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국기(國旗) 제조업체인 동영산업의 최인태(65) 회장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시상식과장을 지낸 그는 스스로를 '깃발 광인(狂人)'이라 부르는 국기 연구가이기도 하다. 세계 국기들의 변천사와 게양 원칙을 훤히 꿰고 있어 지금도 여러 국제 행사에서 국기에 관한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4월부터 지난 주까지 사비(私費)를 털어 '6·25 60주년 기념 유엔군 참전현황 자료전'을 열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주자는 뜻이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팸플릿 광고비를 받은 것 말고는 어느 기관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6·25 당시의 태극기와 국군·유엔군 사단기(師團旗)의 재현품 60점을 만들고 기록사진 200점을 수집한 뒤 수도권 지하철역을 돌며 무료 전시회에 나섰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전시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친미(親美)적인 행사를 진행하는가?" "이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전시회는 당장 중단하라." 후송되는 북한군 포로 사진을 보고 "왜 잔인한 사진들을 걸어놨느냐"는 등 일부 시민들의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점잖은 차림의 40대 신사 한 명이 다가와선 "6·25전쟁에 미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됐건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지 않았겠느냐"며 훈계조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머리를 빡빡 깎은 한 청년이 "왜 이딴 전시회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소리를 지르더니 "참 딱하시네요"라며 비웃고 간 일도 있었다. 급기야 지난 15일에는 시청역 천장에 걸어 놓은 사단기 50점을 누군가 모두 떼 가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지 짐작할 만한 일도 있었다. 한 중학교를 방문해 학생 견학을 요청하니, 담당 교사는 귀찮다는 듯이 "얼마 전에 4·19 행사도 있었는데 왜 또 이런 걸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전시를 보던 80대 참전용사 한 명은 관람객 앞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초등학교 4학년 손녀딸이 학교에서 '6·25는 북침'이라고 배웠대요. 내일 학교에 가서 그 교사를 만나 단단히 따질 겁니다. 교사들 교육부터 다시 시켜야 해요!"
최 회장은 "나도 교사(제물포고·숭의여고) 출신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그릇된 국가관을 가지게 된 데는 교육 현장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