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향하여 4. "윤주희라고 합니다." 윤형사가 인터폰에 대고 자기 신분을 밝히자 굳게 닫혀있던 대문이 열렸다. 유여사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있다가 정원을 가로질러오는 윤형사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은 그녀의 손끝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윤형사가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유여사는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목례를 했다. "이리 앉아요." 유여사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비워주며 조심스런 눈빛으로 윤형사의 얼굴을 보았다. "의원님은 외출중이신가요?" 가정부가 내온 율무차를 한 모금 마시고난 윤형사는 여전히 상냥한 얼굴로 물었다. "며칠째 소식이 없어요. 당 총재께서 의원직 사퇴서를 반려하셨다는 소식을 들으셨을텐데 연락 한통 없네요." 유여사가 수심에 가득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사님, 오늘 제가 이렇게 여사님 댁을 방문한 것은 마지막 진실을 듣기 위해섭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여사님께서는 현재 매우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있어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어떤 질문을 드려도 숨김없이 대답해주실수 있는지?" 윤형사의 친근한 말투에 유여사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밝아지고 있었다. "뭐든 물어보세요. 내가 알고 있는 건 뭐든지 말해드리겠어요." "고맙습니다. 먼저 청평 별장에서의 일인데, 그 당시 볼룸댄스를 췄던 사람들의 파트너를 기억하실수 있는지요? 그날 여사님께서 댄스를 춘 파트너 분이 연박사님 뿐이었는지요?" "파트너요? ......케익을 자르고 나서 의원님과 내가 손님들에게 샴페인을 따뤄드렸고...... 그 다음에는 나와 의원님이 제일 먼저 볼룸댄스를 췄어요. 그리고 댄스가 끝난 뒤에는 장기자랑 코너로 이어졌어요. 나비향양과 소리미양이 람바다 춤을 추었고 의원님이 노래를 부르셨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 다음에는 테이블에 모여서 축하주를 마셨어요. 분위기는 아주 흥겨웠어요." "아, 네. 그럼 처음 춤출 때 다른 쌍의 파트너가 누구였는지 기억나는대로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러니까 연박사님이 강여사와 춤을 추었고, 박회장과 나비향양이 짝을 이루었고......" "잠깐만요, 여사님. 연박사님과 강여사가 함께 춤을 추었다고요?" "네, 그랬는데요......, 그게 뭐......" "그것 참 이상하네요. 연박사님과 강여사는 별거중에 있는 사이라는 걸로 알았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서로를 기피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여사님은 그 부부가 왜 별거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셨나요?" 그 질문에 유여사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잠시동안 침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심한듯 윤형사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건 강여사의 돼먹지 못한 사생활 때문이었어요. 강희는 여우보다 더 약아빠졌고 미스코리아 시절부터 남자 관계가 복잡했어요. 나는 다 알고 있었어요. 의원님이 그년의 꼬리질에 넘어간걸요. 그러나 난 모든 사실을 다 알고난 뒤에도 의원님 스스로 청산하리라 믿고 모른 척했어요. 그 년은 자기 본분을 망각한 더러운 년이예요. 자기가 미스코리아 진 출신이라는걸 마치 암행어사가 마패 꺼내듯이 떠들어대면서 세상 남자가 다 자기 미모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년이었어요. 자기는 여왕이고 세상 모든 남자는 장작 패는 머슴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거예요." 유여사의 동공은 어느새 분노로 불타있었다. 유여사는 강여사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한때는 그런 기분에 빠져든 적이 있었어요. 찬란한 미모만 있으면 그 어떤 남자도 내 하인으로 만들수 있다는 자만감에 빠져서 구혼을 해오는 남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러나 그년은 천성적인 악녀의 딸이었어요. 키르케 같은 년이지요. 남자의 욕정과 소유욕이 악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모르고 뭇 남성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미스코리아 시적부터 지금까지 여왕의 세계 속에서 살아온 년이예요. 한 마디로 미스쾨아 얼굴에 똥칠을 하고 다니는 갈보년이예요." 윤형사는 유여사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자코 앉아만 있었다. "저도 여사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요. 저 같아도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가만있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도 난 끝까지 참았어요. 의원님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요. 그러나 이젠 달라요. 내 인생을 남편의 인생 속에 포함시켜서 살 수는 없어요." 유여사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여사님, 진실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의원님과 강여사의 사이를 안건 언제 어떻게 아셨는지요?" "5월달에 있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이었어요. 