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IN WINTER
YIRUMA 시와 음악으로 그려내는 하얀 겨울 *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 하거나 인사를 건네려고 할 때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도, 그렇다고 사이가 소원해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 가끔씩 머뭇거리게 된다. 하지만, 순간의 어색함을 이기도 막상 얼굴을 맞대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
이루마의 인터뷰를 잡은 후 느낌이 이랬다면 어떨까. 물론 앞서 말한 것만큼의 친분은 아니지만, 벌써 세 번째 인터뷰로 만나는 그가 어쩐지 어색했다. 한때 인터넷 검색어 수위를 차지했고 또 네티즌들의 관심의 중심에 있던 그이기에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그는 달라진 거싱 없는 이루마 그 자체였다.
전날 음반 막바지 작업을 했다는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남아 있었다. 살이 빠진 것 같다는 말에 전혀 아니라며 정색한다. 인터뷰 시간에 늦은 것이,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한지 사진 촬영 중에도 그리고 인터뷰 동안에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다.
언제 입국을 했느냐는 질문은 이제 안부처럼 되어 버렸다. 8월초에 입국해서 9월에는 일본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학기만 마치 ㄴ것이냐는 말에 결국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며 길레 말을 늘인다. 한동안은 쉬면서 우리나라에서 활동을 할 것이라면서 말을 덧붙인다. 지난 인터뷰 당시 공부를 하고 싶다고 강하게 말하며 돌아가는 영국에 대해서 기대감을 가졌던 그를 기억하기에 그의 상심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터였다. 하지만 반가운 소식 하나도 동시에 전했다. 그가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영화 음악을 내년에는 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이 인터뷰 후에 공연 스케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료 교회 공연이다. 꽤 여러 곳에서 공연을 했고 매우 편안한 공연이다. 다행히, 기쁘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신다. '어떻게 치나 보다.'하고 오시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
앨범 타이틀이 [Poemusic]이다. 어떤 의미인지?
시를 듣는 것 같다는 말에서 착안을 해서 지었다. 시와 음악이라는 뜻 그대로 내가 쓴 시와 일기 같은 일상을 담은 글을 함께 담았다. 랜덤으로 들어도 다 연결되는 음악들이다. 스킵(Skip)은 안 했으면 좋겠다. (웃음)
여러 악기가 들어간 만큼 이번 앨범 작업이 예전에 비해 더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는가?
재미있었다. 더 풍성하고. 걱정한 것은 갑자기 악기가 나왔을 때 놀라지 않을까 하는 것과 어느 한 트랙이 너무 튀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일관성 되게 곡을 쓰고 앨범 작업을 했다. 스튜디오에서 갑자기 쓴 곡도 있다.
자신이 꿈이라 말 했던 정통 록 밴드의 음악은 들을 수 있는가?
뺐다. (웃음) 영 어색해서 뺐다.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일관성 영화를 귀로 들려주는 것처럼 모든 트랙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하는 것. 영화음악과 같이 자신이 세상 속의 중심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연주 음악의 매력인 것 같다.
재주 소년이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참여를 했고, 그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번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재주 소년의 그 어리고 풋풋한 그 느낌이 좋았다. 물론 재주 소년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테이의 음반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가요 앨범에 참여할 계획은 없는가?
안 그래도 이번 앨범에서 가요적인 느낌을 많이 내고 싶었다. 그래서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도 리메이크 해 담았고 'Because I Love You'라는 곡에는 유재하의 곡 '사랑하지 때문에'로 제목을 붙였다. 이 곡은 김현식의 '슬퍼하지 말아요'라는 곡과 비슷한 뉘앙스의 곡이다. 김덕수씨의 아들이자 현재 VJ로 활동을 하고 있는 슈퍼사이즈의 솔로 앨범에 참여 했다. 그리고 또 가수가 있니는 한데,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서 말을 할 수는 없다. (웃음)
유재하의 음악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들었고, 추모 앨범에 참여해 달라는 제의도 많이 받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근데 마침, 가사도 시적이서서 이번 앨범 컨셉트와 잘 맞고 11월 1일 기일이었는데 11월에 나오는 앨범이고 해서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무엇인가?
'Fotographia'이다. 조빔의 곡 중에 같은 제목의 곡이 있는데, 그 곡을 너무 좋아해서 그 제목을 썼고 한국 제목으로는 '희망이라는 아이'이다. 템포가 있으면서 첼로가 길게 가는 느낌이 영화가 끝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녹음 기간은 얼마나 걸렸는가?
