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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머니투데이 경제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천(母川)/김철
청계천 골목 어디쯤
모천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양양의 남대천이 아닌
뜨끈한 국수를 파는 국수 집 근처 어디라고
국수 발 같은 약도 적힌 메모를 들고 찾아간
미물도 명물로 만든다는 그 만물상
주물 틀에서 갓 나온 물고기 몇 마리 사왔지
수백 마리 수천 마리 붕어빵 구워낼 빵틀
파릇한 불꽃 위를 뒤집다 보면
세상의 모천을 찾아오는 물고기들
다 중불로 찍어낸 붕어빵 같지
한겨울 골목 경제지표가 되기도 하는
천원에 세 마리, 구수한 해류를 타고
이 골목 입구까지 헤엄쳐 왔을
따뜻한 물고기들
길목 어딘가에 차려놓으면
오고 가는 발길 멈칫거리는 여울이 되는 것이지
파닥파닥 바삭바삭
물고기 뛰는 모천의 목전쯤 되는
영하의 파라솔 아래
엄마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
<심사평> 심사위원: 이순원(소설가), 이희주(시인)
“상상력과 상징, 현장성 돋보이는 수준작들”
경제신춘문예 응모작들의 소재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일반문예 수준으로 올라온 듯하다. 수필이나 수기보다 소설 쪽 수준이 높았다.
'페니 스탁 스캠'은 제목 그대로 1페니의 주식을 작전으로 부풀려 고가에 파는 사기방식과 거기에 얽혀 있는 이상한 명상수련 단체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하는데 우선 소설의 문장이 거칠고, 사건의 전개 방식도 치밀하지 않다.
'발효 초콜릿'은 장학재단 설립과 이 재단에 대한 국제송금이 주 이야기를 이루는 작품으로 일단 긴장감 있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후속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나, 기대하며 끝까지 읽히게는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다 읽고 났을 때 작품의 완결도가 떨어진다.
산문 부분 대상작으로 뽑은 '초파리들'은 외국계 반도체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반도체의 특성, 세계 반도체 시장 움직임의 특성, 그리고 이 외국계 회사의 본사와 지사의 움직임, 그에 따른 내부 인력들의 경쟁과 협력, 협잡 등을 아주 리얼하고 현장성 있게 다루었다. 한 편의 기업소설이자 경제소설로 제목 초파리의 상징성까지 두루 잘 구성하고 또 형상화해냈다. 앞으로 작가로서 좋은 활동을 바란다.
시 부문에서는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적었다. 본심에는 김철씨의 '모천', 송종관씨의 '트럭에게 빗길이란', 정소망씨의 '폐차장 풍경', 권수진씨의 '흔들의자', 최명진씨의 '나룻배'가 올라왔다. 이 가운데 최종 경합은 동반작품들도 우수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모천'과 '폐차장 풍경', '나룻배'가 벌였다.
'나룻배'는 함께 출품한 '홍시'와 함께 시적 수련이 잘된 분의 작품 같았다. 그렇지만 시적 정조가 아련하긴 한데 신인에게 기대하게 되는 참신성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폐차장에서 자동차가 해체되는 과정을 다소 과격하게 그려낸 '폐차장 풍경'은 "삶은 때론 멈춘 곳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라는 마무리가 시적 긴장감을 배가 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출품작들 곳곳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의문의 도로", "노동자의 손" 같은 어색한 관형격 조사 '의' 표현들이 마음에 걸렸다.
응모작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의'와 관련한 오용이나 남용은 글을 어색하고 딱딱하게 만든다는 점을, 특히 시 쓰는 분들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은 김철씨의 '모천'을 당선작으로 선정키로 했다. 경제신춘문예라는 주제에도 걸맞고 엄마가 파라솔 아래 붕어(빵)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이 곧 모천이라는 시적 상상력 또한 돋보였다. 춥고 삭막한 겨울, 아름답고 따뜻한 작품이었다. 앞으로 시를 향한 정진을 기대할 만하다. 응모하신 모든 분들께 분투를
기원 드린다.
2021,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국수/박은숙
허리가 굽은 노인이
식당 구석진 자리에 앉아
국수 한그릇을 시킨다
네명의 자리에 세명을 비워두는 식사
아마도 매 끼니를 빈자리들과의
합석이었을 것 같다
잘 뭉쳐져야 여러 가닥으로 나뉠 수 있는 국수, 수백번의 겹이 한뭉치 속에 모이는 일, 뜨겁게 끓인 다음에 다시 찬물에 식혀야 질겨지는 음식, 그 부피를 많이 불리는 음식은 힘이 없다지만, 그래서 여럿이 먹어도 한가지 소리를 내는 국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저 노인의 슬하는
이남 삼녀의 망종(亡種)
꽃핀 곳 없는 행색이지만
한때는 다복했었을 것이다.
