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다는 이점으로, 전혀 수면부족 없이 셀틱스와 히트의 두번째 경기도 시청했는데,
아, 우리팀 경기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흥미가 없어서 보기 싫더군요.
전에 댓글로도 한 번 썼습니다만,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농구는
1. 패싱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서 가장 확실한 찬스에 슛을 던지는 농구
2. 수비로 상대를 질식해 들어가는 농구
3. 원맨 팀이 아니라 선수 전부, 특히 백업까지 자기 롤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균형잡힌 농구 입니다.
반대로 제가 가장 싫어하는 농구가
1. 공 줘 놓고 다른쪽으로 전부 도망가서 아이솔레이션 지켜보는 농구
2. 수비는 뒷전이거나 아니면 하드 파울로 그냥 슛 저지하기에 바쁜 농구 (한국 농구의 고질병이죠...)
3. 주전들이 빠져나가면 백업들은 지키기에 급급한 농구지요.
우리팀이 지금 딱 제가 좋아하는 이상적인 농구를 하고 있기에, 이걸 보다 보니 히트 대 셀틱스가 자꾸 뒤쪽처럼 보이는 겁니다.
물론 셀틱스도 아주 좋은 농구를 하는 팀이고, 좋은 패싱게임과 수비농구를 하는 팀임에도 지금 우리팀 농구가 훨씬 더 유기적이고 끈끈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셀틱스와 우리가 붙는다면 이 이야기는 달라질 겁니다. 셀틱스의 수비는 제가 보기엔 현재 리그 최강입니다. 우리가 그 수준에 근접한 거구요.)
그리고 히트는... 팬들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예전 캐벌리어스 농구와 별 다를바가 없더군요. 르브론이 코트에 있으면 르브론이 탑에 설 때부터 그저 다른 네 명의 선수는 이 선수의 원맨쇼를 바라보면서 패스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농구. 물론 이 농구가 이기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건 동의하지만, 저는 르브론이 이 농구를 계속하는 한 결코 조던이 될 수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설사 이 플레이가 원맨쇼가 아니라 패싱을 통해 어시스트로 이어진다고 해도 이 플레이에서는 농구가 주는 근본적인 매력이랄까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웨이드가 공을 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찬스를 만들기보다 돌파 아니면 수비 달고 던지는 터프샷. 잘 들어가면 장땡이지 무슨 문제냐 하시겠지만, 여기엔 팀 플레이란 개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두 명의 천재들의 재능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농구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농구는 팀 플레이라는 아디다스의 계속된 광고 캠페인이 있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선수와 팀이 이걸 진짜로 믿고 실천할까요? 저는 이걸 실제로 믿고 실현하고 있는 우리 팀이 자랑스럽습니다.
덧붙여, 7년전, 디트로이트 우승 때 제가 지금은 발을 끊은 후추 게시판에 썼던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그리즐리스에 반하는 계기가 되었던 휴비 브라운 시절의 농구를 보던 때 쓴 글입니다. (휴비가 오늘 해설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팀이 완성된 걸 보고 얼마나 기뻤을까요)
농구는 팀 스포츠이다.
단순한 진리이지만, 쉽게들 잊어먹어버리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이걸 잊기 시작한 시기는,아마도 조던의 등장 이후부터일 겁니다.
'팀 조던'이라는 말에서 보여주듯이 조던 역시 최고의 팀을 만난 후에야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조던에게서 NBA의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았던 NBA 사무국은 오직 조던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어 마케팅을 펼쳐 갔습니다.
팀 조던이 72승이라는 NBA의 금자탑을 이룰 때, 여기에는 최고의 공수겸장 올라운드 플레이어, 득점을 버리고 오직 리바운드만 잡아내는 블루워커, 철저하게 조던의 패스에 의존하는 3점슈터, 그리고 스타가 될 실력을 가졌음에도 묵묵하게 식스맨의 자리를 짊어졌던 동구권 최고의 농구스타가 있었습니다.
조던이 사라진 후, 흡사 서태지 이후 그가 남긴 부정적인 영향만이 가요계에 남았듯이 NBA는 스타 마케팅에 의존하는 '나쁜' 농구로 변해갑니다.
쇼타임 덩크, 하프라인에서 날아오는 엘리웁, 힙합 리듬에 맞춘 하이라이트 믹스만이 농구의 전부인 양 포장되지요.
플레이 스타일도 정교한 패스워크와 탄탄한 팀웍보다는 스타 몇 명의 기량에 의존하는 아이솔레이션(솔직히 아이솔레이션은 작전이 아니지요. 그냥 한 쪽에 몰아넣고 구경하는, 최악의 플레이라고 생각함)이나 골밑에 넣은 후 빅맨이 몰아붙여 득점하는 농구로 변해갑니다.
실제로 이런 스타일의 팀들이 계속 우승을 거머쥐면서, 5년 넘게 맞춰온 팀웍보다 전국구 스타 한 명 영입하는 게 낫다는 구단주들의 판단으로 어느 스포츠보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잘 만들어온 농구의 프랜차이즈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팀 유니폼과 절대 떨어트려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선수들, 피펜, 힐, 말론, 페이튼, 올라주원, 유잉, 바클리 등이 스타 마케팅과 우승을 위해 팀을 옮기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선수간에 괴리를 느끼기 시작하죠.
