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문산 성당 (순례지/성지)
간략설명: 성당 건축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는 동서양의 조화
도로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소문길67번길 9-4
문산(文山) 본당은 마산교구 소속 본당으로 1905년 9월 22일 마산(현 완월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설립 당시에는 소촌(召村) 본당이었으나, 1913년 무렵부터 현재의 본당명으로 개칭되었다.
전사 및 공소 시대 지금의 진주 · 함안 지역에 천주교 신앙의 전파되고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60년대 초였다. 그 후 경상도 지역을 전담하던 리델(Ridel, 李福明) 신부와 함께 1865년경 거제도를 방문한 함안(咸安) 출신의 복자 구한선 타대오가 이듬해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일어나면서 매를 맞아 순교하였는데, 진주 문산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도 바로 박해 전 구 타대오에 의해서였다. 이곳의 신자 집단은 박해 후 다시 교우촌으로 재건되었으며, 1883년에는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의 방문으로 소촌(召村, 현 진양군 문산면 소문리)에 공소가 설립되었다.
소촌 공소는 그 후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가 1890년 초에 부산 절영도(絶影島)에 정착하면서 부산 본당(정식 명칭은 초량 본당) 소속이 되었다가, 1899년 6월 부산 본당 3대 주임 타케(Taquet, 嚴宅基) 신부가 진주(晋州) 본당을 설립하면서 이 본당 관할이 되었다. 당시 진주 본당 신자수는 1,054명이었는데, 그중에 소촌 공소 신자수가 156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후 타케 신부는 1900년 6월 29일 개항장으로 장래가 유망한 마산포(馬山浦)로 가서 마산 본당을 설립하였고, 소촌 공소는 다시 이 본당 소속이 되었다. 타케 신부는 마산에 정착한 지 1년 10개월 만인 1902년 4월 20일에 제주도로 전임되었고, 대신 제주도에 있던 무세(Mousset, 文濟萬) 신부가 같은 날 마산 본당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본당 설립과 초기 현황 1904년 무렵 소촌 공소 신자수는 160명에 달하였다. 이에 무세 신부는 본당 분할을 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게 요청하였고, 뮈텔 주교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새로 입국한 줄리앙(M. Julien, 權裕良) 마리오 신부를 1905년 9월 22일자로 무세 신부의 보좌로 임명하였다. 그에 앞서 무세 신부는 이미 마산 본당 관할 중에서 소촌 지역을 분리하여 새로 본당을 설립할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줄리앙 신부의 임명은 곧 소촌 본당의 설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산에 도착한 줄리앙 신부는 즉시 소촌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이듬해 1월에 가서야 삼곡리(三谷里)에 초가 세 채를 매입하고 임시 성당으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새 성당 부지를 물색한 끝에 1907년 소문리의 현 성당 부지 2,400평과 조선 시대 때 찰방 관서(察訪官署)였던 기와집 10여 채를 매입하고 성당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908년 9월 29일 새 성당을 완공하고 축성식을 거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