아시겠지만 나와 연박사님은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기 때문에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연박사님께서 나를 조용한 커피숍으로 데려가시더니 구석진 장소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시는 것이었어요. 세상에......, 자동차 위에서 벌거벗은 그 년과 내 남편이......" 유여사는 말을 멈추고는 손으로 이마를 만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사진을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았지요. 박사님은 이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필름값을 지불하고 받았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물었죠. 왜 이런 것을 나한테 보여주냐고요. 그랬더니 박사님은 금방이라도 울듯한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그 년은 사람의 탈을 쓴 악녀하고 하면서 죽여버리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그래도 여사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윤형사가 재촉하듯이 물었다. "나도 처음엔 그 사진을 보고 둘 다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박사님이 그 년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게 오히려 당연한 게 아니냐는듯 동조의 눈빛을 보냈어요. 그리고 동시에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박사님과 불륜을 저지르고 불륜의 현장이 담긴 사진을 여러 장 찍어서 내 남편과 그 년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로서는 어떤 것이 가장 충격적이고 극적일까를 궁리하고 또 궁리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머리 속에서 끊이지 않는 살의에 휩싸여 있었어요. 나는 순각적으로 냉정해지자고 생각하면서 박사님에게 살인의 마음을 감추려는 의도에서 그러면 차라리 강여사하고 이혼을 하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나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상상 앞에 분노를 느껴야만 했어요. 우리가 이혼하면 그 둘은 메뚜기가 제철 만난듯 활개치고 다닐게 뻔한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울화통이 치밀어오르는 것이었어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그때 그 기분은 뭐라고 설명할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기분이었어요." 유여사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럼 여사님은 용인 별장에서 윤보혜양이 독살되었을 때 연박사님이 일을 저지른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윤형사가 물었다. "나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어요. 박사님이 둘중의 누군가를 독살하려다가 실수로 그 착한 진을 죽게 한거라고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칵테일 잔마저 사라졌으니 점차 박사님에 대한 의심과 확신은 굳어져갔어요." "그럼 반대로 연박사님은 여사님이 누군가를 독살하려다가 실수한 걸로 생각했겠네요?" "박사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때 박사님과 나는 홀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 년과 내 남편의 꼴불견을 보면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를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윤형사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추측한대로, 아내와 권의원의 불륜을 알고 있던 연박사로서는 보란듯이 춤을 추고 있는 두 남녀에게 모든 신경을 쏟은 나머지 마시고난 칵테일 잔이 자기 양복 주머니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다. "여사님, 기억을 잘 더듬어셔서 청평 별장에서 연박사님이 운명하시기 전에, 그러니까 박사님과 함께 춤을 추기 전에 테이블에 앉아있던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주시겠어요?" 윤형사는 준비해온 백지 위에다 동그랗게 테이블을 그려놓고 의자를 표시했다.유여사는 잠시동안 허공에다 시선을 두고 생각하는 듯하더니 자신의 좌석 위치부터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유여사가 마지막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종이를 건네주었을 때 윤형사는 현장에서 만든 그림과 똑같음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여사님, 의원님과 강여사의 사이를 알고 나서도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 계셨는지, 아니면......" 윤형사가 조심스런 눈빛으로 유여사를 보며 묻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내 남편에게 분명히 얘기했어요. 더 이상의 관계를 원치 않는다고요. 그때 당시 문화부 장관설이나 돌고 있었던 때라 스캔들화하고 싶지 않아서 한두 마디로 끝냈지만 지금은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한 내 자신을 후회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는지요?" "누굴 말씀하는건가요? 연박사님 말고 다른 사람이요?" "네." "알 수가 없었겠죠. 나도 연박사님이 얘기해주는 바람에 알게 되었으니까요." "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드리겠는데요, 춤을추다가 박사님이 쓰러지고 나서 김진건 아나운서가 제일 먼저 신체에 손을 댔다는데 그때 무슨 이상한 느낌 같은건 못받으셨나요?" "글쎄요...... 나는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박사님이나 나나 술에 취해 있었어요. 