이 모든 것은 NBA의 인기를 증폭시키기는 커녕, 점점 더 망가트립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수비못하는 반쪽짜리) 스타들과 돈으로 만든 사기수준의 올스타급 팀들은 이전의 잡초같은 허슬 플레이, 치열한 라이벌간의 대결구조보다 별로 흥미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두 해 전쯤부터 조용하게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제가 계속 띄우고 있는 그리즐리스, 올해 시즌 최강자였던 페이서스, 그리고 파이널 우승의 영광을 안은 피스톤스.
이 팀들은 모두 초대형 스타보다는 철저한 팀워크, 화려한 쇼타임보다는 침착한 팀플레이, 단순한 스타일의 공격농구보다 기본기에 입각한 수비농구로 강팀들을 물리치기 시작합니다.
주전과 식스맨의 구분이 모호할 만큼 백업들의 수준이 고르고 이들을 잘 활용하며, 주전들의 득점 분포도 편중됨이 없이 철저하게 비이기적인 플레이로 일관하며, 빅 스타가 없어 상대적으로 약한 인사이드를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과 박스 아웃으로 해결하는 이들의 농구는 잊혀졌던 팀스포츠로써의 농구를 되살려 놓았습니다.
이제, 디트로이트가 올해의 최강팀으로 등극하면서 이들의 농구가 다시 한 번 NBA 의 주류로 떠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NBA는 다시 부활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스타 농구...결코 농구에서 멀어지는 팬들을 잡는 해법이 아닙니다.
누가 봐도 이번 파이널에서 진정한 재미를 주었던 것은 코비의 에어플레이나 샤크의 포스트업이 아니라, 미친듯이 뛰어다니던 립의 성실함, 코비의 움직임을 거울처럼 따라가던 프린스의 수비, 공이 림을 빗나갈 때마다 야수처럼 뛰쳐올라 공을 걷어내거나 림에 다시 꽂아박는 벤 왈라스의 파이팅,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질식할 만큼 무시무시하게 프레스를 가하던 이 팀의 수비와 기계처럼 돌아가는 공격시의 패스플레이였습니다. 즉 이 팀 자체가 최고의 볼 거리였습니다.
샤크와 코비는 농구팬이 아니라도 압니다. 말론과 페이튼도 마찬가지죠.그러나 웬만한 팬이 아니면 이름도 첨 들어봤을 이들의 플레이는 그 스타들의 플레이보다 몇 배 흥미롭고 감동적입니다. 올해 파이널의 시청율이 미국에서 최근 몇 년간보다 두 배 가까이 올라간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농구는 기본으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피스톤스는 그 첫 걸음을 뗀 위대한 팀입니다. 그들의 우승은 팀 뿐 아닌 NBA, 농구에의 축복입니다.
첫댓글 거기에 적절한 내외곽비중과 확실한 스패이싱,,,,
멤피스 참 멋진농구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제가 농구 보는 관점도 다르고 디트를 응원하지 않아서인지 디트의 농구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팀으로 하는 경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농구가 아닌 축구에서 깨닫게 되었죠. 제가 축구를 거의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느팬들과 마찬가지로 박지성의 영향으로 프리미어리그를 가끔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과거 공만 뻥차고 무조건 달려하던 우리나라 축구의 저질 플레이와 달리 패스와 호흡 강력한 수비로 승리를 이끌어나가는 영국의 선진축구를 보면서 팀플레이의 경기가 이토록 재미있고 아름답구나 를 처음 느꼈었죠.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움을 제가 8년째 응원하던 멤피스에서 보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휴비브라운시절의 멤피스는 디트로이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잘 몰랐고 잘 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훼이보릿인 파우가솔의 스탯이나 플레이에만 신경을 썼었죠. 그래서 당시의 멤피스가 어떤 농구 스타일을 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저에게 매력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결과적으로 플옵 연패라는 불명예도 있었으니까요.
올시즌의 멤피스도 플옵이전까지는 게이와 랜돌의 클러치에 환호하고 메요가 부활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는데, 플옵에서 멤피스 이 녀석들이 제가 축구에서 깨달았었던 팀플의 아름다움을 깨우쳐 주네요...
여러모로 공감도 가고 재미있는 글이네요.
공감하고 저도 그런 스타일로 변한 덴버가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슈퍼스타가 팀플레이까지 해준다면 대박이겠죠
10인 로테이션 농구는 참 매력적이었죠.
좋은글 잘봤습니다 ㅋㅋ 전 보스턴을 응원하지만 그리즐리스 경기도 꾸준히 챙겨보거든요 ㅋㅋㅋ 공감되네요!!!
멤피스 메요!!! 정도밖에 몰랐는데... 플옵에서 경기를 꾸준히 챙겨 보고 있는데... 매력적인 팀입니다.. 쟈크라는 엘리트 파포가 있고 작은 가솔도 존재감을 발휘하고 베티에 토니앨런 콘리.... 오히려 팀에이스인 게이가 없는게 더 강한거 같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