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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춘문예공모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김형준
"이 新人을 주목한다 ① 최라라 詩人 - ‘처음을 앓는 여자-알츠하이머’外 7편 톺아보기"
*
2011년 《시인세계》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한 최라라 시인의 詩 여덟 편을 읽고 되작거리고 톺아보았다.
일년에 수많은 詩人들이 새로 탄생하지만 나는 이 詩人을 특별히 주목한다.
그 이유들은 아래와 같다.
(어찌어찌하다보니 200자 원고지 100매 가량의 분량이 되어버렸다.)
*최라라 시인
1969년 경주 生.
2011년 《시인세계》로 등단.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향유고래
(출처 : 구글 이미지)
1) 첫 번째 詩
처음을 앓는 여자
-알츠하이머
최라라
처음이라는 말이
오래된 신발처럼 좋았다
맨질맨질 바닥이 다 닳을 때까지
처음이라고 고집을 부린 적 있다
천 명의 아이들이 느낄 법한 슬픔이*
처음의 밑바닥에 깜깜하게 붙어 있다는 걸
보게 된 날도 나는
처음이었다
지구의 둥근 자전이 끊임없이 나를
처음으로 옮겨 놓았다
언젠가는 정말 처음일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깍 끊어지는 전화소리를 들을 때나
돌아서기도 전에 철컥 대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을 때면 그랬다
처음을 의심하는 건 못된 습관이야
누군가 그렇게 말해 준 이후로 나는
날마다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슬픔을 맛볼 즈음엔
또 다른 사랑이 처음으로 왔다
한 처음을 생각하는 지금,
그 숱한 처음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폴 오스터 『달의 궁전』
*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비슷비슷한 그렇고 그런 시들이 아니라, 자기만의 목소리와 색깔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신인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해서 이 시인의 시 8편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난감했다.
2011년에 <시인세계>를 통하여 등단한 이 시인에 대한 정보가 내겐 없었다.
만일, 내가 하는 감상평을 굳이 비평이라는 테두리에 억지로 놓아본다면 인상비평(印象批評)이 될 터인데 아무리 그래도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시 감상평을 올리겠다고 했으니 이건 뭐 보통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첫 번째로 읽은 이 시에서, 시적화자(혹은 시인)가 남겨 놓은 흔적에서 그의 정신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가리사니를 틀어쥐게 되었다.
그것은 주석에 달아놓은 ‘폴 오스터 『달의 궁전』’이라는 암호였다.
‘천 명의 아이들이 느낄 법한 슬픔이’라는 구절은 이 소설에 나오는 구절.
폴 오스터는 <블루 인 더 페이스>라는 영화감독 출신의 유대계 미국작가로서,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어둠 속의 남자』등이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될 정도로 미국과 유럽문단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는 ‘미국의 떠오르는 별’이다.
그의 작품은 미국문학 작품 특유의 사실주의와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한데 뒤섞여 문학장르의 모든 특징적 요소들이 혼성된 ‘아름답게’ 디자인된 예술품’이란 극찬을 받고 있으며, 신비로우면서도 문학적 기교와 심오한 지성적인 작품들을 써 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재 미국에서는 귀한 ‘순수문학작가’로 분류된다.
최 시인이 인용한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에는 포그, 에핑, 바버 세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베트남 전쟁 이후 컬럼비아 대학을 다닌 마르코 포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폴 오스터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우연으로 빚어진 사건들을 계속 포개어 나가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지점까지 주인공들을 몰아간다. 그러다가 결국은 ‘여행’을 하도록 한다.
그런데 그 여행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그것은 ‘길을 잃은 주인공’만이 가능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즉, 길을 잃어버려야만 비로소 여행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그 작가의 천재성이 숨어있다고 나는 본다.
폴 오스터 Paul Auster
(출처 : 出 <열린책들>)
최라라 시인의 시로 돌아가 보자.
시 제목이 ‘처음을 앓는 여자-알츠하이머’라고 되어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으니 그 여자의 지점은 항상 ‘처음’일 수밖에 없다.
