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니지 엇그제 인문대 잠방에서 對미국전을 봤다.
보면서 '이을룡이 왜 패널트 킥을 했냐? 골을 막지도 못했으면서 킥도 못 넣었다' 는 둥, '졌으면 98년 하석주처럼 역적될 뻔 했다' 는 둥의 말을 했다.
경기가 하도 안 풀려서 감정에 실려 그런 질타가 그냥 나와 버렸다.
아쉽게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고 나와 S와 B는 웨스트 아일랜드로 갔다.
(호프집이다.)
갔더니 옆테이블의 여자아이들이 '에스비에스'의 "신문선" 뺨치더라.
'설기현 저것도 못넣나? 내가 헤딩해도 들어가겠다.'
"이을룡 뭔데? 내가 차고 싶더라...'
'이천수는 뜀박질 밖에 할줄 아는 거 없나?..." -_-a
만에 하나,,,
진짜로 만에 하나....
(그러나 사실은 가능성이 충분한데...)
정말로 만에 하나,,,,(하지만 나의 머릿속에서는 "가-능-성"이라는 세글자가 껌벅거린다. 방송과 언론에서 애써 꺼리고 있을 뿐이다.)
만에 하나,
우리가 16강에 못든다는 가정을 해 보자.
지금 무수한 눈화살과 "궤쉑... 재수없는 10쉑.... 듀글라고..... 이기 초치나....etc...."등등의 욕설이 날라옴을 느낀다.
-_-::
그래도 말해야 되겠다.
그때는, "히딩크의 실험축구 실패하다..... 히딩크식 축구 역시 한국축구에는 맞지 않아.....(뭐 '우리식 민주주의or 사회주의' 하자는 얘기와 비슷하게 나올거라 집작된다.) 히딩크호 침몰..... 히딩크도 못고치는 한국축구의 고질병..... 히딩크는 언제 네덜란드로..... 히딩크의 숨겨진 무능, 그 절묘한 위장전술..... 히딩크 개인의 불명예보다 국민적 배신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etc....." 등등등......
무수한 비난이 말이 말을 만들어 내어 차범근 감독시절 뺨치게 히딩크에게 쏟아질 것이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항상 이랬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자는 거다.
내가 앞서 차범근 해설위원에 관한 글을 먼저 올린 이유는 이런면에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신문, 방송과 대중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왔는지 2002년에는 미리 상황을 가정해 보고 혹시있을 지 모를 불미스런 사태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면역되자는 거다.
98년 프랑스 월드컵때 경기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
당시의 차범근감독의 지휘를 아직도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98년 그 상황이라면 제 아무리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였던 차범근이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축구전문가, 특히 한국축구를 잘 아는 축구 통들이라면 98년 월드컴에서 차범근 감독이 어떤 히든카드를 내놓더라도 경기를 호전시키지 못했을 것임을 인정한다.
더욱이 98년에는 전술은 있더라도 전술을 수행하거나 능가하는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왜냐구?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과거의 한국축구에 대해서 말하는 바로 그것,
바로 한국축구=동네축구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선수들은 동네 조기축구회 선수들의 업그레이드판 정도였던 거다.
세계무대를 기준해 볼땐...
작년에 언론이 히딩크에게 붙여준 한국식 이름이 "오대영(5:0)" 이었다.
골드컵 성적 부진을 신문선같은 인간들과 언론이 말초적으로 걸고 넘어질 때 히딩크 왈,
"골드컵을 원하면 골드컵 수준으로, 월드컵을 원하면 월드컵 수준으로 해 주겠다."
정말 명언이다.
이 말은 눈가리고 아웅해서 반짝승리를 원하면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해주겠단 말이다.
감독의 화려함을 빌어 동네축구를 단지 멋지게 포장만 해주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는 말이다.
명언인 동시에 무서운 말이며, 한국축구관계자들에 대한 야유이고 비꼼이며 갈굼이다.
도데체 온지 2년도 안된 유럽출신 감독에게 뭘 원한단 말인가?
히딩크가 한국에 와서 한국축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경악의 이유는,
한국선수들이 너무나 착하고 순수하게 성실하게 자신의 지도를 따라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이나 다른 외국 선수들이 자신의 개인기를 과시해 몸값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큰경기(월드컵)에 임하고 훈련하는데 비해, 한국 선수들은 오로지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기 위하여(16강 진입), 팀 전력 극대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아~~ 가슴이 찡하다~~~! 눈물난다~~~! -_ㅜ )
이것 역시 역으로 보면 선수들이 아닌 한국축구에 대한 욕이다.
