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상
구두수선소 / 박영자
잘 익은 생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치열하게 뛰어온 족적들
돌부리에 채이고 깨진 앞코
짓눌리고 뭉개진 뒤축
해진 구두 아래
삶의 속도가 잠시 멈춰 있다
구석에 놓여있는
하이힐 뒷굽에서 양의 울음소리가
한쪽으로 닳은 사내의 뒷굽에서
소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새로운 삶을 기다리는 뒤축을 다듬고 있는 수선공의 까만 손끝에서
발꿈치들이 되살아난다
잘 닦이고 다듬어진 구두에 담겨있는
다리의 근육이
길의 결을 더듬고 있다
이 족속의 근성은 달리는 데 있다
버스 투어 / 박영자
모퉁이의 소문을 읽고
행간 사이를 지나 빈부를 질주한다
난해한 문장들
빠르게 넘어가는 배롱나무의 붉은 책장
하늘 끝, 푸른 숭어리가 가뭄처럼 여물어가고
느티나무 잎새가 여름을 잡고 있다
숭어가 튀어 오르는 수영강 어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유람선 뱃고동은
어느 골 깊은 가난을 관통할까
초고층 빌딩 숲속에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땅에 붙은 작은 집
키 작은 여자가 홑이불 먼지를 터는
낯선 시간을 지난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무덤덤한 예순쯤 되는 부부
생머리 찰랑이는 여자
어깨에 문신을 새긴 남자
푸른 눈의 엄마와 아들
모두가 환승하고 싶은
골과 골을 달리는 101번 버스
나도 다음 장으로 갈아타야겠습니다
모던포엠 2022년 4월호
카페 게시글
회원 시 발표작
구두수선소 외 1편 / 박영자
들꽃
추천 0
조회 32
22.06.13 08:3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