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데밍 우르거 소르골에는 모두 12개 교사 그룹이 있다.
초등 5개 학년은 학년별로, 중등은 교과별로 그룹이 나뉘어진다. 우리는 1주일에 한 그룹씩 돌아가며 근무를 했는데, 그룹 근무가 끝나면 선생님들과 함께 몽골 문화체험 시간을 가졌다.
외국어그룹 선생님들과 함께 노래방 체험(11.15)
학교에서 가까운 한국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영어과 부장 선생님을 비롯한 7명의 선생님이 참석했다.
몽골 사람들이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은 제육볶음이다. 몽골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한국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김치 정도는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영어과 선생님들 역시 한국 음식을 한 두 번은 먹어본 경험이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한국과 몽골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다. 몽골 선생님들은 한국의 교사들이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는지 물었다. 한국은 오후반이 없고, 쉬는 시간이 10분이며, 8시 30분에 출근해서 16시 30분 정도에 퇴근한다고 하자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국의 교사들은 수업 외 업무가 많고, 학생 생활 지도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저녁을 먹고 근처 가라오케(노래방)에 갔다. 아르항가이에서 처음 가보고 이번에 두 번째다. 보드카를 한 병 시켜 한잔씩 돌렸다. 몽골의 노래방에선 어디서나 술을 먹을 수 있나 보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것은 우리네와 영판 닮았다. 차에만 올랐다 하면 보드카 잔이 돌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긴, 기나긴 여행길에 술 한 잔 마시고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지겨워서 어찌 가겠는가.
한국 노래가 일부 있긴 했지만 최신곡 위주여서 우리는 주로 듣기만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외국어과 선생님들답게 확실히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어를 혼자 공부하여 한글을 읽을 줄 알고 더듬더듬 말도 할 줄 아는 선생님이 두 분 계셨다. 교사 대상 한국어 강좌가 필요해 보였다.
노래방을 나와 영어과 부장 선생님이 우리와 택시를 함께 타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혼자 갈 수 있다고 해도 굳이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역사사회그룹 선생님들과 함께 흐미공연 관람(11.22)
역사사회그룹 선생님들의 따뜻한 환대.
관람을 가기 전에 그룹 연구실에서 선생님들이 손수 마련한 점심을 대접 받았다. 선생님들이 준비한 음식은 보르츠테슐(칼국수에 말린 양고기를 섞은 것)과 만도(밀빵 같은 것), 수태차, 아롤 등 몽골의 전통음식 들이었다. 보르츠테슐은 징기스한 시대에 발달한 음식이라고 했다. 수업 틈틈이 시간을 쪼개 음식을 마련한 선생님들의 정성에 가슴 찡한 감동이 몰려왔다. 학교 안에서 손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 지난주에 한국에서 학교 방문단이 왔을 때 선생님들이 직접 양을 잡아 허륵을 준비한 것 역시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역사·사회그룹 선생님들의 연구실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더러 몽골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점 세 가지만 말해 보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것 외에는 어려운 점이 없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몽골과 한국의 역사를 더듬어보며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몽골인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고 소개하자 선생님들은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3시부터 문화회관에서 전국흐미경연대회가 열렸다. 몽골 전역에서 지역 예선을 거쳐 올라온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벌이는 경연인 만큼 실력들이 쟁쟁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음색과 내용을 선보였다. 다양한 흐미의 모습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흐미를 처음 접한 건 오래 전에 TV를 통해서였다. 인간의 목을 통해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신비감과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지난해 관광으로 몽골에 와서 국립민속극장에서 흐미를 직접 들었다. 영혼을 울리는 소리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몽골의 전통 악기 소리에 실려 울려 퍼지는 흐미는 광활한 초원을 떠올리게 했다. 하늘과 땅이 맞붙은 저 먼 지평선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말,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나는 독수리, 거친 사막을 건너 불어오는 바람, 산과 대지를 휘돌아 흐르는 강…. 고음과 저음이 뒤섞인 흐미에는 몽골의 자연이 녹아 흐르고 있었다. 내가 고비에서 만난 광야와 바람이 그 속에 담겨 있었다.
흐미는 몽골의 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중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흐미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한국에는 판소리와 아리랑을 비롯하여 15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있고, 몽골에는 5종목이 있다. 흐미는 한국의 판소리 못지않게 매력이 있는 음악임에 틀림없다.
음악체육 선생님들과 함께 저녁 식사(11.29)
찜질방에 같이 가기로 했지만, 시간이 늦어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간단히 식사만 나누었다. 다음 날 열리는 학부모 배구대회 준비로 체육과 선생님들이 무척 바쁜 하루였다.