선수들의 순수한 의욕과 가능성 빼고는 한국축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구?
한국축구는 동네축구였기 때문이다.
98년 당시 차범근 감독은 히딩크 보다 먼저 한국축구의 체질을 개선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가 요구한 것은 감독의 화려함을 빌려 동네축구를 근사하게 포장하는 것이었고 반짝 승리를 한국축구의 체질개선으로 국민들에게 착각시켜주고픈 일념이었다.
차감독이 축구협회와 마찰이 잦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대항을 많이 했고 그 와중에 그의 지도법이 얼마나 딴지걸리고 변질되어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는가를 말해준다.
결국 차범근은 히딩크처럼 외국인이 아니기에, 한국어가 너무나도 잘 통한다는 핸디캡?으로 인하여 그의 계획을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대표팀 갑독에서 끌려내려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도데체 대한축구협회 인간들이나 언론이나 신문선류의 인간들은 근 50년된 고질병을 고치는데 단 몇 개월의 눈가림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뭔지 궁금하다.
그들의 말과 보도와 기사와 해설을 보면 딱 그렇다.
한국인의 냄비근성 때문이라고?
조선넘들이 승질이 드럽게 급해서 그렇다고?
그걸 알면서 그걸 빌미로 그딴 보도를 정당화하면 안되지.
왜? 못된 기질에서 나온 잘못된 다그침을 언론이 떡하니 공인된 비판인양하니까 문제잖아!
그것도 거저먹겠다는 심산인 축구협회인간들의 이기적 이해와 차범근을 질시하는 몇몇 무리들(신문선류를 포함하여)의 모함에 검증없이 그대로 찬동하도록 여론을 호도한 거니까!
"""" 히딩크!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삼쇼~옹~~ 카~~~~드~! """""
이 TV cf는 원래 작년 상반기에 제작되었고 즉시 방송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서야 전파를 탔다.
이유는 그 당시의 한국팀 성적이 매우 부진했기 때문이었다.
히딩크의 한국식 이름도 그때 언론에 공개?되었다.
"오대영"이라고......
기업도 즉시 인식한 것이다.
우매한 한국축구팬들의 의식수준에 비추어 당장의 방송은 기업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이 광고에 얽힌 비화는 한국축구와 한국축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건 이미 위에서 말했던 것과도 같은 것이다.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감정은 국가대항전 정도의 국민감정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어느정도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을 뿐, 가까운 아마추어 리그나 프로리그에는 시큰둥하다는 것이다.
막말로 무관심하다.
이건 축구에 대한 애정이 아니다.
한국인은 평소에는 국내축구를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지도 응원하지도 않으면서 국가대항전이라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는 온 나라가 난리가 난다.
우리가 축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축구가 무슨 웨펀이가?
또 하나 특기할 것은,
삼숑이라는 거대기업이 한국대표팀에 부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전(前) 네덜란드 국가태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를 그의 과거 명성을 빌어 당장에 한국팀에도 효과가 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광고제작을 했다는 것이고, 성적부진이라는 현실적 분위기에 부응하여 광고방송을 일년간 기피하였다는 것이다.
대기업조차 이정도의 의식이었다.
당장에 뭔가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앗던 것이다.
몇 달새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자 언론도 비난하고 신문선류는 당연히 비난하고 대중은 차범근감독 때 자신들이 어떠했는지 반성도 없이 덩달아 "오대영"을 부르짖고 히딩크를 욕하고 기업은 광고방송을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16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삼숑카드의 광고가 이제는 뽀대나게 전파를 타고 있다.
우리가 언제 히딩크를 욕했냐는 듯이 모두가 "Hiddink! Our dream come true!"를 외치고 있다.
안 이뤄주면 어떻게 할건데?
그때는 또 무슨 소리를 할건데?
50년된 동네축구를 체질개선하는데는 2년으로는 택도 없다.
지금 이정도하는 것은 히딩크의 기적이다.
우리가 16강을 들지 못한다고 해도 히딩크는 단 2년간 불가능했던 기적을 이룬 셈이다.
16강이 기적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선진축구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 기적이다.
그것도 단 2년도 안된 시간동안 말이다.
혹자는 미국전에서 골 결정력의 부족이라는 고질병이 다시 도지는 게 아니냐고, 경기 중에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은근히 욕을 하고 악을 섰었다.
(일부 일간지와 신문선과 그의 짝꿍이 그랬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또 얼치기 스포츠 신문들은 상황을 봐서 기회가 주어지면 아주 기고만장할 것이다.)
