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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18장1~16절
제목 : 요나단의 우정과 사울의 시기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여기고 그와 언약을 맺지만, 사울은 다윗을 향한 사람들의 칭송을 불쾌하게 여겨 그를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1.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1~5절).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18:1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 이는 본장이 17장의 마지막 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아울러 다윗의 가문.혈통.신분 등에 대해 오랫동안 다윗과 사울간에 많은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요나단...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 사울과 다윗이 대화를 나눌때 요나단도 거기에 함께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여기의 '마음'(네페쉬)은 하나님이나 왕을 향한 순수하고 전인격적인 사랑과 충성의 정신을 가리킨다(Achnoyd).
그리고 이같은 정신은 요나단이나 다윗에게 공통적으로 있었다(14:6;17:32-36, 45-47).
바로 이같은 정신적 공통점 때문데 다윗과 요나단은 특별한 우정을 맺을 수 있었고, 또한 그 우정을 변치 않고 오래도록 나눌 수 있었다.
한편 '연락하다'(카솨르)란 말은 '매다'(tie), '묶다'(bind), '짜다'(knit) 등의 의미로서, 곧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마음의 띠로 단단히 동여 매는 것, 또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정신적 쇠사슬로 굳게 묶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창 38:28;신 6:8;잠 3:3).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사용되어, 이같은 일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요나단이...생명같이 사랑하니라 -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영혼'(soul)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로서, 곧 이것은 다윗에 대해 요나단이 품었던 정신적이고도 고상한 우정의 성격을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20:17).
=====18:2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그 날에...머무르게 하고 - 이 말은 골리앗과의 전투를 다윗이 승리로 이끈후, 사울은 자신의 등용 정책에 따라(14:52) 다윗을 자신의 궁중에 영속토록 거주하게끔 하였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는 다윗이 전처럼 일개 궁중 악사로서가 아니라(16:23), 정치적 비중을 소유한 한 신하로서 왕 사울과 가까이 있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아비의 집으로...허락지 아니하였고 - 이는 사울이 다윗으로 하여금 고향 아비의 집으로 문안 인사차 방문하는 것조차 금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는 다윗이 전처럼(17:15) 아비의 집에서 양떼를 돌보는 것과 같은 집안 일을 하기 위하야 돌아가는 것은 사울이 허락치 아니했다는 말이다.
=====18:3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은...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 이것은 상호간의 우정.신뢰.사랑을 계속 유지하자는 엄숙한 약속으로서, 아마도 이러한 신뢰.우정이 자신들의 당대 뿐 아니라 후손들의 대(代)에 이르기까지 영속적으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20:14-16;23:18).
결국 다윗과 요나단은 혈연 관계 보다도 더 진한 의형제를 맺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이렇게까지 자신들의 우정을 높이 승화 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보다도 상호 변치않는 여호와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20:42).
그리고 결국 이러한 언약은 요나단 편에서나(19:4, 5;20:17-29), 다윗 편에서나(삼하 1:17-27;9:1-7;21:7)죽을 때까지 신실하게 이행되었다.
=====18:4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겉옷을...다윗에게 주었고 - 요나단의 이같은 행위는 언약을 확증하고 그 표징을 남기기 위한 행위였다. 한편 여기서 '겉옷'(메일)은 상류층 인사들이 입었던 외투(robe)로서, 이는 곧 요나단 자신이 사울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능히 과시할 수 있는 외적 표시였다.
따라서 당시 합법적으로 인정받던 사울 왕의 후계자 요나단으로부터 다윗이 그같은 의복을 언약의 징표로 인계받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 군복...칼...활...띠도 그리하였더라 - 이처럼 자신의 의복을 벗어 준다던지, 또는 자신의 무기를 상대방에게 선물로 주는 것 등의 행위는 고대에 있어서 용사들간에 상호 우정이나 혈맹 관계를 다지고 돈독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흔히 행해졌던 풍습이었다(Keil, Philippson).
