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끔 눈팅하고 있는 눈팅족 입니다.
제가 아는 미해병분의 글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한국 해병에 대해 칭찬하는 글을 읽어서 발로 번역해 봅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재미있으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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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LICOone
여기에 혹시 1967년부터 1968년까지 근무한 해병은 없나요?
전 여기서 ANGLICO(항공함포 연락반) 서브 유닛 1에서 근무 했습니다.
한국 해병 청룡부대와도 같이 근무했구요.
아무도 없나요?
같이 근무했던 해병이 하와이에 사는데 그 친구가 쓴 SU-1(서브 유닛 1)
이라는 책이 곧 나올거랍니다!
39mto39g
어서와요 ANGLICOone.
혹시 병과가 '함포요청' 이었나요?
론
ANGLICOone
아뇨, 함포요청 훈련을 받지는 않았어요. 1-4가 제 콜싸인 이었는데 아시려나요?
저는 근접항공지원 요청을 하는 사격지휘병 이었구요. 가끔 보급 지원 이나 의무
지원 헬기 요청도 했고 한국 해병과 미 해병 항공대간의 통신을 지원했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1968년 전에는 2명이 한팀 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3명이 한 팀으로
바뀌었던것 같네요.
많은 수의 서브 유닛 1들이 한국 해병 제 2사단 "청룡부대"에서 근무했어요.
제가 월남에 도착한 1967년도 10월경에는 1군단 남쪽지역의 '빈손' 이라는 곳에
주둔지가 있었어요. 저는 안호아 라고 불리는 지역 근처의 작은 산 꼭대기에 있는
수색대 OP에서 근무하고 있었구요. (다낭 위쪽에 큰 도시인 '안호아'하고 같은
이름이예요). 나중에 짜빈동에 있는 11중대로 옮겼어요. (제가 옮긴 당시는 2개
연대의 북베트남 정규군과 베트콩 대대가 한국 해병을 밀어 버리려다가 실패한
9개월 후 였어요.)
67년 12월에는 모든 여단이 함선을 타고 추라이에서 다낭으로 옮겼죠. 그 이후에
트럭을 타고 호이안으로 옮겨갔구요. 1968년 1월 31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던 동네였는데 말이죠.
암튼 환영해줘서 고마워요 론. 당신은 어디서 누구와 함께 근무했나요?
39mto39g
해병형제님
나는 1967년 6월 19일부터 1968년 6월 19일까지 월남에 있었어요. 전 한 곳에서만
근무했구요. 전 연대 사격 지휘반에 있었어요. 제 마지막 콜싸인은 39마이크 였죠.
전 한국군하고 근무한 경험은 없네요. 한국군은 ARVN (남베트남 특수부대)과 비교
해서 많이 틀린가요?
론
ANGLICOone
당연하죠.
한국해병은 한국전 당시에 만들어 졌어요. 우리 해병 1사단에 의해서 교육됐고 많은
수의 장교들이 미 해병 학교를 졸업했죠. ARVN 과 비교를 하자면... 글쎄요 다른점이
좀 있죠. 전 한국 해병을 그 당시에 우리가 완벽하게 믿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부대
라고 생각해요. 1명의 청룡부대원 = 50명의 ARVN 쯤...? 잘 모르겠네요.
본대와 좀 떨어져있던 파견 OP 같은 곳에서도 수색정찰이 없는 날이면 반드시 태권도
를 단련하더라구요. 찾아보면 제가 역기드는 사진에도 그 모습이 찍혀있는 사진이 어디
엔가 있을거예요.
가만 생각해보면, 한국 해병은 좀 '어린'? 그런 부대죠.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한국 해병은 실로 '전사의 혼'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짜빈동에서 11중대가
전투할 때, 몇몇 진지가 돌파를 당하니까 병사들이 가지고 있던 개인화기를 신속하게 분해
해서 중요한 부품을 멀리 던져서 그들이 죽더라도 노획당한 병기를 못 쓰게 했으니까요.
그리고 맨날 태권도를 하니까 백병전까지 한 전투였는데도 30명 정도의 사상자 밖에 안
나온게 이해가 되죠. 2개 연대의 북 베트남 정규군을 대대 병력으로 학살을 해 버렸으니...
나중에 잡힌 북 베트남 장교에게서 노획된 문서에는 가급적이면 한국 해병하고의 전투를
피하라고 적혀있기도 했죠.