죽었다 싶으면 한번씩 살아나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에 고질병이다.
우리는 이미, 아니 적어도 그 고질병을 극복할 방법을 익혔고 그 효과도 만끽했다.
2년동안 이정도의 성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란단 말인가?
너무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는 모르지만 세계는 한국축구의 기적에 깜짝 놀랐다.
(2년동안 이정도면 이건 기적이다. 우리 언론과 우리 국민들만 월드컵 연속 5회 출전이라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기적"이라는 단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한국축구가 더 이상은 동네축구가 아니라는 것에 세게는 경악했다.
앞서 차범근 감독의 얘기를 했었다.
98년 당시에 우리 선수들의 자질은 세게수준에 비추어 정말 암담함 그 자체였다.
약간의 포장으로 아닌 듯이 위장만 했을 뿐이었다.
97년 당시 일본과의 경기는 말그대로 동네축구를 성공적으로 포장한 결과였다.
그것도 그나마............
98년 월드컵 당시의 우리 선수들은 언제나 한템포 느리게 공을 찼다.
바로오는 공을 논스톱으로 차지 못했다.
(내 기억으로 폴란드 전때 황선홍의 논스톱 슛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항상 공을 정지시켜야 했고, 왼발 킥은 그냥 날려보는 터라 오른발 킥을 위해 포지션까지 고쳐야 했다. 즉 슛을 날리는 데 외국 선수들 보다 시간이 두배로 걸린다.
그 사이 수비는 강화된다.
당연히 골결정력이 떨어진다.
차범근의 뜻과는 달리 축구협회와 힘있는 괸계자들은 시간과 돈이 적게들면서 순간 효과를 볼수 있는 전술의 다양한 구사와 선수들의 기술 함양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안된다.
다양한 전술과 기술을 구사할려면 그런 전술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스피드 없이는 전술이 아무리 좋아야 무용지물이다.
스피드는 역시 체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바탕이 되는 체력과 스피드를 먼저 강화할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막말로 전술훈련과 기술훈련에 필요한 것은 공 몇 개와 운동장 하나면 충분했다.
얼마나 값이 싼가!
과학적 체력강화 프로그램,,, 이딴거는 축구협회입장에서 너무 비싸고 오랜시간이 요구된다.
축구협회는 그게 싫었던 거다.
그나마도 딴지를 걸었다.
국제경기가 있을 때마다 이기라고 주문을 하고 그에 맞게 전술과 진영을 짜라고 압력을 넣었다.
히딩크의 "골드컵을 원하면 골드컵 수준으로, 월드컵을 원하면 월드컵수준으로 해주겠다."는 말이 떠오른다.
당연히 대회마다 전술이 달라지고, 각각의 경기를 이기기 위해 진영이 달라졌고 결국 월드컵에서는 일관된 진영과 전술의 훈련부족으로 발이 맞지 않았다.
98년 당시의 한국 태표팀이 왜 그 지경이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차범근은 가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선수도 없었을뿐더러 있는 선수들도 체력과 스피드에서 외국선수들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왼발 슛은 기대를 말아야 했고, 논스탑 슛은 운에 맡겼다.
상대는 이미 토탈사커로 공수전환이 빠르고 포지션의 무구별화가 진행되어 있었는데 비해 우리는 아직도 자기 포지션의 임무가 끝나면 만고 땡이었고, 유사시에는 말이 대인 방어지 우르르 몰려가서 공만 보고 수비하는 그야말로 진짜배기 "동네축구"였다.
98년에는 참패할 수 밖에 없었다.
차범근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에는, 하석주를 역적시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뿌리박혀 있었다.
언론은 현실을 말하지 않았고 차범근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축구협회가 막았다.
국민들은 너무 현실을 몰랐다.
현실을 알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인의 기질은 낙천적인가?
그래서 언론의 이바구에 동조했나?
그래서 하석주를 역적시하고 차범근을 윽박질렀나?
내가 볼 땐 낙천적인 게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여 회피하려는 기질이 강하다.
우린 그걸 낙천적 민족성으로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론은 당시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차범근이라는 개인에게 월드컵 참패라는 불명예의 책임을 덮어 씌워 국민적 욕구불만을 분출케 하여 해소시킬 해생양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만에 하나 이번에도 16강에 들지 못한다면,,,,
정치적 악제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 대해 히딩크와 몇몇 선수들을 그 자리에 대체시켜 여론의 비난을 집중케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서, 언론에서는 더더욱 16강을 염원하는 보도와 기획과 은근한 기정사실화를 일삼는지도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만에 하나, 대한민국이라는 개최국이 16강에 못오르는 월드컵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우리 선수들 욕하지 말자.
