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의 문향 만리 시조 60 손증호
장수 비결
-어느 할아버지 말씀
손증호
편하게 살던 친구 길 뜬 지 오래지만/일에 치여 살다 보니 세월 가는 줄 모르고/죽겠다, 바빠 죽겠다며 오늘까지 살고 있네//아내 말 잘 듣는 게 늘그막을 잘 사는 법/반찬 짜면 적게 먹고 더 짜면 물 마시고/스스로 수평 만드는 바다처럼 살면 그만//무얼 즐겨 먹는지 묻는 사람 많더라만/철 따라 차린 밥상 보약인 양 챙겨 먹고/때맞춰 나이 먹으니 여태껏 사네, 그려
「시와문화」(2020, 여름호)
손증호 시인은 경북 청송 출생으로 2002년《시조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침 발라 쓰는 시』『불쑥』『달빛의자』등이 있다.
‘장수 비결’은 어느 할아버지가 들려준 말씀이다. 편하게 살던 친구는 길 뜬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시의 화자는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세월 가는 줄 몰랐고 그러다보니 죽겠다, 바빠 죽겠다 하면서도 오늘까지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바쁜 일이 이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삶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고, 살아야 하는 까닭이 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특히 둘째 수 초장에서 아내 말 잘 듣는 게 늘그막을 잘 사는 법, 이라는 말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 아내 말이 삶의 처방전으로 순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오래 살아본 사람은 안다. 백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로 내리막길을 내닫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동반자인 할머니다. 모든 것을 다 헤아리고 있으니 그때그때마다 들려주는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옳다. 늘그막을 잘 살기 위해서다.
반찬 짜면 적게 먹고 더 짜면 물을 마시면 된다고 하는 말은 상황 대처 방법이다. 자칫 잔소리를 늘어놓다가는 어려운 일을 겪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수평 만드는 바다처럼 살아야 한다는 자각에 이른 것이다. 그야말로 슬기로운 가정생활이다. 사람들은 흔히 무엇을 즐겨 먹는지 묻곤 한다. 시의 화자인 할아버지는 철 따라 차린 밥상을 보약인 양 챙겨 먹으면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물 흐르듯 순응의 삶이다. 정말 때맞춰 나이 먹으니 여태껏 살고 있는 것이 맞다.
그의 단시조 두 편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먹자 시대’다. 요즘 수 없이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먹는 일을 방영하고 있다. 먹어야 살 수 있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다. 공자는 뒷방차지 중이고 맹자도 두문불출 상황이다. 노자와 장자까지 은둔하고 나자 바야흐로 먹자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먹방에 빠져서 먹고 먹고 또 먹고 있다. 온 나라가 먹는 일들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듯한 시대 상황을 비틀어 풍자하고 있다. 진실로 순자, 한비자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어딘가에 먹자, 라는 도 닦는 이가 있어 세상을 휘젓고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내 인생’에서는 한 번뿐인 내 인생 제대로 살아야지, 라고 말하면서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할지를 닻과 돛, 덫으로 이분하여 말하고 있다. 세 낱말은 모두 한 글자로 ㅊ, 이라는 받침을 가지고 있다. 닻으로 살아가든 돛으로 살아가든, 이라고 말하면서 누군가 해코지하는 덫으로야 살 순 없지, 라고 읊조린다. 닻은 배를 정박시킬 때 필요한 도구다. 돛은 바람을 받아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덫은 짐승을 꾀어 잡는 도구의 일종이자 남을 헐뜯고 모함하기 위한 교활한 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장수 비결’과 더불어‘먹자 시대’와‘내 인생’을 음미하면서 제대로 사는 삶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