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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을 주옵소서(5) 내가 먼저 갖추어야 할 마음(3)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였소
2023년 3월 12일 / 창 17:1-8
창 17:1-8 / 아브람이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내가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도록 하여라.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라. 그리고 바른길만 걷도록 하여라. (ㄴ. 히. 엘 삿다이) 2) 나는 너와 계약을 맺어 네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게 하리라.'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르셨다. 4) `내가 너와 계약을 맺는다. 이제 너는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리라. 내가 분명히 약속하마. 5) 네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다.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고 부를 것이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아브라함이다. 6) 나는 네 후손이 수도 없이 불어나게 하리라. 네 후손 가운데에서는 여러 왕도 나올 것이다.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여러 나라를 이룰 것이다. 7) 나는 네게 한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또한 앞으로 오고 올 세대인 네 후손과도 이 약속을 지킬 것이다. 8) 그리하여 이 약속이 나와 너, 그리고 네 후손 사이에 세운 영원한 계약이 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사도행전 3:1-10을 주옵소서(5)’라는 제목으로 ‘내가 먼저 갖추어야 할 마음’ 세 번째는 ‘이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어드리자’라는 고백과 하나님의 긍휼만을 기다리자.
하나님은 4천여 년 전에 우상 숭배꾼이고 우상을 만들어 판매하며 살아가던 데라의 아들 중에서 75세 된 아브람을 부르셨다(행 7:2). 그리고 그로 하여금 언약을 성취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주셨다. 하나님의 언약 바탕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민족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은혜로 주신 구원을 찬양하는 민족으로 삼으려는 주권적인 섭리이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430년 애굽의 노예 생활, 40년의 광야 생활, 70년의 포로 생활을 거치는 환난과 연단의 시련기를 거쳐서 하나님의 언약 앞으로 점점 다가가는 민족으로 다듬어져 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걸쳐 예수님을 이 땅에 메시아 즉 그리스도로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민족이 우상을 숭배하고 어리석은 믿음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아브람이 어떻게 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의 언약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브람의 선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섬기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신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12장 1절부터 소개된 아브람의 부르심에 대한 내용을 잘 안다. 아브람은 75살이 되도록 하나님을 깊이 아는, 하나님께서 내 세울만한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창 12:1-3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다. `너는 어서 고향을 떠나거라. 한데 어울려 사는 네 친척과 네 집안 사람들을 떠나 내가 가르쳐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또한 네게 복을 내려 이름을 날리게 하리라. 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3) 네게 복 빌어 주는 사람에게 나는 복을 내리리라. 네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에게는 나 역시 저주를 퍼부으리라. 무릇 땅 위에 살고 있는 민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
▶ 연결고리가 되는 사도행전 3:1-10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과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누가복음 5:1-11을 보면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예수님)께서 쓰시려는 일꾼들을 부르실 때 여러 모양으로 부르신다. 베드로와 요한이 세례 요한의 제자였듯이 아브람도 전혀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시 11:8 /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향을 떠나 약속해 준 먼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고향을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어느 정도 깊은 신앙이 있었다. 누가 하나님께서 고향을 떠나 약속해 준 먼 땅으로 가라고 지시했다고 하여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이 있는지? 그것도 자기가 머물고 있는 생활 터전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040km가 되고(창 11:31), 하란에서 가나안 땅 아브람이 처음 도착한 세겜까지는 약 630km가 된다. 그것도 교통이 잘 발달한 지금도 쉬운 것이 아닌데 주전 2천 년경이라면 얼마나 힘든 순종이었겠는가?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 그는 아내 사래 그리고 아버지를 잃고 살아가는 외로운 조카 롯을 데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출발을 했다.
창 12:4 /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아브람을 따라 길을 떠났다.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다.
▶ 아브람은 그때까지 자녀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났지만, 오랫동안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없었다.
