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배는 죽기를 결심하고 국민의 벌 받으라”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제목으로 <시사저널>은 제185호 커버스토리(93.5.13)에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의 육필 수기를 전재한 바 있다. 12·12 당시 쿠데타 진압군측 선봉장으로서 그날밤의 숨가빴던 진압 노력을 최초로 공개한 이 수기가 나가자 당시 정국은 12·12 심판 쪽으로 급선회했고, 검찰 수사에 의한 12·12의 법적 처리가 뒤따랐다.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국민 사이에 ‘참 군인의 표상’으로 재조명된 장태완 장군을 다시 만나 보았다.
양 방송사의 드라마 내용이 실제 상황을 잘 반영했는가?
<제4공화국>과 <코리아게이트> 모두 방증 자료를 많이 수집한 흔적이 보이고, 탤런트들 연기도 좋았다. 특히 내 역을 맡은 탤런트들이 실감나게 연기해서 12·12의 실상을 모든 국민이 아는 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드라마라는 한계 때문인지 실제 상황이 많이 생략된 면도 있었다.
실제 상황 중 반영이 안된 부분은?
12·12는 우발이 아니라 계획된 쿠데타였다. 전두환이 5·16 쿠데타 당시 육사생도 지지 데모를 이끈 이후 최고회의 비서를 지낸 사실을 비롯해, 하나회를 결성하고 이를 박정희가 비호하는 등 12·12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정치 군인화 과정이 빠져 아쉬웠다.
지금 국민 사이에는 ‘장태완 신드롬’이 일고 있는데….
집과 재향군인회 본부, 병실로 수많은 격려 전화가 오는데 순간적으로는 고마움도 느끼지만 그에 못지 않게 괴롭다. 군인이란 자기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12·12로 군의 생명인 위계와 기강이 무너지고 정통성마저 파괴되었다. 더 나아가 민주 헌정이 짓밟혔는데 그 책임은 내게도 있다.
정치권의 영입 공세가 대단하다는데…
여야 정당으로부터 연락은 많이 받는다. 계속 고사하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찾아와 시달리고 있다.
마음에 둔 정당이 있는가?
지금도 내가 천추의 한으로 생각하는 것은 12·12 당시 사전 정보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과 국민들께 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속죄하며 여생을 보낼 것이다. 비록 현역 군인은 아니지만 군과 비슷한 재향군인회 회장을 민주적 경선을 거쳐 맡은 이상 군의 엄정한 정치적 중립과 사기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재향군인회를 관변이나 어용으로 보는 데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다. 또 군의 복지 증진과, 쿠데타 세력 때문에 매도되어온 군사 문화를 참된 군사 문화로 되살리는 일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겠다.
드라마에서 재조명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난해 정부가 12·12에 대한 법적 처리를 종결했는데 그 결과에 대한 견해는?
검찰은 수사 후 반란죄를 적용하고서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한 예가 없다’는 논리로 기소하지 않았다. 이건 위험한 일이다. 군기와 헌정 질서를 파괴한 것만큼은 준엄히 다스려야 하는데 정치적 편의주의로 끝내버려 역사에서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 비자금 파문에 휩싸여 있는 노태우씨에게 하고 싶은 말은?
드라마를 보면서 12·12 그날밤 진압에 실패하던 순간이며, 서빙고에 끌려가 고생하던 일, 집에 연금됐을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들 성호란 놈 잃던 순간 등 뼈에 사무친 기억이 되살아났다. 내가 소령 때 전두환·노태우 그놈아들 소위로 임관해 키워 내보냈는데… 군의 선배로서 마지막으로 그가 국민에게 ‘인정 받는 죄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지금 노태우씨에게 이런 말이 위안으로 받아들여질는지 모르겠지만 한마디 하고 싶다. ‘12·12 그날밤 죽기로 마음을 비우니 나도 모르게 용기가 생기더라. 당신도 국민이 보내는 벌을 죽기를 결심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용기가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