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7일(토) 밤
우리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는 게 아니라 아홉시에 떠난다. 저녁 아홉시 만들레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버강으로 간다. 일반석(ordinary class)과 일등석(upper class)은 좌석 차이다. 간격이 널찍하고 탁자가 있고 시트가 조금 푹신하면 일등석이다. 세오녀는 일등석을 끊지 않아서 영 불만이다. 일반석이라도 좌석이 지정되어 있기에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미얀마 숫자를 모르면 자기 자리도 찾기 어렵다. 모르면 차장에게 물어보면 된다. 사실 사람이 많이 누가 차장인지 구별이 안된다. 그럴 땐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면 이 사람, 저 사람을 연결하여 결국 차장이 안내해준다. 우리가 끊은 일반석은 나무 의자로 장거리 가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옷이나 담요 등으로 깔면 좀 낫다. 출발하기 전에 창밖으로 많은 장삿꾼들이 손님을 부른다. 주로 먹거리를 판다. 우리 나라 60년대도 저런 풍경이 있었지. 지금은 철도유통(예전에는 홍익회)이 판매를 독점하기에 사라진 풍경이다.
객실은 두 사람씩 앉게 되어 있고 서로 마주보는 좌석 배열이다. 찬이 옆에는 젊은 남자가 앉았다. 담배를 종종 피우는데 말릴 도리가 없다. 아직 미얀마에서는 기차 안에서 금연이 아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다. 대화 상대가 맞으면 밤새 얘기를 나누며 갈 수 있겠지만 아쉽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 나라 사람처럼 술을 마시거나 떠들지는 않는다. 중국 기차처럼 소란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태국 기차보다는 대화를 많이 한다. 물론 시설은 지금까지 타본 기차 중에 최하 수준이다.
찬이에게 아버지가 어릴 때 비둘기호를 타고 다니던 얘기를 해주니 귀가 솔깃하고 재미 있어 한다. 통로에 누워가는 사람, 선반 위에 올라가는 사람, 창으로 타고 내리는 사람. 예전에는 우리도 그러했었다.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것, 특히 아버지와 아들은 여행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누는 여행은 좋다. 여행하면서 아버지와 주고 받는 대화는 자식이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남는다. 직장 때문에 나의 아버지는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사셨다. 그러다보니 내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다. 대부분 아버지가 그렇듯이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상한 얘기를 들려준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직장 생활하느라, 세 아이를 키우느라, 남편을 모시느라 피곤한 어머니 역시 아들에게 뭔가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들려줄 여유가 없었다.
사춘기가 지나고 아버지와 둘이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몇 가지 얘기를 해주셨고, 피곤한지 눈을 감으며 다음에 더 많이 얘기해주겠다고 하셨다. 이후 아버지와 아들, 둘만의 여행은 지금가지 한 번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는 그게 무척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찬이는 지금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 그리고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를 나중에 얼마나 기억하게 될까? 나 역시 무척 피곤하여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어두운 기차에는 통로에 누워 자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 비둘기호 풍경 그대로다. 아니 그 이전 풍경일 지도 모른다. 객차 안에는 희미한 조명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어느 정도 지나서는 전혀 들어오지 않아 객실이 암흑이다.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가? 눈을 떠보고 정말 놀랬다. 정전? 그게 아니라 아예 불을 끄고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창밖으로 별들만 초롱 초롱 빛난다. 손님들은 저마다 후레쉬를 가지고 다닌다. 우리도 후레쉬를 꺼냈다. 밤 공기가 추워서 창문을 내리다. 창문이 닫힌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아니 창이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저 입구 쪽 출입문은 아예 없다. 찬 바람이 그대로 들어닥치고 있다. 양말을 신고 바지와 윗옷을 하나 더 입고 이불을 꺼내 덮어쓴다. 기차에 난방 시설이 있어야 할 판이다. 물론 난방도 안되고 차내 방송도 없다. 도대체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알 수가 없다. 몇 마일(?)이나 간 걸까?
밤하늘에 참 별도 많다. 출입문은 닫히지 않는 문이다. 고장이 나서 닫히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문밖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으며 문에 매달려 갈 수도 있다. 우리 나라 기차는 이제 모두 강제로 문을 닫기에 문에 매달려 가는 재미는 없어졌다. 안전의 이유로 로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어느 옛날 여름밤 청도에서 대구로 돌아오던 길에 저런 문에 매달려 보았던 그 별은 금새라도 쏟아질 듯하여 황홀함마저 느꼈다. 그 때 만큼 많은 별들이 보인다.
기차가 너무 덜컹거린다. 좌우로 흔들리다가 위 아래로 꼭 말을 탄 것 같다. 소리도 덜거덕 덜거덕 거린다. 선반 위에 올려 놓은 짐들이 떨어져 통로에 누워 자는 사람이 다칠 뻔 했다. 우리 뒤에 앉은 스님은 위에 올린 짐이 떨어지지 않도록 끈으로 묶는 작업을 한다. 속도가 빠르지 않는데도 요동칠 때면 탈선하거나 전복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잠을 깨곤 한다.
“떠거덕 떠거덕 떠거덕....”
이럴 경우는 상하로 진동할 때다.
“뒤뚱 저뚱 뒤뚱 저뚱”
이럴 경우는 좌우로 흔들릴 때다
화장실 가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앞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데다가 화장실에는 불도 없고, 문도 제대로 잠기지 않는다. 작은 볼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큰 볼일을 보려면 손잡이도 없고 휴지도 물도 없고 오로지 구멍 하나만 뚫려 있어 묘기를 부려야 될 것 같다. 일등석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리 볼일은 철저히 보고타길 바란다. 그런데 여덟 시간을 참을 수 있을까?
딱딱한 의자보다는 기차가 넘어지지 않을까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떠거덕 떠거덕 떠거덕....”
“뒤뚱 저뚱 뒤뚱 저뚱”
또한 버강 도착 시간이 다섯 시. 혹시 졸다가 버강을 지나지 않을까 염려되어 눈만 감은 채 선잠이다. 기차 여행을 우긴 건 나다. 창가에 앉은 세오녀는 이불을 덮어쓰고 불편함을 참는다. 맞은 편 찬이는 어쩐지 깊이 잠을 든 것 같다.
♣ 이 여행기는 2005년 12월 30일부터 2006년 1월 16일까지 17박 18일 동안 아내 세오녀, 아들 찬이와 함께 가족여행 기록입니다.
♣ 환율 1$=1,019.56 원(2005년 12월 30일),1$=1,110(2006년 1월 6일, 만들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