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노하우 살린 컨설팅이나 신제품 개발 지원 … 음식점·농업 분야 성공 확률 높아
노후 자금의 원천은 크게 네 가지다. 공적 이전(국민연금), 사적 이전(자녀봉양), 자산 소득, 그리고 근로 소득이다. 한국 노인은 앞의 세 가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믿을 건 직접 돈을 버는 것뿐이다. 늙어서도 계속 일해야 하는 현실적 배경이다. 은퇴 시점에 다가서고 노후 자금이 모자랄수록 더 그렇다. 문제는 일자리다. 가뜩이나 경제구조 변화와 경기침체로 일자리가 빠듯해졌다.
일자리 쟁탈전이 ‘노소 대결’로까지 번지니 더 어렵다. 유력한 대안이 창업이다. 중·장년층의 실업 탈출구로 창업 만한 게 없다. 다만 성공 확률은 극히 낮은게 문제다. 실패하면 더욱 빈곤해진다.
일본 노인은 어떨까. 한국보단 좀 낫다. 올 4월부터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정년이 연장됐다. 근로 능력·의사만 있다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업에겐 악재지만 개인에겐 다행스런 일이다. 기업들은 대부분 재고용 형태로 65세 고용보장을 받아들였다. 60세 전후 ‘은퇴 예비군’으로선 한숨 돌린 셈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정규직이면 혜택을 입지만 그나마 환갑 이전에 자발적으로 떠나라는 압력을 받는다. 집단적인 무시나 따돌림이다. 무엇보다 임금 피크제로 60세 이후엔 월급이 통상 60~70%로 준다. 비정규직(촉탁계약)으로 5년의 시한부 일자리를 얻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비정규직 신분인 동년배에 비해 행복한 고민이지만 나름 시름도 깊다.
정년은 짧지만 평균 수명은 83세다. 65세까지 일한다지만 그래도 여생이 너무 길다. 장수 리스크와 맞물려 뭘 먹고 살지 고민이 많다. 사회적으로도 악재다. ‘장수 불안→소득 정체→소비 축소→내수 침체’의 악순환이 벌어진다. 근로소득은 길어야 65세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인생 후반전의 지출 수요는 더 많다. 간병·의료비를 비롯해 생활을 옥죄는 지출이 적잖다.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다시 취업하거나 창업하는 것이다. 재취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태반이다.
간혹 해외에서 숨통을 틀 수 있다. 기술 습득이 시급한 신흥국의 은퇴 기술자 초빙이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대량생산을 넘어 품질관리 필요성이 커졌다. 기술지도란 명목으로 고문·자문 등의 직함으로 숙련 기술자를 유혹한다. 은퇴 기로에 놓인 숙련 기술자에겐 매력적인 제안이다.
소득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일하고 싶은 은퇴 기술자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일본에는 일자리 구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해외 취업은 제2의 인생살이로 나쁘지 않다. 기술 유출과 경쟁력 약화의 우려가 있지만 고도 기술자에 한정된 얘기다.
재취업 언감생심, 창업에 눈 돌려
재취업이나 해외 취업보다 쉬운 선택은 창업이다. 최근 일본에서 중·장년의 창업 기운이 무르익는 이유다. 중·장년 창업 기운은 일반적인 흐름과 다소 상치된다. 일본은 장기 저성장에도 창업이 한국처럼 실업 완충장치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실업=창업’이 아니다. 민간 고용에서 자영업 비율은 한국(28%)이 일본(11%)보다 훨씬 높다(2006년). 정부 지원도 먹히지 않는다.