이에 아내 사래의 요구를 받아들인 아브람은 사래의 여종인 하갈을 침소에 들여서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언약의 자손이 아니었다. 그 후 13년 세월이 흐른 후에 100세 된 아브라함은 90세 된 아내 사래를 통해서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다.
전능하신 분으로 아브람을 찾아오사 첫 열매인 본보기가 되라고 하심
창세기 17장은 아브람의 나이 99세, 아내 사래의 나이 89세 때의 일이다. 99세 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 기자는 이 점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히 6:17-18 /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그 약속이 완전하다는 것을 보증하셨으며 그분의 계획이 변경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는 조금도 할 필요가 없도록 하셨습니다. 18) 하나님께서는 약속과 맹세를 동시에 다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둘은 우리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찾아 하나님께 피해 온 사람들은 하나님께 이러한 보증을 받고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을 조금도 의심 없이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 17:1 /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내가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도록 하여라.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라. 그리고 바른길만 걷도록 하여라.
이렇게 말씀하신 원인은 이렇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섭리와 상관이 없이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사래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침소에 들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 사건 이후 하나님은 13년 동안 자식에 대한 말씀은 하시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하여 13년 동안 아브람과 단절하신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언약에 대하여 별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 뿐이다.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수용하기까지에 대한 기록은 나와 있지는 않지만 13년 동안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경건의 훈련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제자로서의 실수와 잘못은 용서받기가 쉽겠지만 사도가 된 후에 실수한다면 엄청난 파급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언약하신 대로 사래에게 약속의 자식을 주실 때가 가까워져 오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잘못을 꼬집어 지적하셨다. 아브람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온전한 씨가 되어야 하기에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약속의 자식이 태어날 것이며, 거룩한 씨로 인하여 신앙의 대를 이어갈 수가 있다.
사실 다른 사람들에 비교하면 아브람은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럴지라도 언약의 대를 잇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출발하긴 했지만 늘 그렇게 살지는 못했다.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아내와 함께 애굽을 갔다가 하마터면 아내 사래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길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 아브람은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기도 하였다.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덜컹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도 하나님의 기대에서 벗어난 일방적인 자기 판단이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간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 행동은 제멋대로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내 속에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가 다 알아서 판단하고, 내가 다 알아서 결정하고, 내가 다 알아서 추진하고 아쉬울 때만 잠깐씩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매달리는 것은 믿음의 삶도 아니요.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간사한 행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찬송가 449장처럼 살아야 하는데, 여기에서 ‘아브라함처럼’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의 첫 열매가 되어야 했다.
449장 ➊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후렴: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➋ 해를 당하거나 우리 고생할 때 주가 위로해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➌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복 내려 주시리라 ➍ 우리 받은 것을 주께 다 드리면 우리 기쁨이 넘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은혜 풍성케 하시리라 ➎ 주를 힘입어서 말씀 잘 배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주를 의지하며 항상 순종하면 주가 사랑해 주시리라
크게 번성하리라는 언약.
13년 동안 이러한 면에서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던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자녀들이 크게 번성하길 원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이시다.
