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수호지 - 수호지 57
- 북경성의 함락
산채의 충의당으로 노준의를 모신 송강 일행은 갖은 말로 그를 설득해 보았으나 노준의는 절대로 산적이
될 수 없다고 버티었다.
사흘간 성대한 잔치가 끝나자, 노준의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다.
"이 산채를 빨리 떠나고 싶다기보다는 가족이 걱정을 할까봐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오용이 말을 받았다.
"그러면 아랫사람을 먼저 보내 가족들을 안심시키도록 하지요."
노준의는 더 할 말이 없어 그러마 했다. 노준의는 사무장 이고를 먼저 보내면서 당부를 하였다.
"내 형편이 네가 보는 바와 같으니, 집에 돌아가거든 마님께 말씀 잘 드리고 가게 일을 돕도록 해라."
산채에 혼자 남게 된 노준의는 그 이후로도 몇 번 떠나겠다고 청을 해 보았으나, 송강이 노준의를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고 했기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어 노준의를 붙들어 놓았다.
하지만 노준의는 항상 마음은 밖을 향해 있었던 터, 한 달이 지나자 송강과 오용은 더 이상 노준의를
붙잡아 두지 못하고 떠나 보내 주었다.
한 달 만에 겨우 빠져 나온 노준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길을 재촉하여 열흘 만에 집에 도착했다.
바로 그때였다. 한 떼의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다짜고짜 노준의를 포승줄로 포박했다.
하인 이고가 주인 노준의를 양산박의 한패로 몰아 관가에 고발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송강은 군사 오용과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했다.
"노준의는 결국 우리 때문에 그 지경이 되고 말았소. 어떻게든 그를 구해야겠는데 무슨 좋은 생각이 없소?"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북경으로 쳐들어가서 돈과 식량을 빼앗아 산채의 살림에 보태기로 하지요."
오용은 그날 밤에 작전 계획을 짰다.
때는 마침 늦가을이라 군사의 의복도 가볍고 말도 살이 쪄서 사기가 높은 터라 큰 싸움에 임하는 양산박
무리들은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제 1대는 선두를 달릴 척후대로서 이규가 군사 5 백을 이끌고, 제 2대는 해진, 해보, 공명, 공량이
군졸 1천을 거느렸다.
제3대는 호삼랑, 손이랑, 고대수가 군사 1천을 이끌고, 제4대는 이응, 사진, 손신이 군사 1천을 이끌었다.
중군 본부에는 총두령인 송강, 군사 오용을 위시하여 여방, 곽성, 손립을 배치했으며, 전군 사령관에 진명,
부사령관에 한도와 팽기가 임명되었으며, 후군 사령관에 임충, 부사령관에 마린, 등비가 임명되었다.
좌군은 호연작이 구붕, 연순을 부장으로 삼아 지휘하게 했으며, 우군은 화영이 진달, 양춘을 부장으로 삼아 거느렸고, 그 밖에 능진이 포수로, 대종이 양곡 수송 및 염탐꾼 두령으로 임명되었다.
양중서도 관군을 점검하여 병마 대장 문달과 기병 대장 이성에게 경계 태세에 임하게 하는 한편
삭초 장군에게 선두를 맡겼다.
이성과 삭초가 전신을 투구와 갑옷으로 감싸고 대장기 밑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5 백 명쯤으로 헤아려지는 양산박 군사가 나는 듯이 밀려왔다.
이규가 쌍도끼를 비껴들고 두 눈을 매섭게 부릅뜨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이규 다음으로 앞장선 장수는 화려하게 치장을 한 여장수였다. 그 여장수란 다름 아닌 호삼랑이었다.
관군의 기병대장 이성은 기가 찬지 혀까지 차며 입맛을 다셨다.
"저 따위 너절한 계집년과 싸워야 하다니 창피한 일이군. 삭초 장군이 본때를 보여 주시오."
삭초는 명령을 받고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런데 호삼랑은 웬일인지 싸워 보지도 않고 말머리를 돌려 산기슭으로 달아났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이성은 군사에게 신호를 보내 일제히 공격 하도록 명했다.
호삼랑이 막 사라진 산기슭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땅을 뒤흔드는 함성이 솟구치고, 안개가 자욱해지며
한 떼의 군사가 나는 듯 덤벼들었다.
놀란 이성은 급히 군사를 뒤로 물리려 했다.
그러나 왼쪽에서 해진, 해보가 부하를 몰고 달려들었다.
도망가던 호삼랑도 말머리를 돌려 다시 물밀 듯 쇄도해 오니 이성의 군사는 종이조각처럼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첫 싸움에서 대패한 관군은 이튿날 문달이 지휘관이 되어 동틀 무렵을 기해 공격을 해왔다.
송강의 군사도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맞아 쇠북 소리와 함께 질풍같이 내딛고 있었다.
진명이 언덕 가운데로 혼자 말을 달려나가자 관군에서는 삭초가 말방울 소리를 울리며 마주 나왔다.
두 호걸은 맞붙어 2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거기에 송강의 군사 중 선봉에 있던 한도가 나와 말 위에서 활로 삭초를 겨누자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삭초의 왼팔에 명중했다.
삭초가 도망을 치자 즉시 송강의 군사가 일제히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쳐들어갔다.
시체는 들판을 뒤덮고 붉은 피가 냇물을 이루었다.
송강은 군사를 네 편으로 나누어 성을 향해 총공격을 가했다.
관군의 보병 대장 문달은 상갓집 개쳐럼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물에서 빠져 나간 물고기마냥 허겁지겁
도망쳐 진중에서 대책을 상의하고 있었는데, 한 군사가 달려와 보고를 한다.
"저 산 일대가 불타고 있습니다."
문달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 보니 동쪽 산 위에 무수한 횃불이 들과 산을 온통 비추고 있었다.
일이 다급해진 문달과 이성은 양중서에게 나라에 원군을 청하도록 건의했다.
사위로 부터 도움 요청을 받은 총리대신 채 태사는 각 군사령관을 회의실로 불렀다.
"북경이 도적의 손아귀에 넘어가기 직전이라니 누가 그들을 막아 낼 수 있겠소?"
모두 서로의 얼굴만 마주볼 뿐 아무 말이 없는데 붉은 수염이 달린 키가 엄청난 선찬이란 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왕의 사위인 부마였다.
"한말 삼국 때의 명장 관우의 후손이라는 관승이라면 이 일을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상장군의 지위를 내려 주십시오."
"그런 인재가 있다면 어서 내게 들라 이르시오."
"제가 그의 집을 알고 있습니다."
채 태사는 선찬을 관승에게 보내고 나서 각 군의 장군들에게 명하여 정예군 1만 5천을 징집하도록 했다.
다음 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