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닥 또닥 천장에서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눈이 오려나 했는데 비다. 어릴때 비만 오면 밤이라도 우산 쓰고 후래시 밝히며 감나무가 심어진 동네 꼭대기 졸졸졸 물이 흐르던 도랑가 떨어진 감을 주우러 바구니 들고 나섰던 기억이 또렷하다. 작고 덜 익은것은 버리라고 언니는 말했다. 저쪽방에 화장실 천장은 그야말로 뚝뚝뚝뚝 생음악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좋다. 마치 우산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옥상에서 대문 안쪽으로 졸졸졸졸 떨어지는 작은 분수소리는 참 듣기좋다고 했는데 남편은 듣기싫다는 소리로 알아 들어 제거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언니랑 시골 언덕에서 내려오던 물줄기처럼 좋아 같은 하늘아래 살아도 보기힘든 언니랑 그 옛날 비 오는 날 감홍시 주울때 그 냇가에 흐르던 물소리 같았는데 싹뚝 잘리어 간 마음을 알런지.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본다, 창에 기대인 가느다란 모과가지에 어느새 싹이 돋아났다. 야호! 봄이다. 봄. 자연은 신비롭다.
어느날 차 수업을 간다고 모명재 길을 걸었다. 그날도 이때쯤이었다. 먼 산에 아지랑이라도 피어났나. 봄을 맞이하는 때 아닌 이때 산에 내린 눈이 안개와 함께 피어나는데 이런 현상을 뭐라 표현할까 형언할 수 없는 지상에서의 환상적인 풍경 천상신비이었다. 휴대폰에 사진을 남겼지만 찰나의 그 순간은 내 눈으로 본 것이 다이지 결코 담아지지 않는 신기루이었다.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풍수지리에도 밝다는 두사충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두씨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라고 했다.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 담겨 있듯 나는 나데로 그 뜻을 몰랐어도 기분좋은 느낌으로 걸었다. 이상하게 공기가 좋고 그 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기분이 좋았다. 한때 도서관에서 시공부를 같이했던 그녀랑 그 안쪽 건물에서 구청에서 지원하는 다례수업을 들었다. 차에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내가 들으러 가는 용학도서관에서의 방언수업에 함께하여 그 고마움에 말차수업에도 등록하게 되었던 것이다. 종소리와 함께 명상에 잠기고 자연과 더불어 이제 막 피어난 계절꽃. 매화랑 노오란 개나리도 상에 예쁘게 세팅했다. 차를 나누고 헹구고 익숙치 않은 기구이름. 몸에 배이지 않은 실습할때 몸가짐과 실습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몸에 좋은 차를 마시고 좋은 생각을 지닌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생활태도인가. 차그릇을 담는 주머니도 예쁘게 만들었다. 끝나면 주변 찻집에 들러 전시한 각종 작품도 보고 또다른 차도 맛보고 식사도 했다. 일주일 만에 만나 그동안 얘기 못한 일상을 주저리 주저리 얘기하며 수다도 떨어 힐링이 되었다.
뭐라해도 내겐 모명재로 가는 길이 좋았다. 그냥 좋았다. 그가 명나라를 그리워 했듯 나는 우리나라에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산책하기 좋은 그길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 또 이 길을 올까 막연했다.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일부러 찾아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기회가 왔다. 길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나 보다. 또다른 배움을 꾀하기 위해 그쪽으로 갈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일부러 그 길을 아침마다 지나쳤다. 이상하게 도롯가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그 길목으로 들어서면 기분이 달랐다.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 때묻지 않은 태곳적 냄새가 났다.
어느날 강의가 끝나고 땅만보고 질러 가는 길을 무심코 걸었는데 누구네 감나무인지 감이 여러군데 떨어져 있었다. 감홍시다. 그옛날 시골 공소에 외국 신부님이 방문하면 교리를 달고달게 가르치던 동정녀가 접시에 제일 크고 잘생긴 대봉감을 가득 담아 바쁘게 서둘러 가던 모습을 몇번인가 보았다. 아, 나도 저 감을 가지고 싶다. 먹고싶다. 어린 마음에 달처럼 품었던가 보다. 모명재에서 그렇게 크고 발그레하고 땅에 떨어져도 이쁘게 살짝 상처 난 감은 처음 보았다. 주인이 누굴까? 어제도 그제도 그자리에 그대로~ 식초가 되기전에 내가 먹어야지. 어느 날엔 누가 아는듯이 한쪽으로 두개씩 상처나지 않은 감을 나무쪽으로 모아 놓았다. 감껍질을 벗겨 먹기전에 사진을 찍었다.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듯 하였다. 그동안 맛본 홍시 중에 제일루 맛있었다. 그뿐인가 그곳의 빛깔도 고운 꽃들은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며 잘가라며 반겨주었다. 담벼락에 뭉게뭉게 오른 장미는 매혹적인 향을 마구마구 뿌려 주었다. 여러가지로 배고픈 나에게 그 해 가을은 참으로 따뜻했다. 대봉감으로~ 자연은 역시 위대하다. 치유의 능력도 있다. (20240206)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