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흥안씨선계변정록이란?
BOOK: 순흥안씨선계변정록 (順興安氏先系辯正錄) -안종채(安鐘採)·안상천(安相天) 共編 , 2001.3
변정(辯正) : 옳고 그름을 따져 바르게 고침. 순흥안씨 족보의 선계에 문제가 있어 고침
안종채님과 안상천님이 주장하던 '순흥안씨 선계변정록'이란 무엇인가? 첫째, 안목의 아들로 원숭·원형·원린 삼형제가 존재하는데 순흥안씨 기록에는 원숭만 있고, 원형과 원린이 빠졌으니 순흥안씨 족보를 고쳐야 한다. 둘째, 고려말 1341년에 삼형제가 동시에 문과에 급제를 하였고 모두 고위직에 올랐으며, 원숭은 순흥안씨 1파를 이어 받고, 원형은 죽성군을 봉군 받아 (신)죽산안씨로 분관하였고, 안원린은 탐진군을 봉군 받아 탐진안씨로 분관하였다. 원형과 원린은 원래 순흥안씨 후손이므로 다시 순흥안씨로 복관을 허용해야한다는 논리입니다.
● 순흥안씨 선계변정록의 첫번 째 실수
첫번 째 잘못된 접근: 안원숭은 외동이 아니고 삼형제라는 주장입니다. 순흥 안씨 족보는 물론이고 김태현의 개성왕씨 묘지명 등 여러 자료에 원숭은 외동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안원숭 삼형제는 없었습니다. 원숭과 원형은 형제가 아닙니다. 원형은 죽산안씨로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원숭 삼형제 주장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안상천 족조께서 주장하시던 '하죽계안씨삼자등과시서'는 글에는 당대의 시간 개념이 들어가면 올바른 해석이 가눙 합니다. 삼형제는 없고 원숭은 외동아들입니다.
안우장군기념사업회(탐진안씨) | 죽계안씨삼자등과 등장 인물 (1358,1378) - Daum 카페
안우장군기념사업회(탐진안씨) | 죽계안씨삼자등과축하시 서 (1378년)-올바른 해석 - Daum 카페
안우장군기념사업회(탐진안씨) | 안목의 아들은 한명이다! 원형과 원린은 없다(1358년) - Daum 카페
● 안원형은 안원숭의 동생이 아니고 아버지 뻘입니다.
아래는 하바드-옌칭 도서관 소장 등과록(登科錄)의 고려 우왕 2년 병진(丙辰, 1376)년 문과방목이다.
이 해에는 안종원의 아들 삼형제가 모두 문관급제하였고 또 안원숭의 아들 삼형제가 모두 급제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안조동이 목은 이색을 찾아가 "죽계안씨삼자등과 축하시"를 부탁하였을 때이다.
그런데 1376년 문과방목을 보면 안원숭(安元崇)의 차남 안조동(安祖同)과 안원형(安元衡)의 손자 안노생(安魯生)이 동방(同榜)으로 급제하여, 방목에 친족과 본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생원 안조동은 부 원숭. 조 목, 순흥인
진사 안노생은 부 면, 조 원형, 죽산인
안조동과 안노생은 간은 연배일 것이다. 형의 아들과 동생의 손자가 문과 동방이라는 것은 생리학적으로 전혀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안원형이 안원숭보다 한 세대 위이다. 그리고 안원형의 본관은 죽산인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안원형(安元衡)이 안목(安牧)의 아들이고, 안원숭(安元崇)의 동생이라면 같은 방목에 부자간, 형제간, 조손간, 숙질간의 본관이 다르게 적힌 셈이 된다. 이 또한 있기 힘든 일이다.
안원형은 원래 순흥안씨였다가 죽성군에 봉군되어 죽산안씨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죽산안씨였던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고려말 1376년 당시 한 문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안원형과 그 아들, 손자 등 불과 3~4명이 다른 친족과 달리 본관을 순흥에서 죽산으로 바꾸어 분관해 나왔을 리야 없을 것이다.
