속길 한줌의 눈물마저
둥글게
쓰다듬으며
또 하나의 길을 품다.
소나무의 모습을 보며 소나무를 통해 보는 수행자의 의연함을 나타나 있다. 세상의 풍진에 묻은 비바람을 오직 침묵으로 키워가는 소나무는 한 줌의 눈물도 둥글게 쓰다듬으며 새로운 또 하나의 길을 내고 있음을 본 것이다. 여기서 수행자는 소나무이며 작자 자신이기도하다.
앞의 세 작품에서 보여주듯이 김기옥 시인은 작가 자신의 명상적 체험을 통해 구도의 길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다시 달팽이와 소나무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나서는 길은 ‘강물’ 앞에서 잠시 멈춰 서기도 한다.
강물처럼
생의 원천 그 앞에서 흐르는 삶을 배우네
생각도 물의 깊이도 어느 굽이 어느 여울목
저만치 휘어진 강 물길 내 선 자린 어딜까
때로는 마음 급해 우르르 뛰다가도
유유히 한적을 짚어 사는 것 실험 하면서
물고기 지느러미타고 생의 모험 떠나지
어느 굽이 달리다가 낯선 친구 만나서도
쉽사리 얼싸안고 기쁨도 괴로움도
감싸서 포용해주는 그 용기가 부럽소
물그림자 거울 속엔 내 꿈도 띄워보고
물안개 피어나면 내 허물도 묻어두고
황홀한 저녁 낙조엔 내 영혼의 길도 낸다.
첫 수와 셋째 수는 의미의 연결성에 서두르다보니 가락의 연결성에 다소 무리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내면의 세계를 깊이 있게 엮어내고 있다. 넷째 수에 오면 허허실실의 묘미를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안개와 물그림자에 허물을 묻어두기도 하고, 또한 꿈도 띄워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황홀한 저녁 낙조 앞에서 영혼의 길을 내고 싶다고 한 것이다.
3 역사적 의미의 궤적
김기옥 시인은 한 권의 시조집에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한 많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는 역사적인 흔적을 찾아 떠나는 마음 여행이 있다. 그리고 그 여행 중에는 늘 구도를 향한 불교적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 점은 김기옥 시인의 한 특징이라 하겠다.
나는 앞서 김기옥 시인의 시집 발문에서 말했다.
‘역사는 한 시대 삶의 증거이다. 한 개인의 삶이 글속에 묻어나듯이 역사는 그 시대 사회와 민중의 희로애락이 먹물처럼 번져나온다. 시인은 살아있는 현재의 역사임과 동시에 과거의 역사를 되살리는 역사의 낚시꾼이어야 하며 내일의 향방을 언어로 노래하는 예언자이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였다.
김기옥 시인은 앞의 시집에서 몇 몇의 작품을 통해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보고 오늘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그러한 노력은 이번에도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초당 그대의 뜰에서
- 허난설헌 생가 헌 다례 제전에서 -
청솔 향기 바람에 어려 푸른 혼이 맥박 뛰는
긴 행간 명상으로 얼을 지킨 허난설헌 뜰
축하객 꽃구름처럼 방방곡곡 모인 손님
사백년 시혼을 밟은 오늘은 그대 뜰로
꽃술 치마 차려 입고 동해 푸른 용 불러 타고
영롱한 꽃 그림자로 따뜻한 정 누리소서
선경을 넘나들며 홍길동 탄생시킨
꿈속에 노닐었던 광상산 무릉도원
오 문장 혼이 숨 쉬는 문학 산실 옛 터전
‘오 문장’은 조선시대 대 학자 허엽과 그 자녀 네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 중에 허난설헌이 한 명이다. 허엽은 한 때 강릉의 초당에 기거하면서 호를 ‘초당’이라고 하였다.
다례를 지내는 모습을 형상화하며 난설헌의 작품을 드높이고 존경과 기원을 담은 작품인데, 시적 판타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조의 가락이 물 흐르듯이 유려하고 고운 점도 돋보인다.
김기옥 시인이 역사의 흔적을 찾는 노력은 계속된다. 강릉의 객사가 있던 입구에 우뚝 지켜선 ‘객사문’을 소재로 쓴 시조 ‘객사문의 봄’은 역사적 향기와 함께 매우 신선한 느낌과 감동을 준다.
객사문의 봄
- 강릉 -
알싸한 꽃샘바람 돌담길 굽어 돌아
객사문 안 청 매화에 봄 우표 붙이고서
역사 속
긴 사설 풀어
송이송이 향기 뿜네
긴 시간 휘 돌아온 봄 한 자락 필을 감아
귀한 손님 영접하던 대청마루 난간으로
아득히
바람을 꿰며
봄을 여는 새소리.
객사문 부근은 강릉에 대도호부가 있던 관아 터였다. 객사문 안으로 들어가면 담을 따라 주위에 매화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른 봄이면 눈부실 정도로 환하게 꽃을 피우고 향기를 퍼뜨리는 걸 볼 수 있다.
김기옥 시인은 매화가 향기를 뿜어내며 역사의 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듣고 있는 것이다.
김기옥 시인의 역사적인 시적 안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경주 남산
수많은 암자들이 능선마다 자리 잡고
산 하나를 바위마다 불상으로 새겼으니
얼마나 많은 정 소리가 메아리로 울렸을까
석공은 달빛을 지고 부처를 만들었고
석불은 인자하다 지붕 없는 박물관
신라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묻고 싶다
마음의 문을 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늘 같지 않던 것이 하나하나 다 보인다
바위에 영혼을 불어넣어 부처님이 된 것을.