한편, 여기서 다윗이 요나단으로부터 의복과 함께 이같은 무기를 넘겨받은 것은
(1) 당대의 정치적 실력자 사울에게서 무기를 일시 넘겨받은 것(17:38),
(2) 당대의 군사적 영웅 골리앗으로부터 무기를 탈취한 사건(17:54) 등과 함게 다윗이 미구(未久)에 근동 지역을 장악할 정이.군사적 영웅으로 부상하게 될 것을 능히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일들임이 분명하다.
=====18:5
“[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다윗이...가서 - 여기의 '가서'(야차)는 보통 군사적 출동을 뜻한다.
따라서 이것은 다윗이 국경 너머까지 원정(遠征)갔었음을 가리킨다(*:20;삼하 2:13;왕상 20:39).
지혜롭게 행하매(사칼) - 이것은 '깨닫다', '형통하다', '신중하다' 등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져 있는 단어이다(신 32:29;수 1:8;왕하 18:7).
따라서 본 문맥상 이 단어는, 다윗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함으로써 만사가 형통하는 결과를 얻었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 문자적으로는 '전쟁의 사람들 위에 세웠다'(set him over the men of war)란 뜻으로, 곧 '여러 군사들의 지휘관으로 삼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의 '군대의 장'은 아브넬의 계급인 '군장'(軍長)과는 전혀 다르다(17:55).
즉 13절에서야 다윗은 사울에 의해 천부장으로 세워진다는 점에서, 여기의 '군대의 장'은 백부장(白夫長)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본절은 다윗의 빠른 승진을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 문자적으로 '모든 백성들의 눈에 선했다'(창 1:12, 31). 이같은 언급은 결국 다윗이 미래의 왕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차츰 닦여져가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 이것은 백성들의 경우와 더불어 다윗의 명성이 궁궐 안팎에서 점차 높아져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아울러 이것은 다윗이 정치적 경쟁심. 질투 등을 초월하여 칭송을 받았다는 점에서, 다윗의 인격.처신이 대단히 훌륭했음을 암시해 준다.
2. 여인들의 노래와 사울의 질시(6~9절)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8:6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 여기서 '블레셋 사람;은 정관사와 더불어 단수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골리앗'(Goliath)을 가리킨다(17:10, 16, 23, 26, 37, 41-43, 48, 51, 57). 따라서 본 전투는 엘라 골짜기의 전투를 가리키는데, 그 전쟁은 골리앗을 죽인 후에도 나머지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는데 상당한 기일이 소요된 대전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전투의 특징은 역시 다윗과 골리앗과의 일대일 결투 장면으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에 이처럼 묘사된 것같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바로 그러한 긴 엘라 골짜기의 전투가 최종 마무리 되고, 마침내 이스라엘 군대가 사울과 다윗을 앞세우고 왕성(王城)으로 개선하는 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여인들이...노래하며 춤추며 - 고대 근동 사회에서 여인들의 이러한 가무(歌舞) 행위는 절기나 승전(勝戰) 등의 사유로 매우 기쁠 때 축제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행해졌었다(출 15:20;삿 11:34).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 '소고'(토프)는 영어 성경들에서는 보통 '탬버린'(tambourine)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성경에서는 항상 즐거움 및 기쁨과 관련하여 언급된다(출 15:20;삼하 6:5;사 5:12).
그리고 '경쇠'(솰로쉬)는 '삼중' 또는 '세개'란 뜻으로서, 보통 '트라이앵글'(triangle) 또는 삼현(三鉉) 악기(three-stringed instrument)로 이해된다.
다무튼 소고와 경쇠는 춤이 수반되는 야외 행사에 알맞는 축제용 악기들이다(R. Payne Smith).
환영하는데 - 엄밀히 말하여 히브리 원문에는 '환영하는데'라는 의미의 말은 없다.