잇몸으로 끊어도 잘 끊어지는 빗줄기 같은 국수,
똬리를 튼 국수를 젓가락으로 쿡 찔러 풀어 헤친다
치아도 없는 노인이 먹는데
후루룩, 비 내리는 소리가 난다
비 오는 날 마루에서 들리던 엄마의 청승같이
뚝뚝 끊던 빗소리,
맑은 물에 헹군 국수발 같은 주름이
입안에 가득 고인 빗소리에
바람이 흩날리며 든다.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한국문인협회화성지부 부지부장 ▲좋은친구들화성지부 지부장 ▲한국크리스토퍼남양반도센터 소장 ▲저서 수필집 <반지>
[심사평] 심사위원 - 나희덕, 손택수 시인
국수 소재로 화려한 수사 없이 삶을 담백하게 빚어내
천연두 치환한 ‘빗방울 화석’ 참신
‘흙벽’ 신선한 묘사력 빼어나 눈길
<농민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스무명의 시가 공히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 있었다.
속도의 저편으로 밀려난 삶의 그늘과 소외의 풍경을 그려내고, 타자들에 대한 저버릴 수 없는 관심을 어떻게 상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에 시선이 모아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밀행> 외 4편, <고라니> 외 4편, <노루발> 외 4편, <국수> 외 4편의 응모자들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집중적인 토의를 했다.
소재에 밀착하면서도 시적 인식의 확대를 도모한 <노루발>과 <국수>를 주목했다.
<노루발>은 경쾌한 어조와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동봉한 작품들의 에코페미니즘적 모성 서사가 익숙한 회로를 맴돌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국수>는 설명적 진술과 어색한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동봉한 작품들의 안정감이 깊은 신뢰를 줬다.
특히 천연두를 <빗방울 화석>으로 치환한 비유의 참신함, 삶의 악천후를 품은 균열을 신체화한 <흙벽>의 신선한 묘사력, 문명의 맥을 짚은 <멸종의 거리> 같은 작품들은 당선작 못지않게 빼어난 시편들이다.
어쩌면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를 선택해 삶을 빚어내는 솜씨를 보며 우리는 시의 독창성이 어떤 유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질감의 문제이기도 함을 알게 된다.
과잉된 감각들과 화려한 수사의 먼지를 벗겨낸 자리에서 ‘맑은 물에 헹군 국수발 같은 주름’처럼 담백하게 씻긴 말들이, 겨우 존재하거나 잔상으로만 남은 부재의 측근들과 늘 함께 있기를 바란다.
새로움을 애써 여의면서 발효돼 나오는 시는 그때 굳이 새로움의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2021,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독사가 고독에게/박소미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
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
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지 태아처럼,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
점 어두워진다
김순옥
1966년 전남 목포출생. 김포문예대학 수료. 시품, 달詩 동인.
[심사평] 심사위원 : 강은교 · 안상학 · 김참 시인
언어 다루는 솜씨·주제 전달 방식 참신
올해 응모작들의 수준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있었지만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보여주는 시들, 사회문제를 다룬 시들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았다. 참신하지만 너무 긴 시들,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이야기를 엮는 솜씨는 좋은데 너무 긴 시들은 읽기가 다소 어려웠다. 시가 반드시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시를 사람의 몸매에 비유하자면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줄여서 꼭 필요한 말만 남기는 것이 시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중 십여 편의 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뒤, 윤상호 씨의 ‘변기는 가능합니다’, 박신우 씨의 ‘이인용 밥솥’,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 세 편의 시를 놓고 마지막 논의에 들어갔다. ‘변기는 가능합니다’는 사회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뛰어났으나 같이 보내온 다른 응모작의 살을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인용 밥솥’은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시였지만, 같은 소재를 다룬 기성 시인의 특정 작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박소미 씨의 당선작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돋보였다. 함께 보내온 ‘달리는 숲’ 역시 당선작 못지않은 사유와 작품성을 담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런 점을 높이 사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의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2021,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해감 / 설현민
새벽 물때다 사촌들과 바지락을 캐러간다 이모를 도와야 했다 엄마, 엄마, 나는 한 번도 이모를 본 적 없는데요 가족이잖니 단숨에 알아차릴 거다
모래사장은 구덩이로 가득하다
저 안에서 움직이는 게 보이니 저기 너희 이모가 있잖아 움직이는 게 너무 많은걸요 네 이모처럼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란다
등을 돌려 앉은 엄마는 쇠갈쾡이로 발 밑을 푹푹 퍼올린다
나는 양동이를 끌어안고 움푹한 바닥을 들여다본다
모래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다
어린 사촌들은 껍데기를 손에 쥐고 땅을 헤집는다 또 다른 껍데기를 주워 자랑한다
바지락을 얼마나 더 캐야 하나요 노인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아직 모자라구나
이모는 왜 그렇게 깊이 파들어 가죠 깊은 곳엔 먹을 게 없잖아요
네가 그렇게 태어났지 모래를 툭툭 털고 너를 꺼냈단다
바지락이 쌓여간다
나는 그것을 씻어 다른 양동이에 옮겨 담는다 빈 껍질을 골라낸다
아이들은 조개껍데기를 묻어 성호를 긋고
너는 어쩌면 이렇게도 다 커버렸구나 이젠 무엇도 몰라보겠구나
검은 천으로 양동이를 덮는다
내 입안에 서걱거리는 것이 들어있다