짐 포타 하고 데이브 롱 이라는 ANGLICO 병사가 짜빈동에서 근무했었죠. 짐은 제 가장 친한
친구중 한명인 '김세창 중위'가 저격을 당했을 때 옆에서 있다가 긴급히 응급처치를 해서
그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었구요.
아이고, 눈물이 날라하네요. 물론 장비 같은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열약한 적도 많
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같은 전쟁터에서 서로 서로를 아끼면서 지냈어요. 음식도 서로 나눠
서 먹고. 전 지금도 그들이 전투에서 보여준 정신과 모습을 정말로 존경한답니다.
제 한국 해병 형제들이 말하는 것 처럼...
(한국말로) 필승! 입니다.
39mto39g
저도 듣기로는 한국 해병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하지만 몇번 한국
해병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주둔한적은 있었죠. 아주 용감하긴 했지만 똑똑하지는 않았던듯...
제가 그 진지를 떠난이후에 한국해병들이 박살난 적이 있었거든요.
똑똑하다는 말의 의미는 서로 다를 수 있는거니깐 뭐...
만약 다낭 근처에 있었으면 우리는 서로 비슷한 곳에 있었겠네요. 발디 서쪽에 있었거든요.
론
ANGLICOone
호이안에서 몇 클릭스 떨어져있었죠. 이 사진 찍은때가 1968년 2월이예요.
한국 해병 2여단, 3대대, 10중대였죠. 맨 왼쪽이 저 구요(밴스 홀), 그 다음이
찰스 윌리암스(ANGLCI team) 그 다음이 윤 대위(05년 12월에 사망), 그 다음이
'하사'라는 사람인데 이 사진찍고 1주일 후쯤에 북베트남군 소대를 잡으려다가
매복하고 있던 적군과 교전중에 눈 사이에 총을 맞고 죽었어요.
아마 발디 남쪽에서 몇 마일 안 떨어져 있었을 거예요 형제님.
Anglic1
저는 9사단 백마부대 30연대에서 근무했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군인들이 바로
한국군이라고 전 생각해요. 아마 한국 해병도 마찬가지 였겠죠. 이봐요, 만약 당신들이
월남에서 한국군과 서로 친해진다면 세상에서 바랄게 없었을거예요.
하지만 훌륭한 도둑들이기도 했죠. (<-- 이게 바로 긴빠이 인가요? ㅎㅎㅎ) 아 글쎄
우리 막사에서 뭔가가 없어지면 항상 그들이 가지고 있더라니까요!
팩
ANGLICOone
이건 10중대 CP 근처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호이안 동쪽이예요. 태권도를 연습하고 있죠.
1968년 중반쯤 됐을거예요 아마.
이 사진은 작은 산에 있던 OP 에서 1967년에 찍은건데요. 여기서도 저렇게 대나무에
콘크리트를 끼워서 역기 연습을 하고 있더라니까요. 윗 사진 보다는 제가 좀 더 젊었을
때네요.
이 사진이 바로 3대대 11중대가 태권도로 짜빈동에서 베트콩을 잡는 사진이예요.
(제가 도착하기 바로 전이죠)
39mto39g
밴스.
첫번째로, 여기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본게 어떤것이든 완전 엉망인 걸 본
사람들이예요. 태권도는 그냥 말뿐인것 같아요. 저도 갈색벨트가 있긴하지만요.
사진에서 보니까 저건 그냥 아주 기초인것 같고, 반 정도는 똑바로 못하고 있네요.
그냥 아무 미군 보병을 던져다가 놔도 늙은 미국 노인 정도는 끝장낼 수 있어요.
하지만 뭐... 베트콩은 미국인은 아니었으니깐.
1967년 10월에 4보병사단과 173공수가 콘툼에서 벌인 전투가 '진짜' 전투죠...
하지만 해병들도 그런 전투가 있었을거라 믿어요.
론
첫댓글 SU-1 책이나오면 꼭한번 읽어 볼것임니다.제가 67년후반기 부터 68년 후반기 까지 청용 부대에서 근무를 했었으니까요.
저도 포유도병 통신병으로 66년~68 년초까지 근무했으니 한번쯤 저 친구와 조우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청룡 통신병들은 한국군과 교신을 맡고 중요한 항공지원 (Anglico)은 미 해병대 파견 장교가 했었는데 미 해병 전투기조종사도 있던 걸로 기억 됩니다. 우리와 무척 친하게 지냈고 지금은 잊었지만 미국주소를 적어 주며 귀국후에 연락 하기로 했었는데 주소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성도 얼굴도 이젠 전연 생각나지 않고~~ 감회가 새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