법(신사업창출촉진법)을 바꿔 2003년부터 자본금 1엔 이상이면 창업하도록 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창업 환경이 좋지 않아서다. 실패 이후의 재도전 기회도 적다. 그러니 자영업자는 1996년 604만명에서 2006년 512만명으로 줄었다(노동력 조사). 2010년 국세조사에서도 자영업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특이하게 50세 이상 창업이 늘었다. 시니어 혹은 실버 창업이다. 일본에선 이런 중·장년 창업을 ‘숙련 기업(起業)’으로 부른다. 요즘 이 숙련 창업이 뜨겁다. 1947~49년 출생자인 1차 베이비부머 그룹이 창업시장에 본격 뛰어든 결과다. 50세 이상 창업 비율은 1991년 11.5%에서 2009년 25.9%로 늘었다(국민생활금융공고종합연구소).
개점보다 폐업이 일상적인 시대의 조류와 배치되는 숙련 창업에 관심이 쏠린다. 언론 매체에서는 경쟁적으로 숙련 창업의 성공사례가 등장한다. 일단 환영 일색이다. 창업이 실업 탈출구로 작동할 것으로 기대해서다. 숙련 창업이 단순한 자영업 증가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창조란 점에서 기대감이 크다.
숙련 창업 증가엔 이유가 있다. 우선 인구구조상 특성이다. 베이비붐 세대답게 인구가 많은 게 자연스레 창업 수요로 이어진다. 인구도 많지만 이들의 기초체력이 탄탄해 창업활동에 적극적이다. 높은 창업 동기, 충만한 도전 의욕이다. 회사 중추였던 현역 시절에 버블 붕괴를 겪으며 승진 기회를 잃었다는 점도 배경이다.
회사 밖에서 자신만의 출사표를 던지려는 유인이 높다. 쉽잖은 재취업 현실도 있다. 50대 이상을 받아줄 직장을 찾기 힘들다. 자아실현을 이유로 내건 경우도 많다. 취미 활동과 자원봉사만으로 노후를 보내긴 불만스럽다. 공적연금 수급 연령이 65세로 늘어나 소득 확보가 필요하다는 현실론도 한 몫 했다.
중년 창업의 절정은 50대다. 60세 이상은 창업전선에서 멀어진다. 60대 취업자의 취업 실태(2004년)를 보면 전체의 13.7%가 자영업주다. 직전 조사(2000년)의 17.3%보다 줄었다. 정년 이전의 창업 수요가 많다는 일반적인 추정과 맥이 닿는다. 정년 시점인 60대 이후에는 창업의욕이 다소 꺾인다.
장기·복합 불황으로 내수시장이 얼어붙어 성공 확률이 낮은 상황에서 섣불리 창업했다간 기회비용이 더 클 수 있다. 진취적 성향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다. 30~40년을 회사인간으로 살면서 자아실현보다는 상사 명령에 익숙한 경우가 태반이다.
숙련 창업은 이제 중요한 창업 트렌드가 됐다. 창업 지원 아이템까지 유력한 사업모델이 됐을 정도다. 실제 사업계획을 비롯한 자금 조달, 시장 개척 등을 전문적으로 조언하는 숙련 창업 세미나가 인기다. 선배 창업자의 생생한 조언 청취와 관련 정보 제공 등을 내세워 관심이 많다. 업계에 따르면 창업 후보의 30%가 실제로 창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단체의 창업 지원도 증가세다. 코스 개설로 관리직 경험자에겐 경영 마인드를, 영업자 출신에겐 재무 노하우를 알려주는 맞춤형 지원 과정이 강점이다. 자금 측면에서도 청년보다 비교우위에 있다. 무엇보다 사람을 다루는데 능하다. 오랜 회사 생활로 고객·직원·거래처를 움직이는 비결을 체득한 덕이다.
숙련 창업 아카데미도 인기
다만 도전 결과가 좋지만은 않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성공 확률은 60%대의 청년 창업과 달리 50% 밑이다. 생산 기반을 갖춘 중소기업으로 키운 숙련 창업은 특히 드물다. 성공사례는 본인 경험을 되살린 소규모 컨설턴트와 신제품 개발 지원 등이 압도적이다. 가족 도움을 전제로 특화·사업화한 음식점과 농업 분야도 비교적 성공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