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삼일절기념예배 설교문(영주중앙교회 간호남목사 원고 작성. 기장 총회 배포. 신동환목사 교정)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2025년 2월 23일 겔 43:10-12
1. 제106주년 삼일운동 앞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기장 총회가 제정하고 전국의 기장 교회가 한마음으로 하는 삼일절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조들은 나라와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태극기를 흔들며 항거했습니다. 이 투쟁은 1910년 한일강제합병 후 9년 만의 일입니다. 주권을 빼앗기고 핍박의 삶을 살던 민중이 자유와 독립을 외치는 데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자유와 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열망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온 민중이 거리로 나와 자유와 독립을 외치며 만세 운동을 벌였는데, 일본 제국이 그동안의 통치방식을 바꾸어야 할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만세 운동은 하루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과 교회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남전교회 교우들이 다수 참여했던 익산의 4.4 만세 운동이나, 3월 31일부터 시작된 제암리의 만세 운동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제암리의 경우, 만세 시위가 계속 확산하니까 결국 4.15일 교회당 안에 주민과 교인들을 모두 밀어 넣고, 총으로 사살하고 짚과 석유를 부어 불태워 죽이는 끔찍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이 나라의 모든 것들은 그런 선조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 있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제국의 침략 본성과 잔인함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패권 전쟁에 뛰어든 나라는 그것이 어떤 나라든 제국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남의 나라 주권을 침탈하고, 그 국민을 짓밟기에 그 잔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개발들이 마치 식민 종속국의 근대화를 이루는 바탕이 된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비주권적 발상이고 제국주의적 시각입니다.
일제는 사람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잔인하게 학살했습니다. 위안부로 끌고 가서 귀한 생명들을 무참히 짓밟아 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자기가 원해서 한 것이라 망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돌비석을 세우면서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라고 교육한 것처럼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억하고 기억하되, 증오가 아닌 본질을 알아차려서, 잘 대비하고 패권 제국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식민 경험을 가진 나라가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라 하겠습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경쟁과 선착순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하더라도 올바른 역사의식을 통해 사회를 꿰뚫어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삼일절을 맞는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과제입니다.
또한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이 싸워 이룩해 놓은 귀한 가치와 헌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이 주권을 빼앗겼을 때 신앙의 선배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성찰하고 그 뜻을 이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핍박의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낸 선배들이 많습니다. 일례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감리교의 신석구목사님은 일제 경찰에 잡혀 재판받는데, “피고는 조선이 독립될 줄로 생각하는가?”에 “그렇다, 될 줄로 생각한다.”, “나가서도 계속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에 “나는 독립될 때까지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을 외치며, 의연하게 신앙을 지켜낸 선조들이 많습니다. 곳곳에서 독립을 위해 일본 제국을 타격한 애국 운동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선조들의 정신과 뜻을 기억하고,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2. 거룩한 성전
오늘의 본문 겔 43:10-12은 성전에 관한 규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예언자에게 성전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겔 43:10입니다.
너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 성전을 설명해 주어서, 그들이 자기들의 온갖 죄악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고, 성전 모양을 측량해 보게 하여라.
“그들이 자기들의 온갖 죄악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고, 성전 모양을 측량해 보게 하여라.” 성전의 크기부터 측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보여주되, 그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자기를 돌아봐 부끄러움을 알도록 하라는 겁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거룩하게 하되 더 중요한 것은, 그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전 크기를 측량하는 게 우선될 수는 없습니다. 성전의 화려함을 감상하는 게 우선이 아닙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게 우선입니다. 예수께서도 성전의 크기나 화려함보다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에 이 만남을 통해 자기를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정확히 보는 겁니다. 나의 부끄러움, 나의 죄악을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로 말하자면, 나라를 잃고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황폐해진 원인을 보라는 겁니다. 한국 사회가 무너진 원인을 직시하라는 겁니다. 왜 이렇게 우리 사회가 혼돈의 늪에 빠져 있습니까? 도대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있습니까? 불의와 부정을 몰아내고, 정의와 평화를 제대로 세워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바로 이 물음을 묻고 있습니다.
3. 참회를 통한 거룩
한국 장로교회는 1938년 9월 10일,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결의합니다. 다음은 신사참배를 결의한 회의록의 내용입니다.
“아등(我等)은 신사(神社)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 의식임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려행(勵行)하고 나아가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있어서 총후(銃後)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期)함.” 소화 13년(1938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출처 : 주간기독신문)
신사가 종교가 아니고 애국적 국가 의식이니, 기독교 교리와 상관없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결의한 것입니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결의인데, 교회가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면서 변명을 붙인 것입니다.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운동을 벌인 지 19년 만에 한국 장로교회는 이런 안타깝고 치욕적인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 교회로부터 돈을 거두어 일본군대의 무기 구하는 자금으로 헌납하기도 했습니다. 1942년에는 ‘조선장로호’라는 전투기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이름 있는 목사들이 청년들을 제국의 용병으로 내몰고, 일제의 ‘대동아전쟁’에 협력하도록 시국 강연회 연사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는 오래도록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였습니다. 부끄러운 과오를 드러내기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뒤늦게라도 이 문제에 대해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단의 경우는 2007년도 총회에서 비로소 “신사참배와 부일협력에 대한 죄책 고백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오늘 공동기도 시간에 우리가 함께 낭독한 그 선언문입니다.
이 선언문에서는 한국교회가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죄악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재산을 국방헌금, 애국운동기념연보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에 갖다 바친 죄, 국민 총력의 허울 아래 일제의 군국주의 이념을 선전하고 일제의 전쟁 물자 징발에도 가담했던 죄, 군국주의 나팔수로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죄를 민족 앞에, 후손들 앞에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또다시 하나님과 민족의 역사 앞에 부끄러운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의 수치스러운 죄악을 기억하며 역사의 교훈으로 길이 간직하고자 한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 민족 자주의 정신으로 출발한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어떠한 불의와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한 진리로 선포”한다고 다짐했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도, 교회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전이 성전 됩니다. 성전이 거룩해지고,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건물이나 시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이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회개하는가가 핵심입니다. 그것이 관건입니다. 그럴 때 교회가 건강해지고, 진리의 빛을 발하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현존을 온전히 증언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겸손히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삼일운동의 정신을 오늘에 계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