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사태』
- 수필가 시인 주현중 -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사진이 필요하면 나는 늘 사진관에서 해결하거나 아니면 일회용 카메라를 구입해 해결하곤 하였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었는지 며칠 전 최신형 휴대용 카메라를 한대 구입을 하였다. 일반형, 동영상 등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거나 또는 인터넷의 멋진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카메라로 복사도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의 카메라를 구입하긴 하였는데, 사용설명서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기능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내가 자주 이용하는 동네 사진관에 들러 그 사용법에 대해 알아보려고 인사차 들었더니 어찌 된 영문인지 늘 그 자리에 있던 사진관이 보이질 않아, 똑 같은 왕복 길을 두 세 번씩 다시 오르내리며 확인해도 역시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헤매다가는 마저 지는 해도 서산西山을 넘을 것 같아, 사진관이 있던 옆에서 ‘후라이드’ 치킨영업을 하는 주인 아주머니께 어찌 된 영문이냐고 물으니, 몇 주 전에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간 벌이가 적잖이 잘 된 모양이로구나! 생각하며, 그 치킨영업을 하는 아주머니께 “그럼 다른 곳으로 이사한 모양이군요?”라고 묻기 바쁘게 돌아오는 말은 “웬걸요, 사진관을 아예 없앴는데요, 그런데 왜요?”라며 도려 무슨 일로 찾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별일은 아니고, 사진관 사장님 좀 뵈었으면 했는데 문을 아예 닫아 버렸다니 그냥 가렵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돌아오려는데, 또 다시 들리는 말은 “영업이 잘 되지 않아 폐업했어요.”라는 것이었다. 그 치킨 집 아주머니의 ‘폐업’이라는 말에, “폐업을 할 정도로 안 되었데요?”재차 묻는데, 희롱조의 말이 들려왔다.
“아이고 손님도 참! 요즘 시대에 누가 사진관에서 사진 찍겠어요! 특별한 사진이 아니면, 휴대폰에도 카메라 기능 있겠다, 모르긴 몰라도 휴대폰 말고도 일반 카메라 한두 대 이상씩은 보유하고 있을 걸요. 그러니 누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요?”그 아주머니의 말은 다소 희롱조로 들리긴 했지만, 일면 좀 짜증이 난다는 어투였다. 나는 돌아오면서 그 아주머니의 반응이 왜 그리도 짜증스러웠을까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 끝에 얻은 결론은 ‘망할 놈의 세상!’이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치킨점이 점포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집 역시 2005년도 가을에 개업을 했던 집이다.
현시대엔 전국 어디를 가보더라도 탄탄한 재력이 없는 한 어지간한 소자본 가지고는 무슨 장사를 한다 해도 만 3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여론이다. 필자의 중학교 여동창도 2004년 늦가을에 서울 강북구 미아전철역 앞 골목에서 삼겹살 체인점을 하였는데, 그 친구는 3년은 일장춘몽一場春夢, 만 1년도 못 된 8개월 만에 문을 닫고야 말았다. 더욱이 영업주가 주방 일을 못할 경우 종업원을 두어야하는데, 아무리 작은 규모의 영업집이라도 셋은 두어야 하는 실정이다. 물론, 간혹은 악바리근성을 가진 이들은 주방에서부터 홀은 물론 배달까지 하는 1인 2역 또는 3역까지 하는 모습도 더러 보이긴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할 뿐, 손님이 많든 적던 종업원이 꾸벅꾸벅 졸던 일단 편하게 영업을 하려는 다수의 심리도 깔려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하다.
