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57)
매미의 죽음
9월이 지나니 확실히 더운 기운이 가신다. 올여름 얼마나 습하고 더웠던가? 어릴 때 ‘올여름 무사히 넘길 수 있으려나?’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노인들은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잘 돌아가시는데 더위와 추위를 몸이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더위가 가시자 매미소리도 잦아든다. 길에 가끔 죽어 떨어져 있는 매미의 모습을 본다.
매미는 땅속에서 5~7년을 유충으로 지내다가 세상으로 나와 2~3주 동안 번식활동을 하다 짧은 생을 마친다고 한다. 한여름 맴~맴~ 우렁차게 우는 매미는 수컷으로 짝짓기를 위하여 운다. 매미 암컷은 나무껍질 같은 곳에 알을 낳는다. 이 알은 나무속에서 약 1년간 지내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땅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먹으며 평균 5년 정도 산다. 애벌레는 땅 위로 올라와 나무에 매달려 껍질(허물)을 벗는다. 허물을 벗은 매미는 맴~맴~ 우렁차게 사랑을 갈구하며 짧고 뜨거운 여름을 보낸다. 짝을 찾아 교미를 마치면 수컷은 바로 죽고 암컷은 알을 낳은 후 죽는다고 한다. 역할을 충실히 다하여 자손을 번식한 이후에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가? 매미가 세상에 나와 2~3주 살다 간다고 애닯게 느껴지지만 하루살이에 비하면 아주 긴 시간이다.
죽어 떨어진 매미의 모습을 보다 병원에 와보면 링거와 콧줄영양 등 연명술로 끝도 없이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런 분을 대할 때마다 애잔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받는다. 연극이 끝나고 관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은 후 관중들이 모두 돌아간 쓸쓸한 무대 위에 아직도 배우들이 무대를 떠나지 않고 서성거린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1970년 한국인 평균수명은 61.9세로 자녀들이 봉양해야 하는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2021년 한국인 평균수명은 83.6세로 자녀들이 간병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되었다.
박 할머니는 84세로 2017년 뇌출혈로 전신마비가 와 뇌 수술도 몇 번 하고 2018년 5월에 입원하여 지금까지 콧줄영양으로 연명해오고 있다. 너무 오래 투병생활을 하다 보니 의료비 감당을 못하여 며느리가 집을 나가고 가정까지 무너져버렸다.
요양병원에서 이런 분의 본인부담금과 국가부담금을 합하여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이 한 달에 3백만 원이 넘는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이런 분이 10년, 20년 연명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금의 한정된 자원으로 끝없이 지출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다. 한 달 3백만 원이면 자녀 한 명당 백만 원씩, 세 명의 자녀를 낳은 부모에게 매달 지원할 수 있는 비용이다. 회복 가능성만 있으면 최선을 다해 생명을 살리고 연장시켜야겠지만, 콧줄영양으로 수년간 연명하는 의식도 없는 노령자들을 볼 때 이것이 과연 의료인가? 아니면 의료의 모습을 한 노인학대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필자의 형제는 7명으로 당시에는 6~7명 이상의 자녀가 부모를 부양했다. 하지만 필자는 세 자녀를 두어 세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를 살게 되고, 필자의 손자는 하나로 손자가 청년이 될 20년 후에는 이 청년 혼자서 60대의 부모와 90대의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등 6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닥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20~30년은 결코 먼 미래가 아니다. 저출산고령화시대에 출산을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식 없는 노령자들의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사회는 어린이와, 청장년, 노인이 조화를 이루어야 잘 유지될 수 있다. 늙고 병들어 죽는가 하면 새 생명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환자도 원하지 않고 가족도 원하지 않는 의미 없는 연명술을 줄일 수 있도록, 선한 효자, 효녀, 효부들의 정서적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법 제도적으로 가족들을 도와야 할 시점이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인 존엄사와 연명술을 잘 보완하여 노인 의료비로 자녀들이 황폐화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