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에 의하면 안우(安祐) 장군은 1354년 6월에 오성군(鼇城君)에 봉해졌다. 이러한 봉호를 얻은 배경은 그의 출신지 탐진현(耽津縣)의 별호가 오산(鼇山)이기 때문이다. 본관이 죽산(竹山) 또는 죽주(竹州)인 사람들이 죽성군(竹城君) 봉호를 받은 것과 같이 안우 장군의 본관이 탐진 또는 오산(鼇山)이라 오성군(鼇城君)이 된 것이다.
한자 鼇(자라 오)가 복잡해서 鼈(자라 별)과 혼동하여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鼇 자라 오, 鰲(오)의 본자(本字). 맹꽁이맹(黽) 위에 敖(오)가 합(合)하여 이루어짐. 鼈 자라 별, 鱉(별)의 본자(本字). 맹꽁이맹(黽) 위에 敝(폐→별)이 합(合)하여 이루어짐.
안우(安祐) 장군이 탐진현(耽津縣)에 연고를 두었다는 증거는 고려사의 1354년 오성군(鼇城君) 봉군 기록, 고려사 안우 열전의 탐진현인(耽津縣人)이라는 말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강진현(康津縣)의 【고적(古跡)】에 안우의 집터가 읍성 남쪽에 있다고 한 것, 【인물(人物)】에 안우(安祐)를 기록한 것 등이다.
----------------------------------------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고려사 원문에는 안우 장군의 봉호가 오성군(鼇城君)으로 바로 되어 있으나 번역문엔 별성군(鼈城君)으로 잘못 되어 있다.
고려사 권57 지(志) 권제11 지리2(地理 二) 전라도 장흥부 탐진현(耽津縣) 탐진현(耽津縣)은 본래 백제(百濟)의 동음현(冬音縣)으로,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양무군(陽武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에 와서 영암으로 옮겨 소속되었다. 뒤에 〈장흥부에〉 내속(來屬)하였다. 별호(別號)는 오산(鼇山)이다. 부인도(富仁島)·은파도(恩波島)·벽랑도(碧浪島)·선산도(仙山島)가 있다. 또 완도(莞島)가 있다.
고려사 卷三十八 世家 卷第三十八 恭愍王 3年 6월 인당(印璫) 등을 봉군하고 자원한 군사들에게도 벼슬을 내려주다 일자 1354년 06월 21일 (음) 신해 인당(印璫)을 석성부원군(碩城府院君)으로, 이권(李權)을 오원부원군(五原府院君)으로, 나영걸(羅英傑)을 금성군(錦城君)으로, 손불영(孫佛永)을 돈성군(敦城君)으로, 김경(金鏡)을 의성군(義城君)으로, 김용(金鏞)을 안성군(安城君)으로, 안우(安祐)를 별성군(鼈城君)으로, 최원(崔源)을 용성군(龍城君)으로, 인안(印安)을 연성군(延城君)으로, 최안수(崔安守)을 함성군(咸城君)으로, 구정(具貞)을 면성군(沔城君)으로, 조충신(趙忠信)을 상원군(祥原君)으로 임명하였다.
고려사절요 권26 공민왕1(恭愍王一) 공민왕(恭愍王) 3년 6월 첨설직을 신설하다 일자 1354년 06월 미상 (음) ○인당(印璫)을 석성부원군(碩城府院君)으로, 이권(李權)을 오원부원군(五原府院君)으로, 나영걸(羅英傑)을 금성군(錦城君)으로, 손불영(孫佛永)을 돈성군(敦城君)으로, 김경(金鏡)을 의성군(義城君)으로, 김용(金鏞)을 안성군(安城君)으로, 안우(安祐)를 오성군(鼇城君)으로, 최원(崔源)을 용성군(龍城君)으로, 인안(印安)을 연성군(延城君)으로, 최안수(崔安守)를 함성군(咸城君)으로, 구정(具貞)을 면성군(沔城君), 조충신(趙忠信)을 상원군(祥原君)으로 삼고, 그 나머지 장수와 군사들에게도 모두 작위와 녹봉[爵秩]을 더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