박사님과 나는 곡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10분이고 20분이고 계속 출 생각이었어요. 박사님이 춤을 추자고 제의할 때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박사님은 춤을 추는 동안 스텝을 제대로 밟지 못했어요. 숨이 무척 가쁜 상태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거였어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박사님이 쓰러진 게 우연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또 살인이 벌어졌구나, 이런 불안감이 빛처럼 뇌리에 엄습해오는 것이었어요. 난 박사님이 운명하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분은 김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였을거예요. 거기 모여있던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을거예요." 유여사의 말을 듣고난 윤형사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난듯 새로운 질문을 했다. "여사님, 우리 경찰이 현장에 막 도착했을 때 연박사님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려고 했나요?" "내 남편과 다른 모든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할 필요없이 시신을 서울로 옮기자고 막 합의를 보던 순간이었어요." "모두들 말인가요?" "네." "임종도 국장님도요?" "네." 윤형사는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서너 번 끄덕이고 있었다. "여사님, 그날 모였던 초대객들 중에 술을 많이 마셨던 분들은 누구 누구였는지요?" "내 남편과 임국장님...... 남자분들은 전부 다 술을 많이 드셨어요." "여성분들은요?" "글쎄요, 모두들 많이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그럼 쓰러진 연박사님 옆에서 5초 이상 동안 앉아있었던 사람은 누구 누구였는지요?" "글쎄요, 금변호사도 있었고 김아나운서도 있었고...... 아, 그 년도 있었고요. 그리곤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럼 의원님은 박사님의 시신 옆에 가지도 않으셨나요?" "내 기억으로는 근처에 가지도 않았어요." "나비향씨의 말을 들어보면 의원님만 제외하고 모두들 박사님의 시신 주위에 몰려있었다고 하던데, 사후 대책 수습회의라할까 박사님의 시신 처리 문제를 숙의하기 위해 테이블에 모두 모였을 때부터 우리 경찰이 당도할 때까지 테이블을 이탈한 사람은 한 명도 없겠지요?" "한 명도 없었어요. 모두들 의자에 앉아있었어요." "그렇다면 목덜미에 주사기가 꽂힌 시기는 박사님이 쓰러진 순간부터 모두 모여서 상의를 할 때까지의 사이인데, 어떻게 주사바늘을 꽂을 수 있었을까......" 윤형사는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비향과 유여사의 진술을 들어보면 범인이 기회를 포착해서 주사바늘을 꽂는 모습이 시간상으로 드러나보이긴 하지만 완벽하게 확보할 수 있는 살인 순간은 아니었다. 주사기를 꽂는 순간은 칼로 심장을 찌르는 모습처럼 살인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순간인데 그렇게 대담하게 주사기를 꽂을수 있다니.......초대객들이 취중이었기 때문에 쉽게 실행에 옮길수 있다고 확신했을까? 그리고 범인은 현장에서 주사기를 어디다 숨겼을까? 윤형사는 초대객의 소지품 검사에만 신경을 쏟았던 자신들의 좁은 시야를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청평 별장의 내부를 다시 수색해볼 필요성이 있음을 절감했다. 청평 별장 어딘가에 주사기가 감춰져 있다면 그 주사기에서 지문을 채취할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들이닥치자 당황한 범인이 재빨리 주사기를 숨길만한 장소를 찾아내어 감췄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몸수색의 한계상 범인이 몸 깊숙한 곳에 감췄다면 소지품 검사나 몸수색은 한낱 형식에 불과한 조사가 되었으리라. "여사님, 무척 고마웠어요. 진실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라는 걸 다시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며칠 후에 여사님을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데 의원님하고 꼭 같이 오셨으면 감사하겠어요." "무슨 파틴데요?" "파티의 내용을 말씀드리긴 아직 이르지만 아마 며칠 후쯤이면 이번 미스코리아 살인사건의 진실이 의혹 한 점 없이 밝혀질거예요. 그러니 그때 의원님과 꼭 참석해주셨으면해요. 장소가 어디라도요." 윤형사는 정원에서 유여사와 재회의 약속을 하고는 시경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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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영] 미스 코리아 살인사건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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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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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아리
08.05.27 14:49
첫댓글
잘봤어요^^
흐르는추억
08.05.27 16:05
드디어 결말을 향해 가네요~ 수고하세요~
미혜
08.05.28 11:33
주사를 놯다면 주사기는 화분 흙속에?
김성갑
17.11.24 09:40
감사
고바우영감
21.08.11 13:42
♡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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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어요^^
드디어 결말을 향해 가네요~ 수고하세요~
주사를 놯다면 주사기는 화분 흙속에?
감사
♡ 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