히딩크 욕하지 마라.
그것 역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런지 모른다.
다행히도, 만에 하나로써의 그것이 당연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국내축구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인식과 축구에 대한 감정을 반성해야 한다.
평소에는 국내축구를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국가적 결전에서 잘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러다가 결과가 안좋게 나오면 바로 손가락질을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돈없고 백없는 젊은이들이 군대에 끌려가서 '노블레스'들의 특권이 비운 자리를 매꾸고 그들의 재산을 지켜줘야함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철저히 무시당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그것을 비판하면서도 우리는 어쩌면 축구에 대해 똑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단 2년간의 노력으로 동네축구를 세계적 수준의 선진축국로 변모시키는 작업에 대해서....
사회적 모순에 찌든 우리의 자화상이 한국축구에 대한 인식에 그대로 흡수되어 표출되는 듯 하다.
기분 조까따......
이번 월드컵때, 특히 미국전에서 보안기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그들보다 한수 위에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경기장내에서의 관람태도나 경기후의 쓰레기 치우기에 외국인들도 놀란덴다.
자기나라에서도 그렇게 안한다고.
우리는 월드컵 잘하고 있다.
16강 들면 정말 좋은 일이다.
국가적 경사가 날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16강에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축구를 욕하지 마라.
선수들 욕하지 마라.
히딩크 모함하지 마라.
도데체 2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세계최강팀이 되는 것도 모자라 완벽한 수비와 완벽한 골 결정력을 바라는 인간들의 그 머릿속에 손 집어넣어 보고 싶다.
평소에 잘해주지도 않았잖아?
글 -2
우리에게 '실패'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는가 (펌-후추)
2002 한일 월드컵을 치르며 필자가 눈여겨본 부분 중 하나는
차범근 MBC 해설위원과 신문선 SBS 해설위원의 입심 대결이
다. 그런데 언제나 눈에 띄는 차이이긴 하지만, 차 위원은 경
기의 디테일한 부분들을 시청자가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데
반해 신 위원은 표면적인 '뒷북'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
다. 아울러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선수들의 실수를 대하
는 자세이다. 신문선은 해설하는 내내 설기현이나 최용수 등
을 말로 공격하기 여념이 없었다. 반대로 차 위원은 실수한
선수에게도 오히려 기운을 북돋우는 멘트를 했고, 어이없이
빗나가는 슛이 나왔을 때도 '저런 플레이가 상대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필자는 그 차이를 '현장
경험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신문선도 선수 시절이
있었지만, 큰 물에서 논 경험에 감독직까지 맡았던 차범근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문선이 자신의 패배나 실수에 대
해 축구인으로서 책임질 기회를 가진 적은 '적어도' 아직까지
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차범근은 국가대표 감독으로
서 국민 앞에 '실패'를 드러내야 했고 그것이 어떤 고통과 좌
절을 가져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 위원은 선수들과 감독 편에 서서 그들을 엄호한
다. 실패를 책임질 기회가 있었던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인 것이다.
서두에서 차 위원 이야기를 길게 꺼낸 이유는 단순히 해설 수
준의 차이를 논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98년 프
랑스 월드컵에서의 절망을 기억한다. 마치 16강 진출이 눈앞
에 다가온 것처럼 모든 언론과 축구팬이 들떠 있었다. 그 와
중에 '진출 못하면 어쩌지?'라는 재수없는 소리는 들어설 자
리가 없었다. '16강'이라는 단어는 선수단을 강하게 압박했
고, 월드컵 때만 강렬하게 표출되는 특이한 종류의 민족주의
는 선수들이 펼치는 플레이를 축구가 아닌, 스포츠 전쟁으로
승화시켰다. 멕시코
전 3-1 패배. 다음 상대는 일류팀 네덜란드. 냉정하게 말
해 '이기는게 기적'일 상황에서도 한국의 언론과 팬들은 '이
길 수 있다'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 축구의 당시 실력이나,
열악한 축구의 기반, 언론의 문제점, 조직적 지원의 부족함
등은 생각지도 않은채, 이길 수도 있다는 부분에 포커스가 맞
춰졌다. 결과는 당연한 5-0 패배. 이후 벌어진 대량의 살육전
에 대해서는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감독의 대회 도
중 경질, 언론의 차범근 살육, 벨기에전에서의 엽기적인 사
투, 그리고 대회가 끝난뒤 시작된 '한국 축구 이것이 문제
다' 시리즈... 4년마다 한번씩 되풀이 되는 악몽같은 디스토
피아. 저주스런 민족과 국가와 언론과 집단의 스포츠 정신 살
육.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른게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왜 실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일은 없다'라고
굳게 믿다가 겪는 실패가 얼마나 처참하고 증오스런 것인지
그렇게 겪고도 왜 깨닫지 못하는가? 축구도 어차피 스포츠이
며, 스포츠에는 엄연히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패
자가 되었을 때 짖밟는 것 보다는, 다시 패자가 되지 않기 위
해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아는 것
이다. 그런데 4년에 한번씩 걸리는 집단 최면에는 그런 기본
적 상식도 아무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이번 월드컵이 몹시 소중한 기회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일본이 단독 개최할 것을 부랴부랴 공동 개최
로 만들어냈고, 여러개의 수준급 경기장도 완성했다. 세계 수
준의 감독을 영입해서 정말로 축구다운 축구를 펼치는 대표팀
이 조성되었다. '붉은 악마'라는 유례없는 서포터즈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장되어, 누구도 부럽지 않은 응원 열기도 조성
되었다. 정말로 아까운 기회임에 틀림없다. 개최국이 16강에
탈락한다는 것은 '망신'이기에. 정말로 이번엔 한국팀이 축구
를 '잘'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이번에 못하면 또
다시 4년간 힘들게 기다려야 하기에.