또한, 필자의 친형이 봉급쟁이로 일하는 봉제공장 사장의 말을 들으면, 만약 가정하여 나의 생명 길이 삼거리나 사거리 중 한 곳에 있다고 한다면 정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고민만 하다 늙어 죽지나 않을까 싶은 것은, 친형이 근무하는 그 봉제공장 사장이라는 분은 공장일이 웬만하게 바쁘지 않으면, 아침에 뜬 해가 중천에 가 있는지! 서간西山 중턱에 걸려있는지 감각도 잃은 채, 내실로 들어가서 텔레비전 앞에 한번 앉으면 여간해서 밖으로 나올 줄은 모른다고 한다. 왜냐하면 번갯불에 콩 볶을 일 없으면 보던 드라마는 다 보아야 작업실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형이 전하는 그의 말을 듣고 공장에 일거리가 그렇게도 없느냐고 하자, 친형이 하는 말이 일거리가 예전보다 줄어들기도 하긴 했지만 그 사장이 하는 말이란 “이봐! 그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 없어, 그러다 십년 살 것 단 오년에 끝나고 말거야, 이젠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어.”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친형이 근무하는 봉제공장 사장은 엄청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운, 아직까지도 술도 잘 마시지 않으며 담배도 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변한 것은, 봉제공장이란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출품목에서도 알아 줄만큼 성행했던 사업이기도 했거니와, 조그만 지하를 월세로 얻어 재봉틀 몇 대만 가지고도 처자식 먹여 살리는데 별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으나, 요즘은 어찌된 영문인지 주문도 그리 시원치 않고 큰 장사치들이 아예 독점을 하여 일거리를 중간에서 가로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무슨 제품공장이든 하청사업으로는 하루 세끼니 풀죽도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철야작업을 해도 한 달 수입에서 종업원 급여 주고 공장 임대료 주고 나면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현시대엔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은 죄다 중국이나 필리핀 등 우리 한국보다 경제력이 저조한 국가로 진출하여 공장을 짓거나 임대를 내어 원가절감, 인건비절감도 되고 국위선양도 한다는 명분아래 겨우 하는 꼴이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내 손으로 만든 제품을 모국에다 역수출한다며 애통해 한다는 것이다.
홍길동이 말을 들으면 홍길동이 말이 옳고, 임꺽정이 말을 들으면 임꺽정이 말이 옳으니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은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할 지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부터 부모마저도 벼룩의 눈알만큼도 가진 것 없는 집안에서 성장한 사람은 불철주야 동분서주 해 본들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식이니 하소연할 때도 없거니와, 무기한 사업자금 빌려 줄 사람도 은행도 없는 이 세상에서 어찌 살아가라는 것인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허공에 대고 삿대질할 노릇이다.
있어도 먹고 없어도 먹으며 하루 온종일 빈둥대어도 배 한번 골치 않는 배불뚝이 사장님내들이나 그 처자식들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현실이 이러함에도 식물인간처럼 감각을 잃어버린 것인지 한강의 기적이란다. 말이 나온 김에 더 하고 싶은 말은, 한강의 기적이란 과거 1970년대 중기부터 1990년대 초기까지는 성립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21세기 현시점에서 고작 여의도에 장승처럼 솟은 63층 빌딩 하나뿐인 것을 가지고 이마에 기름칠하기 바쁜 모양이다.
지난 196~70년대는 가난한 집안의 자손이라 해도 당시는 단순인력이 주된 업이었기에 건강한 몸으로 노력만하면 자수성가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단순인력이 아닌 정보화와 기계화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겠지만, 타인의 아이디어 도둑질에도 모자라 반 협박으로 빼앗아먹기 시대 하에서 천하장사라 한들 용쓰는 제주 없으면 죽는 날까지 가난을 모면하기란 차라리 우주왕복선을 타고 달나라에 가서 별을 따오는 게 더 낳을지도 모를 일이다.
옛 성현들이 전하던 옛말에 ‘삼대 가난도 없고, 삼대 부자도 없다.’는 말은 오늘날로 보아 역사책 속의 이야기일 뿐, 21세기는 ‘가난은 가난을 낳고, 부자는 부자를 낳는다.’는 말이 더 현실적이며 신빙성이 있질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폐업’이란 말이 오늘날의 유행어가 된 현실 앞에 배부르고 배고픈 것이야 다 운명이라고 치부하더라도, 기껏 해야 한 줌도 안 되는 삼각팬티 한 장을 사기 위해 4~5만원씩이나 쓰고, 가죽장갑 한쪽에 10여만 원을 주고 사는 늘어진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닿는 팔자 좋은 임들이여! 말로만 고통분담이니 사랑 베풀기니 노래만 부르지 말고 몸소 실천으로 나누어주는 진정 표가 나는, 눈에 보이는 고통분담이기를 스스로 돌아볼 일이며, 뱃가죽이 땅에 닿는 임들께서 정녕코 ‘나는 올바른 부를 쌓았는가?,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일 적이 없었는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폐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며,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현실 앞에 과거 새마을운동시대의 잣대로 오늘을 재지 말 것을 전하고 싶다.
담 넘어 3층 주인집 마당에 홀로 핀 자목련의 자태는 5월을 기다리는 모양인지 쓰러지는 선인善人의 마음엔 안중에도 없이 얄밉게도 고울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