나는 이모가 엄마를 닮았다고 말했다 이모는 엄마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고
저기 모래를 뱉고 있는 것이 있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심사평> 심사위원: 강은교 시인, 이숭원 문학평론가
"자신의 존재성 확인, 고백의 언어로 풀어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열세 분의 응모작 중 실험적인 작품이나 형식의 파격을 보이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상을 관조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특성을 보여서 서정의 밀도와 품격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별 작품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어구의 사용이 꽤 많이 눈에 띄었는데, 시도 한글 문장의 규범 안에서 창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세 분의 작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래가 그래'는 응모 작품 중 드물게 생태학적 사유를 동원하고 있어서 문제의식의 진지함이 주목을 받았다. 고래 내장에 축적된 폐기물로 생태계의 위기를 표현한 착상은 새로웠지만 그 주제가 시적인 언어로 유연하게 형상화되지는 못하였다. '우리 집은 기상청 지부'는 아버지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면서 그사이에 연민의 정서를 적절히 병치하는 솜씨를 보였고, 감정을 절제하고 대상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삶의 내력을 표현한 점도 뛰어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후'의 의미가 모호해서 공감의 폭을 확장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리빙 포인트' 외 2편을 투고한 분의 작품 중에서는 '리빙 포인트'보다 '해감'에 더 눈길이 갔다. '리빙 포인트'가 일상적 삶의 무료함을 다양한 형상의 교차를 통해 새롭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 다양함이 시상의 집중을 방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해감'은 어릴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평범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고백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풀어가고 있어서 그의 시적 재능이 앞으로 더 발전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이에 '해감'을 당선작으로 밀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2021,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 백향옥
부풀어 오르는 흙이 좋아 맨발로 숲을 걸었다
바닷물에 발을 씻다가 만난 돌은
손바닥에 꼭 맞는 매끄러운 초승달 모양
열병을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던 당신의 찬 손
분주하게 손을 닦던 앞치마에 묻어 온 불 냄새, 바람 냄새, 놀란 목소리
곁에 앉아 날뛰는 맥을 지그시 눌러 식혀주던 손길 같은
차가운 돌을 쥐고 있으면 들뜬 열이 내려가고
멋대로 넘어가는 페이지를 눌러두기에 좋았는데
어느 날 도서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렸다
몸 깊은 곳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놓친 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두 동강 난 돌을 잇대보았지만
깨진 돌은 하나가 될 수 없고
가슴에서 시작된 실금이 무섭게 자라났다
식었다 뜨거워지는 온도 차이가
돌 안쪽에 금을 내고 있었던 걸 몰랐다
이제 그만 됐다고 따뜻해진 돌이 속삭였다
그날, 달빛 밝은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깨진 돌을 가만히 놓아주었다
달에게 돌려주었다
심사평 / 문태준
“불교시의 미래 열어가길 기대”
올해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사부대중의 관심이 뜨거웠다. 반조(反照)의 시편들이 다수였고, 인과와 무상, 적멸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았다. 그만큼 불자들의 응모가 많았다는 점은 뚜렷했다. 신행의 두터운 지층으로부터 돌올하게 솟은, 푸르고 서늘하고 생동하는 깨달음의 노래가 곧 불교시(詩)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마지막까지 살펴본 작품들은 ‘만다라화 어머니’, ‘파종’,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 ‘가로수 아래서’,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였다. 구태여 각각의 구실을 찾고자 할 뿐이지 이 작품들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만다라화 어머니’는 처염상정의 꽃인 연꽃을 어머니의 생애에 견준 시조 작품이었다. ‘예토’, ‘화엄’과 같은 시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파종’은 아름다운 서정을 담은 산문시였다. 한 알의 씨를 뿌릴 구덩이 그것이 곧 우주 생명 세계라는 인식에는 공감을 했지만, 파종의 풍경이 가족사와 연결되는 대목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는 아버지의 돋보기 그것을 연륜과 지혜의 안목 자체라고 바라본 작품이었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앞에서 뒤에 이르는 동안 시행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가로수 아래서’는 인연이 된다면 후속작들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고심 끝에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삶의 열기를 식혀주는 찬 돌에 대한 생각을 섬세하게 담되, 옛일을 함께 회상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앞치마’에 묻어 있는 것이 불과 바람의 냄새뿐만 아니라 ‘놀란 목소리’라고 쓴 대목은 감각 내용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러한 경계가 없는 감관의 활용은 대체로 신예가 갖기 어려운 덕목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게 했다. “깨진 돌”을 달의 빛 속으로 방생하는 대목도 지극히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불교시의 미래를 열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