따라서 틀림없이 여기의 '환영하는데'란 말은 원문에 원래 나와있는 '만나기위하여'(리크라트)라는 단어와, 그리고 '소고'와 '경쇠' 사이에 나타나 있으나 번역 중 생략된 '기쁨으로'(메시므하)라는 단어가 합성 의역(意譯)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분명한 이해를 위하여 위의 두 단어를 분리시켜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소고'와 '경쇠'처럼 마치 악기의 하나같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같은 관점에서 혹자는 그 단어를 '기쁜 소리로'라고 주석하기도 한다(Stoebe).
=====18:7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뛰놀며 창화하여 - 원문상으로는 이 두 단어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한편 여기의 '뛰놀다'(사하크)는
(1)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다(삿 16:25),
(2) 악기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다(삼하 6:5, 21),
(3) 어린이들이 집단으로 장난을 치며 놀다(슷 8:5) 등의 의미로 성경에서 번역되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기쁨에 겨워 음악에 맞춰 천진난만하게 춤추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창화하다'(아나)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단순히 '대답하다'란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처럼 음악적 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서로 주고 받는 형식, 즉 교차적으로 노래하는 교창(交唱)을 가리킨다(21:11;29:5).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 여기서 '천천'이나 '만만'은 원문상으로는 다만 '천'(엘레프)과 '만'(레바바)이지만, 우리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이같이 번역되었다.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울은 그의 천을, 그리고 다윗은 그의 만을 죽였도다!"(Saul has slain his thousands, and David his ten thousands). 물론 고대 우가릿 문서나 중근동의 문서들을 통해 볼 때 '천'이나'만'은 모두 '많음'을 상징하는 보편적 숫자라는 점에서 여기 여인들의 노래가 담고 있는 기본 의미는 '우리의 두 영웅 사울과 다윗은 많고 많은 원수들을 죽이셨도다'란 뜻으로 볼 수 있다(Klein).
그러나 또한편 여인들이 '사울'과 '다윗'을, 그리고 '천'과 '만'을 분명히 상호 대구(對句)하여 노래했다는 점에서, 이 여인들의 노래 속에는 분명 당시의 인기도 또는 민심(民心)이 반영된 생생한 백성들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이 노래는 민심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결국 이러한 백성들의 노래 속에는 하나님께서 사울로 하여금 그의 왕위(王位)를 후임자인 다윗에게 평화적으로 이양하게끔 촉구하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한편, 이 여인들의 노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널리 애송(愛誦)되었기 때문에, 이웃 블레셋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21:11;29:5).
=====18:8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 본래 사울은 열방과 같은 무사적(武士的) 왕을 요구한 백성들의 세속적 동기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8:5, 20).
따라서 사울이 왕으로 옹립되었다(8:5, 20).
따라서 사울이 왕으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용맹성에 있어 누구보다도 뛰어나야만 했었다.
그런데 골리앗의 출현 이후 그러한 용맹성에 있어 자신보다 다윗이 더 인정받게 되자, 사울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치가 저하되었다는 사실에 그의 가슴은 그만 시기와 질투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 결국에는 "왕의 자리마저 그에게 돌아가겠구나"(공동 번역)란 뜻이다.
이렇나 사울의 우려와 불안 기저(基底)에는, 아마도 일찍이 사무엘에 의행 선언되었던 바(13:14;15:28) 자신의 폐위와 후임자의 등장이라는 현실적 문제인식이 깔려있은 듯하다(R. Payne Smith).
실로 이방의 침입자(골리앗)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위기적 상황 가운데서, 왕으로서 사울은 속수 무책인데, 한 목동이 나와서 그 침입자를 제거해 버렸다면, 그것은 곧 왕직(王職)의 이동을 의마하는 징표가 되는 것이다(O.V. Gerlach).
=====18:9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사울이...주목하였더라 - 여기서 '주묵하다'(아완)란 말은 '눈'(eye)이란 뜻의 '아인'에서 파생된 말로, 곧 '의심에' 찬 눈으로 관찰하다';란 의미이다(Klein). 즉 이것은 사울이 왕권(王權) 수호 차원에서 다윗을 정치. 군사적으로 경
계하고 배타하였다는 뜻이다.