시인은 왜, 끊임없이 역사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것일까? 역사는 지나온 우리의 얼굴이며 발자국이며 숨결이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 것이며, 또한 나의 참다운 이웃을 찾는 일이리라.
그래서, 김기옥 시인은 신라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묻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신라의 시간 속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암자와 불상, 석공의 달빛에 이어 묻어나는 석공의 정소리는 김기옥 시인의 의식을 깨우고 있다. 그리고 바위에 영혼을 불어넣은 부처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4. 자연과의 조응(照應), 사람과의 조응(照應)
시를 쓰는 일은 시를 사랑하는 일이며 시를 받드는 일이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받드는 일을 하루에 황금 만 냥을 올리는 일과 같이 한다면 시의 언어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시를 통해 하는, 사물과의 조응, 사람과의 조응은 너무도 아름다운 일이다.
겨울 자작나무
윙윙윙 몸을 떨며 겨울에 매달려서
나목의 하얀 허리 까칠한 껍질 세워
눈부신 세상 속 길을 풀어놓은 하얀 빛
몸밖에 바람 치며 몸 안에 새겨온 꿈
말갛게 퍼져가는 한 줌의 눈물 되어
둥글게 나이테 하나 몸속 깊이 새기며
어쩌다 너의 무리 대관령 능선에서
푸르게 뿌리 내려 바람에 빗장 걸고
하얗게 흔들리면서 세상 안부 묻는가.
김기옥 시인은 대관령 능선에 뿌리를 뻗고 선 겨울 자작나무의 모습을 보았다. 그냥 본 것이 아니라 나무를 대하면서 나무와 조응을 하고 있다. 자작나무의 하얀 빛은 눈부신 세상속의 길을 풀어놓는 빛으로 보았다. 고뇌의 시간 속에서 세상의 안부를 묻는 한 그루씩의 자작나무는 뭇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작자 본인이기도하다. 그리고 자연과의 조응을 통해 나와 사람들의 아픔과 고뇌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건 청청한 슬픔이고 지극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도 있다.
덤
한 움큼 마음을 얹어 향기로 묶어주는
실천하는 사람만의 여유와 풍미이다
후덕과
따뜻한 교감
마음 한 줌 깊은 정
서로를 포용하는 넉넉한 피안의 길
고운 덤 다스려서 거친 여백 채워가는
삶속에
감칠맛 나는
아름다운 마음 솔기.
시조 [덤]은 사람이 사람과 조응하는 작품이다. 참 좋고 마음이 편해지는 작품이다. ‘덤’은 원래의 값어치 보다 조금 더 얹어주는 일이나 물건을 말한다. 실제로 ‘덤’을 받으면 그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덤을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그 관계에서 어떤 마음을 쓰고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진다. 자신의 것을 조금만 덜어주고 양보하는 마음을 갖고 살면 이 세상은 아름답게 된다.
시조 [덤]에 나타나 있듯이 ‘덤’을 주며 사는 인생에서는 서로에게 환희심이 일어난다. ‘덤’은 한 움큼 마음을 얹어주는 일이며 사람사이에 향기로 묶어주는 일이다. 서로를 포용하는 순간에 피안의 길에 이르고 우리네 삶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Ⅲ. 맺는 말
시인은 끊임없이 시를 쓰려는 노력을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의 의지이기도하다. 시인은 언어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슬픔과 단절의 고독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늘 깨어있다.
그렇다면 깨어있는 정신의 바탕은 무엇인가? 그것은 선을 향해 발길을 옮기며 그때마다 언어로 창작의 길을 걷는 순수한 마음일 것이다.
김기옥 시인은 부단한 삶의 노정 속에서 부지런히 시조 창작을 하여온 시인이다.
나는 김기옥 시인이 처음 시조집을 상재했을 때 그의 작품 세계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었다.
그 항목을 다시 열거하면, 율조와 고른 울림, 풍류의 멋, 청정심, 자연에 새긴 서정 등이었다.
이번에 새로이 내는 시조집의 작품들 면면을 보면서 그간 다양한 시적 변모가 있었음을 알았고 시적 정서 또한 많은 변화를 가져왔음을 보았다.
김기옥 시인의 시는 서정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와는 또 다르게 김기옥 시인의 작품에서 눈여겨볼 만한 곳이 또 있는데, 그것은 역사적 의미의 궤적이다. 그의 눈은 초당 허난설헌 생가를 찾기도 하고 대관령의 자작나무에 가 머물기도 한다. 그의 발길은 옛 강릉의 대도호부 자리인 임영관 터를 찾기도 한다. 그의 시선과 발걸음은 불교적 세계관에 닿아, 천년 신라의 고도 경주 남산으로 향하기도 하였다. 시적 영역의 확장이었다.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아름다운 시심 속에서 창작의 불길을 지피는 김기옥 시인의 시적 내면은 진실하다. 그리고 진실한 상상력을 동반한 그의 서정성은 자연과의 조응 뿐 만아니라, 인간과의 조응을 통해 시세계가 더욱 깊고 넓어졌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네 삶은 어찌 보면 아픔과 고통의 인생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기옥 시인은 아름다움의 눈으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사랑으로 시조의 가락과 운율을 뽑아 올린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김기옥 시인의 시조 한 편 한 편은 그의 시조 작품, ‘덤’처럼 우리들에게 가장 귀중한 사랑의 덤을 주는 행위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나는 믿는다. 앞으로 더 큰 발전과 양양한 전도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