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각서의 법적 구속력과 신뢰이익
글로벌 기업의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가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체결이다.
MOU는 해외 파트너와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통상 양 회사 간 최고 책임자를 모시고 진행하는 절차로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기도 한다.
비슷한 내용이 이름표에 L/I(Letter of Intent, 의향서)라는 글자를 새기고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적지 않은 경우 당초 화려했던 행사와는 달리 MOU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참석자 직위도 높고 언론에도 대서특필된 것과는 별도로 구체적인 거래로 연결되지 못하고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그야말로 단순한 ‘의향(생각)’만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없던 일로 해달라'는 MOU
MOU를 진행하면서 신경 써야 하는 분야는 어떤 MOU가 법적 구속력이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지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열심히 행사를 준비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협상하는 실무자 입장에서 가장 난처한 것은 상대측에서 ‘없었던 일’로 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경우다.
떠들썩하게 높은 분에게 보고했는데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정반대로 보고를 해야 하는 코너에 내몰리기 때문이다.
종합상사의 A 부장이 얼마 전에 당한 상황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최근 소비재 수출이 늘고 있는 데다 출산율이 높은 동남아에 아동복 생산공장을 현지 유통업체와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MOU까지 근사하게 진행하였다.
그런데 아침에 도착한 메일에는 사정에 의해 사업 추진 자체를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연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무산이다.
●내용에 따라 법적 효력 있어
이런 경우에 반드시 체크해야 할 사항이 있다. 통상 MOU나 LI는 법적인 효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제목만 보고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큰 무리가 따른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그 내용에 따라 손해배상 등 후속 조치를 충분히 요구할 수 있다.
MOU 내용에 강제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MOU를 하고도 법적인 보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글로벌 기업들은 MOU를 체결할 경우에도 전문가를 동원하여 법률적인 검토를 충분히 한다. 만약 요식행위로 그치게 하려면 구체적인 내용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실행 시기를 못 박거나 ‘언제 무엇을 한다’라는 문구를 넣지 않는다. 법적 효력을 부정하는 문구를 직접적으로 넣는 이중 장치를 하기도 한다.
●구체적 의무조항이 들어갈 수도
반대로 MOU를 통해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코자 한다면 은근슬쩍 구체적인 의무조항을 끼워 넣는다.
의무조항이 없더라도 프로젝트의 진행을 담보하겠다는 내용이 직간접적으로 반영되면 신뢰이익(信賴利益, reliance interest)이라는 문구로 포장하여 보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계약이나 약속(MOU 포함)이 유효하게 이행될 것이라고 믿고 상대방이 지출하거나 투자한 비용을 보호해 주는 개념으로, 여기에는 해외 파트너와 MOU 체결에 따른 수차례의 출장, 법률 검토, 샘플 제작 비용 등 다양한 비용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런 문구 넣으면 분쟁 예방
만약 MOU는 진행하되 이런 신뢰이익 관련 분쟁에 휘말리기 싫다면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참고 1, 2)
합작투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외에 사무실을 따로 임차하고 인력을 고용하면서 발생한 비용에 대해 떼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특히 프로젝트 검토에 수개월이나 수년이 걸린 경우 그 비용은 적지 않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더불어 실질적으로 확인하기 힘든 간접비용도 청구서에 포함될 수 있으니 더욱 유의해야 한다.
또한 MOU 체결을 제기한 측이라면 더욱 그 위험에 노출된다. 따라서 (참고3)과 같은 비용 처리 분담 조항이 매우 유용하다.
<참고1> This Memorandum shall be subject to the execution of a formal contract between the parties hereto. (본 양해각서(MOU)는 당사자 간에 체결되는 정식 계약의 체결을 전제로 한다.)
<참고2> This memorandum shall not be legally binding upon the parties hereto until a formal contract is made and signed by the parties hereto. (본 양해각서는 당사자 간에 정식 계약이 체결되고 서명되기 전까지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참고1 보다 강력하게 MOU의 법적 효력을 부인하고 있음
<참고3> The costs and expenses incurred under this Memorandum of Understanding shall be solely borne by the party who incurred such costs and expenses. (본 양해각서와 관련하여 발생한 비용 및 경비는 해당 비용을 지출한 당사자가 전적으로 부담한다.)
최용민
최용민경제통상연구소장
광운대·숭실대 겸임교수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