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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철전사법 연구회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나무아래님이 온각지 까페에서 논의한 “섞여서는 안 될 두 세계” 글을 읽고.
한산 추천 0 조회 94 21.06.11 11:4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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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1.06.13 09:26

    첫댓글 그래도 그 글에서는 이쪽에 대해 순수성과 진실성은 인정한다, 자기들도 아직은 조선의 궁술이 전해주는 세계를 '온전히는 모른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렇게 때로 겸손히? 말하면서도, 또 다른 곳에서는 자기들만 조선의 궁술(전통사법)을 계승하는 유일 적자이고 우리 연구회같이 조선의 궁술을 해석하면 창작사법, 사이비라는 식으로 이야기들을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정말 그 글에서처럼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무조건 본인들의 외길만 걸을 게 아니라 (예전에) 먼저 말을 건넨 우리들과, 그리고 이번에 여러 글을 올리신 나무아래님과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반응은 귀막고 내 길만 가겠다였지요.

    그래서 저는 그 양반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우리 활쏘기의 중흥과 발전에 마음이 있는가 의문을 품는 것이지요. 곧, 그냥 본인들의 헛된 명예와 자존심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씀입니다. 나무아래님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그 글에 답글을 단 것으로 보입니다.

  • 작성자 21.06.13 10:37

    1929년 책 조선의 궁술이 지어질 당시 조선궁술연구회소속 궁사들 중에는 별절을 시전할 수 있는 궁사가 없었다. 그러나 별절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내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서 이중화 선생이 “발시후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지는 활이 제일 잘 쏜 활”이라고 삽입해 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책 조선의 궁술은 별절사법서이긴 하지만 책을 지은 당사자나 당시 궁사 모두 별절로 쏠 줄 몰랐다. 이게 아마 팩트가 아닐까 합니다.

    1930년대 활쏘기를 우리 활쏘기의 전형으로 알고 별절을 시전하지 아니하는 온각지문파의 한계가 명확해지는 지점이지요. 盛國성국의 최절정 궁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찾고 발전시킬 생각을 못하고, 망국의 망한 활쏘기를 전통이라 생각하는 오류를 가지고 수정할 줄 모르는 우직함(?)이 그들을 망치는 근원입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우리궁술이 최절정기에 있었던 임진-병자 양란이후 조선중기의 활쏘기를 추구했던 한산의 설정이 신의 한수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세월이 흐르면 온 세상이 별절로 쏘는 날이 있을 것이니 의심말고 열심히 수련하시면 됩니다.

  • 21.06.19 22:44

    온깍지 문파는 제가 볼 때 십여 년 안에 역사의 저편으로 조용히 사라질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전통 활터의 사풍이나 문화에 대해 발굴한 것들은 나름 귀중한 자료로 남겠지만요. 뭐 그것들도 대부분 우리 시대에 그대로 계승 보급되긴 어렵고 아마도 박물관의 전시품같이 일종의 구경거리로나 여겨지겠지요.

    하늘서기님이 잘 보신대로 그들은 헛된 자존심만 붙들면서 우리 활쏘기의 진정한 세계화나 발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아니면 아직도 성낙인 옹이라는 썩은 동아줄(?)에 매달려 본인들만 하늘 위에서 노닐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겠지요. 자신들에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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