10월, 11월에 녹음했다. 미리 써 놓은 곡은 고치고, 스튜디오에서도 곡을 쓰고 지금 내 상황 느낌을 그대로 담았다. 그것이 진정한 레코딩이라고 본다.
이루마의 이번 음반이 더욱 기대가 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지난 앨범을 피아노 솔로로 내는 마지막 음반이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작년에 발표한 [Nocturnal Lights...They Scatter]에서는 일렉트로니카에까지 촉수를 뻗은 바 있었다. 대체 피아노 솔로가 아닌 이루마가 어떤 음악을 선보일까 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대한 4집의 시간적, 촉각적인 배경은 겨울이다. 'Be My First'는 그가 현재 지내고 잇는 삼청동에서 눈이 내리는 상상을 하면서 만든 음악이며 '그 길에는 눈이 내린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연주가 어우러진 'Wonder Boy'의 부제 역시 '가을과 겨울이 만났다.'이다. 기타 연주로 시작을 열어 첼로의 연주가 끌어가는 'Fotographia'는 울창한 숲 속의 오솔길,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부서지는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또한 보다 많은 시도를 통해 다양함을 더했고 풍성한 들을 거리를 마련해 소소한 재미를 더한 것도 배 놓을 수 없다. 유재하의 곡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아무런 울림 없이 방 안에서 연주를 하듯 히작해서 갑자기 홀로 넘어가는 듯, 연주에 젖어드는 느'낌이 들도록 믹싱을 했다. 마지막 곡 'Words'는 'Just Wanna Say'를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것처럼 계속 깔고 그 위에 연주를 더 했다. 또한 푸딩 멤버들이 연주를 더해 퓨전 재즈 느낌의 리드미컬한 연주가 일품인 'Nocturnal Rainbow'역시 배놓을 수 없다.
영화 음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한일 합작 영화이고 [러브레터]처럼 영사과 음악이 가장 중요한 영화다.
내가 기다렸던 영화고, 시놉시스를 보면서 어느 정도 곡을 써 놓고 맞춰보는 것으로 작업하려 한다.
이루마를 벤치마킹하는 뮤지션들도 있다. 기분이 어떤가?
좋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최근 좋아하는 뮤지션으로는 장세용씨를 추천하고 싶다. 정말 실력 있고 앞으로 더 잘될 것 같다. 바라는 것은 이 사람 곡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확실한 자신의 색을 만들었으면 한다. 물론 그것은 나 스스로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루마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곡만은 꼭 들어 봤으면 좋겠다 하는 곡이 있는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대표 곡으로 말이다.
음, 이번 음반 중에서 고르고 싶다.(웃음) 'Fotographia' 그리고 첼로 곡 'Poemusic'
그에게 가장 궁금하지만, 쉽게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을 참다 참다 슬쩍 꺼냈다. 불편하다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로 시작한 질문에 그는 의외로 쉽게 이야기를 꺼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서로 상처를 주고 헤어진 것은 아니다."로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 친구는 쉬는 기간이었고 나는 너무 바빴고 뭐 그런 저런 이유로 헤어졌다. '연예인을 사귄다 실망이다.'라고 그러더라. 그런데, 연예인 같이 않았고 만나면 편하고 평범해서 좋았다. 사람들은 내가 첫 사랑만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살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다가 연예인을 만났다고 하니까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헤어지고 9월 10월에는 우울증에 걸릴만큼 상태가 안 좋았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이미지가 많이 깎였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물론, 숨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팬들에게 두 번 배신을 당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괜찮다."
그는 그렇게 솔직하게 속내를 보였다.
이번 앨범이 우울하고 슬플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희망적이고 밝게 음악이 나왔다. 헤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내 안에서 밝은 것을 찾으려 한 것 같다고 덧붙인다.
2005년 바라는 것은 다 이뤘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4집을 내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이뤘고 공연은 많이 안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많이 잡혔다. 거제에도 가고, 안 가봤던 포항에도 갈 예정이고 병원 콘서트도 계속 하고 잇다. 예술의 전당에도 1회 공연이었는데, 이미 매진이 되어서 한 회를 더 늘렸다. 12월 중순부터는 계속 공연을 하면서 지낼 것 같다. 이번 공연은 밴드도 함께해서 좀 더 풍성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이루마. 그의 첫 도발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조금은 수줍고 그래서 세세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겨울 눈 밑에서 간지럽게 빼꼼 고개를 내민 언 새싹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새싹이 곧 크고 굵은 나무가 될 것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이루마, 그는 또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의 걸음은 자신을 닮은 음악을 통해 더 넓은 세상과 만날 것이다. 늘 그러했듯이 말이다.
기사 발췌: 52 Street 12월호
글 정상임/사진 황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