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5월29일(금)■
(베드로전서 3장)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묵상/벧전 3:17-22)
◆ 고난을 감수하고 선을 행하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17)
나는 그동안 이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너무 뻔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전자가 후자보다 나은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오늘 아침에 나는 새롭게 이 말씀을 대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이란 말씀에 눈길이 머무르게 되었다. 세상에는 세 부류가 있다. 선해서 고난받는 사람, 악해서 고난 받는 사람, 그리고 고난만을 무조건 피하려는 사람. 그런데 사도는 우리에게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한다. 즉 우리에게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정의로울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선을 행함으로써 고난을 받는 것은 무척 억울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악한 무리들이 득세하는 이상 불가피한 일이다. 성도들은 기꺼이 감수해야 하며, 이러한 사실은 이 세상이 심판받아야 마땅한 곳이라는 것과 이를 위한 주님의 재림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도 말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믿고, 지속적으로 선한 삶을 추구하라.
◆ 우리의 본이 되신 그리스도
"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18)
선을 행하심으로써 고난받으신 분의 대표적 예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시기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셨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표준이며, 우리의 법이다. 그에게서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선을 행하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속해야 할 것이다.
◆ 노아의 홍수와 세례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3일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밝힌다. 죽으신 후에 3일간 감옥에 갇힌 영들에게 무엇인가를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들은 노아의 홍수 때에 갑자기 물에 휩쓸려 죽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주석가들이 해석에 곤란을 느꼈다.
사실 나 자신도 베드로 서신서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매우 불편했다. 마치 강사가 강의를 잘하다가, 갑자기 생뚱맞게 심한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것 같았다. 노아와 옥에 갇힌 영들의 이야기는 빼도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닐까, 왜 베드로는 구태여 여기에 이런 이야기를 집어넣는가?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보면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팩트만 체크한다면 오늘 본문은 죽은 후에도 다시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신다는 말씀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 때 죽은 사람으로 한정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에서 죽은 사람들은 다시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신 것인가? 오늘 본문은 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는 언급이 없다.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 무언가를 '선포'하셨을 뿐이다.
베드로가 이 에피소드를 언급한 목적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노아 홍수의 물은 우리가 받는 세례의 모형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물이 당시에 수천만 명이나 되는 온 세상의 사람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단지 8명의 노아의 식구만이 살았다. 수천만 명 중에서 겨우 8명이라는 숫자는 노아 식구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가를 새삼 일깨운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와 구원은 우리가 받는 세례에 숨은 의미를 알려준다. 세례는 노아의 홍수와 대비되어서 곧 우리 옛사람이 물 속에 장사되고, 그리스도라는 방주에 실려서 새사람으로 다시 살게 된 것임을 상징적으로 전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주님께서 죽으신 후에 지옥에 가셔서 노아의 홍수 때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기 보다는 단지 그들에게 너희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물로 심판받은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이 아닐까?
그런데 베드로는 여기에 대비해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주님께서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그들과 다르게 심판을 받게 되지 않고, 오히려 구원을 받게 됨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세례는 육체를 씻는 예식이 아니다. 세례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개역),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개역개정),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한글킹제임스)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선한 양심이 응답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방주에 탑승함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을 피하고 영원한 구원을 얻게된 자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 주님은 저의 구원의 방주이시며, 환난날에 피할 바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고, 저는 주님으로 인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선을 행하는 자로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