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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PC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스크립트를 차단했습니다. 원본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그리운 깨복쟁이-----김 경 태 |
요즘들어 이상스레 옛일들이 더 그리워지곤 한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어서일까.
사람이 지치면 마음부터 약해진다는 데 그 징조가 옛것에 대한 그리움
지나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살아나는 것일까. 깨복쟁이 친구들의 모임이나
번개모임이 있다고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참석을 하려고 한다.
깨복쟁이란 말이 나는 참 좋다. 시간과 공간의 벽을 순식간에 헐어버리는 말이 되어
정감이 넘치게 다가온다.깨복쟁이 시절이란 산 들 내려와 더불어 살던 자연과 하나 된 시간들이었다.하루 세끼 고구마와 감자로 때우는가 하면 무만 잔득 썰어 넣은 무밥 풀죽같은 멀건 밀가루 죽으로 배를 채우고, 학교에서는 갱냉이 죽으로 점심을 때우고 푸실푸실한 갱냉이떡은 집에 동생들 줄려고 먹고 싶을 것을 참고 가져와 나눠줬다.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런데 왜 그토록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그렇게 고생스럽기만 했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가난이나 어려움이 불행이 아녔던가 오히려 모든게넉넉하고 풍족한 지금에 그때 그 시절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지금보다 그때가 더 행복했던 시절이란 말인가? 추억이란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 까지도 미화 시켜 버리는 힘이 있는가 보다.우리의 어린 시절은 자연과 하나일 수 밖에 없던 시절이다. 놀이기구가 있었나, 보고 싶은 책이 있었나, 결국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놀아야 했으며 그러니 자연과 더불어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었다. 멱감기. 땅따먹기, 자치기, 구슬치기, 제기차기, 딱지치기,등은 자연과 더불어 노는 것이었다. 그런 놀이는 결국 사람과 사람 놀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노는 것은 사람끼리의 놀이다. 그렇게 싸우고 토라지고 돌아서기도 수없이 하지만 이내 풀어져 돌아와 다시 합세할 수 밖에 없었던 정의 자리였다. 어찌 컴퓨터 앞에서 혼자서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과 비교가 될 일인가. 국민학교 시절은 깨복쟁이의 황금기였다. 인간적인 교분이 가장 깊고 두텁게 쌓여갔던 시절일 것이다. 그러니 눈만 깜박여도 마음이 통하고,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뛰기만 해도 그냥 뜻이 전달되었다.학교 다니면서 먹을거리가 관심이 더 많아졌다. 한참 자랄 나이에 그러나 제대로 먹을 만한게 어디 있었으며 먹을 수 있는게 뭐가 있던가. 자연히 주전부리 감으로 눈알이 돌려지기 마련이었다. 그 또한 자연에게서였으며 그것은 또 놀이기도 했다. 하교 길에선 그 먹을거리를 찾아 참 바빴다. 저건 누구네 밭이고 저건 누구네 밭이지? 하고 확인되면 서슴없이 그를 앞세워 밭으로 들어가 고구마며, 무를 캐내왔다. 훔쳐먹는 맛이 더 기막힌 것 같았다.거기다 철따라 알알히 쏟아지는 밤이며. 감. 뻐루수. 오디. 진달래꽃. 감꽃. 아카시아꽃. 칡뿌리. 밭둑에 나던 삐비까지 사실 널려 있는게 우리들의 간식거리였다. 우린 그런 먹이사냥을 쉬지 않고 했다. 그뿐인가 한여름 갈증이 나면 큰대야에다 차가운 우물을 길어내어 설탕의 50배가 넘는 당도라는 사카린을 타서 벌떡대접에 꿀꺽꿀꺽 마시던 생각이 절로 난다.그런데 사카린 물뿐인데 잊을 수가 없다. 학교에 다녀오면 내 몫으로 대소쿠리에 설겅에 담겨 있던 밀개떡, 된장에 고추 하나로 찬물에 말아먹던 보리밥 맛도 지금은 아무리 느껴보려 해도 그때 그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하나 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깨복쟁이 모습을 손주손녀에게서 보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세월 무상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에게선 그런 정감이 우러나지도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게 또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좋은 일로만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어린날 어려움들이 이렇게 그리움으로 살아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편하고 넉넉하고 잘먹고 잘사는 것 그런 것은 먼날에 추억으로 살아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생하고 힘들고 어려웠던 것이 오랜 기억으로 남지 않던가 깨복쟁이의 그리움 나도 모르게 어느 날의 고향길을 마구 달려가고 있었다. 이것도 나이 탓일까.
첫댓글 멀리서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린시절 친구들이 부르던 노래 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싸하고 향수를 일으키는 글... 다시는 못 보게 될지 모르는 풍경들이라 생각하니 아픈 향수가 느껴집니다. 사방에서 귀만 귀울이면 바람 소리 같은 어린 시절의 풍경들이 소리가 되어 속살거리듯이 들려옵니다. 그것이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황량하고 지난했던 생활을 안온한 미소로써 기억하게 하는 것은 모두 세월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자치기, 딱지치기...다시는 못 보게 될지 모르는 어린 시절의 풍경을 나열한 방장님의 글 하나하나에 애정어린 시선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순수했던 그 시절이 자꾸 그리워 지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도심지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전학을 몇번씩 다니면서 졸업을 했기에 깨복쟁이 시절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졸업식 날 우리는 성공해서 다시 만나자고 맹세를 굳게 했던 생각이 어렴풋이 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제 반백의 나이에 접어 들었습니다. 성공의 기준은 어디에 두느냐에 있겠지만 아직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성공이자 행복이 아닐런지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