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
라디오는 내 친구 외
부엉이가 라디오에서 살았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 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지요“
라디오는 내 친구, 애청자 여러분 한 주간도 안녕들 하셨는지요?
정든 말 얌전한 말 겸손한 시절이 있었다
사실 달과 별도 라디오가 고향이다
차곡차곡 쌓이는 설레임 같이
천지사방 흰 눈들 같이
우리 집에서 밤하늘까지의 긴 거리 같이
잘록한 허공이거나 고요함 같이
풀이 자라다 걸음을 멈추어 꽃 된 거 같이
라디오가 고향인 저 별과 달
너를 배우던 한때가 있었지
차근차근 말 들어주는 친절함 같이
속사정 모르는 바람들 같이 세간들같이
너를 부르는 소나기 같이
푸른 하늘 은하수같이
떠난 여자 그리는 샹송도 흐르던
텔레비전은 뉴스로 말하고
라디오는 주로 서정으로 말한다
꼬~물 사세요, 꼬물
텔레비전을 내다 팔았다
친구인 라디오는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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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말리는 방법
빠짐없이 말려본다
그런대도 밖의 풍경들
늘어진 버들의 그림자까지 말려본다
지평을 건너가는 신기루
늘어진 달리의 시계도 말려본다
사진기를 삼켜버린 피사체를 말려본다
두꺼비의 등짝도 말려본다
최초의 뱀을 말려본다
무엇을 말려본다
무엇도 말려본다
그저께같이 허무한 입술들을
젖었던 비의 걸음들을
감정을 소용을 벙어리 같이 말려본다
친구를 부재중에 말려본다
피뢰침을 말려본다
도면을 말려본다
역사적으로 말려본다
반성문같이 한 줄 같이
젖은 것들을 말려본다
태양을 말려본다
고 철|강원 철원에서 태어나 홍천에서 성장했다. 2000년 《작가들》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핏줄』, 『고의적 구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