‘처음이라는 말이/오래된 신발처럼 좋았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처음을 의심하는 건 못된 습관’이라면서 ‘누군가 그렇게 말해 준 이후로 나는/날마다 처음이었다’고 고백한다.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병’을 앓고 있는 시적 화자인 ‘처음을 앓는 여자’는 지난 기억들을 모두 다 지우고 싶은 여자이다. 그러니 ‘처음으로 슬픔을 맛볼 즈음엔 또 다른 사랑이 처음으로’ 올 수밖에. 연속되는 슬픔은 항상 이 여자가 ‘처음으로’ 맛보는 슬픔이다. 슬픔의 연속인 여자...
시는 ‘한 처음을 생각하는 지금, 그 숱한 처음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로 끝을 맺는다. 이는 깊은 상처를 가진 여자(시적화자)의 독백일 텐데 마치 ‘백치 아다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이런 고백을 하는 여자, ‘누적된 슬픔‘이 아니라, ’항상 처음으로 슬픔을 맛보(려)는 여자‘... 그래서 오히려 그윽하게 시를 들여다보면 독자들은 더 슬픔을 느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떠밀린 '시간 여행자'라 할까.
그렇지,
영화배우 이정재가 주연했던 영화에서 부른 삽입곡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하는 노래가 기억났다.
그리고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도 떠올랐는데, 시의 뒤에 숨어있는 시인의 마음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어서 여기서 소개해본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시집<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문학과지성사>, 김주연 엮음.)
최라라 시인의 다음 시를 살펴보도록 한다.
2)두 번째 詩
아름다운 추락
그리고 어둠이 몸을 던졌다
누가 꺾을 수 있겠니 지독한 년,
한사코 엄마 치맛자락 놓지 않는 날 보고
할머니가 혀를 차듯
미명이 혀끝을 떠는 소리
남겨진 어둠이 커튼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다
이유를 모르므로 아름다운 날들이 많았다
왜 새가 되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므로
엄마는 나에게 오래도록 아름다웠다
어둠이 가고,
어둠이 남았다
이유를 갖지 않았으므로 아침은 아름다웠지만
무서운 듯 떨다가,
목이 쉬도록 울어대다가, 멀뚱거리다,
한순간 스르르르 잠들고 만
저 어린 것,
커튼 뒤에 웅크린
저 어린 어둠은
언제쯤 추락할 수 있을까요
*
시적화자는 ‘어린 새‘인데 어둠이 깃들면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어 날이 밝으면 엄마와 헤어져야하므로 ’새벽‘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미명(未明)이 혀끝을 떠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남겨진 어둠이 커튼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 시는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 쓴 시로 보인다.
알고 보면 ‘어둠 뒤에 숨은 커튼’은 ‘커튼 뒤에 숨은 어둠’이 아니었을까.
3) 세 번째 詩
몸살
그가 삼 분만 그대로 있자 했다
물 위에 비친 가로등이 흔들리다 잔잔해졌다
나는 감은 눈 속으로 하나씩 켜지는 가로등을 보았다
불빛은 메아리처럼 커졌다 사라지곤했다
나는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순간만이 그를
가장 완벽하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불빛이 사라진 자리마다
어둠의 손바닥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손바닥에서 따뜻한 피가 흘렀다
나도 삼 분만
그대로 있었으면 싶었다
*
시적화자는 가로등이 있는 물가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을 하는 중인 듯하다.
그래서 ‘그가 삼 분만 그대로 있자’고 하고 ‘나도 삼 분만/그대로 있었으면 싶었다’고 고백한다.
‘흔들리다 잔잔해’진 가로등과 ‘감은 눈 속으로 하나씩 켜지는 가로등’은 이별을 앞두고 시적화자의 흔들리는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
‘불빛이 사라진 자리마다/어둠의 손바닥이 갈라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별은 못내 아프기 때문에 ‘그 손바닥에서 따뜻한 피가 흐’르니 ‘몸살’을 앓고 말고.
4) 네 번째 詩
누가 내 귀고리를 장물이라고 한다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와의 일박
면도한 다음 날의 턱과
그의 겨드랑이 속
젖은 새의 깃털
혼잣말인 듯 그가
신라 적 어느 왕이라고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어
분을 바르듯 스치던 그의 손길,
오래 기다렸던 건 아침이 오지 않는 아침
사랑이 뭐 별거겠니,
명자나무 잎사귀만한
금쪽 귀고리 하나 달고 다니는 일일 뿐인 걸
고분 사이를 지날 때면 자꾸 귀를 만지게 돼
그가 정말 나에게 왔다 갔을까
*
이 詩는 무척 재미있다.
