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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막1:14,15)
14 After John had been put in prison, Jesus went to Galilee and preached the Good News from God. 15 “The right time has come,” he said, “and the Kingdom of God is near! Turn away from your sins and believe the Good News!”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4 After John had been put in prison, Jesus went to Galilee and preached the Good News from God.
*정의
어르신들도 예수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보다 먼저 요한이라는 사람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빨리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길까요?
머니 머니해도 돈입니다.
대학을 가도 돈 되는 학과
결혼을 해도 돈 잘 버는 사위
직장을 가도.......
그러나 요한이라는 사람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요한은 당시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洗(씻을 세)禮(예 도)입니다.
사람은 죄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죄란 주일 성수만 잘하고, 주의 종 잘 대접하고, 십일조 잘하는 문제만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제 직장에서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3. 요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
14. 또 군인들도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 고발을 하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해라."(눅3:11-14)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동의 했습니다.
그에게 몰려온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조차 요한에게 오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사람은 이 요한을 세례 요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사필귀정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이 그렇습니까?
오히려 악한 자들이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슬금슬금 거짓말하며 권력을 잡고 공권력으로 사람을 고문하며 죽이고.......
그런데 세상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했겠습니까?
당시 왕 헤롯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살았습니다.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당시 왕의 행위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히 그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말을 했다가는 당장 목이 날아갈 것은 불 보듯 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그 일을 한 것입니다.
그는 그가 왕이라도 그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왕도 하나님이 세웠으니 그 세상 왕에게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 부정한 권력 밑에서 떨어지는 콩고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은 그런 길을 맨몸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헤롯의 죄를 지적했고 헤롯은 요한을 옥에 가두더니 그를 죽인 것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강직하게 나서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악당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했다가 정에 맞은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누구도 요한의 꼴을 당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역시 바로 이 지도자 헤롯에게 죽임을 당하시고 말았습니다.
*다른 세계관
저는 꿀벌들을 보면서 기이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꿀벌들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일만 하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여왕벌이 된다는 것입니다.
적이라도 침입하면 그를 위해서 목이 잘리도록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가?
똑 같은 생명인데 한 사람은 높은 보좌에 앉아서 명령하는 것입니다.
못된 짓을 다 해도 치외법권입니다.
제수를 데려다가 살고 그것을 지적하니 그를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사람 죽이는 자!
억울한 죽임을 당한 자!
누구는 죽고 누구는 죽임을 당하고!
똑 같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실은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게 된 것이 한 200여 년에 불과합니다.
수 만 년의 인류 역사가 흘렀는데 말입니다.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사람을 시장 바닥에 묶어두고 사고팔고 그 자식 앞에서 강간하고.......
그렇다고 이제는 사람들이 제 정신이 들어서 지상낙원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천억대의 요트와 수천만 원의 윗옷을 입고 이제 다 늙은 제 몸은 무서워 지하벙커에 숨어 명령 한 마디에 젊은이를 전쟁터로 몰아내는 인간을 보면 기이합니다.
저도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터인데 말입니다.
언제인가 탈북자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북에서 50여 년 동안 김일성이를 두고 경외하고 친애하고 하늘의 별과 같다고 고백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김일성 일가만 보면 아주 펄펄 뛰면서 눈물 흘리며 박수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김일성 일가와 악수라도 했더라면 기절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으로 넘어가서 처음으로 남한 TV를 일 주일인지 본 후에 그는 김일성을 향해 공개적으로 쌍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좌든 우든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사람 죽여도 된다는 구실을 삼는 우상 숭배자들을 우리는 동의할 수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습니다.
좌가 옳아!
우가 옳아!
그것들은 마귀들입니다.
생명이 옳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 주장을 하다가 조중동의 조작질에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요한이 비참하게 죽고 말았으니 옳은 일이 무슨 소용인가 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세상과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을 심판받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거기가 우리들의 본향이며 우리는 지금 나그네의 처지일 뿐입니다.
거기에서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그 나라는 정의로운 자가 차지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요한은 세상이 미처 세상이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미리 결정된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 분들은 첫째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살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같은 생각(the same point of view) 바로 이 무시무시한 생각을 갖기 원했던 것입니다.
5. 인내심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하시고,(롬15:5)
5 And may God, the source of patience and encouragement, enable you to have the same point of view among yourselves by following the example of Christ Jesus,
신앙인이란 죄인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회란 이런 관을 바꾸어 놓는 기관인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세상관을 갖다 보니 둘째로 세속의 보장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 것입니다.