창 1:28 / 그들에게 이렇게 복을 내리셨다. ‘딸아들 많이 낳아 그 후손들이 온 땅 위에 퍼져라. 땅을 정복하여라. 내가 바다에 사는 물고기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땅 위에 기어다니는 온갖 짐승들을 다스릴 권한을 너희에게 주마. 너희는 그것들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축복하셨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물고기와 새와 땅의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시다. 이 세상 아버지들도 아들딸이 각 분야에서 창성하고, 창대하고 번성하고, 융성하고, 왕성하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발전해가고 성장해 나가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믿고, 섬기고, 따르고, 경배하며 살기 원하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잘되고 크게 번성하기를 원하시고 또 원하신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다윗처럼 그 어떤 원수를 이기기를 원하셨다. 시편 23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시 23:1-6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그 무엇이 부족하리오. 2) 편히 쉬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고이 쉬라 시원한 시냇가로 데려가시네. 3) 내게 생기 불어넣으시고 똑바른 길로만 이끌어 주시니 주님이 아니고서야 주님의 이름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리. 4) 나 죽음 그늘 드리운 깊은 골짜기 지난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없이 가리라. 주께서 내 곁에 함께 계시니 목자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와 막대기처럼 인도하여 주시니 하고 많은 시름 사라져 버리고 이 마음 이렇듯 든든하여라. 5) 원수들 두 눈 뜨고 쳐다보는데 보란 듯 이것 앞에 잔칫상 차려 주시고 귀한 손님 대접하듯 기름 발라주시며 잔이 흘러넘치라 하고 부어 주시네. 6) 아, 그 누가 이렇듯 행복하리오. 이처럼 포근하리오. 주님의 손길 살아생전 끊이지 않으리니 이 목숨 살아 숨쉴 동안에 주님의 전에 오래도록 살으리이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가 끝났을 때 한 제자가 와서 말하였다(눅 11:1). ‘주님, 침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 같이 저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마 6:9-13 /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높임을 받으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13)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주기도문은 누구나 다 알고 외우는 기도문이다.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필히 사모하며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하여 완벽하게 가르쳐 주셨다. 예배 순서에 있기에 묵상하는 것보다는 삶에 그대로 반영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리하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마음에 되새기며 믿고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75세 된 아브람을 부르셨다. 많은 양과 염소와 소와 약대를 거느리고 살던 대 족장 중 한 사람이었던 아브람을 부르신 것은 아브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세상 사람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며, 신앙으로 돌보는 리더로 살기를 기대하여 부르셨다. 그래서 복도 주셨고, ‘애굽 경계에서부터 큰 강인 유브라데강까지 그 온 땅을 후손에게 주겠다’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켜야 할 십계명을 주시려는 목적도 그랬다.
출 19:4-6 / 내가 애굽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또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어떻게 내게로 데리고 왔는지 너희는 다 보았다. 5) 온 누리가 다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되리라. 6) 너희야말로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러주어라.'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선한 목적은 어떤 것일까? 하나님께 여쭤보면서 신령한 목적을 세워라. 그리고 그 목적에 도달하도록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자.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 도우실 것이다.
아브람은 재산가였지만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번성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안타깝지만 아브람은 조급한 나머지 아내 사래의 말을 받아들여 아내의 애굽 출신의 하갈이라는 몸종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다(창 16:16). 그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였다.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도 아니다. 이스마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아무리 애굽 여인 하갈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아브람의 자식인 것은 분명하다.
창 16:12 / 네가 낳은 그 아들은 고삐 풀린 들나귀처럼 살아가리라. 그는 닥치는대로 사람에게 달려들어 받으리라. 또한 사람들도 모두 다 그에게 달려들어 치고 받으리라. 그렇듯 피붙이들까지도 서로 외면하리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 13년 만에 아브람에게 자손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대로 아브람을 통하여 약속의 자손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육의 자식 하나 못 주실 그런 무능한 하나님이 아니시며,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면서 다음 말씀을 이어가시려는 의도였다.
즉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자기 판단대로 결정하고 이스마엘을 낳은 경솔한 소행에 대하여 속앓이하고, 그 실수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또 다짐할 때 오셔서 ‘너는 내 앞에서 온전하라.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신 번성의 언약은 양과 염소와 소와 약대의 수가 번성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언약의 아들 이삭을 통해 언약의 자손들이 온세상에 퍼져나가는 번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을 통하여, 쌍둥이였지만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하여, 야곱의 장남 르우벤이 아닌 유다와 그의 혈통을 따라서 다윗이 탄생하게 하셨다. 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지게 하셨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시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사도들을 통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부활하심을 전하시려 하심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지전능 하나님을 믿어야지 아브람처럼 초개(草芥)와 같은 자신들을 믿으면 안 된다. 이스마엘을 낳는 행위는 분명히 인본적인 행위이다. 세월이 흐르고 하나님이 침묵하실지라도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러하시겠지?’ 하며 게으르지 말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과 기름을 철저히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하면 때가 되매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찾아오실 것이다.