시적화자는 경주의 왕릉 근처에서 일박(一泊)을 하면서 천 년도 더 된, 머언 먼 신라 어느 왕의 음성을 듣고 있다.
그리고는 상상한다.
시적화자 자신이 그 어느 신라왕의 여인이 되어 그 신라왕의 품으로 들어가 ‘면도한 다음 날의 턱과/그의 겨드랑이 속/젖은 새의 깃털’도 만져본다.
아침이 밝아오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시적 화자는 여느 때처럼 ‘명자나무 잎사귀만한 금쪽 귀고리’를 달고 밖으로 나왔는데, ‘고분 사이를 지날 때면 자꾸 귀를 만지게 돼’라면서 ‘그가 정말 나에게 왔다 갔을까’라고 한다.
시적화자가 하고 있는 귀고리가 신라왕과의 ‘사랑의 증표’라도 되는 듯 졸지에 ‘장물’(贓物)이 되어버린 것이다. 깜찍하고 발칙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경주 왕릉 어디쯤 지나면서 시적화자가 가장 모던(morden)한 현대 남성에게서가 아니라 하필이면 신라 시대 때의 왕을 ‘백마 탄 왕자님’ 쯤으로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야 어느 멋진 남자와 사랑을 하면서 잠을 자든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다만 이는 여간해서는 현대 남성들에게서는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 어쩌면 현대의 남성들과 불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웬만한 남성들을 성에 차지 않아하는 시적화자의 눈이 높던가. 적어도, ‘장물’은 장물이되, 왕의 여자 정도는 될 수 있어야 마음을 줄 터이니 말이다.
5) 다섯 번째 詩
이것은 어느 날의 코미디
이것은 나는 왜 수영을 못하는 걸까 고민하다 발견한 사실이다
이것은 내가 원피스를 좀처럼 입지 않는다는 사실과는 무관하다
수영을 못한다는 건 몸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
물오리에게 물어본 적 있지
갈퀴는 일 분에 몇 번이나 움직이니?
나는 왼발 오른발 구령을 맞추고
끊임없이 수를 세지
그러니까 수영은 몸이 아니라 수 세기의 문제
오리와 나의 차이는
59에서 60사이의 문제
밥 먹는 손이 오른 손이라는 기억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일이 중요해
나는 자주 헷갈리고 오리는 한 번도 거침없지
이것은 나는 왜 숫자를 못 셀까 생각하다 발견한 사실
오리는 한 번도 수를 세지 않고
나는 날마다 숫자만 세지
*
수영을 하다가, 혹은 과거 경험을 떠올리다가 두 가지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하나는 ‘수영을 못한다는 것은 몸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수영은 몸이 아니라 수(數) 세기의 문제‘라고 갈파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 마지막에
‘오리는 한 번도 수를 세지 않고’도 수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나는 날마다 숫자만 세’고 있다고 하며, 독자를 당황시키고 만다.
시적화자는 고정관념 속에 살아가는 자신을 포함하여 현대인의 틀에 박힌 사고와 행동양식’을 꼬집고 있다.
6)여섯 번째 詩
어떤 몸부림
어떤 날은 백지를 앞에 두고 그냥 앉아 있습니다. 아무 생각 안 나는 어떤 순간엔 이런 방법이 최선입니다. 백지가 제 위에 얹힌 내 손바닥이 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될 때까지 그래서 나를 저의 일부인양 속아줄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종이가 저를 열고 제 속의 길 어딘가로 나를 데려가 준다면 나의 기다림은 성공한 셈입니다. 그
러나 그 순간이면 나 또한 내가 무엇을 기다렸는지 잊기 일쑤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종이의 일부였던 것처럼 척추도 관절도 잊고 구겨지기도 펼쳐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종이가 된 그 어떤 순간을 여행이라 일컫습니다. 나는 내가 스치는 종이의 일순간을 나의 한 순간이었다 착각합니다. 그러므로 곳곳마다 스며있는 나는 주로 희미합니다. 내가 종이와 같이 걸은 것이 아니라 종이가 나를 데리고 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종이 위에서 나는 하루 종일 걷고도 제자리인 개미처럼 예민하거나 오후를 거치지 않고 밤으로 간 바람처럼 무심하곤 합니다. 내 발자국이 남아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종이의 삶이었으므로 나는 가끔 내가 종이였으면 생각할 뿐입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지난 어느 순간의 부용화 한 송이쯤 꺾어볼 걸 후회하기도 하지만 나는 또다른 길을 따라 가느라 그만 지난 종이속의 길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 부용화 한 송이 꺾어올 걸.