● 안원형은 죽성군이 아니고 광산군이다.
하지만, 새로 발견된 여러 기록에서 원형은 죽성군이 아니라 광산군임이 드러나서 그동안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원형은 원숭보다 한 세대 앞선 인물이고 광산군 봉군을 받았으며 죽산안씨 후손으로 판명 돠었습니다. 570년 전 묘지명이 새로 발견되었고 이는 기존 삼탄집에 존재하는 기록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신)죽산안씨는 2024년부터 정식으로 순흥안씨애서 탈퇴하였습니다.
안우장군기념사업회(탐진안씨) | 안원형(安元衡)은 원래부터 죽산안씨로 판명 - Daum 카페
애당초 목은 이색의 '하죽계안씨삼자등과시서'의 해석 실수에 출발했고, 후에 그 실수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예입니다. 사실은 누가봐도 잘못된 해석인데 그 주장이 과했다고 봐야겠지요. 이제 안종채와 안상천의 <순흥안씨 선계변정록>은 그동안 나온 자료에 의해 폐기 수순을 밟아야 합니다. (신}죽산안씨는 돌아갔고, 이제는 탐진안씨도 현명하게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야 할 때입니다.
● 순흥안씨 선계변정록의 두번 째 실수
두번 째 잘못된 접근: 원숭·원형· 원린 삼형제의 1341년 동시에 문과 급제하였다는 주장입니다. 더구나 고려사 역대 기록에 삼형제가 한날 한시에 문과에 급제했다는 기록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1341년은 안종원과 목은 이색이 등과한 해입니다. 이색이 이들 삼형제의 동시 등과라는 거대한 경사를 모를리가 있을까요? 목은 이색의 '죽계안씨 삼자등과 축하시서' 본문에 21개의 삼형제 등과 명단이 쭉 나열되어 있지만 원숭·원형·원린 삼형제의 등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안우장군기념사업회(탐진안씨) | 원숭-원형-원린 3인의 동시 등과는 없다1 (1363년) - Daum 카페
안우장군기념사업회(탐진안씨) | 원숭-원형-원린 3인의 동시 등과는 없다2 (1378년) - Daum 카페
안우장군기념사업회(탐진안씨) | 원숭-원형-원린 3인의 동시 등과는 없다3 (1390년) - Daum 카페
● 순흥안씨 선계변정록이 무너졌습니다.
원형은 실존 인물이고 문과방목이나 묘지명에 너무나 뚜렷한 기록이 있어 안원형은 죽산안씨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삼형제론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원숭·원형·원린 삼형제는 없습니다.
● 그러면 안원린은 누구인가?
탐진 시조 안원린은 1850년 경 탐진안씨 헌납공파에서부터 새로 출현한 이름입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원숭과 원형은 실존 인물이지만 원린은 없는 인물입니다.
원린이라는 이름은 원륜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배우자가 다릅니다.
아래 조중운의 씨족원류에 헌납공파를 보면 파조로는 전공총랑(典工摠郎) 안덕린 나옵니다. 전공총랑은 고려 때 정4품(차관) 벼슬이라고 합니다. 누가 봐도 아주 뜻뜻한 벼슬입니다. 제 추측으로는 원린이라는 이름은 원숭·원형의 돌림자에서 원을 따오고, 덕린의 린자를 빌려 와서 원린이라 지은 것 같습니다.
헌납공 안도(복)는 문과 급제가 1388년입니다. 당시 문과급제 평균 나이가 25세입니다. 평균나이게 급제하셨다면 도(복) 생년은 1363년입니다. 급제시 도이고 복보 기록에 복인 것으로 봐서 초명은 도이고 급제 후 복으로 개명한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그 당시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한 세대 나이 차이를 28세로 보면 전공총랑 안덕린공의 생년은 1335년 전후로 추정 가능합니다.
-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