3. 사울의 쇠퇴와 다윗의 상승(10~16절).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18:10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 이튿날 - 블레셋과의 승전을 기념하는 공개적이 환영 행사가 벌어진 다음 날을 가리킨다.
그 환영 행사에서 사울은 여인들의 노래(7절)를 통해 자신보다 다윗이 더 환
영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질투와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고(8절), 결국 그 일로 인해 밤새 잠못 이루고 설치는 통에 그 마음은 악신(惡神)이 임하기에 좋은 터전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힘 있게 내리매 - 이 강신(降神) 현상은 차기의 왕으로 예정되어 있던 다윗에 대해 사울이 가지고 있던(9절) 극심한 피해 의식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는 점에서, 사울의 왕위 폐위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선언임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때 이같은 현상을 통해 사울로 하여금 왕권에 대한 미련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하시려 한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힘있게 내리다'(찰라흐)란 말은 '앞으로 세게 밀다', '터져나오다', '강력하게 다가오다'란 의미로서, 곧 돌진해오듯 힘있게 닥쳐오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악신의 적극적인 활동 상태를 시사하는데, 이는 사울에게 최초로 악신이 임했을 때의 상황보다 더 악화된 상태이다.
결국 악신의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은 하나님의 묵인하에서 이루어지는 일로서, 이는 사울의 종말이 가까왔음을 강력히 암시 하는 징조인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에 대해서는 16:14 주석을 참조하라.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 고로 - 여기의 '집'(바이트)은 말할 나위없이 사울
자신의 궁전을 가리킨다(삼하16:21;20:3).한편'야료하는 고로'(이트나베)는 문자적으로는 '예언하다'(prophesy ; KJV, NIV)란 으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말이 재귀적 사역형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교적(異敎的) 성격의 헛소리로 이해함이 타당하다(19:20, 21, 23, 24;왕상 18:29;렘 23:13).
즉 재귀적 사역형의 동사로 표현된 사울의 이같은 야료(惹鬧) 행위는 황홀경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탈인격적(脫人格的) 행위로서,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마치 미친자처럼 마구 말을 내뱉는 '헛소리' 또는 '지껄임'(rave, RSV)을 가리킨다.
=====18:11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창을 던졌으나 - 여기의 '던졌으나'(야텔)란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즉 (1) 여기 이 단어를 그 원래 의미인 '던지다'로 보고, '창을 던졌으니'라고 해야 한다는 견해.
(2) 이 단어의 본래 의미를 '뻗다'로 보고, '창을 던졌으니'라고 해양 한다는 견해 등잉 있다.
그런데 이 견해 중에서
첫째, 다윗이 그 창끝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
둘째, 사울이 계속 연거푸 두번 다윗을 향해 창을 사용했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19:10의 경우와는 달리 (2)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Fay, Keil).
그러나 사울이 다윗을 향해 1차 던진 창을 또 집어 재차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 때 다윗은 그 용맹과 기지에도 불구하고, 전혀 대항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다만 사울의 창을 두번 피했다.
=====18:12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여호와께서...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신이 다윗에게 임했다는 사실 정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권을 빼앗아 다윗에게 이미 넘겨주셨다는 사실까지를 의미한다.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일개 경쟁 상대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을 가리킨다.
이같은 단정은 여기의 '두려워한지라'(야레)는 말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신적인 경외를 가리키는 단어라는 점에서 확실시 될 수 있을 것이다(창 22:12;출 9:20;왕상 18:3).
아무튼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버림받고 거절당한바 된(13:13, 14;15:26) 사울은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만사 형통하는 다윗을 볼 때마다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8:13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백성앞에 출입하며 - 여기서 '천부장' (사르 알레프, '천 명의 우두머리')은
(1) 내정(內政)을 관장하는 중앙 행정 관리(Lange, Smith)
(2) 국경을 지키는 국방 관리(Keil, Klein)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첫째, 당시 사울은 다윗을 전쟁터로 보내어 그곳에서 죽게 하려는 음모의 일환으로 그를 천부장에 임명했으며
둘째, 여기서 '출입하며'라는 말은 성경에서 '전투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다'란 의미로 흔히 사용되며(Klein;8:20;민 27:17;삼하 5:24)
섯째, 다음 절(14절)에 '지혜롭게 행하다'라는 단어가 다윗의 군서적 활동
을 다루는 문맥에서 사용됐다는 점<5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후자의 견해가 훨씬 더 타당성이 있다.