그런데,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 승리를 따낸 뒤 돌아가는 판
세는 시계를 4년전으로 되돌린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미국전을 앞둔 상황을 반추해보자. 모든 언론은 미국전 승리
가 기정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고, 모든 방송은 승리를 확신하
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을 화면에 내보냈다. 반미 감정까지 어
우러져 미국전 승리는 당연한 것, 혹은 없어서는 안될 것으
로 각인되었다. 어디에서도 '무승부나 패배가 있을 수 있
다'는 견해는 보이지 않았다. 미국전이 믿기지 않는 무승부
로 끝나자 상황은 어떻게 돌변했던가? 우선 16강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한국이 포르투갈에 비기거나 이기면 자동 진출. 폴
란드가 미국 이겨도 진출. 한국이 져도 폴란드가 몇 골차 이
상으로 이기면 진출... 그 가운데서도 온 국민과 언론이 가
장 입맛을 다시는 것은 '포르투갈전 승리'로 자력 진출하는
시나리오다.
한국은 금방이라도 포르투갈을 이길 것처럼 보인다. 물론 4년
전과 상황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이제야 비로소 축구
다운 축구를 펼치고 있으며, 전술을 이해한 가운데 경기에 임
하고 있다. 선수들이 각자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인터플레
이'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미국에 졌다고 해
서 그렇게 '이긴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상대는 아니지 않은
가. 한국이 2-0으로 이긴 폴란드에 포르투갈은 4-0으로 이겼
다. 한국이 포르투갈에 이기지 말라는 법이 없듯이, 마찬가지
로 강호 포르투갈에 무릎을 꿇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재수없는 소리로 들린다면, 우리는 4년 뒤에 또 똑같
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끔찍한 상상을 해 본다. 모든 16강 시나리오가 빗나가서 한국
은 포르투갈에 지고 미국은 폴란드를 이긴다. 붉은 악마들은
눈물을 흘리고 선수들은 주저앉아 슬픔을 억누른다. 언론
은 '역시 역부족'이란 기사로 도배질을 하고 히딩크는 냉대속
에 한국을 떠나며 잔여 월드컵 경기 역시 찬바람이 불어 닥친
다. 아무도 남은 월드컵 경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폐막
후 시작된 프로축구 경기장은 썰렁함 그 자체이다. 다시 새로
운 대표팀 감독이 선임되고 평가전에서의 승패 하나하나에 일
희일비를 거듭하다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조 편성은 여
전히 불운하고, 그래도 이기지 못할 팀은 없는 것처럼 언론
의 분석은 계속된다. 월드컵이 시작되자 다시 온 국민이 축구
팬이 되고, 정치인들이 경기장을 찾아 선거에 이용하고...
정말로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적 있는가? 만일 정말로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
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발전된 축구팀의
기량에 만족하고 그들을 독려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원
을 아끼지 않을 것인가. 혹은 실수한 선수들을 비난하며 한
국 축구를 냉소할 것인가.
광화문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이, 즐겁게 골 세리모니를 하
던 선수들의 표정이, 두 주먹을 불끈 쥐던 히딩크의 모습이.
또다시 4년전으로 되돌려진 시계추에 의해 무의미한 것이 되
버리지 않도록 힘과 생각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