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북일 대화 분위기 속 외통수에 빠진 윤석열 정부
: 윤 정부 ‘감성외교’ 아닌 ‘실리외교’에 나서야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2023년을 시작하며 강대강의 대치로 뜨거웠던 한반도가 최근 숨을 고르며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한반도에 작은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향후 예상되는 한반도 이슈들을 점검하고 우리 정부의 대응 전략을 평가해 보려 한다.
Scene 1. 통일부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던 통일부는 권영세라는 중량급 정치인을 장관으로 맞으며 정부 내에서도 나름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떠날 준비를 마쳤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 권영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권영세 장관은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에서 그나마 꿋꿋하게 남북대화를 강조하며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왔다. 그의 존재로 인해 통일부는 대통령실(안보실)이 주도하는 대북 강경노선에 최소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통일에 대해 그가 가진 철학은 앞으로도 보수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에 하나의 모델로 기억될 것이다.(권영세 통일부 장관에 대한 기대와 제안, https://omn.kr/1z4py)
하지만 이제 통일부는 권영세 장관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아마도 그와 함께 한 시간이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가 가장 빛났던 시간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짐작하건대 통일부는 권영세 장관만큼 힘을 가진 후임자를 맞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통일부는 대통령실 안보실 산하로 귀속돼 무장해제될 처지에 놓여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는 말도 꺼내기 힘들 것이다.
Scene 2. 북한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의 긴 터널로부터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북한 또한 북중 국경 지역을 재정비하며 2020년 2월부터 3년 넘게 이어온 국경봉쇄를 순차적으로 해제하고 있다. 이미 북-중, 북-러 간 무역은 팬데믹 이전으로 복구된 상황이다. 특히 북-중 무역은 지난 3월 기준 전년 동월대비 161% 증가하였고 이중 대중 수출은 475%(2,055만 달러) 급증하였다.(중국해관총서)
북중무역의 재개와 함께 북한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맞서 준비한 히든카드가 바로 관광사업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차질을 빚기도 했으나 중국의 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사업은 북한의 경제위기에 탈출구가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북한 여행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한국과 미국 등 소수 국가를 제외하면 모든 국가의 국민들은 북한 여행이 가능했다. 일본조차도 자국민의 북한 여행을 통제하지 않았다.
최근 미-중, 미-러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UN안보리가 북한 여행을 제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설사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한다 해도 추가 대북제재에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여러 차례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한 추가적인 대북제재 결의안을 부결시킨 바 있기 때문이다.
북한 관광이 재개된다면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제재를 통한 북한 길들이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Scene 3. 미국과 일본은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양자 및 다자관계에서 대결구도가 강화돼 온 한반도 국제정치에 외교의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미국은 지난 18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을 통해 미중대화를 시작했다. 블링컨 장관은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솔직하고 실질적이며 건설적인 대화”를 했으며 “오해와 오판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외교와 폭 넓은 현안에 대한 소통 채널을 열어두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블링컨 국무장관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친강 외교부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미중전략경쟁은 경제적 차원의 예방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최근의 모습은 경제문제를 국가안보 문제로 치환하며 경제와 안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간 대화를 모색하는 것은 분명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중 간 대화에 앞서 기시다 일본 총리는 지난 5월 27일 북일정상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기시다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일 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북한과 고위급 협의를 갖기를 원한다”라고 제안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6월 8일에도 “정상회담을 조기 성사시키기 위해 내가 직할하는 고위급 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며 재차 정상회담 의지를 표명했다.
일본의 정상회담 제안에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은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며 호응했다. 과거 형식적인 정상회담 제안이나 날 선 거부반응과는 사뭇 온도차가 느껴지는 교감이다.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중국과 북한에 대응해 한미일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던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 최근의 대화 분위기는 분명 낯선 모습일 것이다. 그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아마추어적인 외교정책이 가져온 참사다.
특히 지난 5월 7일 한일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얼마지 않아 일본이 북일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은 우리 정부의 외통수 외교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것인지 드러낸 장면이었다. 북한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온 일본조차도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마당에, 감정적인 북한 길들이기로 ‘정신승리’에 빠져있는 윤석열 정부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대통령실이 나서 중국 대사의 발언에 감정을 드러내거나, 민주당의 중국 방문에 쌍심지를 켜고 비난하는 집권 여당의 모습도 슬기로운 외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부가 한미동맹을 핵심가치로 외교를 펼친다 하더라도 대외무역의 중요 파트너인 중국을 관리하는데 야당을 활용하는 지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한국의 국익이 평화와 경제임을 강조해 왔다.(바보야, 문제는 '평화'와 '경제'야, https://omn.kr/21682) 미-중, 북-일이 대화를 모색하는 지금, 한반도 평화를 위한 좁은 틈,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한반도 평화의 명제 앞에 여야도, 보수와 진보도 없다. 정부가 ‘감성외교’에서 벗어나 냉정한 ‘실리외교’에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