즉 그때 사울은 틀림없이 다윗을 변방의 일선 지휘관으로 보내버림으로써, 잦은 전투로 인해 거의 목숨이 위태하게 되기를 바랐으며, 아울러 다윗의 정치적 역량이 중앙의 상류 계층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18:14,15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지혜홉게 행하니라 - 5절 주석 참조.
사울이...두려워하였으나 - 여기의 '두려워하였으나'(구르)는 12절의 '두려워 한지라'보다 더 강한 의미의 공포심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Driver).
이는 다윗의 형통과 사울의 두려움이 상호 반비례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다윗과 함께 한다는 인식에서부터 비롯된 사울의 두려움은 악신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점차 다윗을 향한 광기적(狂氣的) 증오로 발전된다.
=====18:16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초월하여 거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한편, 이전의 몇몇 경우처럼(11:8;15:4) 여기서도 '이스라엘'과 '유다'가 구별되어 기록된 것은, 본서가반드시 왕국 분열 이후 시대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다.
다만 사울과 다윗의 당대에도 유다 지파와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간에 주도권에 관한 알력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표현으로 이해 가능하다.
그가...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 - '출입하다'(요체 와바)란 말은 직역하면 '나가고 들어오다'(go out and come in, KJV)란 뜻인데, 이는 곧 자신이 맡
은 고유한 직무의 수행을 위하여 공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어이다(12:2;29:6;민 27:17;신 31:2;수 14:11;삼하 5:2;왕상 3:7;대하 1:10;렘 37:4;행 1:21).
이런 견지에서 여기의 이 말은 천부장으로서 다윗의 성공적인 군사 역할 수행을 의미한다(5, 14, 15절).
하나님은 어떤분 입니까?
1)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그를 천부장으로 임명하고 전쟁터로 내몰지만, 그럴수록 다윗은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습니다(12~16절).
다윗은 왕이 갖추어야 할 전쟁 수행 능력을 입증하고, 백성은 그런 다윗을 왕처럼 따릅니다.
하나님이 그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사울의 악한 손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모는 아무도 폐할 수 없고, 하나님이 지혜는 아무도 당해낼 수가 없음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경계의 시선을 보내던 사울과 달리,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여기며 충성(사랑)을 다짐합니다(1~4절).
특히 왕자의 의복인 ‘겉옷’을 준 것은 왕위 계승권을 넘겨주는 파격적인 상징입니다.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분노(20:30~32)를 사는 아픔이 있지만 다윗이 거둔 승리를 징조로 보고 하나님의 뜻을 수용한 듯보입니다.
나의 이해보다 주의 뜻을 먼저 앞세우고 있습니까?
내게도 주 안에서 마음과 뜻을 같이하는 벗이 있습니까?
2) 다윗은 사울이 맡기는 일마다(15절) ‘지혜롭게’처리합니다(5~9절).
양을 지킬 때도, 전장에 있을 때도, 왕궁의 악사로 있을 때도, 군대의 장관으로 있을 때도, 백성 앞을 출입할 때도 지혜롭게 행동합니다.
백성의 찬사에도 우쭐대지 않고 왕의 질시에도 위축되지 않습니다.
그의 중심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보다 어떤 사람인지를 늘 살펴야 합니다.
3) 다윗은 사울을 살리기 위해 연주하지만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창을 던집니다(10,11절).
사울의 마음에서 다윗을 향한 질시는 객이 아니라 왕이 되어 군림합니다.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는 시기와 야욕을 매일 끊어버리지 않으면, 훗날 그 죄가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질투가 죄로 자라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은 나에게 어디서 돌아서고, 무엇을 포기하고, 누구와 화해하라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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