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에 걸렸을 때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던 이정근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 우리 집에 오셔서 기도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이 목사님이 그만 피부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내 귓전을 때렸다.
난 이로 인해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고인의 별세를 애도하는 마음도 컸지만 나 역시 얼마가지 않아 그분의 뒤를 따라가겠구나 하는 슬픔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목사님은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나와 육군 군종 목사로 복무를 하신 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경성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고 계셨다. 성격이 활달하셨고 지식도 깊어 사모님이 공부하신 동화고등학교에서 교목으로도 일하셨다.
나는 이보다 일찍 그분이 군목으로 근무하실 때부터 알게 되었는데 몇 년간 전혀 소재를 모르고 지내다가 교육대학원 입학 동기로 오랜 후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어쩌면 필연적인 만남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늘 함께 붙어다녔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호형호제할 만큼 친밀한 사이가 되어 서로 조언을 구하며 격려하는 둘도 없을 만큼의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분은 개척 후 목회를 신실하게 잘하셔서 200여 평의 교회 부지를 매입하고 단층 규모로 작은 건물까지 짓는 등 행복하게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중이었다. 나역시 이 교회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왕래했고 심지어 부흥회까지 인도하기도 했다. 그분도 예장 통합교단에서 이름 있는 부흥사로 활동하시던 터였다.
그런데 이 교회가 갑자기 남양주 신도시 개발 지구로 수용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분과 나는 경기도 토지 공사를 상대로 엄청난 투쟁(?)을 했다. 이런 상태로는 신도시에서 예배당을 건축할 수가 없으니 건물을 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실제로 그 교회는 부채마저 안고 있었던 것 같다. 시의원과 경기도지사를 찾아가 여러 번 부탁을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어 나중에는 각 기독교 방송과 신문사의 기자들을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 불러서 몇회에 걸쳐 기자 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가운데 일부는 우리 교회에서 부담한 바 있다.
사실 그때까지 각지역마다 신도시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12,000여 교회가 건축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금만 받고 쫓겨나다시피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만큼 땅과 건물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면 자리잡기가 어려운 곳이 신도시였다.
하지만 우리 둘은 한국 교회를 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추진해갔다. 당시 우리에게는 신도시 개발 지역의 교회마다 정부의 충분한 보상을 받고 그 지역에 견고히 세워져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하자는 결의로 충천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이분이 피부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그동안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해오셨는데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결국 얼마 후에 더는 견디질 못하시고 먼저 천국으로 떠나가셨다. 그동안 교회 문제때문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을까.
나는 어쩌면 한국 교회를 위해 헌신하려고 했던 우리 모두가 나란히 치명적인 암에 걸리는 비극을 맞았을까 하는 비통한 심정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우리가 한국 교회를 위해 온 힘을 다하기로 했는데 굳이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다니 그야말로 무조건 감사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난 그때를 기점으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범사에 감사하려 애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분은 지상에서의 신도시는 못가셨지민 천상에서의 신도시, 천국으로는 들어가 무거운 세상 짐을 모두 내려놓고 완전하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되었으니 어쩌면 영적으로는 더 나은 축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전도를 하면서 전도 대상자에게 "천국!", "천국!" 하는 이유도 성경은 물론 이런 경험을 근거로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우리 교회가 신도시 개발 예정 지구로 수용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이를 미리 짐작하고 어느 정도 종교 용지와 건물을 확보해 놓은 상태인데 충분히 건축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심히 전도하다가 천국에 가서 상급을 받는 것이다. 보고 싶은 이정근 목사님도 다시 만나 얼싸안고 춤을 추는 그 날이 반드시 오겠지. -계속-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예레미야 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