간혹 나는 종이 밖으로 나와서도 뒤꿈치를 들고 걷습니다. 예견하지 못한 바람이 휘몰아쳐 허리가 꺾여도 종이 속이니까, 이렇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종이 속의 순간이 내 본모습이었고 현실의 나는 허위인 것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종이 속에 있던 순간을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얼마나 원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종이라는 것을 매개로 나에게 왔던 수많은 길과 바늘과 별과 칼날에 대해 가졌던 경외심에 대해 생각합니다. 종이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던 순간도 종이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하던 순간도 나는 길이었고 별이었고 바늘이었고 칼날이었을 뿐 어쩌면 나는 나로 존재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 몸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소리를 들으며 물을 마십니다. 종이가 축축하게 젖습니다. 종이는 간혹 내 안에서 그렇게 소리 없이 울다 갑니다.
어떤 날은 나를 앞에 두고 종이가 그냥 앉아 있습니다.
*
이 시는 창작의 고통을 토로하고 있는 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 ‘어떤 날은 백지를 앞에서 두고 그냥 앉아 있’기도 하고, 마지막에서는 ‘어떤 날은 나를 앞에 두고 종이가 그냥 앉아 있’다고도 한다. 종이와 나와의 한판 피를 말리는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종이의 일부였던 것처럼 척추도 관절도 잊고 구겨지기도 하’다가 ‘종이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던 순간도 종이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하던 순간도 나는 길이었고 별이었고 바늘이었고 칼날이었을 뿐’이라고 고백하면서 ‘나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도 하며, ‘내 몸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소리를 들으며 물을 마’신다. 초조하고 불안한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창작의 그 고통임에랴.
‘종이는 간혹 내 안에서 그렇게 소리 없이 울다 가’는 것을 보니
신경림 시인의 詩 <갈대>의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다는 詩句가 떠오른다.
끝내, 종이와 화자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를 것일까.
7)일곱 번째 詩
곡선의 어떤 형식
1
좀 먼 얘기지만 이건 향유고래 이야기야 크리스마스이브였어 고래는 해안선처럼 누워 있었지 그 적나라한 곡선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생각해 본 적 있니 어느 날의 죽음에 대해 고래는 제 죽음이 그리 둥글 줄 생각이나 했을까
2
그 저녁에 떨어진 사과는 처음부터 둥글었으나 사과만 모르는 사실이었다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었으므로 꿈꾸지 못하는 세계가
사과에게는 있었다
언제나 있어서 한 번도 없었던 생각
이명이었다 둥근 씨앗은
메아리가 되는 곡선의 한 형식이 사과를 거쳐 사과에게 간다
3
둥글게 돌아가는 계단의 중간이었다
그곳에서 당신은 헤어지자 했다
계단이 끝날 때까지 걷다보면
뒤돌아봐도 뒤는 안 보일 거라고
이별인 줄도 모르게 이별하는 거라고
4
곡선은 대체로 위험하다
당신에게 가는 내 마음처럼
당신에게 갔다 돌아오는 내 마음처럼
—《불교문예》2012년 겨울호
'해안선에 와서 죽은 향유고래'
(출처 : 구글 이미지)
*
향유고래는 이빨을 가지고 있는 고래 중에서는 가장 큰 축에 속하는 고래인데 수심 2천 미터가 넘는 깊은 심해에서도 살 수 있는 고래이다. 수컷은 15~20미터에 달하고, 암컷은 그보다는 좀 작다고 한다. 등은 회색이고 배는 담적색이다. 등에는 둥근 혹이 있다. 머리가 커서 전체 몸통의 1/3가량 차지한다.
시적화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해안선에 와서 죽은 향유고래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느 날의 죽음에 대해 고래는 제 죽음이 그리 둥글 줄 생각이나 했을까’라고 한다.