예수님이 당부하신 말씀을 보면서, 아브라함처럼 CORAM DEO 완전한 신앙을 추구하며 살아가자.
마 24:44-47 / 그러니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라. 인자는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예고도 없이 올 것이다. 45) [충성된 종과 불충한 종; 눅12:41-48] 슬기롭고 충성스러운 종은 과연 어떤 사람이겠느냐? 주인이 맡긴 집을 잘 관리하고 주인의 자녀들에게 때맞춰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46) 그 주인이 돌아왔을 때 종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 종은 칭찬을 받을 것이다. 47)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주인은 이런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맡길 것이다.
온전한 성도가 되자 /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인 5장에서 여러 말씀을 하신 후에 48절에서 ‘그러므로 너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능력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39-48절 말씀들을 실천하는 온전(완전)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나? 아니다.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에 십자가를 지려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다. 그래야 아브람이 아브라함, 사래가 사라, 제자로서의 단계를 넘어 베드로와 요한처럼 사도로서의 임무를 준행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브람, 사래, 야곱, 제자로서가 아닌 아브람, 사라, 이스라엘, 사도가 되는 것이었다.
누가복음 6:27-4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이라, 사래를 사라라고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와 13년 동안 자손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말씀하시는지를 좀 알 것 같다. 누가복음 6장이 창세기 17-18장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눅 6:27-48 / 모두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 주고 너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29) 만일 누가 네 한쪽 뺨을 치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 대고 겉옷을 달라 하거든 속옷까지도 주라. 30) 네게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주고, 누가 네 것을 가져가거든 도로 찾으려고 애쓰지 말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가 먼저 남에게 해주라. 32)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사랑해서 너희가 상을 받을 줄 아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33) 너희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그것이 그렇게 장한 일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하고 있다. 34) 만일 너희가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돈을 꾸어 준다면 그게 무슨 선한 일이겠느냐? 악한 사람들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꾸어 준다. 35)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보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창세기 17장에서 18장 사이에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는지는 모르나 1-2달도 안 된 것 같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회개와 더불어 굳건한 믿음으로 무장했을 것이다. 아브람이나 사래가 아닌 아브라함과 사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 한 가지 실례를 볼 수 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가 된 이들은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한 것을 히브리서 13:1-2에서 ‘진실한 형제애를 가지고 꾸준히 서로 사랑하십시오. 잊지 말고 나그네에게 친절히 대하십시오. 늘 나그네를 잘 대접하던 어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일도 있었습니다.’라고까지 하였다. 이는 창세기 18:1-8을 보면 17장 1절에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내가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도록 하여라.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라. 그리고 바른길만 걷도록 하여라.’라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실천하기 위하여 애쓴 모습이었다. 늙으지막에 쉴 만도 할 터인데 그것도 대낮에 나그네를 지극 정성으로 접대한 것은 믿음과 행함이 일치한 것으로 본받을만하다.