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가면 마음이 열린다…
비오는 날 찾아간 고즉넉한 사찰 그리고 고요한 바다. 나는 아직 이런 풍경 속에 여행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꼭 한번은 비가 내리는 날을 택해 사찰 여행을 하고 싶다. 그렇지않아도 적막한 사찰 더구나 비까지 내려준다면, 어느 이름 모를 절집 처마에 앉아 비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를 듣고 싶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낮게 깔린 향내음과 희뿌연 산사의 안개 속에서 내 탁한 머리 속을 깨끗이 비워오고 싶다.
충남 서산에 있는 개심사 처마에 앉아 차분히 마음이라도 달래어보면 어떨지…
▶ 마음이 열리는 사찰 '개심사'
개심사(開心寺)는 상왕산 자락에 자라잡고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마음을 연다는 뜻의 개심(開心)이라는 이름처럼 아주 편안하고 아늑한 사찰이다. 개심사는 작은 절이지만 유홍준 교수가 꼽은 '5대 명찰'에 들 정도로 고즈넉함과 고풍스러움이 돋보이는 절이다. 백제 의자왕 14년(654년)에 창건됐으니 1000년이 넘은 사찰인 셈이다.
신창저수지를 지나 개심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면 각각 '세심동(洗心洞)'과 '개심사 입구(開心寺 入口)'라 쓰여진 낮은 돌 두 개가 있는데, 이 두 돌의 사잇길이 개심사로 오르는 길이다. 약 5분쯤 구비구비 돌계단을 따라 오르는 길인데,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계단이 피로함 대신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올라갈 때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내려올 때는 휘어지는 돌계단 길을 눈여겨볼 만하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균형감 있게 배치된 돌들이 석수(石手)의 정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또한 개심사에 오르는 길이 짧지도 길지도 않아서 정말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면 개심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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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다 올라 흙길을 조금 걸으면 맨 먼저 만나는 것은 긴 직사각형의 개심사 연못이다. 이 연못은 인공연못으로 상왕산의 모양이 코끼리의 형국이라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 전해진다. 개심사가 있는 상왕산(象王山)의 이름 자체가 '코끼리왕의 산'이란 뜻이니 코끼리와 무슨 관계가 있긴 한 것 같다. 연못 서쪽으로는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연못 가운데로는 통나무다리가 하나 있어 빼어난 운치를 느끼게 한다. 연못을 건너면 극락으로 들어갈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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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을 지나면 범종각 뒤로 안양루가 있다. 안양루의 현판에는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라는 예서체 글이 크게 쓰여 있는데,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이라 한다. 안양루 옆의 해탈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대웅전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만난다. 이 대웅보전은 보물 제143호로 조선 초기의 건물이라 한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이 개심사는 피해를 입지 않아 조선 초기의 건물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에는 별로 특이한 점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대신 대웅전 옆의 심검당 건물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심검당은 대웅보전보다 더 오래된 건물로, 기둥과 서까래로 사용된 나무들이 전혀 다듬지 않은 상태여서 눈에 띄게 휘어진 것도 있고, 굵기가 일정치 않은 것도 있다. 잘 살펴보면 심검당뿐만 아니라 범종각도, 대웅보전 옆의 요사체도 휘어진 목재들을 쓰고 있다. 어떻게 이런 목재를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개심사의 넉넉함을 읽을 수 있다. 이 휘어진 기둥 앞에 서면 저절로 나무의 결을 쓰다듬어 보고 싶다. 그 정도로 포근하고 정겨움이 묻어난다.
마지막으로 개심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물이 화장실인 해우소이다. 이젠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 해우소의 구조는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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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길 열리는 간월도
서산 간월도리 외딴 섬에 위치하고 있는 간월도는, 1980년대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뭍이 된 섬이다. 천수만 한가운데 떠 있던 바위섬으로 예전에는 굴양식 배나 드나들던 외딴섬이었으나 지금은 어리굴젓이 많이 나는 육지 관광지로 변모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직까지 물이 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뭍이 되는 간월암이 간월도에 딸린 작은 돌섬 위에 자리잡고 있어 섬다운 정취를 풍긴다.
