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값은 얼마나 될까
윤 범 식
사람들의 소망은 저마다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건강이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병들을 앓아가며 모두 평생을 살아간다.
내 나이 70을 갓 넘긴 요즘 친구들과의 모임에 가면 거의 모두 한두 가지 지병을 달고 살지 않는 친구는 별로 없다. 병명을 들어보면
고혈압 같은 순환기 쪽이 많고 , 당뇨, 치아, 전립선, 눈병들 순인 것 같다. 신기한 것은 자기지병에 관한 의학지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고 다른 병에 대한 상식도 꽤 높은 수준이다.
생활 형편들이 전부 좋아져서 평균수명이 늘어나다 보니 사람들마다
자연히 자기 건강관리에 관심을 쏟게 되고 이에 따라 신문 기사나 T.V에서도 생로병사나 건강 상식을 일깨워주는 프로가 많아졌고 심지어 의학전문용어를 써가며 진행하는 드라마까지 방영해 시청률을 한때 잠시 높이기도 했다. 의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수한 신약이 많이 개발되고 의료보험 같은 복지제도가 활발히 운영되면서 우리의 평균수명은 날로 연장되어 가고 있지만, 장차 생명은 유지하고 있으되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약 7년간의 수명손실 기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앞으로 해결하여야할 과제 인듯하다.
나라고 병 걸림에 예외일 수는 없다.
내가 지니고 있는 작고 큰 병명을 나열하면 종합병원의 각 진료실을
순회하며 치료를 받을 만치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전한 곳이 거의 없다. 남에게 전염이 되거나 외부로 불거진 병들이라면 아마 내 근처에는 사람들이 접근을 피할 정도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밝히면, 1984년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열린 “우표올림픽”을 준비하고 개최하는 책임 직에서 일을 맡아 하며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얻은 공황장애의 합병증으로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나만이 알고 겪는 상처뿐인 영광인 셈이다.
다음은 눈이다. 눈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간 것 같은 껄끄러움이 있어
바로 집 건너에 있는 삼성의료원에 갔더니 눈까풀 안쪽에 노화로 인한 염증인데 치료를 해 보지만 컨디션에 따라 평생 갈 수도 있다는
전문의의 진단 결과다. 코에 알러지성 비염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재채기로 시달리곤 한다. 치아는 하루 세 번의 양치질 습관 덕분에 충치는 없으나 오래 쓰다 보니 부분적으로 부스러져 네 개의 어금니는 금속으로 씌워 사용하고 있다. 또 환절기만 되면 기관지에 고장이 생겨 심할 때는 약도 복용하고 도라지 엑기스나, 배의 속을 파내고
꿀을 넣고 다려 먹기도 한다. 그냥 지나쳐도 좋으련만 50견이 60대
에서 또 와 두 번이나 남들 보다 심하게 고통 받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신통하게 나은 적이 있다. 중년기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매번 종합검진 때마다 고지혈증 “요 주의” 경고를 받고도 별일 없겠지 하고 쉽게 넘겨 버렸는데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한 참기 어려운 흉통으로 119구급차에 실려가 정밀 검사를 받고 심혈관이 일부 막힌 것을 조형수술을 받고 살아났으나 이로 인해 3급 장애자 신세가 되기도 했다. 언제 심혈관이 또 막힐지 몰라 니트로 크리세린 이라는 비상약을 지갑 속에 돈보다 더 중하게 챙기고 다닌다. 병 이야기만 계속하려니 재미없고 멋 적지만 그래도 참고가 될지 몰라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퇴직할 무렵 이따금 허리가 아파 우연히 골밀도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요추 일부에 뼈 엉성증(골다공증)이라 하며 약을 먹어도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원인은 젊었을 때 술과 커피를 많이 마신 때문일 거라는 추측진단이다. 어느 날 이미 망가진 뼈는 재생이 되지 않는 다고 허리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의사인 아들이 골프 연습장으로 같이 가자더니 6개월 렛슨비를 끊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아직까지 내 나이에 이따금 친구들과 휠드에 나아가 하얀 공을 푸른 초원을 향해 하늘 높이 날리며 즐기는 행운은 순전히 효자 아들을 둔 덕분이다. 골프를 친다니까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돈이 많아 골프를 치는 줄 안다. 다음은 담낭 속에 결석이 담도를 막고 염증이 유발한 것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고 여러 날 검사만 하는 고생을 한 후 복부를 네 곳이나 뚫고 복강 경 시술로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고나니 속된 말로 쓸개 없는 놈이 됐다. 이때 8일을 굶어보는 경험도 해 보았다. 퇴원할 때 과식하지 말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술은 절제하여야 된다는 의사의 주의 사항이다. 그 후 술자리 에서 변심했느냐는 오해를 종종 받기도 한다. 직장에 포립이 있다고 해서 떼어내 암일지 몰라 조직검사도 해보고, 혈액 속에 psa숫치가 높다고 정밀검사를 하라더니 암은 아니고 전립선 비대증이라고 하여 약을 또 먹는다. 군에 가서 얻어 온 발의 무좀까지 좀처럼 떠날 생각을 않고 있으니 친구처럼 같이 산다. 그러고 보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 이쯤 되니 가족들이 나를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옛날 말에 흉은 감추고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