그 분들은 담대히 정의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그 분들은 잘못된 것에 대해 분명히 집고 넘어가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그 분들은 이 문제에서 엄청나게 진지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의 자기희생으로 정의를 표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 사람 예수님과 요한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신뢰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사람들의 기억에도 없습니다.
그를 지지했던 자라면 얻어먹자고 독재자 밑에 빌붙어있었던 당시의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신뢰 그 믿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하는 길입니다.
믿음만이 영생의 길이다!
*단순화
요한의 죽음에 이어서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는 오늘의 짧은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과 요한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삶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이 문제에 대해 대단히 진지하다고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마가복음은 오직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에 충실합니다.
그것만 중요하니까!
그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예를 들자면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때에 별이 반짝이는 하늘에서 들렸던 천사들의 찬양 소리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소년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마가는 요한의 세례로부터 즉 예수님의 공생애만 다루는 것입니다.
또 공생애의 사건들도 오직 십자가의 사건에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이런 단순화 자체가 이 시대의 교회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교회의 내용도 오직 복음으로 단순화해야 합니다.
교회에 무슨 사회 복지 시설을 만들고
교회에 수영장 만들고
당장에 농촌 교회는 굶어 죽을지 모른다고 소를 기르고
교회를 소 기르고, 복지하고, 비키니 입고 몸매 자랑하는 곳으로 착각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도 예수님처럼 정의를 외치다가 죽으라고 간단히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헷갈리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시대는 복잡해지고 마귀는 교회구조조차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가 헷갈리는 사업을 벌여놓으면 안 됩니다.
우리 할 일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검을 불에 넣고 망치로 두들기고 담금질하고 또 다시 불에 집어넣고 다시 빼서 망치로 두들기다가 물에 담그고 또다시 불에.......
수 천 번을 그 일만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오직 말씀 연단 한 가지 일에만 전념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나라를 살리는 길입니다.
요한과 예수님과 같이 이 말씀의 실천 앞에서 죽음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그 깊이를 갖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죽음 너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진심으로 소망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잡힌 뒤
헤롯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날 것인가?
요한이 그 결과를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상황을 기회주의적으로 눈치 챈 간신배들이 헤롯 주위에 판을 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눈치없이 바로 그 때에 드러나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의 죽음을 목격하시면서도 그 때에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즉 죽음의 전제를 가지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시대를 역류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살아있는 물고기의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물살을 역류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것들은 세상의 오염된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물고기들입니다.
그들을 죽음으로 위협당해도 세상 세력을 역류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도 독재를 반대하던 수많은 민주화 세력이 좌파로 몰려가면서 희생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훗날 하나님께서는 그 희생자들을 가장 먼저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세상 전쟁에서는 적을 많이 죽인 자들에게 훈장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자기희생을 선택한 사람을 가장 먼저 일으키실 것입니다.
*복음 선포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preached the Good News from God.
주님은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음(the Good News from God)이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는 분에게 성경 한 권을 선물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저는 그 분에게 성경 잘 읽고 계시냐고 기대를 가지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성경에 대해 단박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 분 말에 엄청나게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두고 말도 안 된다는 평가는 옳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복음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에서(the Good News from God)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출처는 하나님나라입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나라 생각을 성경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러면 복음이 무엇인가?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3:16)
첫째로 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하나님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20.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일4:20)
죄인에게 교회에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행위와 예배 마치고 집에 와서 형제와 욕하며 싸우는 일이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 부인 행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두 양태는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은 형제 사랑의 내용성을 이르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에게 하나님을 시인하는 행위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부인하면서 입으로 하나님을 고백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이름만 하나님일 뿐입니다.
동해 바다에 그 많던 명태들이 다 사라졌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잡은 명태를 한 마리에 오십만 원에 산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알을 받아서 종자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던 명태가 동해에서 사라진 이유는 바다의 온도가 단 몇 도 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다가 단 일 도가 변해도 바다의 물고기들이 명태에서 고등어인지 꼴뚜기인지로 그 어종이 다 바뀌고 마는 것입니다.
올해에 갑자기 꿀벌들이 사라졌답니다.
그것도 기온의 변화가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소의 방귀가 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를 만들고 지구의 온도를 올린답니다.
자연은 그처럼 섬세한 것입니다.
그 섬세한 일을 하나님께서 관리하시지 않으면 당장 이 지구가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누리며 지금 여름을 맞는 것도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 일은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 인간을 위해서 하신 하나님의 일이십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사실입니다.