이 시는 향유고래를 통하여 ‘곡선의 비극성’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모가 났거나 각이 진 것에 비하여 부드러운 곡선의 미덕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그 반대의 경우를 상정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향유고래의 비극은 그 크고도 둥근 머리 때문에 죽은 후에까지도 비극이 진행된다. 그 거대한 머리에서 나오는 ‘기름’을 짜서 비싼 값에 팔고 쓰기 위해서 인간들은 포경선(捕鯨船)을 타고 머나먼 원해(遠海)까지도 나가서 그 고래를 잡기 위해 모험과 사투를 감행한다.
아마도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Moby Dick)>에 나오는 고래가 이 고래일 가능성이 크다.
사과는 둥글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늘 생각했으나 그만,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때가 되면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 둥근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서 사과를 여지없이 ‘못난이‘로 만들고 삼켜버리고 만다. -’2‘-
또, 언젠가 시적화자가 이별하던 곳도 ‘둥글게 돌아가는 계단의 중간’이었다고 하면서 ‘뒤돌아봐도 뒤는 안 보이’니 ‘이별인 줄도 모르고 이별’을 했다고 고백한다.-‘3-
그러면서 마지막 ‘4‘에서
‘곡선은 대체로 위험하다/당신에게 가는 내 마음처럼/당신에게 갔다 되돌아오는 내 마음처럼’이라고 한다. 이는 시작점과 끝점이 일치하는 ‘뫼비우스의 띠’일 수도 있다. 자신의 속마음과 겉마음이 어떤 건지 혼란이 오는 곡선에의 고통일 수도 있고.
향유고래라는 뛰어난 상상력에서 발동-모티프-이 된 이 시는 곡선과 직선에 대한 우리들의 상식과 관습적인 생각을 몇 가지의 사례를 들면서 꼼꼼하게 증명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짧은 시 안에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를 읽거나 보는 것에 준할 정도의 풍부한 스토리(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향유고래라는 현대성이 갖는 상징으로 보아서 ‘이 시대를 증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시는 최 시인 ‘미래의 시들’ 틈바구니에서도 여전히 빼어난 詩중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8)여덟 번째 詩
비를 맞는 자세
너를 위하여
푸른 세탁소가 자전거를 탄다
빗방울이 닿는 순간 푸른은 잠시 푸른을 잊는다
작정한 듯 세탁소는 흠뻑 젖는다
자전거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다 젖어주는 것이 젖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자전거만 모를 뿐이다
소리 혹은 소음
엄마가 쪽진 머리 자르고 파마를 했다
아버지는 저녁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숟가락 끝이 부르르 떨렸다
엄마는 쩝쩝 소리 나게 밥을 먹고
오빠와 나는 씹지도 못한 밥을 삼켰다
빗방울이 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부딪혀 깨진 파편들이 땅바닥에 떨어져내렸다
비의 바깥에서 비를 맞는 저녁은
손톱 밑이나 발톱 밑이 먼저 젖는다
어떤 보고서
페이지를 넘기기 전 나는 생각한다
비의 직립은 겨울나무의 성립과 병행하는 걸까
나무는 비의 형태로 서 있고
비는 나무의 자세로 내린다
사람의 직립과 비할 바는 아니다
무엇이든 피하고 보는 사람과는 달리
비가 어깨 움츠리는 자세를 취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어느 날, 우연히,
진숙이 할머니는 허리 구부러진 채로
큰오빠는 똑바로 누운 채로
세탁소 김 씨는 자전거 위에 앉은 채로
비를 맞는다
혹자들의 의견,
두 팔 벌리거나
고개 한껏 젖혀 하늘로 향하는 포즈는
빗속으로 들어가기에 가장 좋은 자세
우연히, 비가 당신에게 온다면
무작정 끌어안고 볼 일이다
젖은 다음의 당신과 악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시인세계> 신인상 당선작.
*
이 시는 최라라 시인의 등단작이다.
이 시 외에 총 4편으로 <시인세계>당선작이 되면서 등단했지만 이 시를 뽑아보았다.
제법 ‘연륜이 있는 신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신발장에서 뱀장어 찾기 등’ 등단작 5편모두가 심상치가 않다.
특히 이 시는 뛰어난 시적 상상력으로 인하여 비오는 풍경을 하나의 ‘푸른 풍경화’로 전이(轉移)시키고 만다.
시적화자는 ‘푸른 세탁소’라는 글자가 보이는 자전거를 타고 세탁물을 배달하고 있는 사람을 본다.