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있었건만 나이가 많은 족장으로 손수 그렇게 행동하기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창 18:1-8 / 여호와께서 마므레라고 하는 상수리나무 수풀 곧 거룩한 나무가 많이 있는 수풀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한참 뜨거운 때인 한낮에 아브라함이 자기 천막 앞에 앉아 있다가 2) 언뜻 눈을 들어 보니 그 앞에 세 사람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브라함은 그 세 사람을 보자마자 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들을 맞아들이고자 하였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댈 정도로 깊이 절을 하고는 3) 말을 붙였다. `어르신들, 제가 올리는 소청이 괜찮으시다면 저의 집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잠시만이라도 쉬었다 가시지요. 4) 날도 이렇게 더운데 물을 좀 가져오겠습니다. 하오니 발도 좀 씻으시고 시원한 저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가 가시지요. 5) 소인이 어르신들 드실 음식을 가져오겠습니다. 하오니 음식을 드시고서 기운을 차리신 뒤에 길을 떠나시지요. 어르신들께서 이 소인의 집을 찾아 주셨으니 그지없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고맙소. 그렇게 합시다.'라고 그들이 대답하였다. 6) 아브라함이 급히 천막 안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일렀다. `여보, 어서 가장 좋은 밀가루 세 되를 가져다가 빨리 떡 좀 만드시오. 저 손님들을 대접해 드려야겠소.' 7) 이렇게 말하고는 가축 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통통하고 기름지게 생긴 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다가 종에게 넘겨주면서 빨리 잡아 요리를 만들라고 일렀다. 그 종은 급히 송아지 요리를 준비하였다. 8) 그래서 아브라함은 버터와 우유와 송이지 요리를 그 손님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 세 사람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아브라함은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는 여행자나 굶주린 자들을 위한 긍휼의 풍습이 많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인데, 곧 그들은 자기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여겼다. 더욱이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자신 역시 언제 어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그네에게 친절한 대접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나그네 대접은 먼저 본문에서처럼 초청의 말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초대를 받으면 나그네는 기꺼이 그 집에 들어가 대접받았고 더 나아가서 주인에게 3일 동안 자신에게 대접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주인은 낯선 사람을 들어오도록 초청한 후 그의 발을 씻어 주고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 주었다. 먼저 마실 물을 제공하였는데 이는 손님을 평온하게 맞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손님이 데리고 온 짐승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이러한 나그네에 대한 풍성한 대접은 그가 비록 적이라고 할지라도 베풀어졌다(출 23:4 /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번성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이고, 백 살이나 먹은 늙은이가 어떻게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사라가 아흔 살이나 먹었는데 아이를 낳는다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여쭈었다. ‘주여, 이스마엘이나 오래도록 살게 해주소서. 이스마엘이나 내 대를 이어 재산을 물려받게 해주십시오. 주께서 하신 약속을 이스마엘에게나 잘 지켜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아들이 태어나거든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어라. 나는 너와 맺은 이 계약을 반드시 지키겠다. 이 계약은 네 아들 이삭뿐만 아니라 이삭의 후손들에게도 영원토록 이어질 것이다. 네가 이스마엘을 얼마나 아끼는가는 지금 네 말을 들어서 잘 알았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내려 그가 많은 자식을 얻게 하리라. 그의 후손도 부쩍부쩍 불어나게 하리라. 이스마엘이 열두 부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고 그 후손들이 큰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하지만 내년 이맘때쯤에는 네 아내가 낳을 네 아들 이삭과도 계약을 맺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야기하시고 떠나가셨다. 아브라함은 이때를 기점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자식인 이삭(웃음이란 이름까지 지어주심)을 주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었다. 그러나 아직 사라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자식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창세기 18장에서 천사들이 이들을 찾아온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것도 있었겠지만 아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사라를 권고하시기 위하였을 것이다.
창 18:10 / 그 손님들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내년 이맘때쯤에 내가 다시 이 집으로 찾아올 것이오. 그때쯤 되면 그대의 부인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오' 그때 사라는 아브라함의 뒤 천막 문간에 서서 이렇게 오가는 말을 들었다.
