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 이라 새겨진 수로왕비릉은
산
중턱쯤 구릉에 위치하고 있으며
능에
딸린 부속 건물인 숭보재,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을 갖추고 있다.
수로왕비릉
수로왕비릉(사적74호)
경남
김해시 가락로 190번길 (구산동 산 78)
T:
055) 330 - 3924
파사석탑은
김수로왕비릉 앞에 허왕후가 인도에서 건너올때 신비한
돌을 실고 왔다고.....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돌을 배에 싣고 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인도와 수마트라가 원산지인 파사석이라 한다.
김해시 구산동(龜山洞)에 있는 가야시대의 능묘로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 허왕후의
왕비릉(王妃陵-국가사적 제 74호)이다.
대형의 원형 토분이며 특별한 시설은 없다. 능의 전면에는 장대석(長大石)으로 축대를 쌓고
주위에는 범위를 넓게 잡아 얕은 돌담을 둘렀다.
능 앞에는 1647년(인조 25) 수축 때 세운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 )'이라고 2행으로 각자(刻字)한 능비가 있다.
허왕후가 배를 타고 시집 올때 바람과 풍랑을 잠재웠다는 유래가 얽힌 파사석탑(婆娑石塔)이
흥미롭다.
허왕후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열 아들 중 두 아들에게 자신의 성인 허씨를 따르게 하여 김해
허씨 성이 유래되었고,
그로 인해 김해 김씨와 허씨는 혼인이 금지되어 왔다고 한다.
김해시청 홈페이지 참조
파사석탑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가락국왕
수로와 혼인을 하기위해 배를 타고 먼길을 오는데
수신의
노함으로 갈 수 없게 되자 다시 돌아가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 무사히 가락국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1446년에 수로왕릉과 함께 정화 되었는데
능비와
상석은 1647년에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며
수로왕릉
주위에는 네모나게 돌담을 둘렀으며 낮은
단의 축대가 있다.
수로왕비릉
왕비릉(가사적
제 74호)의 숭신각(신도비각)은 가락국 역사와 숭선전사가 기록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열 아들 중 두 아들에게 자신의 성인 허씨를 따르게 하여
김해
허씨 성이 유래되었고 그로
인해 김해 김씨와 허씨는 혼인이 금지되어 왔다.
김해시청 참조
쌍어문
가락국의 국장이자
신앙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는데 경남의 여러
불교사원에는 쌍어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사용하던 묵에도 그려지고 여인네들의 노리개에도 달리게 되었는데
이천년 전 국제결혼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우리 문화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
가락국의 국장(國章)이자 신앙의 상징으로 사용된 쌍어문은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물고기가 인간을 보호하는 영특한 존재로 여겨 사용하던 문장이다.
이후 인도에 전파되고, 힌두교의 여러 신상(神像)중에 하나가 되어 널리
사용된다.
이러한 쌍어문이 가락국의 국장이 된 것은 허왕후가 이 땅에 시집오며 소개한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장유화상이 허왕후의 오라버니라면 아유타국의 왕자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때문에 장유화상의 가락국 도착은 인도 신앙 내지는 인도종교가 한국에
도착한 중요한 증거가 된다.
지금도 가야의 옛땅이었던 경남의 여러 불교사원에는 쌍어문이 남아있다. 김해의
은하사, 계원암, 합천의 영암사에 쌍어문이 그림이나 조각으로 있다.
쌍어신앙은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어 선비들이 사용하던 묵(墨)에도 그려지고,
여인네들의 노리개에도 달리게 되었다.
이천년 전 한 여인의 국제결혼이 이렇게 지금까지도 우리문화속에 살아 숨쉬는
현실을 보여준다.
자료참조 : 김해시청 홈페이지 : http://tour.gimhae.go.kr/01tour/01_05_02.jsp
수로왕비릉에서
산길따라 고개를 넘으면 구지봉과 김해국립박물관쪽으로 향하게 된다.
구지봉 공원 은 가야
김수로왕의 탄생설화가 있는 공원으로
거북이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북아
거북아 ~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대왕을 맞이 하려는 의식이 그려져 보는 재미를 더한다.
구지봉
이곳은
신라 유리왕 19년(42)에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담긴 금상자가 내려오고
그
알 속에서 김수로왕을 비롯한 6가야의 시조 왕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으로
가야문화의
출발지 이자 고대 국문학상 중요한 서사시인 '구지가'가 남아 있는 곳이다.
고인돌의
상석에 새겨진 구지봉석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진다.
고인돌이
근처에 있어서 한컷~
정식으로
발굴 조사가 되지 않은 고인돌로 축조시기들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돌아 보는 김해와 부산의 "2015 허왕후 신행길 축제"는
마치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학창시절로 되돌아 간듯 즐거움과 함께 했는데
국어책을 앞에 놓고
"구지가"를 읊고 있을 우리의 꿈나무들이 한바퀴 돌아 보면~~~ 참 좋겠다.
“상기
포스팅은 2015 허황후 신행길 축제 및 김해
부산 문화 관광지를 알리기
위하여
김해시와
부산광역시에서 초청하여 진행하는 공공 팸투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