바로 그 분이 역사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죄인의 손에 엄청난 폭력을 당하셨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왕이 평민을 위해 죽임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독재자들은 제 권력을 위해 평민의 생명은 제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2,000년 전 이 땅에 오셔서 바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이 갚아야 하는 죄 값을 하나님께서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죄에 대해 따질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탓하며 자신을 두고 바보 병신이며 죄인이라고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바보 병신이라고 부르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분이 계십니다.
자신을 탓하고 있는 그 죄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두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도 여러분의 죄를 탓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2,000년 전에 바로 여러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내가 본 적도 없고
만져 본 적도 없는데 어디에 그런 나라가 있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그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空氣가 보이나요?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니 아무 것도 없다고 여겨서 빌 공자를 쓴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곳에 산소도 있고 질소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 주위가 일산화탄소 즉 연탄가스로 차게 되면 여러분들은 토하며 쓰러져 뒹굴다가 죽을 것입니다.
저도 연탄가스를 마시고 토하며 뒹군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공기는 없는 것이 아니라 안 보였을 뿐입니다.
안 보인다고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한 것입니다.
이제 과학이 발달되다 보니 그 정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실재도 그렇습니다.
지옥 불구덩이에서 뒹굴 때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영생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죽으며 끝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요즈음에는 집에서도 내가 은행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내 컴퓨터를 가지고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돈을 부칠 수도 있고 통장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 온라인 뱅크가 열리자 제 컴퓨터에 제가 일생 동안 사용했던 통장 장부들이 전부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제가 한 15년 전에 사용했던 통장이 나타났습니다.
놀랍게도 거기에 51만 원 잔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돈이 내 통장에 남아 있을 줄이야!
은행에 가서 그 통장을 해지하고 51만 원을 찾았습니다.
내 돈이 감쪽같이 거저 은행 돈이 될 뻔했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찾아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영생을 찾아낼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그것을 누리시기 바랇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복음
아무것에나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그것이 다 하나님 믿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하나님을 말하면서 형제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장 큰 비난을 듣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내세우면서 전혀 샬롬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복음의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믿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엉뚱한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면서 사람을 죽이는 이들은 복음의 내용 중에서 죄인들의 머리에 이해가 되는 부분만 가져다가 짜깁기를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죄인들의 요구에 일치되는 부분만 선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엉뚱한 복음을 만들어서 그것에 헌신을 다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the Good News from God) 온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서 온 것(the Good News not from men)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 이해를 뛰어 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요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요구를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지식과 섞어놓은 짬뽕이 아니라 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순수한 복음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으면 죽음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하는 것을 모두 아실 것입니다.
부활절에 보니 푸친도 예배를 참석하고 젤렌스키는 부활절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우크라이나에는 엄청난 사람이 죽고 논밭에 폭탄이 박히고 살던 집이 무너져 내리고.......
그것은 한 쪽 나라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러시아도 수천 명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두 쪽은 다 믿음을 말하는데 평화의 예수님의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전혀 다른 대응 방식을 유의해야 합니다.
주님은 로마의 폭력 앞에서 침묵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패배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그 침묵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장했던 것입니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우리는 첨단의 비행기를 하늘에 날리는 과시행위를 한 것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날려도 잠잠하십시오.
잘난 과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행기 몇 대 하늘에 날리고 미사일 몇 방 날리며 이 땅을 전쟁터로 만들지 말라!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우리 폭탄은 북한의 하꼬방과 전기도 안 들어오는 허깨비 빌딩을 무너뜨릴 뿐입니다.
우리 폭탄에 2층 이상은 물도 안 나오는 건물들이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폭탄은 단 한 발로 삼성 반도체 공장을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게 할 것입니다.
단 한 발에 세계 1 위를 위해 쌓아두었던 노고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제가 과장하는 것입니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수백 가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 한 채에 그것 한 방만 떨어져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여러분이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전쟁 나면 일본이 엄청 좋아 할 것입니다.
그것들이 과거에도 6.25로 돈 벌었던 것입니다.
갓난 아기라도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보다 물리적인 힘이 약해서 그렇습니까?
별것도 아닌 비행기 한 번 날려보고 미사일 한번 쏴 보고 그 다음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진짜 전쟁이 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깡패식으로 오늘 한탕해 버리고 감옥 가면 되지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전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목사인지 어디 뒷골목의 껄렁패인지 예수님 예수님 하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여대는 잡배 신앙으로 아주 작살 나는 수가 있습니다.
요양원에 앉으셔서도 이 나라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을 하셔야합니다.
여러 어르신들은 전쟁이 안 나도록 바로 이 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 해야 합니다.
상호간에 무력의 과시 행위에 박수를 치면 안 됩니다.