기술가정그룹 선생님들과 함께 복드한왕궁박물관 관람(12.5) & 몽골 음식체험(12.2)
12월 5일, 기술가정과 선생님들과 함께 복드한 왕궁박물관을 관람했다.
복드한 궁전은 몽골의 제8대 생불이며 혁명 직후까지 왕좌에 있었던 마지막 왕 제브춘 담바 후닥트 8세(복드한)가 20년간 생활했던 겨울 궁전으로 1893년부터 1903년에 걸쳐 지어졌다. 궁전이라기보다는 청나라 지배하 왕들의 신분이 라마승이었기에 라마사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궁전 부지 안에는 6채의 숨(사원)이 있었다. 건물 안에는 라마불교의 불상, 불화들을 전시해 놓았다. 몽골 역사에서 불교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하긴,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 종교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서양은 기독교의 역사라 할 수 있으며, 동양은 불교와 샤마니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라마교이다. 몽골 사람의 90% 가량이 라마교를 믿는다.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시기는 16세기 말부터이다. 이후 1635년에 태어난 자나바자르가 왕으로 등극하면서 몽골의 불교문화는 화려한 꽃을 피운다.
자나바자르는 칭기스한과 더불어 몽골인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는 분이다. 그는 14살에 티벳으로 유학 가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대학자와 수행자들에게 법을 전수 받는다. 그리고 티벳 각 종파의 대가들과 천문, 지리, 의학, 언어학자, 예술가 등 600여명의 승려들을 이끌고 몽골로 돌아온다. 몽골로 돌아온 자나바자르는 ‘간단사’를 세우고, 티벳의 거의 모든 경전은 물론 천문, 의학, 예술 등 관련 분야의 학문서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이때, 몽골말로 더 잘 옮길 수 있도록 ‘소욤보’라는 몽골의 문자를 창제하기도 했다.
18세기~19세기에 이르러서는 남자 인구의 3분의 1이 라마승이었을 만큼 몽골은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불교 탄압이 시작되어 스탈린 시대에는 엄청난 종교적인 탄압이 가해진다. 이 기간에 약 20,000여명에 달하는 승려가 체포, 구금, 처형당했고, 750개의 사원 대부분은 파괴 되거나 군인 막사, 마구간 등으로 전락하고 만다.
복드한 궁전의 사원을 둘러보면서, 새삼 ‘종교와 인간, 그리고 역사’의 함수 관계를 곱씹어보았다.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본채는 러시아 왕이 지어준 서양식 2층 목조건물이다. 이 안에는 왕과 왕비가 사용했던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외국의 왕들로부터 받은 희귀한 선물들, 왕과 왕비의 침실, 복드한이 취미로 수집한 박제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1층 전시실에는 8대 복드한의 즉위를 축하하여 지방 군주들과 이웃 나라 왕들이 선물한 박제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몽골에서는 서식하지 않는 희귀 동물 박제들이 대부분이었다. 복드한 자신이 박제 동물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특히, 눈표범 가죽으로 천막을 씌운 호화로운 겔이 눈길을 끌었다. 이 겔은 몽골 중앙지역의 영주가 복드한에게 선물한 것인데, 150마리의 눈표범 가죽으로 만들었다. 또, 왕과 왕비가 입었던, 진주로 수놓은 의복도 있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사진관으로 갔다. 몽골의 전통의상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알고 이리로 안내했는지, 선생님들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혼자, 정숙희 선생님과 둘이, 단체로,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사진을 찍었다. 나는 할흐부족의 왕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 사진을 받고 우리는 또 한번 감동했다. 기술가정과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추억물을 만들어준 것이다. 마음에 쏙 드는 사진들이었다. 적잖은 돈을 들여 좋은 추억물을 만들어준 선생님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12월 2일(월), 기술가정과 선생님들과 함께 가사실에서 보츠를 만들어 먹었던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사람과의 만남은 음식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몽골의 전통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동안, 배가 불러오는 만큼 선생님들과의 정도 두둑이 쌓여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그룹보다 소중하고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한 주였다.
과학그룹 선생님들과 함께 몽골전통의상 체험(12.11) & 몽골의대박물관 관람(12.13)
과학그룹 선생님들과의 첫 만남. 서 있는 분이 부장교사. 서로 인사를 나누다.
저마다 델을 예쁘게 차려 입고 나왔다. 색상이 화려하고 다양하다.
몽골국립의대 박물관 관람.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11학년 학생들도 함께했다.
한국어에 능통한 안지.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형부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몽골의 거인 유골
의대 정문에서 관람 간 학생, 교사들과 함께
의대 복도. 박물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가는 학생들 대부분이 여학생이었다. 여성이 공부를 많이 한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