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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예담촌b_면우 곽종석 유림독립운동외 2020.7.12. 내용 ▣ 남학정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 이사재 ▣ 사양정사, ▣ 하즙 고가 원정매, 감나무 ▣ 면우 곽종석 선생 독립운동 기념관 50 남학정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5/5 현재 남학정 ; 남쪽산에 있는 마을 전망대 [김용식 님이 지은 남사예담촌을 예찬한 현대 한시] 학이 나는 듯 웅장하고 아름다운 남학정과 예담촌은 나라에서 으뜸이라 새겨있네. 사수를 굽어보니 산천 두른 요해지 같고 니구산 바라보니 그림병풍 둘렀구나. 운치는 온전이 신비로움 느껴지고 풍광도 화려하여 선비들 발걸음 머무네. 행복을 부른다는 화화나무 전설 속에 승지(勝地)의 명성 만세토록 푸르리라. 이사재 이사재 토포사(난을 집압하는 장군의 임시직함) 종사관으로 임꺽정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우고, 대사헌, 호조판서를 지낸 박호원(1527~?)의 재실이다. 1857년 건축. 니는 니구산(이구산), 사는 사천 의미. 니구산, 사천은 공자가 탄생했던 지역의 지명이다.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7년 6.1. 백의종군 시에 이 곳을 지나다가 박호원 가문의 농사를 짓는 소작인 가정에서 하룻밤 유숙했다. * 이사재는 1857년에 지은 집이므로 이 집은 아닐 듯. 그러나 이 집 부근에서 유숙하신 것이다. * 충무공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었나? 권율 장군이 주둔한 합천 율곡으로 백의종군하러 가시는 길이었다. 이사재 현판 이사재에서 바라본 전망 이사재 옆, 니구산농원의 매물로 야외에 전시된 작품. 박우근 작 <백두대간> 이사대 부근에 기산국악당이 있어서 때때로 공연을 한다. 기산(岐山) 박헌봉(朴憲鳳1906~1977) 朴憲鳳 선생을 기린다. 국내 최초 국악관현악단 창단. 국악예술학교 초대교장. 예담길 사양정사 정몽주 후손 집안 * 사양정사 민박 가능 * 민박 ; 사양정사. 선명당, 이씨고가, 기산재, 예담한옥, 민작집 등. 원정공 하즙 고가, 원정매, 한국 崔古 감나무 원정공 하즙의 유허비 하즙은 이 마을 출신으로 고려말 강직한 관리였다. 이 생가에 직접 심은 것으로 보이는 매화나무는 수령 680년 원정매로 유명했으나 이제는 생을 마감했다. 그 곁에 후계나무를 키우고 있다. * 대원군이 元正舊廬(원정의 옛집) 라고 쓴 친필액자가 전해 온다. * 하즙의 생가에 하즙 손자 하연이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기려 심은 감나무는 수령 650년이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 [원정매와 하즙에 대하여] 하즙(河楫, 1303~1380)은 남사 태생으로 정직하고 엄정한 고려말 관리였다. 원나라 황제가 정치관(整治官)을 두어 고려의 내정간섭을 하자 거기에 빌붙어 원순제의 황후가 된 고려여인 기황후의 족재 기삼만이 민간의 토지를 함부로 약탈했다. 토지수탈을 조사하던 사헌부 대관 하즙은 문초하고 매질하여 기삼만이 결국 옥중에서 죽었다. 원의 황제 조사관이 나오고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올곧은 성품을 인정받은 하즙은 문하찬성사를 지내고 진주부원군에 봉해졌으며, 元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元은 의를 행하여 백성을 기쁘게 함이요, 正은 정의로써 남을 복종하게 함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이미 원나무가 고사한 원정매, 후계나무가 자라고 있다. 하씨 고가 감나무 * 하즙의 생가에 하즙 손자 하연이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기려 심은 감나무는 수령 650년이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이다. 하즙고가 감나무 하즙고가 감나무 3.1운동 유림 면우 곽종석 등 독립운동 기념관 [ 郭鍾錫에 대하여 ] * 1846~1919, 본관 현풍, 호 면우(俛宇), 문집 한주집(寒洲集) * 경남 단성(산청군 단성면) 출신 * 1883년 안동부 춘양(봉화군 춘양면)으로 옮겨 퇴계 학문 연구. * 1896년 거창 다전으로 옮겨 살았다. 신도비는 거창 가조면 장기리 * 조식 이진상 유학풍, 퇴계 학문 수정 보완, 한국 유학 종합, * 위정척사사상을 탈피하여 만국공법(국제법)에 호소함. * 학문적 명성이 높아 여러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였고, 1903년 통정대부 비서원승에 제수되자, 10여 일간 어전독대 구국의 의견을 제시하였고, 거듭 사퇴 고향으로 돌아왔다. * 경술국치 전후 유학자 태도는 망명, 기의(起義, 의병), 자정(自靖) 세 갈래인데 자정론자였다. 자정론은 즉각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자중 고행하고 깨끗한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 3, 1운동 때 74세로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 운동의 민족대표 137인중 그 대표로 활동했다. 2년 형의 옥고를 치르며 옥사 직전 병보석됐으나, 그 여독으로 곧 죽었다. * 사후에 단서 이동서 당, 거창 사천서당, 곡성 산악재가 세워져 추모하고 있다. 유림들의 파리장서 원본을 새긴것. 능소화가 안녕히 가시라고 작별인사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