그러면서 ‘다 젖어주는 것이 젖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자전거만 모를 뿐이다’라는 선언을 한다. - 1연
‘비의 바깥에서 비를 찢는 저녁은/손톱 밑이나 발톱 밑이 젖는’것을 보고,-2연
‘무엇이든 피하고 보는 사람과는 달리/비가 어께 움츠리는 자세를 취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고 하며,-3연
마지막으로
‘우연히, 비가 당신에게 온다면
무작정 끌어안고 볼 일이다
젖은 다음의 당신과 악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라고 끝을 맺는다.-4연
이 詩 는 ‘한 편의 잘 짜인 보고서’이다.
각 연(聯)마다 소제목이 붙어있는 작은 보고서이면서 전체가 또 하나의 ‘비를 맞는 자세에 대한 보고서’이다.
언어의 군더더기가 끼어들 틈새는 없다.
이 詩를 읽으면서 한 편의 詩와 한 편의 小說을 떠올렸다.
하나는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제24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이인화 작가의 ‘시인의 별’.
‘시인의 별’은‘채련기(採蓮記) 주석 일곱 개’라는 부제를 붙인 소설인데, 소설형식과 단계별 전개를 본문에 붙는 주석(註釋) 형식으로 기묘하게 서술을 하여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새로운 소설 작법’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이 시는 전술한 바, 주석이라기보다는 연(聯)마다 작은 보고서로 된 시다. 말하자면 한 편의 소설을 한 편의 詩로 압축해놓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슈킨/백석 역(譯)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언제나 슬픈 것이니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
9) 총 감상평과 당부
지금으로부터 겨우 2년 전인 2011년에 등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문단(文壇)에서 뛰어난 신예(新銳)시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시인은 詩 한 편 한 편, 또 한 字 한 字 결코 허투루 시를 쓰지 않는다. 그만큼 시인으로서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긴 시이건 짧은 시이건 군더더기가 일절 없다.
여덟 편의 시를 읽고 이 시인의 장점을 몇 가지 꼽아보았다.
첫째, 이 시인은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
그냥 평범하게 넘길 수 있는 사물이나 사건에서 꼼꼼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시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재능이 뛰어나다.
둘째, 뛰어난 상상력이다.
詩 ‘누가 내 귀고리를 장물이라 한다’에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늘 지나치는 경주의 신라 왕릉을 지나면서 먼 과거 속의 신라왕을 불러내고 자신은 ‘왕의 여인’이 되어 왕을 농락하는 대범한 상상력은 반짝반짝 빛난다. 또 詩‘ 곡선의 어떤 형식’에서도 그러하며, ‘어떤 몸부림’에서도 그렇고, 등단작인 ‘비를 맞는 자세’도 그렇다.
그렇게 두고 보면 모든 시마다 뛰어난 상상력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일 텐데, 이는 첫 번째 장점으로 꼽은 관찰력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자명하다. 즉, 뛰어난 관찰력에서 움튼 생각은 자유자재로 시(時)/공(空)을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날아다니면서 시의 확장성을 꾀한다고 볼 수 있겠다.
셋째, 詩語들이 싱싱하고 단단하다.
시의 언어를 직조(織造)하는 능력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일단은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아도 군더더기가 없다. 긴 詩든 짧은 詩든 모두 마찬가지다.
넷째, 세상과 사물에 따뜻한 시선을 항상 유지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시인의 눈길이, 손길이, 가슴이 따뜻하지 않고서는 오랫동안은 결코 좋은 시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나는 이 정도의 장점을 꼽는다.
*최라라 시인
1969년 경주 生.
2011년 《시인세계》로 등단.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이 여덟 편의 시를 다 읽고 나니 2007년에 개봉한 커스틴 쉐리단 감독의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라는 감동적이고 매력적인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운명적 사랑과 음악에의 열정’을 그린 것인데 프레디 하이모어(어거스트 역),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루이스 역), 케리 러셀(라일라 역) 주연의 영화이다.
출생과 동시에 부모와 생이별한 음악 신동이 음악을 통해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힙합가수 타블로와 배우 구혜선이 카메오로 출연해 화제가 되었었다.
이 영화처럼 '운명적인 사랑과 문학에의 열정' 모두에서 부디 성공을 이루시길...
사랑과 열정의 공통점은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아름답다는 것이 아닐까.
참 부족한 내가 건방지게도 이리저리 되작거린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이 시인의 시들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끝-
2013.2.21 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