창 18:11-15 /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 늙었고 사라는 달거리가 끊긴 지 오래되었다.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이리도 늙었고 내 남편도 저렇게 나이 많이 먹었는데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무슨 낙이 있겠나.' 하고 중얼거렸다. 13)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아니, 사라가 나의 말을 듣고 비웃기만 하는구나. 그러고는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으랴.’ 하는구나. 14) 아니, 그래,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느냐? 내가 조금 전에도 말하였다만 내년 이맘때쯤이면 내가 반드시 이 집에 다시 찾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가 분명히 아들을 낳을 것이다.” 15) 그러자 사라는 무서워하면서 ‘난 비웃지 않았어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아니다. 너는 분명히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웃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왜 이렇게 사라의 믿음이 부족된 것을 공개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겠는가?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약속보다 18장에 나오는 약속은 매우 강력한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누가복음 6:43-45에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44) 그 맺는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게 된다. 무화과는 가시나무에서 나지 않고 포도를 가시덤불에서 딸 수 없다. 45) 선한 사람은 그 선한 마음에서 선한 행동을 하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이 속에 숨어 있어서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 입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아브라함이라는 씨는 좋은데, 사라라고 하는 밭이 좋지 않다면 제대로 열매가 열릴 수가 없다. 그러기에 사라를 위해 이렇게 찾아오셔서 강한 어조로 다시 약속하시면서 사라로 하여금 불신을 버리게 하셨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사라도 앞으로는 믿음의 어머니답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사라의 헌신적인 봉사를 보시며 사라의 부족한 믿음을 보충해 주셨다. 그 후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합심하여 기도할 것마다 응답해 주셨다. 이후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무엇보다 자기네들이 합심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할 때 응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 18:18-20 /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땅에서 매어 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어 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정으로 말한다. 만일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 위에서 마음을 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8:16-19과 18:17-33을 보자.
창 18:16=19 /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빌다] 그 손님들은 식사를 마치고 길을 떠나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길 떠나는 손님들을 배웅하느라 함께 따라왔다. 17) 여호와께서는 속으로 생각하셨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을 아브라함에게는 숨길 필요가 없지. 18) 아브라함의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매우 크고 막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고, 또 아브라함을 통하여 내가 세상 모든 나라들에게 복을 내릴 터인데, 19) 내가 아브라함을 가려 뽑는 까닭도 이 사람이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내 말을 잘 따르라고 일러두어 저희가 올곧은 일만을 하고 올바른 일만을 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만일 저희 후손들이 그렇게 잘 따라 준다면 내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모두 지켜야겠다.'
이어서 나오는 17-33절에서 아브라함은 멸망할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롯이 살던 그 계곡의 성들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고 그의 조카 롯이 몸을 피하도록 배려하셨다(창 19:29). 우리가 드리는 중보기도의 수준은 어느 정도를 되돌아보게 된다.
▶ 이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이들처럼 연약한 성도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들어 주시며 함께 하실 것이다. 믿음의 후손들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이셨다’라는 것을 믿게 하시는 은총이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2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고 언약하셨고, 13:16에서는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시겠다’라고 하셨다. 15:5에서는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겠다’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창세기 17:2에서 다시 말씀하신 것이다. ‘큰 번성’이 사람의 노력, 사람의 계획, 사람의 수고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언약하심을 이루어나가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렇게 중요한 언약을 아무 때나 성취해 주심은 아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100% 믿게끔 하시고, 사라 역시 의심을 버리게 하셨으며, 이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께서 항상 자기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믿으며 살도록 하셨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되 바른길만 걸어가야 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모든 것이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렇게 언약의 자식인 이삭에게도 신앙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를 번제물로 드리려 할 때 순한 양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가 있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믿음의 어머니 사라, 거룩한 언약의 자손인 이삭은 지나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했을 것이다.
은혜 / 작사 & 작곡 : 손경민
1절 /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후렴)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2절 /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결 론
<사도행전 3:1-10을 주옵소서(5) 내가 먼저 갖추어야 할 마음(3)>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였소.’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번성의 축복은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을 보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초대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외부적으로, 내부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갔다. 준비된 일꾼인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 복음은 전파되었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행 2:40-41 / 그러고 나서 베드로는 긴 설교를 통해 예수에 대해서 알려 주고 악한 세대에서 구원받을 것을 모든 청중에게 강력히 호소하였다. 41) 이날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여 믿은 사람들은 다 침례를 받았는데 그 수가 3천 명이나 되었다.
행 4:4 / 그런데 두 사도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으며, 새로 믿은 사람들은 남자만도 5천 명이나 되었다.