조선초 무학대사가 창건한 무학사터에 일제 침략시대인 1914년 수덕사 주지였던 만공선사가 중건했다는 이 간월암(看月庵)에는 무학대사에 얽힌 전설 하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 전설에 따르면 어머니에게 업혀 섬으로 오게 된 어릴 적의 무학대사가 이곳 토굴에서 달빛으로 공부를 하였고, 천수만에 내리는 달빛을 보고 홀연히 깨우쳐 암자를 간월암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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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간월도 간월암은 궁리 횟집촌이 있는 황새기쭉부리쯤에서 유조선을 임시 물막이로 하여 방조제를 조성해 화제가 되었던 서산 A지구 방조제 (6.5km)를 지나 왼쪽으로 난 좁은 차도를 5분쯤만 달리면 만나게 되는데, 어리굴젓 기념탑 뒤에 배경처럼 서 있어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물이 빠져 섬의 아랫도리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정오 무렵에 찾는 게 가장 좋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굴젓 기념탑 옆으로 난 조그만 언덕(절산)을 넘어 간월암으로 간다. 하지만 간조 때는 굳이 절산 솔밭 길로 갈 필요 없이 갯벌 위 거친 자갈길을 150여m 걸어가도 된다.
절산을 지나, 혹은 갯벌을 지나 간월암 앞에 서면 산죽 울타리 숲, 해풍에 시달려 한껏 뒤틀린 모감주나무 틈새로 관음보살이 안치된 대웅전과 부속건물(용왕당, 종각, 요사채), 산신각 등이 있는 간월암의 작고 아담한 모습이 보인다. 바람을 막기 위해 절 건물을 알루미늄 새시로 둘러싸고 있어 다소 볼품 없어 보이지만 간월암 마당에서 보는 서해바다 경치는 참으로 시원스럽고 멋지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안면도의 길고 긴 모습도 운치있고, 줄줄이 이어진 왼쪽편 충남해안도 눈에 편안한 여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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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면에 있는 천수만의 또 다른 섬인 죽도의 푸른 모습도 멀리 보여 풍성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간월암 마당에서 천수만 앞바다를 감상한 후엔, 간월암 뒤쪽으로 펼쳐진 갯벌(포구)로 가 보는 게 순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월암만 보고 다시 휑하니 뭍으로 빠져나가기 일쑤지만 간월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발길을 간월암 뒤쪽 포구로 돌린다. 거친 갯벌 위에 한 점 빛처럼 화려하게 정박한 배들,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안면도 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누구나 그 풍광엔 가슴 저려 하는 곳.
특히 무지개 빛으로 다가서는 배들 사이로 선명하게 바라보이는 황도는 황도 자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바람 나고 기분 상쾌해진다.
한편 일몰 풍광과 월출 풍광이 유독 멋진 경치를 자아내니 다소 늦은 귀가가 되겠지만 조용히 감상을 하여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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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 길
▷ 자가운전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나들목을 나와 당진 방면인 32번 국도를 잠깐 타고 가다가 해미 방면으로 향하는 647번 지방도로를 만나면 우회전한다. 이 길을 달리다보면 우측으로 개심사를 알리는 입구가 보인다. 이 길을 5분쯤 달리면 신창저수지와 고목나무가든을 지나 개심사 앞 주차장에 닿게 된다.
서울에서는 약 2시간 거리이다. 주차장에서는 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개심사를 나와 간월도로 가려면 다시 647번 지방도로를 타고 해미 방면으로 계속 직진한다. 해미를 지나면서 홍성 방면인 29번 국도로 바뀌고 다시 649번 지방도로와 합쳐지면서 간월도, 간월암을 가르키는 이정표를 보고 찾아 들어가면 된다.
▷ 대중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해 개심사로 가기는 좀 불편하다. 일단 당진까지 가서 당진에서 운산으로 간다. 서초동에 있는 남부터미널(02-700-2929)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서산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운산에서 내릴 수도 있으니, 물어보고 탈 것! 운산에서는 해미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개심사 앞에서 내려 40~50분쯤 걸어 들어가야 한다.
개심사는 서산 시외버스터미널(041-465-0555)에서 오전 7시 20분부터 1시간~1시간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간월도행 시내버스(40분 정도 소요)를 타면 된다. 또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오전 10시 26분에 출발하는 창리행 직행버스 (3시간 20여 분 소요)를 타고 가도 된다.
▶ 숙박시설
개심사 앞에는 따로 숙박시설이 없다. 하지만 간월도 내에 있는 간월민박(041-662-0895)이나 가나안민박(041-664-3833), 유니콘모텔(041-664-7887)을 이용해도 되고, 서산이나 홍성 지역의 장급 숙박시설을 이용해도 된다. 또 가까이에 있는 덕산, 온양, 도고, 홍성 등 온천지역에서 숙박을 해도 좋다.
▶ 음식점
간월도에서 널리 알려진 음식점은 없다. 대신 궁리해변, 간월도 등지에 생선회 전문업소가 빼곡하다. 어느 횟집을 들어가도 비슷하지만 만일 가격면에서 회가 부담스럽다면 '맛동산식당'에 가서 특허 받은 청국장과 영양굴밥을 먹어도 된다. 영양굴밥은 1인분에 8천원(1인일 경우에는 1만원) 정도.
- 글/사진 제공 김 혁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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