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지혜 3,9ㄱ)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 땅에 전해진 복음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고, 그 하느님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갖게 되며,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도 버리고 순교의 월계관을 쓰신 우리 신앙 선조들을 기리는 순교자 성월을 지내고 있는 우리는,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 미사를 거행합니다. 선교사 없이 이루어진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의 선교 역사는 전 세계 교회 역사상 유래가 없는 유일한 경우로서, 2014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 교회의 역사를 들어 ‘하느님의 특별하고도 놀라운 섭리’라고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순수한 신앙적 열망과 종교적 진리 탐구를 통해 하느님과의 만남을 이룬 우리 신앙선조들은 불행하게도 신앙의 박해를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박해로 인한 순교자의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됩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초대 교회의 교부 테르툴리아노가 하신 이 말씀처럼,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이 땅의 교회의 씨앗이 되어 이 땅에서 하느님이 이루시는 은총의 풍성한 수확을 이루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전 세계 교회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하게 되었고, 마침내 1984년 이 땅에 그리스도 신앙이 전해진 지 딱 200주년이 되는 해에,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과 함께 103위 순교자들이 성인품에 오르는 기쁨을 얻게 되었으며,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과 함께 윤지충과 123위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 그 가운데 특별히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성인들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신앙 선조들의 놀라운 신앙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그들이 그 같은 신앙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의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앙이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어떻게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마저도 내어놓을 수 있는가? 그들은 대체 신앙 안에서 무엇을 체험하였기에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였기에 자신의 목숨마저도 버릴 수 있었으며, 그들이 만난 하느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셨기에 그들은 현실의 삶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하느님을 향한 희망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오늘의 말씀은 너무도 분명하고 명확하게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복음을 전하는 루카 복음의 말씀 안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이가 갖추어야 할 믿음과 삶의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ㄴ)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예수님을 주님이라 믿어 고백하는 이들은 주님이신 예수님이 걸으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그 분의 뒤를 따라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여정 중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어깨에 우리 각자에게 알맞은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십자가를 얹어주십니다. 그 십자가가 무엇이라 할지라도 그 십자가를 묵묵히 어깨에 짊어지고 그 분의 뒤를 따르는 삶. 바로 그 삶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가 갖추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 같은 삶의 모습은 사실 오늘 제 1 독서의 지혜서의 말씀처럼 믿지 않는 이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불필요한 그리고 피할 수 있는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하느님을 만난 이들에게 그 모든 것들은 결코 고통이나 시련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 안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고 그 분이 주시는 사랑을 체험하여 그 강렬한 사랑의 체험에 이끌려 그 분의 뒤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마치 강한 자석과도 같아 그 사랑의 자기장 안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든 그 사랑의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바로 이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 2 독서의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안에서 바오로 사도 특유의 강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 곧 하느님의 넓고 깊고 높은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의 힘을 온 몸으로 체험한 이들에게 이 세상의 삶은 천상 잔치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일시적 나그네의 삶으로 여겨지며, 그러기에 그들은 이 삶 안에서 하느님이 자신에게 맡겨 주시는 삶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그런 이유로 그 길에서 그들이 마주하게 될 고통과 아픔들은 더 이상 그들에게 고통이 아니며 아픔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 모든 것은 사랑이신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희망의 초대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 제 1 독서의 지혜서의 다음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 속에서 불사의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아 주시기 때문이다.”(지혜 3,9)
분명 신앙을 위해 고통을 겪고 목숨마저 잃는 삶은 신앙이 없는 보통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파멸의 삶으로 비쳐집니다. 그러나 오늘 제 1 독서의 지혜서의 말씀처럼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하느님이 일러주시는 참된 진리, 곧 하느님과 함께 그분의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참된 가치를 깨달았기에, 그리고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과 자비로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얻었기에, 또한 그분께서 친히 그들 모두를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실 것을 굳게 믿기에, // 그들에게 그 모든 고통은 용광로 속의 금을 단련하듯 그들의 삶을 보다 더 빛나게 하며 그들의 삶을 불꽃처럼 퍼져 나가게 할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기억하는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바로 이 같은 점에서 자신들이 접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 안에서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느님의 평화와 그 평화가 가져다주는 불사의 희망을 발견한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 안에서, 또 하느님이 주시는 사랑의 평화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하느님의 곁으로 다가가신 분들이 바로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한국천주교회의 신앙 선조들입니다.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을 기억하는 오늘, 시편의 화답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 속에 환호송을 올리며 곡식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지혜서의 말씀처럼 지금의 삶이 주는 시련과 모든 고통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께 맞갖은 이들이 되도록 단련하는 하나의 시험이자 초대라는 사실. 용광로의 높은 열을 통해 순수한 금이 보다 단단히 단련되듯이, 우리 역시 하느님 사랑의 용광로 안에서 그 분에게 맞갖은 이들이 되기 위해 사랑의 단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사랑의 단련을 통해 우리 모두가 빛이신 그 분 곁에서 그 분의 사랑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2014년 우리 곁을 찾아오신 벽안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의 신앙선조들이 보여주신 하느님께 대한 놀라운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신앙의 증언을 지금 이 순간 우리 역시 우리 삶 안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200년 전 보여주신 바로 이 신앙의 모범을 따라 여러분 역시 여러분 삶 안에서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삶의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의 뒤를 따르시기를 그리하여 그분과 함께 하느님 곁으로 한걸음 다가가 하느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평화를 온전히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행복하리니,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리라”(1베드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