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죽었다고!” 그런데 니체의 신은 진짜 죽었는가?
*희랍의 신 개념
신(God)은 무엇인가? 철학적인 개념들 중에 신이라는 개념만큼 다양한 의미를 가진 것도 드물 것이다. 철학이전의 신화시대에 신은 인간과 유사하지만 인간보다 큰 능력을 가졌고 또 불멸하였다. 인간과 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죽을 수 있는 존재인가 불멸하는 존재인가 하는 것에 있었다. 소크라테스에게도 신은 자신에게 사명을 말해주는 일종의 인격적인 신이었다. 하지만 그의 제자 플라톤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원인이 되는 것을 이데아들의 이데아 즉 ‘선(善)의 이데아’라고 하였기에 만일 플라톤에게 신이란 용어가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선의 이데아’를 말하는 것이 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시적으로 ‘우주의 제일원인’이 곧 신적인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후대의 철학자들은 그의 형이상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이라고 까지 한다. 희랍의 마지막 철학자인 플로티노스에게 있어서 신은 ‘일자(一者, the One)’라는 말로 표현된다. 모든 것이 일자에서 유출되고 마침내 일자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니 일자가 곧 창조주로서의 신에 해당하는 용어이다.
*중세의 신 개념
반면 중세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이란 세상을 창조한 존재이며, 인간에게 삶의 지표를 계시해준 인격적인 신이다. 여기서 ‘인격적’이라는 말은 ‘인간이 가진 그 깊은 본성 혹은 자아’와 유사한 것을 지닌 존재라는 말이다. 흔히 철학도들 중에는 신에 대해서 ‘인격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거나, 인격적인 신은 진정한 신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에게 있어서 ‘인격적인 신’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전혀 체험될 수 없는 것이 신이라면, 있다고 주장할 수조차 없는 가정된 신이거나, 아니면, 진정한 신이 아닌 어떤 법칙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체험될 수 있는 신이라면 논리적으로 인격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체험되는 주체가 곧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체험되는 객체도 인격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대의 신 개념
그런데 근대로 오면 신에 대한 관념이 다양하게 분화된다. 스피노자의 경우 사실 신은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세계를 하나로 고려할 때, 이것이 곧 신이요, 신이란 곧 ‘세계의 총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범신론의 의미이다. 반면 헤겔에게 있어서 신이란 곧 ‘절대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헤겔에게 있어서 세계의 역사 자체가 곧 ‘절대정신(신)’이 구체적이고 경험 가능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신은 희랍의 플로티노스의 ‘일자’와 거의 동일한 개념이지만 다른 것은 신은 곧 정신, 그것도 절대적인 정신이라는 것이다. 반면 꽁트와 같은 실증주의자는 신이란 세계를 창조한 존재이긴 하지만, 마치 시계공처럼 세계를 만든 뒤에는 자신의 세계로 떠나버렸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처럼 고려하고 있다. 즉 신은 세계를 만든 탁월한 기술자에 불과한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이라면 꽁트의 이 신은 매우 탁월한 외계인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여기서 ‘지적 설계론’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신 개념
반면 현대에서 신을 긍정하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일 것인데, 이들은 대개 그리스도교의 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들에게 인간이란 무한 혹은 절대자와 연결되어 있고, 인간의 정신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무엇으로 고려하고 있는데, 이 같은 인간의 현상을 설명해 주는 유일한 존재가 곧 신의 존재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이 곧 ‘인간은 무한한 존재인 신’과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니체의 아리숭한 신 개념
그런데 신에 대해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철학자가 있다. 니체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한 철학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상 등장한 그 어떤 신의 개념도 ‘죽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존재가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어떤 신의 개념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니체가 말하는 신은 ‘기독교의 신’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니체는 기독교의 신개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무식한 철학자라고 말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이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니체가 말하는 신이란 두 가지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첫째, 니체가 말하는 신은 사실상 신이 아니라, 기존의 사상에서 가정하였던 어떤 절대적인 규범 혹은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니체의 신은 사실상 다른 그 어떤 문화의 신이 아닌, 니체 자신의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오랫동안 어떤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그 신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니체가 생각하는 신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철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자일 수 밖에 없다.
*현대인의 심리 상황
그런데 왜 현대인들은 “신은 죽었다!”라는, 어쩌면 공허한 이 진술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는 인간이란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도덕적인 존재, 즉 빛과 선 그리고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탈적인 존재 즉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며 어둠과 악에 대한 강한 유혹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산을 오르는 길은 힘겹지만, 내려오는 길은 수월하고, 탑을 쌓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나 쉽다. 인간에게는 탑을 쌓고자 하는 욕구도 있고, 그것을 무너뜨리면서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편한 길, 쉬운 길은 산을 내려오는 길이고 또 탑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런데 기계 기술문명의 편리함과 수월함에 길들어진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힘든 길보다는 수월한 길을 가려고 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여서 항상 오르는 길만을 갈 수가 없다. 가끔은 일탈도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손쉬운 내리막길만을 계속 가고자 한다면, 결국 저 아래 심연, 즉 죽음을 향해 곧장 나아가고자 하는 어리석은 일임은 분명하다.

<새별오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