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해탈,무념행,돈교법.
善知識이여 智慧觀照하면 內外明徹하여 識自本心이니
若識本心하면 卽本解脫이며 若得解脫하면 卽是船若三昧며
卽是無念이니라 何名無念인가 若見一切法하여도 心不染着이
是爲無念이니 用卽 一切處하되 亦不着一切處하고
但淨本心이 使六識出六門하되 於六塵中에 無染無雜하여
來去自由하여 通用無滯하니 卽是船若三昧이며 自在解脫로
名無念行이나 若百物不思하고 當令念絶하면 卽是法縛으로
卽名邊見이니라 善知識이여 悟無念法者는 萬法盡通하며
悟無念法者는 見諸佛境界하며 悟無念法者는 至佛地位니라
善知識이여 後代에 得吾法者가 將此頓敎法門하고
於同見同行을 發願受持하되 如事佛故로 終身而不退者는
定入聖位하리라 然이나 須傳授從上-以來默傳分付로서
不得匿其正法이나 若不同見同行한 在別法中이면 不得傳付니라
損彼前人하며 究竟無益이리니 恐愚人不解하고
謗此法門하여 百劫千生에 斷佛種性이니라
선지식이여!
지혜로 비춰 보면
(관조)
안팎이 밝게 사무쳐서
자기의 본심을 알 것이니,
만약
본심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며
만약 해탈을 증득하면
곧 이것이 반야삼매이며
곧 이것이 무념이 되니라.
왜
무념이라 이름하는가?
만약 일체법(경계)을 보더라도
마음에 집착으로 물들지(끄달리지) 않는
이것이 무념이니, 응하여 쓰면
곧 일체처에 두루하되
또한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깨끗한 본심이
6식으로
여섯문으로 나가되
육진 가운데
물듦이 없고 뒤섞임이 없어서
오고 감에 자유로워 통하고 쓰는데
막힘이 없게 되니
곧 이것이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로 무념행이라 이름하나,
만약 백가지 일을 사유하지 않고
마땅히 생각을 (아주)끊어지게 한다면
곧 이것은
법(무념이라는 말)에 얽히는 것으로
변견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이여!
무념법을 깨달은 자는 만법(일체법)에 다 통하며,
무념법을 깨달은 자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법을 깨달은 자는 부처님 지위에 이른 것이니라.
선지식이여!
뒷세대에 나의 법을 얻은(증득)자가
이 돈교
법문을 가지고, 같은 지견과
같은 행을 발하여
(가르침을)받아 지니도록 하되
부처님을 섬기는 것 같이 하므로
몸이 다하도록 물러나지(退轉) 않는 자는
결정코 성인의 지위에 들리라.
그러나
모름지기 위로 부터 말없이 나누어
부촉하여 전하여 온 것으로써
전하여 주어서 그 정법을 숨기지 말아야 하나,
만일 같은 지견과 같은 행이 아닌
다른 법(삿된 소견) 가운데 있으면
부촉하여 전하지 말 것이니라.
앞의(정견) 사람(善知識)을 해치게 되며
구경의 이익이 없을 것이리니
어리석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이 법문을 비방하여 백겁 천생에
부처될 성품의 종자가 끊어질까 두려우니라.
강설:
"지혜로 비쳐 보면
(觀照)
안팎이 밝게 사무친다"는 말씀은
안과 밖이 없는 일체가
眞如 眞空임으로써의 밝음인 것이다.
이 맑아 깨끗한 밝은 본성이
곧 자기의 본 마음이며
法界一切(만법경계)의 空한 本性임을
깨닫게 되면 상에 집착하지 않게 되어
無心無念의 경지에 이르게되니
이것을 해탈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을 證悟證得 하게 되면
또한 이름하여 반야삼매이며
일체 경계에 끄달리(물듬)거나
집착하지 않는 일상삼매의
마음으로써 行하게 되는 것이다.
六識
(안, 이, 비, 설, 신, 의)을 통하여 작용해 쓰되
육진 경계에 혼탁해 지지 않으며,
와도 옴이 없고 가도 감이 없음에 通達했으므로
임의자재(속박이나 막힘없이 자유로움)하게
되는 것이라 하신 것이며,
그러나
일체가 끊어졌다 한 무념이란 말
(無念法)에 국집하여 생각이 아주 끊어진
일체 사유를 끊음(깨어있지 않음)으로써
삼매를 삼는다면
法
즉 가르침인 말과 글의 거짓 이름(법상)에
얽힘(묶여 국집함)이 되어
변견(공하여 아예 없음등의 단견인 치우친 소견)으로
크게 잘못되게 되는 것임을 이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斷滅落空이며
無記空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인 것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만법(모든 것)에 통함을(집착할 상이 없음을) 깨달아
무념법 즉 아예 공하여 없어 앎이 없는 무기공이 아닌
無相에 통달하여 분별 망상이 끊어졌으되
밝아 또렷한 반야지혜의 소소영령한 것을 깨닫는
진리를 證悟해 아는 것이 부처의 경계를 보는 것이며
곧 부처님의 지위에 뛰어 나게 된 것이라 하신 말씀이다.
작용함(반야작용)이 없는 부처는 부처가 아니요,
부처가 부처다움은
이 깨어 작용할 줄 아는 반야가 있기 때문이다.
※
六祖大師께서 가리켜 보이신
이 돈교법문
(몰록 깨달아 진리의 문에 들게 하는 가르침)을
受(받아)
持(계합해 지님)하여
부처님 섬기듯 지극하게 믿고
이 가르침의 지견대로 행
(일행삼매)하고 물러나지
(退轉) 않는 마음으로 닦는다면
찰라에 반드시 聖人(부처님)의 지위에
오를 것임을 확신케 하셨으며,
말 밖의 소식으로 부촉한 것
(위로 부터 말없이 나누어 부촉하여 전하여 온 것)으로써
이 법을 끊어지지 않게 전하되
다른법(삿된 소견)을 가진자나
삿된 행을 하는 자에게는
잘못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앞의
(正見) 사람
(善知識)을 해치게 될 것이며,
미혹한 자가 이
眞義는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 법문
(直指人心의 頓悟法)을 비방하게 되어
성불의 因이 끊어질까 염려하신다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