이런 역사는 사도행전에만 있었던 은혜가 아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미국 켄터키주 인구 6,000여 명의 작은 마을 윌모어에 있는 애즈베리대학교(Asbury University)에서 지난 2월 8일(이하 현지 시간) 수요 예배 당시 시작된 부흥의 불이 현재까지도 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부흥을 촉발시킨 한 기도 내용이 화제다. 예배 당시 자크 미어크립스(Zach Meerkreebs) 목사는 로마서 12장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는데 강조점은 ‘급진적 겸손’이었다. 마친 후 드린 기도에서 아래와 같이 전했다. 그는 ‘설교를 마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기 전까지 여기를 떠나지 말라.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라. 그 사랑이 부어지도록 계속해서 부어지도록 말이다’라며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다시 채우실 것’이라고 했다. / 중국계 말레이시아 브러더 홍(Brother Hong) 교수는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유학하고 말레이시아에서 14년 동안 교수 사역을 하던 중 2015년 애즈베리 대학교에 방문 교수로 머물렀다. 2016년 에즈베리의 교수직을 내려놓고 ‘신학교 부흥을 위해 전적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순종하여 매일 5시에 모임을 갖고, 2019년에 윌모어로 이주하고 애즈버리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 애즈베리 대학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에 대해 故 빌리 그래함 목사의 딸인 앤 그래함 로츠(Anne Graham Lotz) 여사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조카인 존-폴 로츠(John-Paul Lotz) 박사와 애즈베리대학의 즉흥집회에 방문했다. 버지니아주 소재 리젠트대학교 신학대학원의 부교수인 로츠는 부흥 운동을 관찰하기 위해 이 대학에 파견됐다. 로츠는 “폴은 나에게 문자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곳은) 지도자도, 경쟁자도, 질투도, 교만도 없었고, 모든 겸손, 온유, 부드러운 마음, 비틀거리는 죄인들, 수천 명의 호기심 많은 방문객들을 자신도 모르게 자비를 향한 사랑으로 섬기는 상냥한 학생들이 있었다.”고 묘사했다. / 부흥의 현장은 어떤 거대한 역사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하고 질서가 있었다. 하늘이 갈라지는 역사나 폭풍우가 일어나는 거센 파도가 아니라 참석한 사람들 마음마다 차분하게 임하는 하나님의 영적 임재로 가득했다. 체계적인 준비도 없었지만, 찬양과 기도와 예배는 진정한 마음을 담은 영혼의 울림이 온 예배당에 넘쳤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너무나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영적 임재였다. /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애즈버리 대학교는 2월 20일 오후 5시에 지난 13일 동안 지속된 공식적인 예배를 마쳤다. 학사 운영의 마비와 안전사고를 우려한 학교 당국은 2월 24일 채플을 마지막으로 연속 집회를 마감한다고 선언했다. 2월 24일 부흥 17일째. 대학에서 공지했던대로 캠퍼스 내의 부흥 예배는 끝이 났고 이후 부흥회는 전적으로 대학 밖에서 이루어졌다. 애즈베리 대학 내의 부흥 예배는 끝이 났지만 주최자가 없는 만큼 외부에서도 부흥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지속적인 부흥을 경험하려면, 진짜 부흥을 증명하려면 성결된 생활을 통해 사도행전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아브라함에 약속하셨던 언약은 모세를 통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약속하셨다(신 28:1-14).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세상 것으로 인한 염려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원하셨던 참된 믿음의 생활을 하자.
마 6:26-34 / 공중의 새들을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너희 목숨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는 왜 의복 때문에 걱정하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으나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그 꽃만큼 아름답게 옷을 입지는 못하였다. 30)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돌보아주시는데 하물며 너희야 더 잘 돌보아주시지 않겠느냐? 31) 그러므로 음식과 의복을 쌓아 두려고 걱정하지 말라. 32) 왜 그런 것에 마음을 쏟고 자랑을 늘어놓는 이방인처럼 되려고 하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3)3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
우리 모두 손에 손을 잡고 ♬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를 부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만을 걷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문 좁은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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