특별히 현대전에서 승자는 없습니다.
그 파괴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승자입니까?
러시아가 승자입니까?
양 나라에 모두 초상난 집이 수두룩한데 말입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속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매한 목사들을 통해 교회조차 여러분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막1:14,15)
15 “The right time has come,” he said, “and the Kingdom of God is near! Turn away from your sins and believe the Good News!”
*때
얼마 전에 이웃집에서 겨울을 넘긴 감자를 얻었습니다.
지져 먹고 볶아 먹고 그랬는데 시퍼렇게 된 감자들이 있어서 그것을 밭에 쏟아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감자 싹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갓을 거기에 심느라고 밭을 뒤집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서 감자가 튀어 나왔습니다.
그것은 손톱만큼 작았습니다.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습니다.
지져 먹지도 볶아 먹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때가 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오랜 인생 경험이 있으신 것입니다.
아 나는 돈을 따라서 살았는데 그 인생이 옳았는가?
제대로 못 배운 옆 집 자식들은 효가 지극한데 일류대 나오고 잘난 우리 자식은 어떤가?
산전수전 다 경험하신 것입니다.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인생을 겸손하게 되돌아보실 하나님의 때가 된 것입니다.
신앙의 때는 내가 옳고 잘난 줄만 알았던 때가 다 지나고 오는 것입니다.
겸손함을 회복한 때인 것입니다.
이제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하는 때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때인 것입니다.
이전까지 누구 말 들었습니까?
이제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는 때인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이방 나라의 지배 밑에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 털리고 또다시 잔인하게 로마에게 밟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시절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이 찼을 때를 아셨던 것입니다.
이제 세상 다 끝났다고 우리가 실망할 때 하나님은 전능의 손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가 아주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때인 것입니다.
잘난 지도자들이 떠들어대도 이제 조용히 기도합시다.
말을 타고 애굽의 바로 왕에게 덤벼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열 번의 기적을 기다리면서 골방에서 기도하시라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그렇게 행동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심히 가깝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때에 준비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우리에게 심히 가깝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시기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의 나라를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께서 이미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예수님 하며 주님을 불러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 마음에 평안이 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믿고 신뢰하실 분이 옆에 앉아 계십니다.
그 분은 여러분의 숨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음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0.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마6:10)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처럼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회개
밥을 차렸으면 밭일을 하던 사람들은 손에 흙부터 씻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밥상 앞에 앉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셨을 때 우리는 먼저 죄부터 씻어야 합니다.
가장 큰 죄는 우리가 그 동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죄입니다.
현재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이런 심한 가뭄이 들기 전에는 사람들은 논에 물대는 일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수문만 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심한 가뭄이 들고 보니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을에 어떤 분은 새벽 3시에 모내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가뭄이 와서 제 시간에 물을 대지 못해서 일어난 일인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분은 물대기로 다툴 일 때문에 아예 모내기를 포기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목사인 저를 먼저 아는 척하시는 것입니다.
어이 목사 양반 비 오라고 기도 좀 해!
비가 제대로 올 때는 목사인 저에게 그런 소리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수문만 열면 물대기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그 분들은 저수지를 믿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비가 도무지 오지 않아 아무 방법도 통하지 않으니 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어이 목사 양반 비 오라고 기도 좀 해!
왜 자기 불리한 때만 하나님을 찾나!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그 마음을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필요할 때만 아는 척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사람들은 회개하라면 누구에게 욕한 것
거짓말 한 것
훔친 것......
그런 것부터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껍데기 말고 제대로 하나님을 믿으면 그런 윤리적인 것들은 저절로 고쳐지기 마련입니다.
미국의 어떤 대형 마트에서 좀도둑 때문에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트 주인이 마트 사방 벽에다가 사람 눈들을 그려 놓은 것입니다.
천장에도 바닥에도 벽면에도 물건 사이 사이에 눈들을 그려 두었더니 훔쳐 가던 물건이 확 줄었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 눈이 보이고
저기에도 하나님 눈이 보이고
사방에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거짓 행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 없이 생활했지만 이제 하나님을 항상 전제하는 삶을 사는 것이 회개입니다.
*복음을 믿어라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전하신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그 복음의 중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 있었더라면 울화통이 터졌을 것입니다.
독재자가 망치를 들고 십자가에 못 박아 의인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답답한 것은 능력의 예수님께서 그들의 폭력을 그대로 수용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란 죄인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의 눈에 명확한 패배인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승리라는 것입니다.
그 이해를 뛰어넘는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믿는 일을 성령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생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